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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분노는 두려움을 삼킨다 (4) (19/250)

19화 분노는 두려움을 삼킨다 (4)2022.02.19.

적진의 중심에서 돌파를 시도하는 일광과 청해. 이 둘의 모습은 무쌍(無雙) 그 자체였다. 휘군의 병졸 중에서 아무도 이들의 일 합을 버텨내는 자가 없었다. 이들이 지나는 자리로는 추풍낙엽처럼 적군들이 지면으로 쓰러졌다. 그 뒤로 대열을 형성하여 뒤따르는 십육조의 조원들도 미쳐 날뛰고 있었다. 얼마 전 한중성을 기습했던 별동대에 비교한다면, 무카가 이끌고 온 병사들은 발밑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적군의 병사 중 대부분이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검성에게 특별훈련을 받은 이들을 일반 병졸들이 막아낸다는 것 자체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간혹 장교급의 병사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일광과 청해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검병대의 십육조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휘군의 진형에 큰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다. 십육조만큼의 위용은 아니더라도, 다른 조의 신병들도 크게 선전하고 있었다. 전의가 불타오른 그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다. 이들은 엄연히 금강진경이라는 관군의 내공심법을 익히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화후가 미약하더라도 내공을 수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움직임과 검의 무게는 휘군의 병졸들을 압도했다. 조금 전까지는 단지 경험이 없었기에 막연히 두려워했던 것뿐이었다. 자신들의 공격에 허무하게 쓰러져나가는 적군을 보며, 신병들은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별거 아니었잖아!?” 누군가가 적군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소리치자, 그 옆에 있던 병사가 동조하며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허접들한테 겁먹었던 거야!?” “다 조져버려!” 한번 자신감을 얻은 병사들은 점점 대담해졌다. 조 단위로 모여 용맹하게 전장을 뒤흔드는 모습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다섯 배가 넘는 인원의 차이였지만, 장양의 군단은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전장에서 가장 큰 적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사라진 송나라의 병사들과 달리, 무카의 군단은 점차 두려움에 잠식되고 있었다. 압도적인 인원수에도 승기를 잡지 못하자, 하나둘씩 몸을 사리는 자들이 나왔다. 그 누구도 감히 승부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군단의 제일 고수로 알려진 양연정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갑자기 휘군의 진영 뒤쪽에서 거센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정신없이 난전을 벌이던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장창 한 자루를 사선으로 꼬나쥐고 미친 듯이 내달려오는 양연정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천오백 명의 창병대. 휘군의 병사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렸다. 패전이 짙어가는 상황에서 후미의 기습이라니. 그들을 향한 창병대의 질주는 거침이 없었다. 이미 위진철이 쓰러지고 난 뒤부터 분노에 눈이 뒤집혀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선두에서 내달리던 양연정이 짧게 도약했다. 그의 창날이 서늘한 창기를 가득 머금으며 빛을 발했다. 정면을 향해 내지르는 그의 일격은 세 명의 병사를 동시에 꿰뚫어 버렸다. 푸우우욱-! 그가 창을 뽑아내자 세 구의 시신이 무릎을 꿇으며 지면으로 쓰러져갔다. 그들의 얼굴이 땅에 닿기도 전에 양연정은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전면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창은 팽이처럼 회전하며, 다가오는 모든 적군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연계기를 펼치며 전진하는 양연정의 모습은, 흡사 조자룡이 이곳에 현신한 것 같았다. 선두에서 무적의 신위를 보이는 양연정의 모습에 창병들은 전의가 불타올랐다. “모두 쓸어버려!” “검병대 놈들한테 뒤질쏘냐!” 지금까지 검병대의 활약을 숨어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들의 모습에 창병대는 이미 분기탱천(憤氣撐天)한 상태였다. 창병대가 본격적으로 적진의 뒤통수를 공격하자, 휘군의 진세는 급격히 붕괴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인원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기가 추락한 휘군은 목숨 걸고 싸우려는 이들보다 도망칠 궁리를 하는 자들이 더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한백 부장이 백여 기의 기병을 이끌고 측면돌파까지 시도하고 있었다. 죽음을 예상하고 결사의 각오를 다졌던 한백이었다. 그러나 이미 적군이 싸울 의지를 잃고 있었기에, 기병대의 사상자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 * * 적진 한복판에서 전황을 살펴보던 소무는 이미 아군이 승기를 잡았음을 확신했다. 그의 주위에는 이미 수백 명에 이르는 휘군의 병졸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제는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음을 직감했다. 애초부터 그의 목적은 한 명의 병사로서 이 전란을 참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무의 마음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안광을 빛낸 그의 시선이 십육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쪽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적장 둘이 달려들고 있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검기를 발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일광과 청해가 능히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적진의 후미에서는 양연정이 일기당천으로 적진을 돌파하며 무용을 뽐내고 있었다. 예상보다 강인한 그의 모습에, 소무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양가창법은 무림에서도 상승무공으로 쳐주었지. 전장에서는 그 위력이 배가된다고 하더니, 틀린 말은 아니었군.’ 이윽고 소무의 시선이 장양 장군을 찾았다. 장양은 말 위에서 장검을 움켜쥐고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전장을 누비는 그는 자신을 돌보지 않는 듯했다. 그때 갑자기 소무의 눈빛이 빛났다. 장양이 있는 곳으로부터 후미로 삼십여 장. 그곳에서 미친 듯이 군마를 몰고 있는 다섯 기의 기수가 보였다. 무카의 부장들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휘군은 총대장이 죽고, 전세가 기울어버린 상황이다. 이 판도를 뒤집기 위해 장양 장군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장양 장군의 무위로는 저들을 감당할 수 없다.’ 