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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불청객을 맞이하다 (1) (52/250)

52화 불청객을 맞이하다 (1)2022.03.24.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문제였다. 장양은 당황하지 않고 물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군빈정(軍賓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가보시겠습니까?” “응당 가봐야겠지.” 군빈정은 군영에서 외부 손님을 모시기 위한 장소였다. 전각 세 채와 지낼 수 있는 갖가지 물품이 부족함 없이 구비되어있다. 장양은 한 식경이 지난 후 군빈정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추밀원사가 이끌고 온 백여 명의 정예 병사들이 기립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소란스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무엇인가가 깨지는 소리와 짜증 섞인 호통이었다. “상급자 대접을 이따위로밖에 못 해!?” 말투에서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자신이 그의 가문을 건드린 것을 빌미로 해코지를 하러 온 것이리라. 장양이 접근하자 호위병들이 인기척을 내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눈에 들어온 광경은 가관이었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술병들과 집기류들. 그리고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자신의 행정병들이 보였다. “모두 나가거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행정병들이 재빨리 물러났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안서절제사 장양입니다.” 추밀원사 장준. 그의 얼굴에는 심술이 가득해 보였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기가 불편해졌다. 같은 핏줄이라 그런지 장진상과 생김새가 흡사했다. “절제사의 부하들은 손님 대접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나?” “행정병들은 군단의 규정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추밀원사께서 이곳에는 무슨 일이신지요?” “내 군영의 관리태세를 감사하러 왔네.” “그럼 함께 둘러보시겠습니까?” 추밀원사의 눈썹이 꿈틀댔다. 당당하게 나오는 장양의 태도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이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쏘아보았다. 그 순간 전신에서 보이지 않는 기가 뿜어져 나오며 장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화경의 고수가 발출하는 숨 막히는 기세. 일반인은 눈빛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장양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살왕이 그것을 대신 받아내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다. “제법이군.” “무엇이 말입니까?” “내 며칠 이곳에 머무르며 직접 확인해 볼 테니 그만 물러가게. 지금은 별로 자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니.” 자신의 군영에서 축객령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걸음을 돌린 장양은 군빈정을 나와 집무실로 향했다. 마음이 썩 불편했다. 하루빨리 그가 감사를 끝내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첫날은 별 탈 없이 조용했다. 아마도 진탕 술을 마시고 누운 모양이었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행정관이 찾아와 말했다. “장군, 추밀원사가 무기고를 뒤적거리고 있습니다.” “후. 어서 가보세.”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기고에 가보니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은 자신이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있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모든 병장기가 최고의 관리상태를 유지했으며, 재고 또한 장부와 정확히 일치한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장준은 옆에 나열된 장창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루에는 흠집조차 없었으며, 날은 광택이 날 정도로 잘 갈려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가 움켜쥔 순간 창 자루는 썩은 나뭇가지처럼 우지끈 부러져버렸다. “관리상태가 엉망이군.” 그가 힘을 주어 고의로 부러트린 것임을 장양이 모를 리가 없었다. 부러진 창을 내던진 장준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오십여 장이 떨어진 곳에 있는 의료막사였다. 이들이 입장하자 백여 명의 의무병들이 기립했다. 생필신의 모청은 장준의 무위를 눈치채고 있는지 다소 경직된 얼굴이었다. 장준은 진열장을 쑤석거리며 의료 물품의 보관상태를 확인했다. 모든 물자가 정량 이상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으며, 관리상태도 그 어느 막사보다 깨끗한 모습이었다. 시빗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막사 안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고정되었다. 한눈에 보아도 병사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단의 의무시설이 고작 민간인들이나 돌보자고 만든 곳인가?” 반사적으로 장양의 입이 열렸다. “군법 상으로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는 민간 의료를 도울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경험을 통해 의무병들의 기술 향상에도 도움이 됩니다.” 장준의 입이 꾹 닫혔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답변하는 장양의 행동이 연신 불쾌한 모양이었다. 이 둘은 병량 창고와 취사막사를 경유하여, 곳곳을 누비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흠을 잡을 데가 없었다. 곧이어 그들이 향한 곳은 신병 훈련장이었다. 칠천여 명의 병사들이 진법 훈련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진철의 부탁으로 오늘은 랑아대가 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신병들의 진법 훈련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당연히 정규군에 비교해 한참이나 부족한 모습이었다. “오합지졸들이 따로 없군.” “아직 신병들입니다. 훈련 기간을 거쳐 정예가 될 병사들입니다.” “자질이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봐야겠네.” 장준은 훈련장의 중심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소리쳤다. “모두 그만!!!” 내공이 실린 중후한 목소리에 모두의 움직임이 동시에 정지했다. 그는 한 자루의 훈련용 검을 집어 들며 말했다. “지금부터 나와 대련할 것이니, 모두 오너라. 누구든 나의 몸에 손을 대는 자가 있다면, 위관으로 진급시켜주겠다.” 신병들은 움찔했다. 목소리만으로도 엄청난 고수임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랑아대만이 긴장한 얼굴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그를 향해 접근하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적장이라도 이렇게 망설이고 있을 테냐!” 참다못한 장준이 먼저 움직임을 개시했다. 그는 병사들의 사이를 질주하며 하나둘씩 고꾸라트리기 시작했다. 날이 없는 훈련용 검이었지만 엄연히 무쇠였다. 검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퍼억-! 콰직-! “크윽!” “크악!” 그의 검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그 누구도 맞설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이것은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그때였다. 