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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분노는 두려움을 삼킨다 (1) (16/250)

16화 분노는 두려움을 삼킨다 (1)2022.02.16.

힘찬 북소리가 한중성 곳곳을 울렸다. 장양 장군이 이끄는 군단이 첫 번째 출진을 개시한 것이다. 이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 싸움의 승패가 자신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마치 자신들이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장군님! 힘내세요!” “반드시 휘나라 나쁜 놈들을 물리쳐 주세요!”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장양 장군과 백여 기의 기마대가 선두에 나서고, 그 뒤를 부관 양연정이 창병대를 이끌고 뒤따랐다. 이어서 인원이 가장 많은 검병대가 군단의 중심을 잡으며 등장했다. 검병대의 일조에서 오조까지는 방패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들은 전열을 지키는 병사들이다. 스물다섯 개의 조에는 장교급 병사들이 각각 배치되었는데, 십육조만은 전체가 신병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위친절 부장이 십육조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겠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의 친위대처럼 말이다. 본격적으로 행군이 시작되자 병사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장교급이 아닌 이상에야 전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적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자신들이 죽으러 가는 것인지, 승산이 있는 싸움을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무척 두려웠지만, 거리에 나와 응원하는 백성들의 모습에 용기를 얻고 있었다. 소무가 소속된 검병대 십육조는 행렬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거리를 살펴보던 소무의 시선이 근처의 한 백성에게 고정되었다.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보따리에 과일을 잔뜩 싸 들고 다가와서 병사들에게 나눠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나리들. 고맙습니다…….” 송나라의 많은 장군이 한중을 비롯한 섬서 지역에서 철수한 것을, 백성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장양 장군이 홀로 이곳에 남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얼떨결에 사과 하나를 건네받은 소무는 물끄러미 상인을 응시했다. ‘우리가 패배한다면 이 상인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화를 당하겠지. 이 거리에 있는 모든 백성이 같은 운명일 것이다. 그런데도 강호가 어찌 감히 이들의 세상보다 무서운 곳이라 할 수 있겠는가.’ 소무의 시선이 좌측의 반대편 거리로 향했다. 근처에서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명이 이쪽을 응시하며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허리가 휜 백발의 노인은 보따리 하나를 손에 쥔 채, 누군가를 찾는 듯 연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혈색이 어둡고 맥박의 파동이 약하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병세를 앓고 있음이 분명했다. 소무는 이 노인이 아픈 몸을 이끌고 왜 이곳까지 나왔는지 궁금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노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병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철두야!” 이곳이 고향이라고 말했던 십육조의 일원이었다. 소무는 막사에서 조원들끼리 나누던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그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고 했다. 노인을 발견한 철두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할머니가 왜 여기에 있어?” “아이고 이놈아. 어디 아픈 데는 없는 게야?” “어휴. 이런 데 나오지 말라니까!” 할머니는 손에 쥔 보따리를 철두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끼니 거르지 말고. 배고플 때 챙겨 먹어.” 철두는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 철두는 행군을 멈출 수 없었기에 계속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아픈 것도 잊은 채 절뚝거리며, 꼭 잡은 철두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이고 철두야……. 혹시라도 아프면 우리 장군님한테 얘기해. 우리 장군님이 집에 보내주실 거야.” “어휴! 장군님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알아?” “할머니 걱정은 하지 말고. 할머니 말 잘 알아들었지?” 기어코 철두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달부터는 급료가 나온다고 하니까…… 집으로 보내주라고 했어. 이제부터 할머니도 의원에 다닐 수 있어.” 철두는 할머니의 병세를 치료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병사로 자원한 것이다. “장한 우리 손자……. 장군님을 꼭 지켜드려야 한다…….” 할머니는 철두와 눈인사를 하며 곧 멀어져야만 했다. 그들의 행군 속도를 불편한 몸으로 따라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광경은 비단 철두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 상봉하며 눈물을 흘리는 병사들이 곳곳에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소무는 심정이 착잡해졌다. ‘나 혼자서 휘나라의 병사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다. 나 혼자서 모든 송나라의 병사들을 살릴 수도 없다. 전란이 끝나면 또 다른 전란이 발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 명의 병사로서 물이 흐르는 대로 참관자로 남아야 한다. 하지만 아군이 패배하고 이곳이 짓밟히는 것을, 내가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본래 이곳에 온 목적과는 달리, 그의 마음은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소무의 두 눈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같은 하늘 아래 모두가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은 왜 없다는 말인가. 다시는 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종지부를 찍을 방법이 정녕 없단 말인가?’ 어디선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의 착잡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소무의 한숨과 뒤섞인 바람은 다시 이동하며 다른 이들을 보듬어 주었다. 그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새 행렬의 선두가 성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는 몇몇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훈련병과 정규군을 포함한 장양의 총 군세는 오천삼백여 명으로, 그중 삼백 명을 치안 유지를 위해 남겨 놓은 것이다. 