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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중으로 (1) (5/250)

5화 한중으로 (1)2022.02.05.

유화를 묻었다. 그리고 정처 없는 발걸음은 이틀이 지나 그를 어딘가의 객잔으로 인도했다. 섬서성 남단에 자리한 어느 객잔. 현판에는 용화(龍華)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 층으로 지어진 구조에 오십 개가 넘는 식탁. 그리고 열 명의 점소이. 그가 운영했던 소호객잔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규모였다. 소무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곳은 객잔의 이 층에서 가장 구석진 장소였다. 그는 넋이 나간 얼굴로 창밖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유화의 무덤 앞에서 그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모두 잘라냈다. 소호객잔의 주인장인 소무를 유화와 함께 묻기 위해서였다. 따스한 햇볕이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추자 강인한 인상이 밝게 빛났다. 외모를 단정하게 정리한 그의 얼굴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괴롭군.’ 오늘만은 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마셔도 초인적인 신체는 자신이 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객잔 안의 수백 명이 동시에 왁자지껄하는 소리.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모든 말들이 귓가를 후벼 파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모두 한 가지 화제에 집중되어 있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객잔에 손님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던 소무는 우측에 있는 식탁을 지그시 바라봤다. 두 명의 무림인이 흥분해서 횡설수설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휴! 내가 그곳에 없었던 게 천추의 한이 될 줄이야!” “검성이 백양현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휘나라 새끼들, 오줌까지 지리면서 근처에도 못 갔대.” “킥킥.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그나저나 무림맹에서 검성을 찾겠다고 백양현 일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고 하더니, 아직도 못 찾았대?” “말도 마. 지금 거기 난리가 났대. 무림맹의 고수들이 죄다 몰려와서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휘나라의 정예병들하고 한판 붙을 태세야.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에이, 설마? 무림하고 관군은 서로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잖아?” “너도 조심해. 상대가 무림맹이니까 그냥 놔두는 거지. 그 새끼들은 만만하게 보이면 무림인이고 뭐고 없어. 다 잡아 족친다고.” “미쳤군. 도대체 왜?” “나야 모르지. 그리고 말이야. 이건 진짜 고급정보인데. 검성의 정체가 누구였는지 알아?” “무슨 정체? 설마 그분께서 그동안 정체를 숨기기라도 했었다는 얘기야?” “큭큭. 놀라지 마. 검성의 정체는 바로…… 객잔의 점소이였대.” “야 이 미친 새끼야! 검성이 어떤 분인데 점소이를 해? 돌았어?” “어휴. 진짜라니까. 우리 문주님이 분명 무림맹의 지인한테 들은 정보라고.” “입 닥치고 술이나 처먹어! 한 번만 더 그분을 모욕하면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소무는 고개를 설레설레 휘저었다. 잘 봐주어야 규모가 작은 이류 문파의 문도들이었다. 이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졌을 정도면, 이 일대도 무림맹이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들은 자신을 다시 강호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이곳에서도 못 있겠군.’ 소무는 주변의 소음은 무시한 채 다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갔다. 앞으로의 행보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화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찾아낼 것이다. 잔혹하게 죽어간 유화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악행의 고리를 끊어낼 것이다.’ 술잔을 비운 소무는 또다시 잔을 가득 채워갔다. ‘휘나라의 병사들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백성들이 강제로 징집되어 채워질 것이니, 그들에게는 또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소무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이 거리에서 떠들썩한 곳은 오직 이곳, 용화객잔뿐이다. 그리고 이곳도 오래지 않아 백양현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단순히 휘나라의 황제가 문제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대국의 황실에 홀로 쳐들어가 들쑤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또다시 무림맹에 들어가서 피의 전국을 만들 수도 없는 일. 십 년에 걸친 정마대전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는가. 내가 다시 강호로 나선다면 멈추지 않는 피바람만 계속 불어올 뿐이다.’ 창밖으로 향한 그의 시선은 반시진이 지나도록 움직임이 없었다. 계속해서 생각에 잠겨 있던 그의 머릿속에 문득 일광의 말이 떠올랐다. ‘한중에서 신병을 모집한다고 했던가?