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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화 불청객을 맞이하다 (3) (54/250)

54화 불청객을 맞이하다 (3)2022.03.26.

풀썩-! 장양 장군이 기절하며 쓰러지는 소리였다. 호위무사가 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을 공격하다니. 난데없는 돌발상황에, 장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살왕을 바라보았다. “한눈 팔 때가 아닐 텐데?” 본능적으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숨 막히는 살기가 폭발하듯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쏴아아악-! 장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그가 어찌 알겠는가. 자신이 검성과 살왕에게 앞뒤에서 포위당했음을. 장준은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검을 뽑아내며 등 뒤로 휘둘렀다. 파아앙-! 과연 화경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거짓말같이 허공에서 정지하고 말았다. 터업-! 검을 움켜쥔 손목이 등 뒤의 사내에게 붙잡히는 소리였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껏해야 하급 무관이라고 생각하여 신경도 쓰지 않았던 자였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말과는 달리 장준은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손목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앞에 보이는 살수는 마치 자신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그의 일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무기력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뚜두둑-! 자신의 손목이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였다. 엄청난 악력이었다. 다급해진 장준은 자유로운 왼손을 이용해 연신 등 뒤의 인물을 타격하려 했다. 그러나 번번이 허공만을 내저었을 뿐 단 한 번도 적중시키지 못했다. 그때였다. 소무의 오른손이 섬전처럼 움직이며 장준의 머리채를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덥석-! “내 딸을 때렸다고?” “크윽! 너, 넌 누구냐?” 장준은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화경인 자신을 이렇게 제압할 수 있는 것은 현경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어찌하여 이런 자가 장양의 밑에 있는지 경악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이미 상대에게 제압당해 도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소소 아비다.” 소무는 장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그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밀고 들어갔다. 몇 발자국을 내달리고는, 부여잡은 그의 머리채를 거침없이 벽면에 꽂아버렸다. 콰아아앙-! 장준의 얼굴이 벽면을 꿰뚫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집무실 밖으로 빠져나온 그의 눈동자가 전면을 향해 고정되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봇짐을 뒤적이는 낯익은 여자아이가 보인다. 무엇이 신나는지 흥얼흥얼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을 발견하고 배시시 웃어 보이는 게 아닌가. 비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크아악! 죽여버리겠다!” 소소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왜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무서울 게 없었다. 자신이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장준이 무어라 다시 소리치려는 순간, 그의 얼굴은 다시 벽면에서 뽑혀 나왔다. 서둘러 몸을 돌린 그는 주먹을 움켜쥐며 소무를 향해 내뻗었다. 내공을 가득 실은 일격이었다. 소무는 비웃음을 머금으며, 다가오는 주먹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맞받아쳤다. 꽈앙-! “큭!” 손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손을 내뻗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상대의 주먹이 먼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손이 계속해서 맞물리며 굉음을 토해냈다. 콰앙-! 쾅-! 쾅-! 쾅-! “크으윽!” 장준의 왼손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갔다. 손등의 피부가 찢겨나가고 뼈가 보였다. 검을 쥔 오른손은 여전히 붙잡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완전한 무방비상태에 빠지고야 말았다. 더는 그의 주먹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콰직-! 퍼억-! 퍼퍽-! “크아악!” 고통에 찬 장준의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울퉁불퉁해졌으며, 갑주는 곳곳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어느 순간 소무의 오른발이 그의 앞가슴을 강타했다. 콰직-! 장준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오른손이 자유로워졌으니 도주를 시도하려면 지금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공교롭게도 살왕이 있는 자리였다. 살왕은 오른손을 활짝 펼치며 어깨높이로 치켜세웠다. 내력을 가득 머금은 그의 손바닥이 붉게 빛났다. 곧이어 강기에 휩싸인 오른손이 장준의 등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쩌억-! “끄헉!” 선혈을 울컥 쏟아내는 장준은 비틀거리며 다시 전면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의 심장을 향해 소무의 주먹이 벼락처럼 쑤셔박혔다. 쩌엉-! 더는 들려오는 비명이 없었다. 심장이 파괴되며 숨이 막혀왔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의 무릎이 집무실의 바닥에 부딪혔다. 쿠웅-! 장준의 몸에서 생명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억울하다는 표정만이 가득했다.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어디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억울해하지 마라. 지금껏 네놈한테 피눈물을 쏟아낸 백성들을 생각하면 편히 보내준 것이니.” 장준이 죽어가든 말든 그는 이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무릎 꿇은 그를 뒤로한 채 살왕이 물었다. “정말로 추밀원사를 죽이시다니. 괜찮은 겁니까?” “언젠가 정리해야 할 놈이었는데 제 발로 찾아왔으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그러고 보니 살문은 의뢰받은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살문의 이름으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며칠 전부터 장군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죽이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살수라 그런지 참을성이 대단하군. 어쨌거나 재상이 뒤를 봐주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모자란 놈이 사대 장군이 될 수는 없었겠지.” 