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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어둠속에 비친 서광 (1) (12/250)

12화 어둠속에 비친 서광 (1)2022.02.12.

소무가 조장이 된 이후부터는 새벽마다 해왔던 검법수련이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해 대련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검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들, 전장에서는 전투 경험이 없으면 명줄이 짧아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두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대련 훈련을 진행했다. 진검을 움켜쥔 이상, 격렬한 대련은 서로의 몸을 상하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새벽마다 훈련장에 백여 자루 장검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위진철 부장이 몰래 지원해주고 있는 것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시키지도 않은 추가훈련을 하는 십육조가 그의 눈에 예뻐 보이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훈련용 장검들이 생긴 이후부터 십육조의 특별훈련은 처절하게 변했다. 새벽마다 매일 같이 두 패로 나뉘어 실전 같은 개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언제나 소무가 소속되어 있는 무리가 이겼지만 말이다. 반대편의 무리는 항상 두들겨 맞았기 때문에, 모두가 소무와 같은 편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일광과 청해는 항상 반대편에 서야 하는 억울함을 당했다. “하악! 하악!” “후우~!” 거센 숨을 내쉬는 청해와 일광. 둘은 등을 맞댄 채 주변을 노려보았다. 그 주위를 이십여 명의 신병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면 소무는 항상 뒤로 빠져서 신병들에게 마무리를 지시하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들의 틈새에서 소무가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해? 빨리 끝내고 쉬자고.” 그것이 신호였다. 청해와 일광을 향해 사방에서 달려드는 이십여 명의 신병들. 그들의 검에 자비란 없었다. 어제는 자신들이 이렇게 맞았기 때문이다. 뭉툭한 검들이 맞물리며 거센 폭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캉-! 카카캉-! 동시에 쏟아지는 수십 자루의 검들로 인해 일광과 청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들린 무속인과도 같아 보였다. 가까스로 두 명의 신병을 쓰러트린 일광이 등 뒤를 향해 소리쳤다. “떨어지지 마!” 두 명만 남은 상황에서 후방까지 빼앗긴다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청해의 정면으로 들어온 신병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지고 있었다. 아직까진 용케도 잘 버텨내고 있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신병들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일 검. 자신의 어깨를 노린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는 방위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상대가 누군지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림없다!’ 이를 악다문 청해는 전력을 다해 몸을 비틀며, 죽기 살기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가까스로 소무의 검을 쳐내는 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 카앙-! 청해의 얼굴이 환희에 휩싸였다. 처음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균형을 잃은 청해를 향해 신병들의 무차별적 공격이 이어졌다. 푸욱-! 퍽-! 퍼억-! “크헉! 그만!” 청해가 쓰러지며 뒹굴자, 남아있는 일광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소무의 검이 일광의 허리를 후려친 것이 시작이었다. 비틀거리는 일광을 향해서도 신병들의 무자비한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퍼억-! 퍽-! 퍽! 온몸을 웅크린 채로 두들겨 맞던 일광이 소리쳤다. “크악! 그만해, 이 새끼들아!” 신병들이 물러서자 탈진한 일광과 청해는 바닥에 대(大) 자로 드러누워 버렸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만족한다는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어제는 스무 명을 남기고 패배했으나, 오늘은 열세 명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소무를 쓰러트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그의 몸에 검을 적중시켜 본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조장의 모습에, 조원들은 매일같이 혀를 내둘러야만 했다. “모두 수고했어.” 소무의 얼굴에 미세한 미소가 서렸다. 처음으로 자신의 일합을 버텨낸 청해의 모습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우연일지라도 검성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니,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 명의 신병은 모두 자리에 주저앉거나 벌렁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새벽하늘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모두가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청해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유난히 아름답네요.” 그의 옆에 누워있던 일광이 손을 휘저으며 반문했다. “내 경험으로는 말이야. 이런 날은 꼭 안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고.”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일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뿌우우우우-! 뿔피리 소리였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신병들이 놀라며 긴장했다. “뿔피리 소리잖아?” “뭐야, 갑자기?” “아직 새벽이잖아? 도대체 뭐야?”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이다. 이 시간에 갑자기 뿔피리라니. 그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또다시 뿔피리가 울음을 토해냈다. 뿌우우우우-! 굉음은 계속해서 점점 더 빠르고, 더 강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무엇인가 사단이 발생한 것이 분명했다. 소무가 훈련용 검을 내려놓으며 나직이 말했다. “적군이 침입한 모양이군. 모두 진검을 들어라.” 적군이 침입했다는 말에 신병들은 몹시 당황했다.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그리고 실전 경험이 전무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소무는 신병들의 맥박(脈搏)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험이 풍부한 일광이었다. 백양현에서도 여러 명의 휘군을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탈출했던 그였다. 일광이 얼굴을 잔득 구기며 신병들을 다그쳤다. “겁먹지 말고 빨리 무기를 들어!” 정신이 번쩍 든 신병들은 훈련용 검을 내던지고는 자신의 검을 하나씩 찾아들었다. 모두가 준비를 마치자 소무가 이들을 이끌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대열을 형성한 십육조는 검보병대의 막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란스러움이 감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거리가 가까워지자 신병들도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첫 번째 막사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곳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관이었다. 