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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불곰의 포효 (3) (40/250)

40화 불곰의 포효 (3)2022.03.12.

남성을 따라 걷던 소소의 발걸음은 어느새 중심가를 벗어나 있었다. 거리에 늘어선 점포들도 더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인적까지 점차 드물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탕후루까지 다 먹자 점점 지루해졌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앞서가는 남성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말려 올라갔다. “응, 거의 다 왔어.” 모퉁이를 돌자, 허름하고 낡은 전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앞장선 사내가 문을 열자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인이 보였다. 탁상을 끼고 앉은 중년인은 눈알을 굴리며 소소의 전신을 훑어봤다. “특등급이 왔네.” “예, 형님. 지금까지 본 아이들 중 최고입니다.” 소소는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등급이 뭐예요?” 중년인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흐흐. 아주 예쁜 아이를 특등급이라고 하는 거란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지만, 예쁘다고 하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선물은 어디에서 살 수 있어요?” 천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병풍을 걷어내자, 석문(石門)이 드러났다. “열어주세요, 형님.” 중년인이 탁상 위의 무엇인가를 만지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꺼운 석문이 기관에 의해서 스스로 움직이며 열리는 것이 아닌가. 드드드드득-! 그 모습이 신기한지 소소는 연신 두 눈을 끔벅였다. “여기에 들어가면 안에서 팔고 있어.” 일정한 간격으로 횃불이 걸려 있어, 내부의 광경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보였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 신기해요! 여기에 뭐가 있어요?” “응. 들어가 보면 알아.” “고맙습니다~.” 소소가 안으로 들어가자 두 명의 남성이 눈빛을 교환했다. 중년인이 책상을 만지자 다시 석문이 닫히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드드드드득-! 문이 닫히는 순간 소소를 이끌고 온 사내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하핫! 이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제 발로 들어간 애는 처음 아니에요?” “킥킥. 나도 설마 하고 시켜봤는데 순순히 들어갈 줄이야. 특등급이라 그런지, 뭔가 달라도 다르군.” “저 정도라면 못 해도 은자 삼십 냥은 받지 않겠어요?” “곱절은 더 받아야지. 확실히 그분이 딱 찾는 아이로군.” “오늘 저녁에 오시라고 할까요?” “당연하지. 와서 등급을 확인해야 흥정을 할 거 아니야?” “흐흐. 알겠습니다.” 살찐 중년인이 품속에서 엽전 뭉치를 던졌다. “애들 데리고 가서 뱃속에 기름칠이나 좀 하고 와. 이번 일로 우리 흑왕패(黑王牌)가 학맹(鶴盟)에 가입하게 되면, 넌 내 오른팔이야.” “고맙습니다, 형님.” * * * 지하석실에 들어선 소소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곳은 왕가의 고분을 파헤치고 개조해서 만들어진 장소였다. 내부는 미로처럼 무척이나 넓었고, 사방에선 차가운 한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내공을 익힌 소소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말이다. “저기요?”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인가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기억을 잃은 뒤로 세상에서 좋은 것만 보고 자라왔다. 지금껏 사람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스스로 지워야 했을 정도로 충격적인 기억이 무의식중에 점차 겹쳐졌기 때문이다. 하루 이상을 어둡고 좁은 땅속에서 벌벌 떨었던 아이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남겨지는 본능적인 두려움. 결국, 소소는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흐엉……. 나 어떡해…….”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사실은 소소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꺼내주길 원했다. 기억은 없지만, 과거에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주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소는 한참 동안을 서럽게 울었다. 일각이 지난 후,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눈물을 닦아내던 소소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무공을 수련한 자의 감각은 일반인을 월등히 초월한다. 귀를 쫑긋대던 소소는 벌떡 일어서서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들려왔던 인기척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울음소리였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있었다. 걸음을 빨리하여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자 드디어 그 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소소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두 명의 여자아이가 서로를 끌어안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자신보다 한 살 정도는 더 어려 보였다. 