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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검성은 어디에 (2) (2/250)

2화 검성은 어디에 (2)2022.02.02.

모처럼 소호객잔에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다섯 개의 식탁에 손님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붉은 전투복 위에 갑주를 걸친 관군이었다. 두 명은 술이 장식된 투구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장교급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중 한 명이 황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장. 시간이 없으니 가장 빨리 나오는 것으로 주시오.” “그럼 소호객잔의 자랑인 고기국수로 준비하겠습니다.” 국수만큼 조리가 간편한 음식이 없다. 돼지고기로 미리 끓여둔 육수에 삶은 면을 넣는 것이 전부였으니. 마지막에는 채소 몇 가지와 손질한 고기를 올려 고명을 한다. 소무가 준비에 열을 올리는 동안 주방 밖에서는 심각한 대화가 오갔다. 대화는 두 명의 장교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연안(延安)이 뚫렸으니 내일이면 이곳까지 밀려 들어오겠군.” “황 장군도 무리였단 말인가?” “휘군의 기세가 보통이 아닐세. 어디서 이렇게 괴물 같은 장수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건지, 각지의 주둔군이 파죽지세로 밀리고 있어.” “어디 그뿐이겠는가……. 개봉이 함락당하고 폐하가 남쪽으로 피난을 떠날 줄 누가 예상했겠나. 이젠 패전 소식이 놀랍지도 않아……. 휴…….” 장교들의 깊은 한숨 소리가 주방에 있는 소무의 귓가에까지 맴돌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악비 대장군이 장안성의 방어까지 포기하고, 양양으로 집결하라고 명령한 것을 이해할 수가 없네. 요충지를 어찌 이렇게 쉽게 내준단 말인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지. 섬서 일대를 모두 포기해야 할 만큼.” “섬서 지역의 모든 장군이 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닐세.” “아니 이 판국에 누가 이곳에 남는다는 말인가?” “장양 장군이 한중에서 급하게 신병들을 모집하고 있다더군. 부질없는 짓이지.” “정예부대도 밀리는 마당에 신병들로 막겠다고? 훈련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휘군의 공격을 받고 전멸할 걸세.” “동감일세. 결국에는 놈들의 사기만 올려주는 꼴이 되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 나갈 신병들만 불쌍하군.” 이들의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어느새 고기 국수가 완성되었다. 양팔을 벌린 채 다가오는 소무의 전신에는 일곱 개의 국수 그릇이 올려져 있었다. 묘기와도 같은 모습에 병사들이 놀라워했다. 지켜보던 장교가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말했다. “보통의 균형감각으로는 쉽지 않을 터인데, 주인장의 재주가 놀랍군. 무공을 익혔는가?”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매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 것뿐이지요.” 본디 무공을 익힌 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기세가 외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무공의 경지가 반박귀진(返樸歸眞)에 이르러 안광이 안으로 갈무리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장교는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소무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하긴. 절정을 넘어선 무인이 이곳에서 주방 일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두 명의 장교가 동시에 젓가락을 움켜쥐고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머지 병사들도 행동을 같이했다. 시간에 쫓기는 듯 허겁지겁 먹어대던 이들은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그릇을 모두 비워버렸다. “주인장, 얼마인가?” “엽전 사십 냥입니다.” 두 명의 장교는 머뭇거리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마도 돈이 부족한 것이리라. 소무 또한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부족한 건 나중에 계산해주셔도 괜찮습니다.” “급하게 움직이느라 돈을 못 챙겨왔군.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엽전 열 냥뿐일세.” 음식값을 거의 못 받는데도 소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중에 계산하시면 됩니다. 그럼 살펴 가시지요.” 무심히 엽전을 건네받은 소무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를 바라보던 장교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자네 인성이 참 마음에 드는군. 우린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할 걸세. 잔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얘기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역정을 내지 않는가.” 잠시 소무의 얼굴을 바라보던 장교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음식값 대신 정보를 하나 주겠네. 잔금의 가치로는 충분할 걸세.”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진중한 표정을 지은 장교는 나직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내일이면 이곳에도 휘군이 들이닥칠 걸세. 놈들의 약탈이 도가 지나치고 있으니, 이 객잔도 무사하지는 못할 걸세. 지금 즉시 이 마을 떠나 사천이나 호북으로 피신하게. 그렇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네.” “고맙습니다.” 소무의 얼굴에는 공포나 당황하는 표정 대신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장교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등을 돌렸다. 더는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양양으로 출발한다!” 장교와 병사들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소무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객잔을 정리하고 또다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그의 모습은, 전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와 같아 보였다. 이날은 아무리 기다려도 더는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다. 매일 찾아오던 화산파의 청해조차도 말이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친 소무는 매일 밤 반복하던 일을 시작했다.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찜솥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김이 모락모락 한가득 뿜어져 나오며 객잔 안을 뿌옇게 만들었다. “후후. 냄새가 기가 막히는군.” 