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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어둠속에 비친 서광 (2) (13/250)

13화 어둠속에 비친 서광 (2)2022.02.13.

십육조의 선전으로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휘군의 별동대원들. 그 모습은 검병대의 전체에 뜨거운 용기를 불어넣었다. 자신들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든 것이다. 드디어 도망치던 신병들 중에서 하나둘씩 검을 집어 드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 새끼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쳐들어 와!” “저놈부터 족쳐!” 신병들이 드디어 맞서 싸우려는 조짐을 보이자, 위진철 부장이 중심에서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곧 있으면 지원군도 올 것이다!” 이백 명의 기습 따위에 지원군이 필요할 리는 없었다. 자신들의 머릿수가 이들의 열 배를 상회하고, 이미 전세는 역전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지원군이라는 단어는 적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트리고, 반대로 아군의 사기는 끌어올렸다. 휘나라의 별동대를 이끌고 온 장수는 더 이상 난동을 피우기가 글렀음을 눈치챘다. 그가 호각을 불자 살아남은 병사들이 재빠르게 주위로 몰려들었다. 퇴각하려는 것이다. 이백 명으로 구성되었던 별동대는 이제 절반도 채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퇴각을 시작할 무렵, 장양 장군과 부관 양연정이 검병대의 막사에 등장했다. 장양 장군이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쫓지 마라!” 얼굴이 상기된 위진철이 그에게 재빨리 다가가 말했다. “장군, 지금 쫓으면 성문을 빠져나가기 전에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보내주라고 했다!” 위진철은 억울했다. 자신의 부하들이 죽었다. 드디어 전세를 역전하고 복수할 기회를 잡았는데 멈춰야 한다니. 무척이나 분했다. 그러나 장양의 명령까지 어길 마음은 없었다. 위진철이 호각을 불자, 모든 신병들이 추격을 멈추고 집결했다. 장양의 시선이 어깨가 축 늘어진 위진철을 향했다. “고생했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자칫 소수의 별동부대에 군단 전체가 무너질 뻔했어.” “근데 왜 저들을 보내준 것입니까?” 휘나라의 별동대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저들이 살아서 돌아가야만 우리가 다가올 전투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네. 저 별동대의 장수는 전공에 눈이 먼 인물일세. 분명 자신의 업적을 최대한 부풀려 얘기하겠지.” 장양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본진에 복귀하여 다른 동료 장수들한테 처맞고 왔다고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고작 이백 명으로 막사까지 침투하여 난장판을 만들고 살아서 복귀했으니, 우리 군을 오합지졸로 보겠군요.” “바로 그것일세. 장안성에 주둔한 저들의 군세가 십만이나 되지만, 이곳 한중성 따위는 작은 규모로도 충분히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걸세. 저들이 방심할수록 우리에게는 기회가 생기겠지.” 위진철은 이제야 장양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들이 저 별동대를 전멸시켰다면, 앞으로 적들이 전력을 다할지도 모르는 일. 열세인 상황에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조금의 승산도 없었다.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에 또 온다면 모두 죽일 것입니다.” “허허. 그때는 나도 말리지 않겠네. 그나저나 어떻게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는가? 아직 신병들은 경험이 없어서, 기습에 대응할 용기가 없었을 텐데.” 위진철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검보병대에서 정예들을 따로 모아 특공대를 양성해냈다고.” “암. 그랬지. 그들이 어디 있는가?” 위진철이 십육조가 도열 한곳으로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장양이 그들의 면목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눈빛들. 게다가 선두에서 전투를 치렀음에도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어 보였다. 다른 조들은 적게는 다섯에서 많게는 열 명까지 죽거나 다쳤으니,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장양의 얼굴에 흡족하다는 표정이 가득 채워졌다. 어느새 다가온 다른 장수들이 위진철을 향해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때 장양이 위진철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 아주 듬직하군. 내가 우리 군에서 자네를 가장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입이 귓가에 걸린 위진철은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반드시 용위군을 뛰어넘는 무적의 검병대를 양성해내겠습니다.” 용위군(龍威軍). 대장군 악비의 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이 전설적인 부대는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적의 기록을 갖고 있다. 한세충 장군의 천무군(天武軍)과 함께 송나라 최고의 양대 부대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암. 그래야지. 그리고 저들에게 뭔가 포상을 해주고 싶네만.” 위진철이 소무를 향해 다가오라고 손짓을 보냈다. 잠시 후 소무가 당도함과 동시에 위진철의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자가 십육조의 조장입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제가 알아보고 현재 검병대의 비밀병기로 키우고 있습니다.” 장양이 소무의 어깨를 다독이며 물었다. “자네 같이 용맹한 신병들이 나라를 위해 애써주니 든든하네. 공을 세웠으니 포상을 줘야겠는데, 무엇이 좋겠는가?” 보통은 금전이나 더 높은 계급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무의 요구는 장양의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났다. “조원들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술과 고기를 내려줄 수 있는지요?” 소무의 요구는 전혀 부담될 것이 없는 사항이었다. 이보다 더 소박한 포상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오히려 좋아해야 했지만, 장양은 조금 난처해하는 표정이었다. “허허. 나한테는 가장 어려운 요청이군. 군단에는 규율이 있네. 병사들이 막사에서 술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대신 자네들에게 외출 정도는 허락해 줄 수 있겠군. 여비를 줄 터이니, 오늘 저녁은 한중의 거리에서 지내보는 것이 어떠한가?” 술과 고기에 한술을 더 떠서 외출까지 얻어낸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 * * 조원들의 기분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훈련도 끝마치지 않은 신병들이 외출을 허락받은 것이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혜택을 받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일광이 신이 났는지 양팔까지 흔들며 앞장서고 있었다. “한중에서 가장 큰 객잔으로 가자꾸나! 