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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이리의 송곳니 (2) (21/250)

21화 이리의 송곳니 (2)2022.02.21.

장양 장군은 소무와 함께 의료막사를 찾았다. 이곳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소란스러웠다. 한중에서 내로라하는 의원들이 서로 돕겠다고 죄다 몰려와 있었기 때문이다. 군단에도 의무병(醫務兵)이 있지만, 수가 많지 않으며 의학 수준도 높지 않았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는 장소임에도, 현재로서는 민간인의 도움을 두 손 들고 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양 장군을 발견한 의무병들이 잽싸게 기립했다. 의원들은 어찌할 줄 몰라 어색한 동작으로 포권지례를 했다. 장양은 의원들의 손을 한 명씩 모두 맞잡으며 거듭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소무는 장양을 따라 막사의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좌우로는 목재침상에 누워 치료를 받는 백여 명의 부상병들이 있었다. 고통스러울 만도 했지만, 부상병들의 얼굴은 대부분 밝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명예를 거머쥐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막사의 끝자락. 그곳에서 자신들이 찾는 위진철 부장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들이 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한 노인이 그의 복부를 봉합하고 있었다. 의원을 바라보는 소무의 눈동자가 살며시 빛났다가 금세 사그라졌다. “상태가 좀 어떻습니까?” 등 뒤에서 장양이 물어보자 의원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휴 깜짝이야! 인기척 내고 오라니까?” 장양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미안하게 됐소.” 이제서야 상대가 누구인지 눈치챈 의원은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어이쿠, 장군님 오셨습니까? 저는 의무병인 줄 알고…….” “신경 쓰지 마십시오. 회복할 수 있겠습니까?” “보통 이런 관통상을 입으면 상처 부위뿐 아니라 근처의 장기들까지 함께 상하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다른 부위는 모두 멀쩡합니다. 생각보다 출혈도 별로 없었고……. 누가 응급조치를 했는지, 그자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것입니다.” 노인의 말에 장양이 등 뒤의 소무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누가 응급조치를 했지?” “글쎄요. 저는 바로 난전에 휘말려서…….” “안타깝군. 그자에게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누구인지 알 수가 없으니…….” 소무는 자연스럽게 위진철의 손을 살며시 부여잡았다. 암암리에 그의 상세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고비는 넘겼지만, 기혈이 불안정하군. 무공을 익힌 신체이니 내기(內氣)만 보충되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터.’ 소무는 그의 전신으로 자신의 진기를 흘려보내는 한편, 태연한 표정으로 의원에게 물었다. “의원님, 회복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아마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일어날 수 있을 걸세.” “이분은 우리 군단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암, 그렇다면 반드시 살려야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 소무는 작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장양도 어느새 막사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고 있는 위진철을 향해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네가 무사한 걸 보았으니 안심이 되는군.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니 나중에 또 옴세.” 소무는 묵묵히 장양을 따라나섰다. 그들이 막사의 통로 중간쯤 이르렀을 때 돌연, 소무의 귓가로 정체불명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 자네, 뭔가 숨기고 있군. 타인의 기혈을 조정한다는 것은 최소한 절정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지. 위진철을 치료하던 의원의 목소리였다. 소무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 의원님도 연기를 잘하시더군요. 생필신의(生必新醫) 모청 선생께서 이곳엔 어인 일이신지. 오히려 당황하는 쪽은 모청이라 불린 의원이었다. - 강호를 떠나온 지 벌써 십오 년이 넘었거늘, 어찌 나를 알고 있단 말인가. - 후후. 선생께서 노안이 드셨나 봅니다. 그보다 오래전에 우린 이미 한 번 보았을 텐데요. 소무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노인은, 한 호흡이 더 지난 이후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 혹시…… 제가 생각하는 그분이 맞으십니까? - 서로 모르는 척하는 것이 좋겠군요. - 이곳에 계속 머무르실 겁니까? - 선생께서 저하고 뜻이 다르지 않다면 다시 보게 될 겁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막사를 빠져나오자 장양이 작별을 고했다. “나는 포로들의 심문과정을 확인하러 가봐야겠네.” “그들도 정규군이 되는 것입니까?” “고향이 점령당하고 갈 곳이 없는 자들일세. 원한다면 받아줘야겠지. 그러고 보니 자네도 당분간 바쁘겠군.” * * * 동쪽의 석천현을 거쳐 오는 적군이 당도하려면 며칠의 시간이 더 남아있었다. 검병대의 십육조는 해체되었으며, 랑아대(狼牙隊)라는 독자적인 부대로 재탄생되었다. 당분간은 군단의 지령으로 모든 전투부대의 야외 훈련이 금지된 상황. 랑아대의 대원들은 막사에서 집중적으로 내공 수련에 전념하고 있었다. “어휴, 빌어먹을! 며칠 동안 막사에만 있으니 골병이 들겠네.” 온종일 운기조식을 하다 지쳤는지, 일광이 투덜거리며 바닥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전신의 혈도가 타통된 그는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무지막지했다. 그만큼 심력의 소모도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누운 일광이 눈을 힐끔 떴다. 앞에서 알짱대는 대원 한 명이 보였다. 작은 체구에 큰 눈을 가진 귀여운 얼굴. 송화라는 이름의 대원으로, 청해와 함께 랑아대의 막내 중 하나였다. “송화야, 잠깐만 등 뒤로 올라와 봐.” “예?” “아니, 잠깐 내 등 뒤에 올라와 보라고.” 송화는 일광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넓적한 등 뒤를 밟고 올라간 송화는 발바닥으로 곳곳을 눌렀다. 그러나 그의 작은 체구가 일광에게 제대로 전달될 리가 없었다. “뛰어!” 일광의 요청에 그는 토끼처럼 펄쩍펄쩍 뛰며 등짝을 누비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이렇게요?” “더 높게~.” 