그때였다. 장준의 상체가 서서히 앞으로 고꾸라지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한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개……. 개자식들…….” 풀썩-! “여기에 이놈 혼자 왔을 리가 없겠지?” “호위로 병사들만 백 명 정도 데리고 왔습니다. 어쩌실 겁니까?” “칼을 뽑았으니 끝을 봐야겠지. 여기서부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장군께서 깨어나시면 적당히 좀 둘러대 줘.” “알겠습니다.” 소무는 뻥 뚫린 집무실의 구멍으로 얼굴을 슬쩍 내밀었다. “선물 마음에 들어?” 이미 소소는 입이 귓가에 걸려있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참새처럼 입술을 삐쭉 내밀며 소무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웅, 너무 좋아요! 히히.” “아해랑 청아 것도 샀는데, 가서 나눠주고 와야지?” “다녀올게요, 아버지~.” “천천히 놀다 와.” 선물을 사온 보람이 있었다. 다시 목을 빼낸 소무는, 장준의 시신을 들쳐 멨다. 그러고는 집무실을 벗어나 전광석화같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가 향한 곳은 랑아대의 막사였다. 잡담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대원들이 보였다. 오늘 있었던 사건 때문에 훈련할 마음이 사라져 막사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터엉-! 막사 안에 내동댕이쳐진 한 구의 시신에 모두의 눈이 발칵 뒤집혔다. “뜨헉!” “이, 이 쓰레기 놈이 왜 여기에?” “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대장님?”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국정장관인 추밀원사가 죽었으니 보통 사건이 아니었다. 소무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군기가 빠졌군. 군영에 쓰레기들이 굴러다니는데 치울 생각도 안 하고.” 랑아대원들로서는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건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엄청난 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일어선 것은 일광이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소름 돋는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사실 청소는 내 전문이야.” 그렇지 않아도 분이 가시지 않았던 랑아대의 대원들이었다. 저마다 각자의 무기를 집어 들며 살기를 뿜어냈다. “악룡대 떨거지들, 오늘 한번 뒈져보자.” “감히 우리 장군님한테 대들었겠다?” “후.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렸어.” 소무는 대원들의 반응에서 놈들이 벌인 행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막사를 나선 랑아대는 은밀히 군빈정을 향해 이동했다. 반 각이 지난 후. 백여 명의 대원들이 그곳의 지척에 도열했다. 악룡대원들은 이 층 구조로 지어진 세 채의 전각에 나뉘어 노닥거리고 있었다. “시작하지.” 일광은 오십여 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소무를 뒤따랐으며, 청해는 나머지를 이끌고 군빈정의 모든 출구를 포위했다. 이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가장 먼저 진입한 소무는 중앙의 전각으로 난입했다. 콰앙-! 갑작스러운 소란에, 문 근처에 있던 십여 명의 악룡대원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들 또한 정예병인 만큼, 당황하면서도 각자 제 무기를 뽑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소무의 신형이 쏜살같이 질주했다. 첫 번째 목표는 중앙의 탁상에서 투전(斗钱) 노름을 하고 있던 병사들이었다. 날카로운 검날이 찬란한 빛살을 뿜어내며 곡선을 그렸다. 써컥-! 검을 뽑아 들기도 전에 이미 두 명의 수급이 허공으로 튕겨 올랐다. 그 모습에, 옆자리에 있던 병사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뭐, 뭐야? 컥!” 상대의 목젖을 꿰뚫은 소무의 검이 회수되며, 다시 등 뒤를 향했다. 써컹-! 뒤에서 기습하려던 병사는 상체가 하체와 분리되며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네 명을 쓰러트린 소무는 이 층으로 진입했다. 나머지는 대원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보는 눈이 없으니 힘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중앙 전각의 이 층에는 세 명의 병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악룡대의 대장을 포함한 장교급 인사들이었다. 그들은 동시에 검기를 발출하며 물었다. “추밀원사께서 오시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미 죽었어.” 장준이 누구인가. 송나라의 사대 장군 중 한 명이 이곳에서 객사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놈! 어디서 말장난을 하는 것이냐!?” 악룡대의 대장이 튕겨지듯 질주하며 소무를 향해 검기를 뿜어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무렵. 한줄기 섬광과 함께 소무의 신형이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 그는 반 장 앞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호흡이 지난 후 돌연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스팟-! 돌연 상대의 목젖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악룡대의 대장이 단 일격에 사망한 것이다. 아무리 정예부대라 할지라도 장수가 아닌 위관(尉官)급의 병사였다. 그가 검성이 전력을 다한 일 검을 막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두 명의 장교는 몸이 얼어붙고야 말았다.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소무는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의 틈새를 스치듯 지나치며 한 바퀴를 회전했다. 써컥-! 두 개의 수급이 떠오르는 순간, 소무는 어느새 전각의 창문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랑아대와 악룡대가 곳곳에서 뒤엉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투의 양상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랑아대원들의 검기 앞에 악룡대원들은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크아악!” “끄헉!” 악룡대원들의 처절한 비명이 군빈정 내에서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선두에서 가장 무식하게 적들을 때려잡는 일광의 무위가 압권이었다. 그에게 붙잡힌 자들은 목이 뒤틀리며, 팔다리가 사정없이 꺾여나갔다. 전세가 순식간에 기울자 악룡대의 생존자들은 도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군빈정의 모든 출입구는 이미 봉쇄된 상태였다. 전각의 지붕 위에서도 대원들이 늘어서서, 다가오는 적들을 사정없이 떨구고 있었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근처에서 얼씬대는 아군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눈에 띄기만 하면 행패를 부렸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잠시 지켜보던 소무는 검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창문을 통해 전장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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