찜솥 안에는 어른의 주먹보다 더 큰 이십여 개의 만두가 들어있었다. 소무는 만두 하나를 집어 들고는 잘 익었는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직 김이 식지 않았기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에게는 마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만두를 넓적한 채에 옮겨 담은 그는 객잔을 나서며 어딘가로 향했다. 대로변을 따라 이백여 장이 떨어진 곳까지 간 뒤, 다시 오솔길을 따라 삼십여 장을 더 전진했다. 눈앞으로 반쯤 무너져 폐허가 된 전각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백양현의 일대에 자리한 거지들의 은신처였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소무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녀석들, 애타게 기다렸겠군.” 하나같이 해진 천 쪼가리를 걸쳐 입은 꾀죄죄한 몰골들. 대부분이 전란의 틈새 속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그중에서 소무가 가장 아끼는 아이가 있었다. 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큰 눈망울의 여자아이.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반겨주는 인물이었다. 소무를 발견한 유화는 작은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었다. “어? 아저씨 왔다!” 모두의 시선이 소무를 향해 집중되었다. 그 순간 유화가 다짜고짜 달려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저씨!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구.” “이 녀석. 거짓말이 많이 늘었구나.” 유화는 소무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으며 흐느꼈다. “흐잉……. 오래 기다렸어.” “이 녀석, 어제도 봤잖아.” 유화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무는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정을 느끼게 된 유일한 아이였다. “매일 보고 싶어, 아저씨.” “이 녀석……. 아저씨가 뭐가 좋아?” “몰라……. 그냥 좋아…….” 소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우선 친구들한테 만두부터 나눠줄까?” 유화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무는 곧이어 아이들에게 만두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잘 먹겠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자신 또한 고아 출신이 아니던가. 어렴풋이 희미한 과거가 떠올랐다. 여섯 살쯤 객잔 앞에서 음식을 구걸하다가 점소이에게 죽기 전까지 맞은 기억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더 애틋하기만 했다. “너무 맛있어. 히히.” 하나씩 만두를 받아든 아이들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있었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아저씨도 먹어!” 소무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자신의 만두를 쪼개어 내미는 유화의 작은 손이 무척 귀여워 보인다. “후후. 아저씨는 이미 두 개나 먹고 왔단다.” 소무의 시선이 유화의 등 뒤에 자리한 젊은 거지를 향했다. 비굴한 표정 속에 날카로운 인상을 감추고 있는 얼굴. 고아들을 이끄는 왕초 하칠이었다. 그에게 다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얘기 좀 하지.” 만두를 먹는 와중에도 하칠은 연신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소무와 함께 천천히 길을 걸으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오늘 밤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떠났으면 좋겠군.” “우리가 갈 곳이 어디 있습니까? 이곳은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자들이 마지막으로 모이는 곳입니다.” “내일이면 휘나라의 군대가 들이닥친다고 하더군. 이곳에 남아있으면 모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네. 지금까지 자네가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지 않았나.” “휘나라가 왜 우리 같은 거지들한테 관심을 두겠습니까?” “나도 객잔 일을 하면서 수집한 정보들이 있네. 놈들은 마을을 점령하면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주민들을 본보기로 죽인다더군.” 하칠은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순순히 응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어차피 백양현의 동냥 길이 끊기면 우린 모두 굶어 죽을 겁니다. 적군의 병사들에게 죽나, 굶어 죽나 매한가지입니다. 굳이 개고생하다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소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품속을 뒤적거리며 무엇인가를 꺼내어 들었다. 무려 은자 여섯 냥이었다. 은자 한 냥은 한 가정이 석 달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다. 이미 하칠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얼마 되진 않지만 내가 객잔 일을 하면서 모은 돈이네. 여비로는 충분할 걸세.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게.” 은자를 성큼 낚아챈 하칠은 태도가 백팔십도 변하며 소무를 향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고맙습니다, 나으리. 요청하신 대로 아이들은 제가 목숨 걸고 보살피겠습니다.” “하남으로 가서 정도문(正道門)이라는 문파를 찾게. 소무라는 자가 보냈다고 말하면 부족함 없이 보살펴 줄 것일세.” “알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그럼 부탁하겠네. 무사히 도착한다면 반드시 추가적인 사례를 약속하지.” “예, 나으리…….” 소무의 시선이 고개를 조아리는 하칠의 뒤로 향했다. 유화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오라고 손짓하자 한걸음에 달려오며 또다시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마치 곱게 뻗은 나무에 달라붙은 매미와도 같아 보였다. “아저씨, 어디 가!?” “아니. 유화가 다른 곳으로 갈 거야. 그곳에서는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고, 예쁜 옷도 입고 지낼 수 있어.” “아저씨는 같이 못 가?” “아저씨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기 때문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어. 강호라는 집을…….” 소무의 허리에 얼굴을 파묻은 유화는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싫어! 그럼 이제 아저씨 못 보는 거잖아!” 흐느끼는 유화의 어깨에 소무의 손이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었다. “잠시 못 보겠지만,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약속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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