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 이들의 세상에서 처음부터 하나하나 겪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전에…….’ 마지막 남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은 소무는 창문 밖을 주시했다. ‘하칠이 놈부터 잡아 죽여야겠지. 이놈만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객잔의 창문 밖을 향한 소무의 시선은 거리를 거니는 한 명의 거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조금 전부터 자신이 점찍어 둔 인물이었다. 꾀죄죄한 몰골의 거지 중의 상거지. 허리춤에 매어진 두 개의 매듭. 개방의 문도였다. 창문 밖으로 오른손을 내민 소무는 손가락을 튕겨냈다. 그의 손에서 쏘아진 한 개의 젓가락.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거지의 뒤통수를 정확히 가격했다. 따악-! “크악!” 뒤통수를 움켜쥔 개방의 방도는 눈알을 부라리며, 암습을 가한 자를 애타게 찾았다. 얼굴을 잔뜩 구긴 그는 매우 분노해 있는 듯 보였다. “어떤 새끼야!?” 한참을 둘러보던 거지는 흉수로 짐작되는 인물을 단번에 찾아냈다. 육 장이 떨어진 용화객잔의 이 층 창문. 그곳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개방도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객잔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너 이 새끼 오늘 뒈졌어.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나 그의 걸음은 고작 다섯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멈추었다. 귓가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의 전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 너희들, 지금 검성을 찾고 있지? 나는 그자의 위치를 알고 있다. 개방도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분노는 단번에 사그라져 있었다. 무림맹의 고수들이 검성을 찾기 위해 주변 일대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만약 자신이 그 일을 해낸다면 삼결 제자로 올라가는 것은 물론, 일평생 따라다닐 자랑거리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어찌 순순히 믿을 수 있겠는가. 개방도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소무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전음을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공을 상당 수준까지 익힌 고수일 터. 자신 따위가 가볍게 볼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어, 어디 있는데요?” - 개방의 섬서 분타가 이 근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가서 분타주를 불러오면 얘기해주지. 이결 제자라면 그 정도는 전할 수 있겠지? “우리 분타주님은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소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한번 전음을 건네었다. - 허규에게 그저 오랜 지인이 찾아왔다고만 전해주게. 판단은 그가 할 것이네. 분타주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말장난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게다가 시퍼렇게 젊은 놈 주제에 분타주의 지인이라고 한다. 허규가 누구인가. 닳고 닳아 강호의 고여 있는 물과 같은 존재다. 분명 눈앞의 인물은 미친놈이거나, 반로환동(返老還童)을 이룬 엄청난 무림의 고수이거나 둘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분명 뭔가가 있다.’ 무엇보다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일이 잘못되더라도 기껏해야 몽둥이찜질일 것이다. 계산을 마친 개방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개방도가 사라지자 소무는 죽엽청을 두 병 더 주문했다. 그가 한 병을 다 비울 무렵. 용화객잔의 이 층으로 헐레벌떡 등장하는 거지가 있었다. 객잔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다섯 개의 매듭 때문이었다. 개방의 직급은 매듭의 숫자로 신분을 나타낸다. 오결이라면 무림의 거물급 인사나 다름이 없었다. 허규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쏜살같이 소무의 앞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자네, 이게 얼마 만인가. 세월이 흘러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소무를 바라보는 허규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노인네가 주책이군. 술이나 한잔 받아.” 허규는 은연중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걱정할 것 없어. 이미 기막(氣幕)을 둘렀으니.” 이들의 주위에는 보이지 않는 기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기에 대화는 바로 일 장 옆의 식탁에서도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괜찮겠는가? 우리 분타의 제자들이 모두 자네를 찾는 데 동원되고 있네.” “무림맹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찾는 척만 하는 거잖아.” “알고 있었는가?” 술잔을 비운 소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날 팔아먹을 놈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지.” “그래서 나의 관할구역인 섬서를 택한 것이로군.” 