누군가를 발견한 순간부터, 그동안 느껴졌던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 안녕……?” 훌쩍거리던 아이들의 시선이 소소를 향했다.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또래 아이들과 처음 말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눈만 끔벅이며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소가 그 앞에 쪼그려 앉으며 저고리의 주머니를 열기 시작했다. “이거 먹을래?” 막사에서 챙겨 나온 간식이었다. 감자와 전통 과자 몇 개였다. 음식을 발견한 아이들의 안색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응!” “고마워, 언니.” 아이들은 한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소소는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헤헤. 맛있어?” “응, 맛있어!” “언니도 먹어.” 소소도 과자 한 개를 받아서 같이 입에 물었다. 허기진 뱃속에 맛있는 음식이 들어가자 분위기가 슬슬 밝아지기 시작했다. “너희도 악당들한테 속았어?” “응.” “나는 집에 있다가…….” 한 명은 간식을 준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온 아이였다. 그리고 또 한 명은 부모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납치를 당했다고 한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했다. 잠시 자리에 누운 소소는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일각이 지난 후에는 대자로 드러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정신없이 자고 있을 때였다. “소소 언니!” “언니, 일어나 봐!” 깊은 잠에 빠져있던 소소는 벌떡 일어섰다. 눈을 뜨니 떨고 있는 아해와 청아의 모습이 보였다. 먼 곳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문이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아해야, 청아야. 언니 따라와. 알았지?” 세 명의 아이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마주 나아갔다. 근처에서 쏙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이번엔 정말 만족하실 겁니다.” “수고했네. 빨리 가서 보고 싶군.” 잠시 후 이들의 모습을 마주 보게 된 소소는 눈에 쌍심지를 켰다. 화려한 청색 장포를 입고 있는 노인 한 명과, 자신을 속였던 살찐 돼지. “날 속였어!” 앙칼진 소소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노인이 음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중년인은 볼록한 얼굴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마침 나와 있었네요. 마음에 드시죠? 바로 이 년…….”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소소의 허리춤에서 주먹이 모습을 드러내며, 그의 복부에 벼락처럼 쑤셔박혔기 때문이다. 뻐억-! “꾸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무지막지한 체중을 가진 중년인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털썩-! 일광에게 배운 파산권(破山拳)의 일 초식이었다. 두꺼운 복부의 지방 때문에 목숨은 건졌지만, 중년인의 입에서는 토악질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노인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리고 그를 향한 소소의 응징이 이어졌다. “할아버지도 악당이죠!” 소소의 오른발이 곡선을 그리며 노인의 정강이를 후려찼다. 마치 나뭇가지가 통나무를 때리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꾸라진 노인은 미친 듯이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악!” 쓰러진 두 명의 틈새를 비집고, 아이들이 도주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소소가 앞장서고 아해와 청아가 뒤따랐다. 그러나 무공을 익히지 않은 다섯 살 아이들이 달려봐야 얼마나 빠르겠는가. “아얏!” “소소 언니!” 앞서가던 소소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쓰러진 중년인과 노인이 손을 뻗어 각각 아이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손 놔요!” 한달음에 달려간 소소가 살찐 중년인의 얼굴을 발등으로 걷어찼다. 콰앙-! “크헉!” 가볍게 휘둘렀지만, 내력이 실려 있는 일격이었다. 허공으로 이빨 몇 개가 튀어 올랐다. 코에서도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 이 년이…….” 소소의 발이 올라가며 중년인의 손목을 쾅 하고 내리밟았다. “나쁜 손!” “끄아아악!” 몸부림치는 중년인을 뒤로한 채 소소가 뒤돌아 쭈그리고 앉았다. “아해야, 언니 등에 업혀!” 아해를 업은 소소는 좌우를 살폈다. 청아도 구해야 한다. 그러나 두 명을 동시에 업을 수도 없는 노릇. 그때였다. 비명 때문이었을까?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내달려오고 있는 기척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그자의 모습이 드러나자 소소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경공까지 펼치는 게, 무공을 익힌 자가 틀림이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청아야, 삼촌들 데리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언니…….” 아해를 업은 소소는 입구를 향해 마주 내달렸다. 예상을 벗어난 재빠른 움직임에 상대가 당황한 듯 보였다. 거리가 이 장 이내로 좁혀지는 순간, 소소의 발이 지면을 박차며 짧게 도약했다. 허공에 떠오른 소소는 상대의 가슴팍을 향해 옆차기를 날렸다. 