서서히 일광의 표정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던 송화의 두 눈이 막사의 입구로 향했다. 누군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정신을 파는 순간, 발바닥이 방향을 벗어나고야 말았다. 쿠욱-! “컥! 목을 밟으면 어떡해?” 일광이 목을 잡고 새우처럼 엎드리자, 송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앗, 죄송해요!” 몇 번을 컥컥대던 일광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됐어, 비켜봐.”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십여 명의 병사들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상자가 하나씩 들려 있는 모습이었다. 마침 심심했던 차에 흥미가 생긴 일광은 쿵쿵거리며 다가갔다. “뭐야? 우리 주는 거야?” “장군께서 너희들한테 주는 선물이란다.” 병사들은 상자를 막사 안에 내려놓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가버렸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몇몇 신병들이 운기조식을 끝내며 물었다. “일광 형님, 뭡니까?” “뭐에요?” 쪼그려 앉아서 상자 안을 살펴보던 일광은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와~. 이거 장난 아닌데? 보들보들한 것 좀 봐!” 일광이 상자에서 꺼내어 든 것은 특수제작된 흑갑(黑鉀)이었다. 상체만 겨우 가리는 일반 병사들의 갑옷과는 달리, 어깨와 무릎까지 방호가 완벽한 형태였다. 연결 부위는 끈으로 제작되어 있어서 활동이 편했으며 무게도 가벼웠다. 같이 지급된 검은색 투구는 죽립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일단 하나씩 입어봐.” 신이 난 조원들은 한 벌씩 건네받아 재빨리 입기 시작했다. 그중 두 벌의 흑갑에는 우측 어깨에 십(十)이라는 문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십부장으로 임명된 일광과 청해를 위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백부장의 갑주도 있을 터. “소무 대장님!” 대원중 하나가 재빨리 그의 것을 찾아다가 건네어 주었다. 소무의 흑갑에는 우측 어깨에 백(百)이라는 문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붉은 술로 장식된 투구까지, 다른 이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새로 지급된 갑옷을 입은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뱉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모습이 흡사 살수들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럴싸해 보였다. 대원들을 바라보며 소무가 묵묵히 물었다. “마음에 안 들어? 불편하면 얘기해. 기존 갑옷 입는다고 하지 뭐.” 대원들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절대 안 됩니다!” “하하! 아주 마음에 들어요!” “최고예요!” 조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소무도 뿌듯한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랑아대는 이제부터 군단의 특별공격대야. 최전선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얘기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훈련 강도도 더 높여야 하고. 각오는 돼 있겠지?” 이미 자신감이 하늘 높이 치솟은 대원들이었다. 그의 말은 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대원들은 흑갑이 마음에 드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막사 밖에서 소집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킁-! 쿵-! 쿵-! 쿵-! “드디어 출진인가 보군.” 이미 갑옷을 입고 있는 랑아대의 대원들은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막사 밖으로 나가자 북을 치며 돌아다니는 십여 명의 병사들이 보인다. 그중 누군가가 소무를 발견하고는 다가와서 말했다. “랑아대의 대장님은 바로 군사회의실로 오시라고 합니다.” 백부장이 된 이후로 소무의 운신은 자유로웠다. 군영 내에서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제지받는 경우가 없었다. 군사회의실에 도착하자, 이미 장양을 포함한 모든 장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소무가 입구에서 묵례를 해 보이자 궁병대의 진립 부장이 손짓하며 말했다. “저쪽 자리에 앉으시게.” 한쪽 구석에 소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묵묵히 자리한 소무는 장양을 바라보았다. “모두 모였으니 바로 시작하지. 적들이 삼십 리 밖까지 당도한 상황이네. 그들은 우리가 무카의 군단을 격파한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을 거네.” 부관 양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두 군단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진군하고 있었으니, 아직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심하고 있겠군요. 이번에도 야전입니까?” “우리의 총 군세는 투항한 병사들까지 칠천이네. 그에 반하여 적들은 일만 오천이지. 비록 수적으론 열세지만, 직전의 전투에 비교한다면 매우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네. 게다가 지금 병사들의 사기가 매우 높으니 굳이 수성전까지 갈 필요가 없겠지.” “정면에서 맞붙는다면 우리 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정면이라면 물론 그렇겠지. 나는 오늘 밤 야습을 생각하고 있네. 어떻게들 생각하는가?” 첨병대를 지휘하는 백문휘 부장이 말했다. “아직도 저들의 눈에는 우리가 오합지졸이겠지요. 분명 적들은 기습 공격을 받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첨병대는 수색과 정찰에 특화되어 있을 뿐, 아직 야습에 대한 훈련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랑아대를 만들지 않았는가? 어디, 소무 대장이 한번 말해보시게.” 소무의 생각도 장양과 일치했다. 무카의 군단보다 약한 전력이라면, 굳이 수성전까지 끌고 가서 피해를 확대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거짓말이 필요했다. “우리 랑아대는 이미 위진철 부장님의 주도하에 야습에 대한 훈련을 끝마친 상황입니다. 저희가 기습하고 적군의 진세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본진이 들이닥쳐 공격하면 손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백문휘 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위진철 부장이 우리 몰래 철저하게도 준비해왔군. 하지만 자네는 고작 백 명으로 기습작전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랑아대는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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