〈 286화 〉 IF 외전: 향이는 그녀를 원한다.(1)
* * *
“야, 이거 봤어?”
“뭔데?”
“이거, 요즘 엄청 유행하는 음식점이래. 엔스타에 요즘 난리도 아니던데?”
“진짜? 어디 봐봐….헐! 디자인 개쩔어! 엄청 고풍스러운데?”
“그치? 여기 후기 보면, 정말 조선시대 주막 같대!”
“근데, 이렇게나 디자인이 좋으면 비쌀 것 같은데…?”
“응? 아냐아냐~ 점심 특가로 만원 정도 한다는데?”
“헐? 그 정도만 받아도 장사 할 수 있대?”
“몰라? 애초에 저 건물이 주인 꺼라던데? 그럼 월세나 그런 건 좀 압박이 덜하지 않겠어?”
“그러게…어? 이 애는 누구야? 한복 입고 있네~ 귀엽다~”
“주인이래.”
“뭐? 이렇게나 어려보이는데, 주인?”
“성인이라는데? 요리실력도 장난이 아니래~”
“대박이다 진짜~ㅋㅋㅋ”
“오늘, 여기 가볼래?”
“그럴까?”
*
“흐아아암….”
잔뜩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편다.
“어라…또 이러네…”
눈을 비비며 베개 맞은편에 놔두었던 휴대폰을 보자, 또 알람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난 모양이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이미 몸에 배어 버린 성실함에 오늘도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일찍 일어나면 좋은 거지.
셰프님은 조금 푹 주무시라고 하지만, 몸이 자동반사로 일어나버리는걸.
“....오늘도 힘내자.”
오늘도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몸을 일으켰다.
*
“일어나셨어요?”
“어? 향이도 일어났구나?”
몸을 깔끔하게 정돈하고 아무도 없는 홀을 지나 마당으로 나오니,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 귀를 팔랑거리며 마당을 뛰어다니는 힐라와 마주쳤다.
“어제 조금 무리하지 않았어? 푹 자도 좋을 텐데.”
“힐라 언니야말로 어제 힘드셨을 텐데, 아침운동까지 하시잖아요.”
“아하하~ 나는 언제나 건강하니까~”
힐라는 잘록한 허리와 울끈불끈한 복근을 강조하며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와~ 그게 새로 주문하신 활이에요?”
“응. 원래라면 총을 쓰지만, 이 나라에서 총은 불법이래서, 매일 아침 훈련을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거든~ 이렇게나 평화로운데 말이지.”
그녀는 어제 배달온 새로운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푹.
그녀의 앞에 놓여진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이 정확하게 박혔다.
“우와….”
“헷, 대단하지?”
“아주 멋있어요! 하지만 곧 개업준비를 해야 하니 서둘러 도와주시겠어요?”
“그래~ 알았어요 부.셰.프. 님?”
“...! 노, 놀리지 말아주세요오…!”
“냐하하!! 알았어~ 금방 들어갈게~”
어느새 얼굴이 화끈하게 붉어진 향이를 바라보며 웃던 그녀가 활을 내려놓았다.
“어휴…정말…”
언제나 밝지만, 가끔 짓궂은 장난을 치는 힐라 덕분에 부끄러워진 향이는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왔다.
“아, 일어나셨어요?”
“응, 잘 잤어?”
“향이 언니 안녕하세요!”
“....잘 잤나.”
그렇게 주방에 들어오자, 어느새 잠자리에서 파렌과 마오, 그리고 창. 이들이 향이를 반겼다.
“아니, 이제 다르게 불러야 하나….부주방님…?”
“헉! 맞다! 조, 죄송해요 부주방님!”
“....”
“아, 아니!! 여러분들! 너무 그러지 마세요!!”
하지만 이내 파렌과 마오는 향이의 가슴팍에 달린 무언가를 보며 얼굴을 바꿔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언제나 가족처럼 같이 지내던 이들이 깍듯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마음이 불편해진 향이는 두 사람을 전력으로 말렸다.
“하…아직 저에게는 너무 버거운 것 같아요….”
향이는 조금 우울해진 표정으로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것을 바라보았다.
[스타주막 부 주방장:춘향]
그렇다.
그녀는 어제, 스타 주막의 주방에 부주방장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여기있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강하의 곁에서 일했고, 요리 실력 또한 매우 뛰어났다.
그런 그녀가 부주방장이 된 것은 그 누구 하나 반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상냥하고 믿음직하기는 한 소녀, 아니 여성인 향이는 아직 자신의 가슴팍에 달린 부주방장이라는 칭호가 자랑스러운 한편,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때.
“어~ 다들 잘 잤어?”
“...! 일어나셨어요? 셰프님?”
“아, 오셨네요!”
“셰프님! 안녕하세요!”
“편안하게 주무셨습니까. 셰프님.”
느즈막하게 주방으로 태연하게 걸어온 한 소녀가 손을 흔들자, 주방의 인원들은 모두 그녀를 반기며 인사했다.
이 스타주막의 주인이자 주방장.
강하였다.
“어제 재고확인은 끝냈지? 이상은 없어?”
“네~ 이상 없었어요!”
“그으래? 좋아, 오늘도 화이팅 하자고!”