이 동네 사는 놈이 누가 있었지?” 일광의 부름에 철두라는 조원이 앞으로 나섰다. “일광 형님, 제가 여기 토박이입니다. 저쪽으로 백여 장만 가면 됩니다.” “오냐! 안내하거라~!” 모처럼 대장 노릇을 하는 일광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는지, 그의 뒤에서 청해가 연신 킥킥대며 웃었다. 그들의 뒤로 대열을 형성한 채 이동하는 조원들의 얼굴에도 하나같이 해맑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소무는 대열의 가장 후미에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반각의 시간이 흐른 후, 이들은 목표로 정한 장소에 도착했다. 이 층 구조로 지어진 거대한 객잔. 화양(華陽)이라는 이름이 각인된 현판이 보였다. 한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역사가 깊은 객잔으로, 소무도 오래전에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었다. “자, 들어가자! 실컷 마셔보자!” “와아아아아!” 일광의 뒤를 따라 신병들이 객잔 안으로 밀물처럼 밀려 들어갔다. 그런데 가장 후미에서 뒤따르던 소무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청해가 들어가지 않고서 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해? 들어가지 않고.” 청해의 표정이 다소 불안해 보였다.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소무 형……. 우리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요?” 짐작 가는 바가 있던 소무는 묵묵히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청해가 머뭇거리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객잔의 중앙에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네 명의 무림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청색 깃으로 장식된 흰 도복과 매화 문양이 새겨진 장검. 삼남일녀(三男一女)로 구성된 이자들은 화산파의 도사들이었다. 화산파의 위치가 이곳에서 멀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종종 화양객잔에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청해가 이들을 불편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무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계속 피해 다닐 수는 없는 법.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일이다.’ 소무는 청해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는 객잔으로 이끌었다. “이미 모두 다 들어가 있잖아? 모처럼 즐겁게 마셔보자고.” 공교롭게도 소무가 자리를 잡은 위치는 도사들이 있는 곳의 바로 옆자리였다. 물론 그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들의 식탁으로 다섯 명의 조원들이 함께 자리했다. 지저분한 몰골의 병사들이 옆자리에 앉자, 화산파의 도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소곤거리는 대화가 초인적인 소무의 귓가로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도사 중 한 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연신 투덜댔다. “사형들, 빨리 먹고 가요. 냄새 나…….” “백희 사매 말이 맞아요. 이것만 마저 마시고 나가죠. 술맛 떨어지는데.” 소무의 미간이 잠시 좁혀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외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훈련복 차림으로 그냥 뛰쳐나온 십육조의 신병들이었다. 그들에게 땀 냄새가 나는 건 당연했다. 소무는 묵묵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여섯 명씩 짝을 이룬 신병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서 신나게 주문을 하고 있었다. 일광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들떠 있는 신병들과 달리, 청해 혼자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연스럽지 못한 행동이 오히려 주변의 이목을 끄는 법이다. 청해의 옆에 자리한 신병이 눈치 없이 계속 그를 불러댔다. 동갑내기인 송화라는 신병이었다. “청해야,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고개 좀 들어봐, 청해야!” 귀에 익은 단어가 들려왔기 때문일까? 도사들의 시선이 갑자기 이곳으로 집중되었다. 이어서 백희라 불린 도사의 입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다. “사형들, 쟤 청해 아니에요?” “청해가 누군데?” 답답해진 백희의 목소리가 커지자, 소무의 식탁에 자리한 신병들도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매화검수들한테 죽도록 맞고 쫓겨난 청해 몰라요?” “아. 삼대 제자 주제에 매검지에서 무공을 훔쳐보다가 파문당한 그 녀석?” 조원들의 얼굴에 당황스러움과 함께 노기가 서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청해의 얼굴은 홍시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는 인물들이다. 화산파의 이대 제자들이었다. 평상시에도 문파 내에서 몰려다니며 사제들한테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는 패거리로 유명했다. 청해를 확인한 도사들은 다른 병사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일부러 청해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리라. “쟤 청해 맞는 것 같은데? 기껏 속가제자로 살려 보내줬더니 병졸이 된 거야?” “청해야, 사형들을 봤는데 인사도 안 하냐?” 청해의 옆에 자리한 신병들은 분노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 유명한 화산파의 도사들이다. 자신들이 감히 상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신병들의 시선이 소무를 향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청해야, 사형들한테 인사 안 하냐고!” “고개 안 쳐들어?” 청해가 대꾸를 안 하자 도사들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감히 막내 항렬이었던 청해가 자신들의 말을 무시하자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객잔의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서며 신경질인 고함을 내질렀다. “아, 거참 시끄럽네! 입 좀 닥치고 처먹어! 주둥이를 확 찢어놓기 전에.” 객잔 안에 정적이 흐르며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곰처럼 거대한 체구의 병사가 우악스러운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일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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