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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무신의 자질 (2) (9/250)

9화 무신의 자질 (2)2022.02.09.

급조된 신병부대로 노련한 적군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어진 시간도 별로 없었기에 밤낮으로 지옥 같은 훈련을 시행해야만 했다. 검법, 보법, 진법, 경공 등 하루의 일과가 훈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모든 훈련에서 최고의 성적을 내며 군계일학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소무였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다들 안 자?” 소무가 막사 안을 두리번거렸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새벽이 한창이었지만, 어찌 잠이 오겠는가. 가부좌를 틀고 늘어앉은 백여 명의 조원들은 금강진경의 내공심법에 심취해 있었다. ‘생각보다 독한 녀석들이군.’ 따분한 일상이었다. 중단전까지 열려있는 그에게 이러한 내공 수련은 무의미했다. 좌측에는 청해가, 우측에는 일광이 운기조식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른 신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선이 우측의 일광으로 향했다. ‘일광이 외모만으로 뒷골목을 평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훈련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전투 감각만은 타고났다. 게다가 좋은 근골까지 갖고 있으니, 내공만 뒷받침이 된다면 능히 일취월장할 터.’ 소무는 은근슬쩍 일광의 등에 손바닥을 밀착시켰다. 그의 운기조식에 관여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심법의 이해가 부족한 자가 이러한 짓을 한다면, 기혈이 뒤틀려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도 있다.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소무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제 막 내공 수련의 걸음마를 뗀 일광. 그의 모든 정신은 단전에서 생성된 한 가닥의 미약한 진기에 쏠려 있었다. 꿈틀대는 진기는 혈도를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계속해서 가늘어져 갔다. 그리고 수십여 개의 혈도를 거친 이후에는 소멸하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제발…….’ 일광은 진기를 조금이라도 단전에 도착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실낱같은 미세한 진기가 무사히 도착하여, 단전에 축적되는 것에 성공했다. 한 번의 일주천을 마쳤다. 기쁠 만도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개고생을 했음에도 단전이라는 항아리에 고작 물 한 방울을 채운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씨X! 이래서 언제…….’ 얼마나 오랜 세월 이러한 짓을 반복해야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자신이야말로 집념의 사나이가 아니던가. 또다시 단전에서 또 한 가닥의 진기를 생성했다. 그리고 또다시 일주천을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뭐, 뭐야!?’ 일광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단전에서 엄청난 기운이 생겨나며 용솟음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전의 진기가 바늘이었다면, 지금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거대한 불기둥과도 같았다. ‘뭐지? 설마 나도 소무처럼 무(武)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었단 말인가?’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금강진경의 운기 방식대로 진기를 재빨리 어깨 부근의 심유혈(心兪穴)로 밀어 올리기 위해 시도했다. 그러나 폭발할 것만 같은 이 진기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멋대로 움직이는 거대한 기운은 일광의 통제를 벗어나 왼쪽 골반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어디 가?’ 진기가 스스로 움직이다니. 당황스러웠지만 그냥 놔두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진기가 향한 첫 번째 관문은 중료혈(中療穴)이었다. 용솟음치는 진기는 그것을 단번에 뚫어버리며 거대한 통로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앞으로 그의 진기가 중료혈을 통과할 때에 어떠한 막힘도 없음을 뜻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왼쪽 다리를 향해 진격해 들어가는 막대한 진기. 그것은 승부혈(承扶穴), 은문혈(殷門穴), 위중혈(委中穴)을 시작으로 왼쪽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湧泉穴)까지 거침없이 뚫어내 버렸다. 그런데도 진기의 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일광은 자신의 왼쪽 다리가 무척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하하하! 뭔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계속 가거라!’ 거침없이 움직이는 진기는 곧이어 오른쪽 다리의 혈도를 순회하고, 상반신의 모든 혈도를 차례차례 뚫어 재끼기 시작했다. 마치 전국을 순회하듯 말이다. 화산이 폭발하듯 강렬한 힘으로 일주천하는 진기는 어느새 그의 왼팔에 머물러 있었다. 한편 일광의 몸속에서 진기를 운용하는 소무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이것은 그조차도 무리해야 할 정도로 막대한 심력과 내력을 소모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내친김에 임독양맥(任督兩脈)도 뚫어버릴까?’ 임독양맥이란 백회혈과 회음혈을 아우르는 임맥과 독맥을 뜻한다. 모든 혈도의 최종 관문이었다. 만약 이것을 타통한다면,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며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시작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소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직 일광은 이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다. 자칫 무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 굳이 서둘러서 모험을 강행할 필요는 없지. 현재 상태만으로도 무공을 펼침에 있어 진기의 손실이 없을 것이며, 내공이 쌓이는 속도 또한 수십 배는 빨라질 것이다.’ 소무는 일광의 몸속에 남아있던 진기를 조심스럽게 그의 단전으로 이동시키며 서서히 소멸시켜버렸다. 드디어 고된 작업이 끝난 것이다. 온몸에 진이 빠진 터라, 그도 이제는 운기조식으로 자신의 내력을 보충해야만 했다. ‘두 번은 못 할 짓이로군. 청해 녀석은 나중에 한 번에 해야겠어.’ 소무가 무아지경에 빠져들 무렵. 한 사내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야, 소무야! 