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화 〉 IF 외전: 향이는 그녀를 원한다.(3) (Q&A 공지)
* * *
“햐...향아?"
갑작스러운 향이의 방문에 당황한 강하는 어찌할 줄 모르고 방문을 열어둔 체 어버버 거렸다.
"실례합니다아~"
"우왓!"
철컥.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향이는 그 문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어느새 강하의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오늘 매화 언니댁에 다녀왔는데, 좋은 술을 받았다며 주셔서….도령님이랑 같이 마시고 싶어서요."
"응? 매화 한…..우와...뭐야 이거….겁나 비싼 술이잖아..?"
낚았다!
매화가 향이를 위해 준비한 값비싼 양주.
갑작스러운 향이의 등장에 당황하던 강하 역시, 곧바로 그 술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눈이 돌아가고 말았다.
소주, 맥주, 막걸리.
다 괜찮지.
먹을만 해.
하지만, 가끔 미치도록 비싸고 맛있는 술이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심지어 향이가 가져온 양주 브랜드는, 과거 미국에서 일할 당시 박강이 아주 가아끔 데려가던 바에서 한 잔씩 찔끔찔끔 마시던 그 브랜드였다.
그러니 강하가 눈이 안 돌아갈 수가 없었다.
"잔도 있는데, 드시겠어요?"
"그, 그러네에…? 매화의 선물을 거절할 수도 없고 말이지이…?"
그렇게 아주 순조롭게, 향이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
"크…! 맛있다!"
"그러네요~ 정말 맛있어요오…"
"그나저나, 고등학교 다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술도 마시고….향이도 다 컸구나?"
"그럼요오! 저도 어엿한 슉녀에오!"
"그러네, 애들은 왜 이렇게 빨리 크는지….그에 비해서 나는...어휴.."
어느새 두 사람은 방바닥에 술잔을 펴놓고 거침없이 양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일단 술을 먹여.
술을 먹이고, 아주 천천히 스킨쉽을 이어나가는 거야.'
'스..스킨쉽이요..?'
'그래! 처음에는 그냥 가볍게 손등 정도부터 시작해서, 거리를 좁혀 나가는 거야….
그렇게 어느 순간, 얼굴과 얼굴이 고작 한 뼘 정도밖에 거리가 되지 않을 때….!'
'그..그때는…?'
'바로 키스를 박아버려!'
'....!!!!'
'이러면 죄다 뻑간다니까~'
'고..과연….!'
매화의 조언은 좋았다.
분명 처음 술을 마실 때와 지금 두 사람의 거리를 비교하면, 현재가 아주 가까웠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던 오차가 있었으니….
"흐으아아아…."
바로, 향이가 술이 강한 편이 아니었다는 것.
강하가 술이 상당히 강했던 것도 있었지만, 향이의 주량은 그녀의 비하면 형편없었다.
"응? 향아, 괜찮아?"
"아...괜타나여….이거 봐여…"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어라 중얼거리는 향이의 모습이 걱정되었던 강하가 묻자, 향이는 손을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손은 공중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으….이게 뭐야아...부..분명 강하 도령님은 나보다 몇 잔은 더 마셨는데에…'
"많이 취했나 보다….오늘은 이만 여기까지만 마실까?"
그런 향이의 모습을 보던 강하는 그녀의 상태가 염려스러웠기 때문에, 슬슬 그만 마시자 생각하며 술병을 닫으려 바닥에 뒹굴던 병뚜껑을 들었다.
'아...안 돼..!'
"아..아직 더 마시쑤 이써오…"
"엇, 향아! 잠ㄲ..!"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이 이대로 술자리가 끝나는 것은 견딜 수 없던 향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기울였다.
"어."
"엇."
술병을 집어 채려던 향이의 손을 피해 자신도 모르게 술병을 뒤로 당기던 강하.
술에 취한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향이는 그대로 발을 헛디뎌, 강하의 몸에 기댄 채 쓰러지고 말았다.
"...."
"...."
쓰러진 강하의 위에 올라탄 꼴이 되어버린 두 사람.
지금 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두근. 두근.
볼그스럼한 향이의 두 뺨이 마치 복숭아처럼 물들었다.
말 없이, 매섭게 심장박동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울렁울렁.
이상하고, 그럼에도 헤어나오기 힘든 분위기.
"햐...향아? 괜찮니?"
하지만 강하는 혼신을 다해 그 상황을 빠져나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향이에게 물었다.
"...서.."
"...응?"
"어째서...도령님은...저를 봐주지 않으시는 건가요…?"
그리고 향이는, 취기에 기대 언제나 자신의 마음속 응어리를 풀기 시작했다.
"저...그때 어렸던 애가 아니에요….하염없이...오지 않으시던 아버지를 기다리던 꼬마가...아니에요…"
"향아.."
"처음 도령님을 뵈었을 때부터, 저는 언제나….언제나...도령님 밖에 없는데…."
향이는 스스로 말하면서도, 믿지 못했다.
만약, 그녀의 마음속 이야기를 전부 내뱉었다가, 수습하지 못하게 된다면, 더욱 괴로울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취기에 기대었다.
이젠, 앞으로의 일은 생각하지 않겠다. 고 마음먹었다.
"좋아해요. 그때, 현대로 오기 전에 했던 그때 그 말보다, 더욱 더…"
"그...그게…"
"사랑해요. 도령님."
말했다.
언제나 감추기 급급했던 이 마음을.
