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 IF 외전: 향이는 그녀를 원한다.(2)
* * *
“있지이….도령님은…나를 여자로 봐주지 않는 걸까아…”
살짝 꼬인 혀로 용케도 말을 전달하는 향이.
“엄…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런데 왜애….나를 안 봐줄까…”
“아마 딸처럼 생각하는 마음도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윽…!”
아주 가볍게 향이의 정곡을 꿰뚫은 마오가 생글생글 웃었다.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저런 백치미 적인 성격은 영 고쳐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마오 너는…잘 돼가니…?”
“네?...아~ 잠시만요….짜잔!”
“...응?”
향이의 물음에 마오는 자신의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내어 화면을 들이밀었다.
“내일 쉬는 날, 창 님이랑 영화 보러 가요! 엄청 기대된다~”
“.....부럽다…”
언제나 무뚝뚝하고 쿨한 창이지만, 순수하게 다가오는 마오를 밀어내지 못하던 창은 어느새 그녀와 점점 섞여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느은….! 흑….!”
자신보다 어린 마오조차 연애사업이 잘 돼 가는 것을 보자, 무언가 가슴속에서 서러움이 차오른 향이는 다시금 술잔을 비웠다.
“아니면….선배들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선배?”
그렇게 계속해서 침울해져 가던 향이를 보던 마오가 말했다.
“그렇죠! 저희보다 빠른 연애 선배들 말이에요!”
“연애…선배…..”
그랬다.
스타 주막에는, 그녀들보다 훨씬 연애에 대한 선배들이 있었다.
“벼루에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벼…루?”
그 중, 마오의 또래이면서도 이미 결혼도 한 여성.
벼루가 있었다.
*
“벼루, 있니?”
다음날.
향이는 직원들이 숙직하는 2층으로 향해, 한 방 앞에서 문을 두들겼다.
똑똑, 하고 문을 두들기고 잠시 기다리자, 이윽고 문이 열렸다.
“누구….응? 무슨 일이야?”
“...청하님?”
분명 벼루의 방일 텐데, 문을 열어준 것은 고대의 존재이자 용인, 청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반쯤 감긴 눈으로 향이를 바라보았다.
“벼루, 춘향이 찾아왔어.”
“어….어? 누구라고?”
“향!”
“아…어어! 일단 들어오시라고 해!”
“...들어와.”
“아 네에…실례하겠….으아..!”
청하가 문을 열어주자, 벼루의 방으로 들어선 향이는 방의 내부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가지, 구석구석 박힌 쓰레기들.
말 그대로 쓰레기장 같은 방.
“아…오셨어요…?”
“벼…벼루….?”
어두컴컴한 방이지만 그녀의 앞에 놓여진 컴퓨터와 타블렛은 아주 환한 불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좋아하는 한 소녀와, 그런 소녀에 흥미를 느낀 용.
이 두 사람이 이곳저곳을 누비는 동양판타지 만화.
[한 줄기의 붓.]
최근 만화에서 보기 드문 동양풍 세계관과 마치 붓으로 그린 듯 한 아름다운 그림체에 인기는 수직상승.
완결이 난 지금도 단행본 화가 이루어지며 큰 성공을 이끈 작품이었다.
“방이 더러운 건 죄송해요….요즘 청하가 제 방에 들러붙어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방을 어지르는 바람에….저는 바빠서 치울 시간도 없고…”
“그렇게 더러운가?”
“그래! 그러니까 그만 좀 어지럽혀! 게다가 갑자기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서 게임에 삽입할 원화를 전부, 저언부 나에게 떠넘겨서 내가 얼마나 바쁜데!! 최근 들어서 우리 파렌 오빠를 보러 갈 시간도 없단 말야!!”
“그럼 겸사겸사 그 놈팽이 볼 겸 불러서 치우게 시키면 되지 않아?”
“넌 진짜….”
“게다가, 그 만화도 내가 많이 도와줬잖아? 그러니까 너도 날 도와야지?”
“끄응….!”
“그나저나 이 과자 맛있다. 다음에 또 택배로 대량주문시켜야지~”
“아! 너 또!! 부스러기 흐르니까 침대에서 먹지 말라고!!”
벼루가 만화를 그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줬던 청하는, 갑자기 게임을 만들겠다며 벼루에게 일을 시켜버린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투닥투닥 싸우면서도, 마치 아주 친한 친구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 그래서 어쩐 일이에요?”
“아…그게 말이지…”
*
“음…그러니까, 셰프님이 향이 언니를 제대로 봐 주질 않아서…걱정이시라구요?”
“응…너는 그래도 파렌 오빠랑 그….결혼도 했으니까….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아서…”
향이는 힐끗, 벼루의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왼손 약지에는, 결혼의 증거인 결혼반지가 반짝이고 있었지.
“음….솔직히 파렌 오빠와 저는 서로 좋아하고, 그래서 결혼도 했지만….저쪽에서 확실하게 다가와 줬기 때문에…그….제가 어필하는 방법은 잘 모르는데…”
“그런…”
“흥….그러니까 결혼을 하니 문제인 거지….그러니까 벼루야. 그런 놈팽이 놈은 버리고, 나랑 살면 안 될까?”
“넌 정말 최악의 신부거든? 그리고 파렌 오빠가 훨씬 더 좋아!”
