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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검성은 어디에 (1) (1/250)

1화 검성은 어디에 (1)2022.02.01.

섬서성 백양현에 위치한 작은 객잔. 반나절의 영업 끝에 드디어 첫 번째 손님이 찾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오늘은 좀 더 푸짐하게 넣었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이 손님은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는 왈패들의 두목이다. 반짝이는 대머리에 곰처럼 거대한 체구. 게다가 뱁새처럼 찢어진 두 눈까지. 일광은 외모만으로도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는 재주가 있었다. “이봐 소무. 좀 씻고 다녀. 멀쩡하게 생겨서 머리는 산발하고 말이야. 젊은 놈이 멋이란 걸 몰라.” 소무는 고기국수를 내려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후후. 씻기는 잘 씻습니다. 더러운 몸으로 손님에게 나갈 음식을 만들 수는 없지요.” 일광이 젓가락을 집어들며 물었다. “요즘 장사는 좀 어때?” “말도 마세요. 전란으로 손님이 뚝 끊겼습니다. 도대체 나라가 어찌 되려는지…….” “나라 걱정은 높으신 놈들 몫이고. 우리 같은 놈들은 먹고살 궁리가 우선이야.” 소무는 식탁 위에 팔짱을 끼고는 눈빛을 빛냈다. “그래도 전쟁이 끝나야 다시 장사가 잘될 것 아닙니까?” “전쟁이 끝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끝장나게 생겼어. 소문을 들어보니 여기도 이제 안전지역이 아니라더군.” 모든 것은 금나라의 왕위가 찬탈당한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정체불명의 무력집단을 등에 업고 급부상한 새 황제는 국호를 ‘휘’라고 명했다. 맹위를 떨치는 그들 앞에 주변 국가들은 속속들이 무너져갔다. 가장 먼저 몽골 초원이 무너졌으며, 송나라 또한 영토의 절반을 빼앗긴 상황이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찌 되는 겁니까?” 국수를 맛보려던 일광이 돌연 손바닥으로 식탁 위를 내리쳤다. 콰앙-! 그가 손을 올리자 납작하게 뭉개진 파리의 사체가 드러났다. “얘처럼 되는 거지.” 소무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의 미래가 내장이 터져 죽은 파리의 사체라니. “휘나라가 우리에게 해코지라도 한단 말입니까?” 입안의 국수를 꿀꺽 삼킨 일광이 코웃음을 쳤다. “이곳으로 피난 온 사람들 말을 못 들어봤군. 그놈들은 우릴 가축 이상으로 생각 안 해.” “휴……. 그럼 우리 관군이 잘 막아주길 바라야겠군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전쟁이 어찌 돌아가는지 우리가 뭘 알겠어.” 분위기가 가라앉으려 하자 소무가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국수 맛은 어때요?” “역시 자네의 손맛은 정말 최고야. 고기 손질이 아주 기가 막히기 때문이지. 언제 먹어도 식감이 아주 좋아.” 소무의 태도를 보면 눈앞의 사내에게 위협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했다. 흉악한 외모와는 달리, 보호비만 잘 낸다면 해코지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재료 손질의 기술은 백양현에서 제가 최고일 겁니다.” “암, 그렇고말고. 이런 쥐똥만 한 가게는 우리 애들을 보내도 되는데, 내가 이 맛을 못 잊어서 직접 오게 된다니까.” “언제든 오기만 하세요. 국수 정도야 얼마든지 해드릴 테니.” 일광은 그릇째로 육수를 들이마시며, 왼쪽 손바닥을 내밀었다. 잠시 기다리라는 의미였다. 잠시 후 그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만 보자. 머리도 좀 다듬고, 이 형님이 조금만 손봐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장사도 안 되는데, 집어치우고 마창루로 가서 나랑 같이 일 한번 안 해볼래?” 소무는 피식하고 웃었다. 마창루라니. 곱상하게 생긴 남자들이 몸을 파는 곳이다. 여인들에게 말이다. “객잔이 망하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죠.” 대화에 흥미를 잃은 일광은 남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데 집중했다.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사라진 국수 한 그릇. 그것을 확인한 소무는 식탁 위에 무엇인가를 내려놓았다. 엽전 스무 냥이었다. 일광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엽전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못 낼 줄 알았는데? 장사도 안 되는데, 힘들면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일광은 한 움큼의 엽전을 움켜쥐었다. “오늘도 완납한 상가는 소호객잔뿐이군. 그래서 난 자네가 마음에 들어. 말만 번지르르한 놈들은 패버리고 싶거든.”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무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식탁 위에 남겨진 엽전 열 냥. 국수 가격이 두 냥인 것을 고려하면, 꽤 많은 돈을 남겨두고 간 것이다. 일광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칼이 다시 움직임을 발했다. 도마 위에 한 번에 올려진 여덟 가지의 채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률적으로 손질되는 재료들은 눈 깜짝할 사이 수백 조각으로 나뉘어갔다. 타탁-! 타타타탁-! 기름을 두른 철판에 오리고기와 함께 재료를 볶자 향긋한 냄새가 객잔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요리가 완성되기 직전 객잔으로 들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소 형! 매번 내가 오는 줄 어떻게 알고 미리 요리를 준비하는 거죠?” 눈처럼 흰 백색 도복과 매화 문양이 새겨진 소박한 모습의 장검. 이 젊은 도사는 영락없는 무림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객잔의 구석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오지 않았나. 그리고 항상 소호팔압채(小湖八鴨菜)와 죽엽청 두 병을 마시고 갔지.” 소호객잔의 이름을 딴 이 오리요리는 오직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별음식이었다. 보편적인 죽엽청은 주류 중에서 가격도 가장 저렴하다. 이 두 가지는 젊은 도사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었고, 변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 왈패 놈 또 찾아온 겁니까? 