그렇게, 오늘도 스타 주막은 개업을 준비했다.
*
새로이 주막을 개점하고,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새로운 스타주막은 나날이 손님들이 늘어나고, 자연스래 홍보가 되면서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에서 있었던 그때처럼 모두가 도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향이와 벼루, 마오와 류월은 막 개업을 한 시기에는 아직 학생의 신분이었기에, 그때는 일손이 모자랐지만 반룡인인 강하의 활약으로 어찌어찌 장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현재 향이와 마오는 학교를 졸업하고, 스타 주막에서 열심히 그녀를 돕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인력난은 심각했기 때문에 일반인 또한 고용해서 일을 이어나갔다.
“3번 테이블 요리는 아직 인가요?!”
“이제 곧 나간다고 전해 줘!”
“5번 테이블에서 새 주문이요!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봉골레 파스타! 그리고 빠네 파스타요!”
“네에!”
“7번 테이블 추가 주문이요!!”
“넵!”
조금의 텀도 없이 밀려들어 오는 주문.
알바생과 직원들이 쉴 새 없이 홀을 돌아다니며 받아온 주문들을 주방에서 모두 만들어낸다.
“마오! 소스는 어때? 끝났어?”
“네! 끝났어요!”
“좋아, 창과 파렌은 지금 하는 게 끝나면 곧바로 파스타 작업 부탁해! 마오는 빠네에 쓸 빵 좀 힐라에게 받아오고! 향이는 곧바로 해감된 조개 좀 준비해 줘!”
“““예, 셰프!”””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
전 미슐랭 레스토랑의 셰프.
전 한의 수도, 서라벌의 스타 주막의 주모.
그런 그녀는 아주 시원시원하게 업무를 조달하며, 철두철미하게 주방을 지휘했다.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하나씩 빠르게 메뉴들이 속속 튀어나오고, 손님들은 만족하며 즐겁게 식사를 즐겼다.
“하…좀 지치네요…”
“힘들지? 여기가 바쁘기는 하지만, 시급도 쎄서 좋아.”
“그건 그렇지~”
어느새 손님들도 점점 빠져나가고, 홀에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 아르바이트 면접을 하러 왔더니, 웬 어린애가 있어서 당황했는데, 이 가게의 오너이자 셰프님이시라잖아요…”
“그건 나도 놀랐지…”
“그런 외모에 나보다 어리시니…”
“맞아. 맞아.”
굉장한 실력에 어리숙한 외모.
강하의 실력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그녀의 외모였다.
간신히 성인 남성의 허리춤에 올 정도의 신장에 말랑말랑한 피부.
마치 중학생의 외모인 그녀가 이 가게의 주인이라니.
“셰프님도 그렇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들 특이하시기는 하지?”
“맞아, 파렌 형님도 처음에 봤을 때는 당황했는데, 한국어가 그렇게나 유창할 줄 몰랐지.”
“심지어 유부남!”
“창 씨는…멋지지…”
“맞아…뭐라고 해야할까…여성분이시지만 나보다 키도 크고…카리스마? 솔직히 조금 무서울 정도라니까?”
“그런데 용케 마오 씨는 창 씨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니까…”
“그러고 보니 힐라 매니저님 말이에요. 그 귀…진짜 특이하긴 하지 않나요?”
“그거 수술하셨다고 하던데? 진짜 엘프 같기는 해.”
“맞아요.”
“그래, 이 가게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지만…부 주방장님. 대단하지 않냐?”
“부주방님…그건 그렇죠.”
부주방장.
그녀는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파릇파릇한 나이의 여성이면서도, 이 주막의 부주방장을 맡은 향이었다.
언제나 상냥하고, 실력도 대단하고, 성실하고.
그야말로 남성의 선망을 받는 훌륭한 여성.
“부주방장님…애인 있으려나…?”
“애인은 없던 것 같은데….그래도 도전은 못하겠다…”
“왜요?”
“도전하자마자 상냥하게 거절하실 것 같아.”
“아…그 느낌 알 것 같네요.”
“부주방장님은 뭔가….연애에는 관심 없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상냥함과는 별개로 무언가 넘볼 수 없는 기가 흐르는 그녀였기에, 함부로 집적거리지도 못하고 꿈을 접는 게 다반사였다.
“자, 다시 일 하자~”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네?”
“오늘 점심은 뭐가 나올까요?”
*
늦은 밤.
“오늘 고생 많았어! 나는 오늘 박강 형님 좀 만나러 가야 하니까, 다녀올게! 내일 휴일이니까 푹 쉬어!”
오늘도 알찬 하루를 끝낸 주막이 문을 닫고, 강하는 볼일 덕분에 주막을 나왔다.
그리고, 손님 한 명 없어서 텅텅 빈 주막의 홀.
“크….! 하아….”
한 여성이 거침없이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왠 술이에요? 언니?”
“.....있지…하…”
벌써 술이 좀 들어갔는지 얼굴이 새빨간 그녀를 본 마오가 물었다.
“.....아직 셰프님은….나를…어린애로 보는 것 같아…”
그렇다.
아직 사랑이 고픈 소녀.
향이는 비웠던 술잔에 술을 채워넣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