하지만, 이젠 후회는 하지 않는다.
더 이상은 이 감정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사랑..해요...흐엉...사랑...한다구요…! 지인짜….사랑해요오..!"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말투는 거칠지만, 언제나 상냥한 마음씨.
고운 갈색 머리칼과, 아담한 키.
향이는, 그런 강하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리고.
"....울기는 왜 울어...예쁜 얼굴 망가질라."
강하는 손을 뻗어, 뚝뚝 흐르는 그녀의 눈가를 닦아내었다.
"...미안해, 내가 어른스럽지 못했네."
강하는, 스타 주막을 개업하고, 많은 일들이 있고, 수많은 직원들을 이끌고 현대로 넘어올 때부터, 자신은 언제나 어른스럽고 믿음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나 향이의 마음을 어른스럽게 받아주지 못했다.
이미,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하는 그럴 때마다 당장 해야 할 일을 바라보며 그녀의 마음을 외면했다.
그 이유가 뭐냐고?
그에 대한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애초에 강하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직 어린 소녀였고, 그 소녀를 마치 딸처럼 지금까지 키워왔다.
나이차이는? 띠동갑은 가뿐하게 넘을 터였다.
그리고 애초에, 지금의 자신은 여자인데, 여자인 향이와 이래도 되는 건지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그저 변명에 불과했다.
그냥, 부끄러웠다.
그는 지금까지 사랑을 몰랐고, 해본 적도 없었다.
그렇기에 향이의 과분한 사랑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랐다.
하지만, 더 이상 애처럼 미루기만 하면 안 되겠지.
"나도, 사랑한다. 춘향아."
"...!!"
"결혼하자."
변명은 생각하지 말자.
앞으로의 일도, 생각하지 말자.
지금.
오로지 지금 눈앞에 있는 그녀와의 일만 생각하자.
어른스럽게.
남자답게 가자.
"....으….으으으….!"
"...어? 오...왜 울고 그래? 응? 내...내가 너무 급했...나? 아, 그렇지? 처..처음에는 그...사귀는 것 부터….해야하나?"
강하의 프러포즈에,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한 향이의 모습에 당황한 강하는 자신이 뭐라고 하는 지도 모르고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치사해요….이렇게 갑자기...제가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그건 좀 봐주라….마지막 자존심이야."
"..헤헤.."
다행이다.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그나저나, 이제 슬슬 나오지 않을래? 조, 조금...그렇네..?"
"......"
그건 그렇고, 이 자세.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지?
묘하게, 자세가 좀….그런데?
"햐...향아?"
".....도령님."
향이는 다시금 들었던 말을 떠올려 본다.
'덮쳐.'
'그냥 아주, 포로로 만들어 버리라구!'
그렇게 말하며 엄지를 들어 보이던 매화의 모습을.
참고로.
"....도령니임…. ♥"
그녀는 현재, 아주 거하게 취한 상태였다.
"...어? 갑자기 내 옷은 왜 벗기는...어?"
"도령니임...살결이 엄청 부드러워요오…"
"히..히야악! 자, 잠깐만…! 거...거긴…!"
"헤에….부끄러워하지 마요오…."
"그냥, 저한테 모두 맡겨요~♥"
그렇게 말한 향이는 자신의 옷고름을 풀어헤치며, 요염하게 웃었다.
아, 이 얼굴. 어디서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떠올랐다.
혁수를 바라보던 매화의 얼굴이네.
"...히끅."
그렇게, 두 사람이 있는 방은, 밤 사이 수많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나 뭐라나.
*
짹짹.
이른 아침에도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 참새들은 작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저질렀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소녀가 이불을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결국, 강하는 향이와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거의 반강제적이었지만.
"미치겠네….아무리 술이 들어갔다지만….내 딸뻘 되는 애한테…."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던 강하는 밤새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아..아흣…! 아…ㄱ, 그마아하안…!'
'에헤~ 도령님은 여기가 약하시구나아~'
'자, 자까...으힛♥!'
'도령님, 민감하시네요오~'
'자...자시만...쉬게 해조오...ㄴ, 나 죽어엇♥!'
'안 돼요.'
'..! 거...거기는 지인짜 안됀다안 말이야핫!!! 아…! 응긋..!'
'참지 말아요 도령님. 잔뜩, 자안뜩 헐떡여줘요~♥'
'으응..! 히약! 아...나...나 모..몰라아! ㄱ, 가...가앗…!'
"......조..조금만 더 있으면 40대인데…..막 성인을 넘긴 애한테...그렇게나 헐떡이다니….미쳤지...미쳤어어….!"
밤새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품에 안겨 미친 듯이 헐떡였던 기억이 강하를 매우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으음…..도령니임….조아해오……"
"....꿈에서까지 그렇게 말해 주니까...기쁘기는 하네.."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입지 않고 이불을 감싼 향이가 잠꼬대로 자신을 찾자, 강하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
"....에라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뭐. 시바."
그래.
뭐, 지금까지 예상한 대로 잘 흘러간 적이 있던가?
그때그때 닥쳐오면, 결국 어떻게든 해내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 순간을 만끽하도록 하자.
내일은 장사해야 하니까, 오늘은 좀 더 느긋하게 아침을 만끽하자.
그렇게 결론을 내린 강하는 다시금 이불을 덮어, 눈을 감았다.
살과 맞대어 전해져오는 따뜻한 체온 덕분에, 강하는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스타 주막에 어서오세요!:IF 외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