적들의 숫자는 고작 이백 명도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수천 명의 신병들은 싸울 의지를 포기한 채 곳곳으로 도망 다니기에 급급했다. 소무는 어이가 없다 못해 헛웃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익힌 흔적은 있지만, 별 볼 일 없는 놈들이다. 이곳이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고작 이 인원으로 기습을 한다는 말인가. 침착하게 대응하면 바로 막을 수 있었을 것을…….’ 휘군의 장수 한 명이 전공에 눈이 멀어 휘하의 별동대를 이끌고 기습한 것이다. 야밤에 성벽을 넘어 막사까지 침투할 생각을 했다니. 이들이 이곳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난전의 한가운데에서 위진철 부장이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울부짖었다. “모두 무기를 들어! 훈련받은 대로 하란 말이야!” 그러나 위진철의 고함은 신병들의 귓가에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변 동료들이 도망치며 휘군의 별동대에게 난도질당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공포가 이성을 지배하자 싸울 의지를 잃은 것이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정규군의 병사들이 곳곳에서 맞서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대부분이 신병들의 훈련 준비를 도와 잡일만 해오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첨병대의 백무련 부장이 합류했지만, 별동대를 이끄는 장수에게 가로막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오직 위진철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명씩 처치하는 상황이었다. 이래서는 답이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그는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그때였다. 죽어가던 위진철의 눈동자가 갑자기 빛나며 생기를 머금었다. 이곳의 난전으로 합류하는 백여 명의 신병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장 총애하는 검보병대 십육조였다. 십육조의 선두에서 달리던 소무의 검이 사선으로 번뜩였다. 그와 마주하던 휘군의 병사는 막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갑주째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써컥-! 깔끔하고도 완벽한 일격이었다. 그 모습에 용기를 얻었던 것일까? 검을 움켜쥔 조원들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너희는 충분히 강하다! 자신을 믿어라!” 두려움이 모두 가시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낸 십육조의 신병들이 저마다 흩어지며 휘나라의 별동대를 향해 다가갔다. “어디 한번 해보자, 이 새끼들아!” “우와아아아!” 소무는 은근슬쩍 뒤로 물러서며 조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들이 경험을 쌓기에 아주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 가장 선두에서 내달리며 미쳐 날뛰는 일광의 실력이 단연 발군이었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잽싸게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흡사 맹호와도 같아 보였다. 그 누구도 일광의 공격을 삼 합 이상 버텨낸 자가 없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인물이 또 한 명 있었다. 화려한 움직임으로 한 명씩, 한 명씩 휘군의 병사들을 쓰러트리는 청해의 검술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그의 검에는 살의(殺意)가 없었다. 청해의 검에 쓰러진 병사들은 죽기는커녕 치명상도 입지 않았기에, 곧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그는 지금껏 누구를 죽여보기는커녕 상하게 해본 경험도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 소무의 신형이 벼락처럼 움직이며, 눈 깜짝할 사이 청해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의 초인적인 움직임은 감히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면서 어떻게 천하대장군이 되려고? 문지기 정도나 하면 딱 맞겠군.” 소무의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청해의 귀가 쫑긋했다. 그 순간 청해의 검이 살기(殺氣)를 머금기 시작했다. 달라진 청해의 기도를 확인한 소무는 고개를 돌려 다음 목표를 찾았다. 우측으로 십여 장이 떨어진 곳. 철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조원이 보였다. 그는 한 명의 적군을 붙잡고 몸짓으로 위협만 하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초식을 펼칠 생각도 잊은 것이다. “와봐, 이 새끼야! 들어와!” 휘군의 병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계속해서 그의 허점을 찾고 있었다. 이대로면 철두는 실력 발휘도 하지 못하고 당할 것이 분명했다. 지켜보던 소무가 보법을 밟았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유령처럼 쭉쭉 늘어지며 철두의 뒤로 순식간에 다가갔다. 철두의 귓가로 나직한 소무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천무검법 일 초식 진화난격세(進花亂擊勢).” 그때였다.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철두의 장검. 어깨높이까지 차고 오른 검날이 한 바퀴를 회전했다. 갑작스러운 초식의 전개에 화들짝 놀란 휘나라의 병사는 재빨리 방어 자세를 했다. 까앙-! 가까스로 막아내며 뒷걸음질 치는 병사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그때 철두의 귓가로 또다시 소무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초식 일섬무흔(一閃無痕).” 훈련을 통해 수없이 반복해왔던 동작이었다. 초식의 이름을 듣는 순간 철두의 몸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어깨 뒤로 잡아당긴 철두의 검 끝이 전면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쏘아져 나갔다. 아직 자세를 다잡지 못한 병사는 그것을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푸욱-! 철두의 검이 병사의 목젖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이 환희에 휩싸일 무렵. 소무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송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조원이 보인다. 청해와 같은 나이로 예의가 바르고 유난히 자신을 잘 따랐던 조원이다. 지금 그의 등 뒤에 휘나라의 병사가 은밀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송화는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채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무가 손바닥을 펼치자, 바닥을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스스로 날아와 붙잡혔다. 소무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돌멩이. 그것은 푸른빛이 감도는 강기를 머금더니, 송화를 기습하려던 병사의 머리통을 정확히 가격했다. 푸욱-! 머리가 꿰뚫린 병사는 영문도 모른 채 서서히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소무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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