자꾸 해코지하면 제가 혼내줄 수도 있습니다.” “마주쳤나 보군. 그자를 너무 미워하지 말게.” “전란으로 장사도 안 되는데, 갈취까지 당하니 억울하지 않아요?” 소무는 소호팔압채와 죽엽청 두 병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중원의 역사에서 왈패가 없었던 시대는 없었지. 그자가 없으면 다른 인물이 자리를 꿰차게 될 터인데, 과연 그보다 나은 사람일까? 그래도 저 일광이란 자는 정이 많은 자이니 미워할 수가 없어.” 도사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죽엽청을 병째로 들이켜고 있었다. “크윽! 오늘따라 술맛이 더 좋군요.” “나야 매상이 오르니 좋다만, 도사가 이렇게나 술을 마셔도 되는 건지 모르겠군.” 순식간에 한 병을 다 비워버린 도사의 안면에 홍채가 떠올랐다. “큭큭. 사형들이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겠죠. 하지만 이제 뭐 다 상관없습니다.” 소무는 어느새 주방에서 턱을 괴고 도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통 술을 마시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지. 하지만 청해 아우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 것 같군.” 청해라고 불린 젊은 도사는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죽을 만큼 괴로워요.” “그래 보이는군.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하는 거지?” 머뭇거리던 청해는 죽엽청을 또 한 번 들이켜고는 나직이 말했다. “후……. 문파에서 쫓겨났거든요.” 청해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지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무는, 기어코 주방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다가갔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맨날 이렇게 술만 퍼마시고 있었던 거군. 내 무림인은 아니라 조언을 해줄 수는 없으나 대작 상대는 되어줄 수 있지.” 타악-! 식탁 위에 죽엽청이 항아리째로 올라왔다. 그러자 청해는 당황하며 두 눈을 연신 끔뻑였다. “소 형. 저는 이걸 다 계산할 돈이 없습니다. 그리고 장사는요?” “어차피 손님도 없는데,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 하려고. 그리고 이건 내가 사는 거야. 대작에서 나를 이기면 음식값도 받지 않기로 하지.” “나중에 다른 소리하기 없기입니다.” 바가지로 술 한 사발을 떠낸 소무는 이미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단번에 모두 비워 낸 그는 다시 한 사발을 떠내어 청해에게 내밀었다. “크윽! 좋구만. 이제 얼추 비슷하게 마신 것 같군. 그래, 무림에서는 그걸 파문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것을 당했단 말이지? 도대체 어째서?” 청해는 질 수 없다는 듯 순식간에 바가지를 비워버렸다. 그러고는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술기운이 달아오르는 듯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후우. 오해가 있었어요. 저는 단지 화산의 매검지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갔을 뿐, 무공을 훔쳐볼 의도는 없었다구요.”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했지만, 소무는 어떠한 상황인지 대충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같은 문파인데 좀 보면 어떠한가. 그래도 너무하는군.” “문제는 제가 본 것이 매화검수들의 수련이었다는 것이죠. 일대제자에게도 열람이 금지된 상승무공을 막내항렬인 제가 훔쳐본 꼴이 된 겁니다.” “매화검수라면 나도 객잔 일을 하다 얼핏 들어보았지. 화산파의 최고 귀재들이라고 했던가?” “맞아요. 전 그날 매화검수들한테 죽도록 맞고…….” 청해는 말을 하다 말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공까지 전폐 당할 상황까지 갔었다. 자신의 사부가 장문인께 간청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속가제자로나마 남을 수 있게 되었지만, 다시 정식제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청해 동생은 아직 화산파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것 같군.” “그럴 수밖에요. 저의 목표는 매화검수가 되어서 강호를 종횡하다가 마지막은 천하제일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무인들의 꿈이지 않습니까? 검성처럼……. 하지만 이제 그 기회가 모두 날아간 겁니다.” 청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무는 죽엽청을 또다시 들이켜고 있었다. “크으윽! 좋군. 마음이 괴로울 때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술밖에 없지. ……무림인들이 왜 천하제일을 갈망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 막상 그 자리에 오르면 무엇이 좋을까? 그리고 그다음 목표는?” 청해는 사발을 건네받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더니 심호흡과 함께 사발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두 눈은 반쯤 풀려있었다. “크으으으윽!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 딸꾹! 그건 그때 가서 생각……. 딸꾹!” 청해는 상체를 비틀거렸다. 뒤엉키는 초점까지. 이미 한참 전부터 주량이 넘어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찌할 생각인가?” “떠날 겁니다…….” “어디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고개가 서서히 식탁을 향해 고꾸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계를 맞이한 것이다. 소무는 식탁에 머리를 박은 채 곯아떨어진 청해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조금 전과 매우 달라져 있었다. 호수처럼 고요하고 깊은 눈동자는 마치 심연과도 같아 보인다. 잠시 후 회한이 가득한 음성이 객잔 안을 살며시 진동시켰다. “욕심은 많지만, 심성이 나쁘지 않은 친구로군. 그렇기에 자네는 무림과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화산파에서 파문을 당한 것이 다행일지도. 그리고 말일세……. 검성이란 그자가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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