성문을 나서고부터는 선두의 발걸음이 빨라지며 행군이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이들은 목표로 한 지점에 당도할 수 있었다. 정군산의 산자락을 끼고 있는 드넓은 들판. 측면에는 멀찍이 장강의 상류와 이어지는 급류가 보인다. 이곳은 적들이 한중을 공격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장소다.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즈음, 장양과 부장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첨병대를 지휘하는 백문휘 부장이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장군, 다행히 때맞춰 도착했습니다. 적군은 한 시진 후면 도착할 것입니다.” “수고했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에 첨병대의 병사들도 모두 검병대에 합류시켜주게. 한 명의 병사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니.” “예, 그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장양은 뒷짐을 지고 묵묵히 주변 지형을 살펴보았다. 반각의 시간이 지난 이후 그의 시선이 양연정에게 향했다. “비록 저들이 자만심에 빠져 있다고는 하나, 우리가 이곳에 떡하니 대기하고 있다면 매복을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네. 적들의 첨병들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우리의 터전이고, 우리가 자라온 고향입니다. 발각되지 않고 숨을 만한 곳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저들이 이 일대를 수색한다고 하여도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절대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장양은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관은 바로 출발해주시게. 정군산은 산세가 높아 이곳의 위치가 훤히 보일 것이네. 가장 적절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놈들의 후미를 공격하게. 자네야말로 우리 군단의 제일 명장이니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겠네.” “맡겨 주십시오.” 양연정은 가슴 위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여 보인 이후 즉시 자리를 떠났다. 창병대를 소집하여 정군산으로 출발하기 위함이리라. 그가 사라진 후 장양이 궁병대의 진립 부장을 지목했다. “궁병대가 근접전에 능하지 않은 것은 잘 알고 있네만, 지금으로선 방도가 없네. 적군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면 세 번의 일제사격을 마친 후 검병대의 후미를 지켜주시게.” “예, 장군.” 장양의 시선이 이번에는 기마부대의 한백에게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투구로도 가려지지 않는 검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한백은 장양 다음으로 경험이 많은 노장으로, 평소에도 과묵하고 묵직한 성격으로 말수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우리의 기병대는 비록 백 기밖에 안 되지만, 자네의 지휘 아래라면 능히 일당백의 위용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 믿네. 창병대가 매복 공격을 시작할 때 적들의 측면을 돌파하여 내부에서 흔들어주게.” “알겠습니다.” 장양은 명령을 전달한 이후에도 한백에게서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한백 부장.” 한백은 그가 다시 자신을 지목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하십시오.” “아마도 기병대의 대부분은 오늘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네.” “알고 있습니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한백의 모습에, 장양은 가슴이 저림을 느꼈다. 그는 목이 메는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네.” “그동안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검병대를 제외한 모든 병과의 작전이 마무리되었다. 위진철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장양의 명령을 기다렸다. “내 자네에게 첨병대와 궁병대를 맡겼으나, 그래도 삼천오백 명이 안 되는 숫자일세. 고작 이들로 이만 명의 적군과 정면에서 맞서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 “제 목이 떨어질 때까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닐세.” “오늘 살기를 포기하였으니 어떠한 명령이든 내려주십시오.” 깊게 숨을 내쉰 장양의 눈빛이 지그시 가라앉았다. “자네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겨야 하니 마음이 무겁군.” “무엇이든 각오하고 있습니다.” “검병대에는 자네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특공대가 있지. 그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있네. 양연정과 한백이 후미와 측면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적들의 진형에 빈틈이 생길 것이네. 그때 자네가 특공대를 이끌고 적진을 돌파하여 적장의 목을 베어야 하네. 쉽지 않겠지만 오직 이것만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일세.” 고작 백 명으로 이만 명에 이르는 휘나라의 대군을 돌파하고 적장의 목을 베라니. 게다가 적장의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부장급의 장수들이 있겠는가. 기적적으로 적장의 목을 베는 데 성공하더라도 살아남기 힘들 터. 좋게 말해서 특공대지, 실상은 결사대(決死隊)가 되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임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서는 가장 확률이 높은 작전임이 틀림없었다. 위진철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적장이 누구든 제 손에 죽을 것입니다.” 각오를 다지는 위진철의 모습에 장양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근데 말일세. 어떻게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특공대를 안배해 두었는가?” 위진철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이미 저질러 놓은 말이 있었기에, 자기들이 알아서 강해졌다고 얘기하기도 웃긴 상황이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생했네, 위진철 부장. 자네의 안배 덕분에 우리가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네. 아주 고생했어…….” 장양이 자신의 어깨를 다독이자 위진철은 저도 모르게 격정에 차오르며 각오를 다졌다. 모든 작전이 마무리되자 장양은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더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시 후 장양은 부장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들이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내가 함께 갈 것이네. 그곳이 설령 지옥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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