빨리 일어나봐! 나 지금 미쳤어! 장난 아니야!” 일광은 허공에 연신 주먹질을 해대며 자화자찬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으니 기쁠 수밖에. “나에게도 이런 숨겨진 재능이 있었을 줄이야!” 그의 모습에, 소무는 운기조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멈춰야만 했다. ‘휴. 머릿속도 근육으로 가득 차 있는 모양이군.’ 일광은 막사 안을 방방 뛰어다니며 쿵쾅거렸다. 거대한 체구의 몸부림에 막사가 뒤흔들렸다. 소란스러움에 조원들이 하나둘씩 눈을 뜨며 두리번거렸다. “무슨 일이예요……?” “일광 형님, 왜 그래요?” 일광은 검보병대에서 가장 강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나이도 많았기에 어느새 그를 따르는 자들이 꽤 많았다. “얘들아, 이 형님 좀 봐봐!” 날렵하게 움직이는 일광의 움직임에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와…….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역시 일광 형님이십니다!” 일광이 조원들을 뒤로한 채 늠름한 표정으로 청해를 바라보았다. “청해야! 보았느냐?”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의 그는 내심 자신보다 어린 청해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랐다. 일광의 자신감은 이미 천하제일고수가 되어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진맥 좀 해볼게요.” 청해는 다짜고짜 일광의 팔목을 움켜쥐고는 자신의 진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막사 안의 모두가 시시각각 변하는 청해의 표정에 집중했다. 잠시 후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휴. 천하대장군은 일광 형에게 양보해야 할 것 같네요.” 눈을 가늘게 뜬 일광의 얼굴에 기대감이 잔뜩 서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일광 형은 천양지체인 것 같습니다. 하늘이 내려준 무골이에요!” 천양지체(天揚之體). 태어날 때부터 전신의 혈도가 개통되어있어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화된 신체를 말한다. 백만 명 중 한 명이 태어날까 말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광이 천양지체가 뭔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청해의 표정으로 보아 좋은 것임을 짐작하고 펄쩍 뛰었다. “뭐? 그게 정말이야? 하하핫!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어릴 때부터 내가 근골 하나는 타고났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 “소무 형처럼 재능을 늦게 발견한 것이 아쉽네요. 어렸을 때 입문했으면 지금쯤 절정고수가 되어있었을 겁니다.” “이런 빌어먹을! 왈패 노릇을 할 게 아니라 어디 삼류 문파라도 들어가서 무공을 수련했어야 했는데!”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에 소무는 실소를 머금었다. 일광이 타고난 무골인 것은 맞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든 조원들이 일광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주변을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 검병대 십육조에서 누가 가장 강한 거야?” 일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화산파 출신을 눈앞에 두고 무슨 개소리 하는 거야? 구파일방 몰라? ……하지만 천양지체인 내가 곧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청해는 십육조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편에 속한다. 그런데도 그의 출신과 무공은 언제나 다른 동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저는 그냥 노력만 열심히 할 뿐이지, 재능이 없어요. 소무 형님이 조금만 성장한다면 저는 일초지적도 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화산파 출신이 밀린다니?” “형님들이 몰라서 그렇지, 초식을 한 번만 보고 따라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재능입니다. 저는 무림에서 이러한 재능을 가진 자를 딱 한 명 들어본 적이 있어요.” 일광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누구? 그자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데?” “검성(劍聖)이죠.” 청해의 대답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강호에 대해 잘 모르는 조원들조차 저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던 것이다. 정마대전을 승리로 이끈 무림 제일 고수의 별호가 아니던가. 소무가 그와 같은 자질을 타고 났다고 한 것이다. 다들 탄성을 내뱉으며 그를 향해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한 시선이 불편했던지, 소무는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검성은 무슨. 잠이나 자.” 그러나 조원들은 이미 피곤이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그 자리엔 무(武)에 대한 갈망이 대신 채워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검병대에서 소무 형님만 천무검법의 십팔 초식을 모두 익혔잖아요. 비결이 뭡니까?” “저는 삼 초식에서 막히는데, 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 “소무 형님! 저도 좀 알려주세요. 제발…….” 소무는 방금 막대한 내력을 소모한 터라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상태였다. ‘이거 정말 미치겠군.’ 그는 귀찮은 표정으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모두가 안달이 난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자신에게 애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중에는 일광과 청해도 있었다. 자리에 벌러덩 누운 소무는 눈을 감고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일광과 청해가 좌우에서 동시에 흔들었다. “좀 알려줘.” “소무 형,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우리가 같이 강해져야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요.” 소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몸이 좀 피로하긴 했지만, 초식을 봐주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시간이 새벽의 절정인 축시를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설마 지금 훈련장으로 가자는 거야?” 은근슬쩍 눈을 떠서 주변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토끼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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