서로가 번갈아 가며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지기의 모습이었다. 겉모습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소무가 침묵을 지키자 허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가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네.” “무엇이든 답해주지. 나도 부탁할 게 한 가지 있으니.” 어느새 허규의 얼굴에는 능글능글한 웃음이 머금어져 있었다. “객잔 일 말일세. 나 같은 거지들이야 자존심보다 밥그릇이 더 중요하다지만, 천하의 검성이 손님들의 비위를 어떻게 다 맞추었나. 나는 이게 너무 궁금했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객잔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본분에 충실한 것이지, 자존심을 굽히는 일이 아니야. 나에게는 오히려 즐거운 나날이었지. 무림의 정점에 있을 때보다 더. 아니, 오히려 그때는 괴로웠다고 해야겠군. 아무튼, 모든 것이 좋았어. 며칠 전까지는 말이야…….” “근데 휘나라 놈들이 자네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군.” “맞아. 휘나라의 황제는 어떤 인물이지?” “안타깝게도 정보가 별로 없어. 그동안 우리가 알아낸 것은 휘나라 황실의 배후가 영교(永敎)라는 것뿐이네. 오랫동안 금나라의 황실과 군부에 첩자를 심어놓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것도 말이지.” “영교라……. 처음 듣는군.” “오랫동안 음지에서 힘을 비축해온 세력인 듯싶네. 정마대전이 끝난 직후 무림의 힘이 약해지자 행동을 개시한 것이지.” 소무는 한동안 강호를 떠나있었기에 깊은 정세에는 어두웠다. 고작해야 객잔에서 주워듣는 정보가 전부였으니. “마교와 관련이 있나?” “모르는 일이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마교의 잔당들이 그들에게 흡수되었다는 정보가 있어.” 정마대전에서 패배한 마교는 위세가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그들을 흡수했을 정도라면 영교의 저력은 소무의 상상 이상으로 엄청나다는 뜻이다. 세상을 암흑으로 물들이는 그들의 정체는 언제고 반드시 밝혀내야 할 문제였다. “음…….” “어찌 되었건 오늘은 기쁜 날이니 괴로운 일은 잊고 술잔이나 기울이세.” 오래전 소무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허규의 생명을 구해낸 일이 있었다. 소무 또한 그에게 신세를 진 일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들 사이에는 지기 이상의 애틋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들은 날이 어두워지도록 웃고 떠들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술은 이들의 몸을 취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마음은 만취한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고맙군.” “뭐가 말인가?” “무림맹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지 않은가. 개방의 분타주가 말이야.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많을 텐데?” “자넨 이미 우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했네. 다시는 이곳으로 뒤돌아보지도 마시게.” 소무는 마지막 남은 술잔을 비우고는 씁쓸한 표정을 머금었다.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부탁 말이야.” 허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무엇이든 말만 하시게.” “하칠이란 개새끼가 하나 있는데 좀 찾아줘. 백양현의 왕초였는데, 아직 섬서를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허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자신이 알기로 눈앞의 인물은 어지간해선 욕을 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살기(殺氣)를 주체하지 못하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한테 개새끼라고 불릴 정도면, 천하의 때려죽일 놈이겠군. 그런 놈들은 우리 개방의 몽둥이찜질이 최고일세.” “위치만 찾아서 알려줘. 그놈은 반드시 내가 손봐줘야 하니까.” “걱정할 것 없네. 섬서는 내 손바닥 안이지. 게다가 거지 왕초였다면 찾기가 식은 죽 먹기 아닌가?” 소무의 입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또 한 명. 아광이란 어린 거지가 근방을 헤매고 있을 거야. 이미 개방에 가입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찾아서 좀 보살펴 줄 수 있지?” “그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나. 어디서 굴러온 녀석인지는 몰라도, 분타주인 내가 직접 챙겨줄 테니 염려 마시게.”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어. 얘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군.” “내가 수락하지 않아도, 어차피 얘기할 거 다 알고 있네.” 소무는 품속을 뒤지며 식탁 위에 무엇인가를 내려놓았다. 엽전 다섯 냥이었다. “객잔도 망하고 이게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이야. 우리가 먹은 걸 계산하려면 좀 부족한데 보태줄 수 있겠지? 분타주라면 술값 정도는 있을 것이 아닌가.” 언뜻 보아도 이들이 먹은 술값은 엽전 이십 냥에 가까웠다. 허규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은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웠다. “나 원 참……. 천하의 검성이 거지한테 얻어먹으려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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