소무가 지면을 발로 튕기자, 주인 없는 장창 한 자루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것을 움켜쥔 그는 하늘 높이 가로로 치켜세웠다. 이어서 활시위를 당기듯 팽팽하게 뒤로 당겨지는 소무의 상체. “후웁.” 한 번의 심호흡. 뒤이어 그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장창은 무카의 부장들을 향해 맹렬하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전장을 가로지르며 병사들의 고막을 강타했다. 쐐에에에엑-!!! 붉은 강기에 휩싸인 투창은 가장 후미에서 내달리는 기수의 가슴을 사정없이 꿰뚫어 버렸다. 쿠웅-! 그의 가슴을 관통하고 모습을 드러낸 투창의 창날. 그것은 힘을 잃지 않고, 앞에서 내달리던 또 한 명의 장수에게 쑤셔박혔다. 푸우욱-! 영문도 모른 채 두 명의 장수가 죽임을 당하며 말에서 고꾸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함께 내달리던 세 명의 장수가 서둘러 고개를 돌려 후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허공에서 병사들의 머리를 타고 넘으며, 붉은 매 한 마리가 자신들을 향해 쏘아져 오고 있었다. 눈으로조차 쫓기 힘들 만큼 엄청난 속도. 그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져 어느새 코앞까지 이르러 있었다. 이제야 그의 모습을 확인한 장수들은 두 눈을 부릅떴다. 갑옷도 없이 붉은색의 군복만 입고 있는 병졸. 바로 무카 장군을 쓰러트린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검날을 감싸고 있는 푸른 빛무리. 그것을 보는 순간 그들은 가슴이 철렁해졌다. 이것은 분명한 검강(劍剛)이었다. 그것도 어설픈 수준이 아닌,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병졸 따위가 어떻게 검강을 발출할 수 있는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 세 명은 무카의 부장들 중에서도 무공이 가장 고강한 장수들이다. 반사적으로 그들의 무기에서도 각각 검기와 창기가 발현되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움직이면 늦는다. 그들은 본능에 따라 방어 동작을 취했다. 그 순간 그들의 사이를 붉은 매가 벼락처럼 지나쳤다. 카카캉-! 연달아 들려오는 세 번의 폭음. 그리고 지면에 내려선 소무는 검강을 바로 소멸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서 정신없는 난전이 한창이라, 자신의 무위를 눈치챈 아군은 없는 듯했다. 그때 소무의 등 뒤에서 기수들이 말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퍽-! 철퍽-! 소리는 두 번만 들려왔다. 한 명의 숨이 아직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소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벌어지는 복부의 틈새를 손으로 부여잡고, 군마 위에서 겨우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장수가 보였다. “너는 도대체 누구…….” 마지막 남은 무카의 부장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를 발견한 검병들이 서로 달려들며 난도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처 입은 그는 병사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기수가 말에서 떨어지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내가 휘군의 장수를 잡았다!” “미친 소리 하지 마! 내가 죽였어!” 신병들은 어느새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총대장이 죽었고, 그의 부장들 또한 대부분이 전사한 상황이었다. 일광과 청해와 맞서 싸우던 두 명의 장수도 어느새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있었다. 지휘권이 무너지자 도주하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물결이 번지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도망치는 상황에 홀로 남아 목숨을 버릴 자가 누가 있겠는가. 휘군의 군세는 아직도 일만이 넘었지만, 전의를 상실한 이상 머릿수는 무용지물이었다. 앞다투어 뿔뿔이 흩어지는 휘나라 병사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퇴각하는 것도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후미에서 창병대가 틀어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용서할 장양이 아니었다. “적군이 퇴각한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승리와 추격을 알리는 장양의 고함에, 병사들은 또다시 사기가 솟구쳐 올랐다. 검을 쥔 손아귀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기회가 있을 때 적들의 숫자를 조금이라도 더 줄여놓아야만 했다. 전장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시점은 한쪽이 퇴각하는 순간부터이다. 적들이 싸우기를 포기했기에 이제부터는 일방적인 학살이라 할 수 있었다. 도망치는 휘나라의 병졸들을 향한 아군의 추격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다. 군마에 올라타 전장을 누비며, 장양은 계속해서 소리쳤다. “강제로 징집되었던 송나라의 백성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우리의 백성들은 죽이지 않을 것이다!!!” 장양 장군은 목청이 찢어질 듯이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다. 그는 강제로 징집된 자국의 백성들까지 죽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몇몇 장교급의 병사들이 곳곳을 누비며 장양과 행동을 같이했다. “징집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장양이 생각한 대로, 휘나라 병사들 중에는 강제로 징집된 송나라 백성들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자들이었다. 그 누가 자신들의 고향을 짓밟고, 모든 것을 앗아간 자들과 함께하고 싶겠는가. 장양이 자신들을 받아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난 개봉 사람이오!” “나는 저장에서 징집되었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는 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러나 장양은 징집병이 아닌 자들에게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대다수가 약탈과 노략질의 주범들이었기 때문이다. “투항하지 아니한 자는 모조리 주살하라!!!” 징집병이 아닌 모집병들은 투항해봤자 처형되리라는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창병대의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가려 했지만, 성공한 자들은 많지 않았다. 정군산의 산자락을 기어오르는 적병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궁병대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었다. 일부 무리는 들판을 벗어나 강물로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장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이 한수(漢水)는 물살이 거세, 뛰어드는 족족 급류에 빨려 들어가기 일쑤였다. 전투는 불과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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