“...! 힝….”
“아..하하…”
기껏 벼루를 찾아왔지만, 별 소득은 없는 건가 싶었던 향이가 쓰게 웃었다.
“...아. 이건 어때요?”
“응? 어떤 거 말이야?”
“저보다 전문가가 한 분 계시잖아요.”
“전문……..아.”
맞다.
그녀가 있었지.
*
“어라? 향이 아냐? 어쩐 일이야?”
철컥, 하고 현관문이 열리자, 우락부락한 근육을 소유한 사내가 향이를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혁수 오빠.”
“그러게, 오랜만이네? 자, 아가씨들? 변신 해제!”
“향이 이모다!!”
“향이 이모!!!”
혁수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손님이 향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돌려 외쳤다.
그러자 흑발의 어린 소녀들이 곧바로 향이를 향해 달려와 안겼다.
“앗, 하순아~ 수화야~ 오랜만이야~!”
현관문을 닫고 향이가 집으로 들어오자, 그녀들은 어느새 흑발이던 머리칼이 은발로 바뀌며 엉덩이에 고운 털이 달린 꼬리를 빙빙 흔들며 그녀에게 안겼다.
“어머, 향이~ 오랜만이야~”
그리고, 그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나온 한 여성.
“오랜만이에요, 매화 언니!”
언제나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 여성.
매화가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그녀를 반겼다.
*
“이제 슬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시기라서 요술을 가르치고 있거든~ 인간들 사이에 여우 귀와 꼬리를 내보일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응! 나 이제 꼬리가 사라진다!”
“대단하지? 그치?”
“응~ 둘 다 대단해~”
혁수와 매화의 사이에서 나온 반 구미호인 아이들은 다행히 착한 아이로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매화는 엔스타에 올리던 사진을 계기로, 한 모델 기획사에 스카웃 되어서, 지금은 주막을 나와 따로 살림집을 차린 상태였다.
굳이 주막을 나올 필요도 없고, 심심하면 들락날락 거리는 곳이 주막이었지만, 밤새 울려 퍼지는 소리가 신경 쓰였기에…..택한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그게….여…연애 문제 때문에…요….”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향이에게 목적을 묻자, 향이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낭군님?”
“응? 불렀어?”
“잠시, 아이들 좀 데리고 밖에 나갔다 와줄 수 있나요?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 알았어! 자, 아가씨들! 아빠랑 밖에 나가서 놀까?”
“와! 그럼 나 미라클 체인지 요술봉 사조!!!”
“나…난 장난감!!”
“음….”
“여기, 내 카드 있어. 이걸로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다 와요~ 겸사겸사 낭군님이 저번에 눈여겨보던 운동기구도 사고.”
“오…오오…! 감사합니다! 사모님~! 자, 나가자~”
““네에!!!””
그렇게 매화가 건넨 카드를 받고 신나하던 혁수는 곧바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정말, 언제나 봐도 사랑스럽다니까~”
“정말이네요~ 아이들이 참 귀여워요~”
“애들도 그렇지만~ 우리 낭군님은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농후해지는데….
오늘 밤은 재우지 말아야겠어~♥”
“하..하하..”
츄릅. 하고 그녀가 혀를 날름거리자, 향이는 그저 하하 웃어 보였다.
“그래서, 주모랑 무슨 문제가 있는데?”
“네?그…그그그..그게?? 무…무슨???”
그녀가 갸름하게 눈을 흘기며 묻자, 향이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하하하~ 그야, 네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주막 사람들 다 알지~”
“아..하하…네……그게 말이죠…”
향이는 결국 자신이 매화를 찾아온 이유를 전부 털어놓고 말했다.
“흠…그러니까, 향이 너는 주모와 조금 더 찌~인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 거지?”
“찌…찐한…!”
“후훗…둘 다 귀엽단 말야~ 그래도, 잘 찾아왔어! 내가 누구야? 전 화의정의 최고 기녀이자, 현 톱 셀러, 매화란 말씀!!”
“그…그렇다면 방법이 있나요?”
“있지.”
매화의 확신이 들어찬 눈에, 향이는 내심 두근거리며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덮쳐.”
“.....하?”
그렇게 말하는 매화의 눈동자는 번들거리고 있었다.
*
“흐아….”
강하는 주막을 나오고 다음날 밤이 되어서야 자신의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건 좋지만, 너무 붙잡아 놓는 거 아니냐고…”
자신의 전 레스토랑의 오너이자 친한 형 동생 사이인 박강.
막 현대에 왔을 때는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서로 자주 만나며 즐겁게 놀고는 했다.
오늘도 지금까지 그의 집에 묶여서, 온종일 떠들고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내일도 쉬는 날이니까, 오늘은 슬슬 잠이나 잘까.
그렇게 마음먹은 강하가 이부자리에 몸을 뉘려는 찰나.
똑똑.
“...응? 누구지?”
늦은 밤에 자신의 방 문 앞에 노크소리가 들리자, 강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향아? 여긴 어쩐 일로?”
그리고 문을 열자, 자신의 가게 부셰프이자, 가장 신뢰하는 소녀, 아니 여성.
“도령님, 오랜만에 술 한잔 하실래요…?”
춘향이 술병과 잔을 보이며 물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