카앙-! 처음으로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장준의 일 합을 견뎌낸 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의 눈빛에 놀라움과 분노가 동시에 서렸다. 랑아대의 십부장 청해였다. 반사적으로 막아냈지만, 손목이 얼얼했다. 그러나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방어 동작을 개시해야만 했다. 장준의 발길질이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쏜살같은 속도는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양손에 내력을 모아 교차하여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콰직-! “크윽!” 방어는 성공했으나 충격에 넘어지고야 말았다. 일광이 군순포를 시찰하고 있었기에, 현재는 청해가 랑아대의 최고수였다. 그가 겨우 이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장준에게는 그것조차도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의 검이 쓰러져 있는 청해를 향해 사정없이 쇄도해 들어갔다. 맞는다면 치명상이 될 수도 있을 정도로 매서운 공격이었다. 카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장준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졌다. 또다시 누군가가 자신의 검을 쳐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현정이 왼손으로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감히!” 그는 슬슬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를 마주한 현정은 공포를 느끼고 있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숙여졌다. 눈으로 확인하고 피하면 늦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촤아악-! 현정의 머리 위로 훈련용 검이 지나가며, 폭풍 같은 바람을 뿜어냈다. 겨우 피해냈지만, 어느새 접근한 장준의 팔꿈치가 현정의 이마를 강타했다. 콰직-! “크윽!” 튕겨나간 현정은 바닥을 한 바퀴 구르고 나서야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설 수 있었다. 찢어진 그의 이마에서 피가 샘물처럼 흘러나오며 뺨을 적시고 있었다. 장준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현정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 순간 다섯 명의 랑아대원들이 현정의 앞으로 늘어서며 검을 내뻗었다. “우리도 더는 못 참습니다.” “이것들 봐라?” 그때였다. 대원 중 누군가가 그의 측면을 점하며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랑아검진(狼牙劍法)!!!” 그 순간 신병들의 대열이 꿈틀댔다. 백여 명의 랑아대원들이 신병들의 틈새에서 보법을 밟으며 나타났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움직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 장준을 향해 백여 자루의 검 끝이 겨눠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송나라의 최정예 부대인 천무군이나 용위군보다도 강해 보였다. ‘장양의 휘하에 이런 병사들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장준은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망설였다. 자칫하면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그만하십시오!” 어느새 다가온 장양이었다. 기어코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장준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애송이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거라.” 한마디 말과 함께 훈련용 검을 집어던지며 등을 돌려버렸다. 그러고는 랑아대원들을 밀치며 유유히 사라져갔다. 자신의 숙소인 군빈정이 있는 방향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 모양이었다. 장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대원들은 하나같이 분노로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장양은 신병들을 다독이고는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그의 어깨가 왠지 모르게 무거워 보였다. 랑아대의 대원들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 한숨과 함께 소곤거렸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어?” “죽일 수도 없고…… 어휴…….” * * * 집무실에 앉은 장양은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하지만 장준 한 명 때문에 군단이 본연의 행정을 멈출 수는 없었다. 탁상 위에 수북이 쌓인 종이뭉치를 하나씩 살펴보며, 연신 붓대를 움직였다. 그러기를 두 시진.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행정병이 다급히 찾아들었다. 상상조차 못했던 충격적인 보고가 들려왔다. “자, 장군! 추밀원사의 부하들이 거리에서 부녀자들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장준은 송나라의 사대 장군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 약탈왕이란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인물이다. 기어코 한중에서도 본능을 억제하지 못한 것이다. 타악-! 장양이 붓을 내려놓는 소리였다. 그의 손은 붓 대신 옆에 자리한 검집을 부여잡았다. “내가 직접 그곳으로 가겠다. 랑아대를 부르거라.” * * * 한중의 중심가에는 때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백여 명의 병사들이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을 군순포의 포수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요?” 콰직-! 앞서가던 병사의 발길질에 포수의 신형이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끄윽…….” 이미 바닥을 구르는 포수들은 수십여 명에 이르러 있었다. 추밀원사가 이끄는 정예부대인 악룡대의 병사들이었다. 군순포로서는 상대는커녕 일 합조차 버티기가 불가능했다. 앞서가던 악룡대의 병사가 눈알을 부라리며 말했다. “비켜라. 또다시 가로막으면 죽이겠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지만, 겁을 먹고 순순히 물러설 포수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거리에서 백성들이 자신들을 응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이곳으로 합류한 군순포의 대장이 나섰다. 호리호리한 체구와 날카로운 눈매. 나름 왈패 중에서 제법 한 가닥 했던 인물이었다. “나 군수포의 대장 황개칠이다. 걱정되서 얘기해주는 건데, 너희 지금 실수하는 거다. 그분께서 오시면 다 뒈져.” “미친놈.” 병사들의 귀에 황개칠의 말이 들려 올 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그의 지척까지 파고든 악룡대원은 허리춤에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한눈에 보아도 내력이 가득 실려있는 주먹이 그를 향해 다가갔다. 모두가 바닥을 뒹구는 황개칠의 모습을 상상했지만, 그보다 더욱 빨리 움직인 자가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난데없이 그들의 틈새로 집채만 한 손바닥이 등장하며 악룡대원의 얼굴을 후려쳤다. 쩌억-! 악룡대원은 영문도 모른 채 고개가 휙 돌아가며 쓰러지고 있었다.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릴 무렵. 세워놓은 불곰처럼 거대한 사내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악룡대를 노려봤다. “뭘 봐? 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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