청해에게 배운 화산파의 소엽퇴법(掃葉腿法)이었다. 콰직-! “크윽!” 공격은 성공시켰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상대는 벽에 등을 부딪치고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나 소소는 그를 무시한 채 입구를 향해 계속해서 내달렸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소소를 보며, 노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크아아악! 이 쪼막년,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가만두지 않겠다!” 새로 등장한 사내가 노인을 부축하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르신?” 두 눈이 붉게 충혈된 노인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흑살대를 풀어서라도 당장 잡아!!!” “이곳은 우리 손바닥 안입니다. 반 시진 안에 처리하겠습니다.” * * * 탈출에 성공한 소소는 아해를 업은 채 중심가로 뛰어들었다. 어느새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달빛이 내리깔려 있었다. 낮과 같이 북적대는 열기는 없었지만, 거리의 주점들은 아직도 영업하는 곳이 많았다. 은연중 소소의 시선이 우측에 보이는 국수 가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했었다. 아해의 배에서도 꼬르륵대는 소리가 났다. 소소 또한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우리 이거 먹구 갈래?” “응, 언니.” “빨리 먹구 힘내서 청하 구하러 가자!” 천막 밑에 설치된 이 야외식당은 세 개의 식탁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 둘이 한쪽 구석에 자리하자 주인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흑갈색의 면 옷을 입은 중년의 여인이었다. “설마 너희들만 온 거니?” 다섯에서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손님들이라니. 그것도 자정이 무르익은 늦은 밤에 말이다. 십 년 동안 장사하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국수 두 개요!” 주인장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여덟 냥인데, 돈은 있니?” 주인장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 물어보긴 했지만, 내심 돈이 없다고 해도 그냥 내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소는 허리춤의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마침 엽전 여덟 냥이 딱 남아있었다. 아버지의 선물은 물 건너갔지만, 지금은 배고픔이 더 급했다. “여기 있어요!” “어휴, 다음엔 부모님 모시고 오거라. 금방 내어줄 테니 잠시만 기다려.” * * * 대낮부터 한중성의 거리를 헤집고 다닌 일광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닷새 안에 한중의 뒷골목을 정리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온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왈패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들의 생태계는 확실히 백양현과는 달랐다. 점조직과 같은 형태로 운영되는 건지 모든 것이 너무나 은밀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일광은 근처에 보이는 주점의 탁상에 걸터앉으며 소리쳤다. “주인장! 음식은 됐고 죽엽청이나 두 병 주쇼!” 온종일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시골 촌놈이 하늘같은 장군님께 영예로운 임무를 직접 부여받았다. 그런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일광은 죽엽청을 건네받자마자 벌컥벌컥 들이켰다. 단숨에 모두 비워버린 그는 또 한 병을 움켜쥐었다. “후……. X팔.” 술기운이 오르자 답답함이 더해졌다. 그때 일광의 시선이 무심코 맞은편의 노점식당으로 향했다. 허겁지겁 국수를 먹고 있는 꼬마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며칠을 굶었는지 무척이나 맛있게 먹어대는 듯했다. 게다가 한 아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카와 비슷한 옷까지 입고 있지 않은가. 소소를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주인장!” 일광의 부름에 순박한 인상의 중년인이 다가오며 굽신댔다. “예, 나으리. 필요하신 거라도…….” “저기 맞은편에 앉아있는 꼬맹이들에게 만두 두 개만 갖다 주쇼. 계산은 내가 할 테니.” 다른 노점으로 배달을 하라니. 다소 당황스러운 요구였다. 그러나 일광의 인상이 워낙 무서웠기에, 감히 대꾸할 생각은 못했다. “아, 알겠습니다. 금방 만들어서 전해주겠습니다.” 일광은 탁상에 턱을 괴고 아이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죽엽청을 움켜쥐고 홀짝거리면서 말이다. 그러기를 반 각 후. 돌연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신의 옆을 지나쳐 아이들에게 은밀히 다가서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걸음걸이로 보아 무공을 익힌 자들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복면으로 얼굴까지 가리고 있지 않은가. 곧이어 일광은 그들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찾았네?” “이 쥐방울 같은 것들. 감히 도망을 쳐?” 이들의 목소리에서는 살기(殺氣)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목표는 분명했다. 자신의 앞에서 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이다. 일광의 두 눈은 어느새 경련을 일으키며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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