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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화 수확을 거두다 (2) (57/250)

57화 수확을 거두다 (2)2022.03.29.

집단 대련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 신병들은 물론이고, 랑아대의 경험도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이었다. 그에 따라 부상병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으며, 의료 막사에 들락날락하는 병사들도 점점 많아졌다. 부상을 염려하여, 대련 훈련은 오전에만 이루어졌다. 언제나 오후가 되면 소무는 랑아대의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소소의 특별 훈련을 지도하기 위함이었다. “얍얍!” 고사리 같은 손이 작은 검을 움켜쥔 채 소무를 연신 압박했다. 검 끝으로 출렁이는 검기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주변으로는 연신 광풍이 휘몰아치며 거센 먼지가 뿜어져 나왔다. 카캉-! 카카카카캉-! 백팔식광풍쾌검을 능숙하게 펼치는 소소의 동작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단한걸? 이제는 청해 삼촌도 못 당하겠어.” 현재 비무에서 소소를 이길 수 있는 대원은 일광과 청해, 그리고 현정 정도였다. “아버지도 못 당해요!” 지면을 박찬 소소는 허공에서 다섯 차례나 검을 내질러 갔다. 카카캉-! “정말 못 당하겠구나. 그럼 이것도 한번 받아 보아라!” 소소의 발이 지면에 닿는 짧은 순간, 소무가 반격을 개시했다. 반응속도를 높여주기 위해, 빈틈이 보이면 계속 공격해줘야 했다. 잠시 후 검 끝이 소소의 상체에 적중할 찰나였다. 소무는 다급히 검을 멈추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한 줄기 섬광이 번뜩이며, 소소의 신형이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헛?” 순간적으로 당황한 소무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아이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옆구리에 철썩 붙어있으니 안 보일 수밖에.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소소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지만,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전투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군.’ 소소가 허리를 와락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히히. 내 말이 맞죠?” 아래를 내려다보니 허리에 작은 검을 갖다 대고 있었다. 살기가 없었기에 그냥 내버려 둔 것이었다. 이걸 가지고 이겼다고 우길 줄은 몰랐다. “비겁하구나. 그런데 어떻게 했어?” “이거요?” 소소의 신형이 다시 밝게 빛나며 사라졌다. 그러더니 어느새 소무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경신술. 섬전비영보(閃電飛影步)였다. 소소의 생존능력을 올려주기 위해 처음으로 알려준 검성의 기술이었다. 그걸 벌써 터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천하제일고수는 소소의 몫이겠구나. 이 기술은 자주 쓰면 상대가 대비하기 때문에, 위급할 때만 써야 해.” 이미 소무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헤헤. 이제 천하제일 소소라고 불러요!” 어깨 위에 올라탄 소소는 연신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알 만했다. “휴. 천하제일 소소님.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해도 될까요?” “웅, 알았어!” 한 번 맞춰주니 끝이 없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소소를 올려 태운 채로 훈련장을 걸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어딘가에서 뿔피리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길게 두 번이었다. 장수들의 긴급 소집을 알릴 때 사용하는 신호였다. “아버지는 잠시 어디 좀 다녀올 테니, 삼촌들이랑 좀 놀고 있어.” * * * 한동안 비어있던 군사회의실에 장수들이 다급히 모였다. 어지간해서는 행정병을 통해 내용을 전달한다. 비상소집을 알렸다는 것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상석에 앉은 장양은 상기된 얼굴로 지휘봉을 움켜쥐고 있었다. “장안성의 적들이 출진했다는 첩보가 당도했네. 군단의 정보망과 개방의 정보에서 동시에 확인되었으니 틀림없을 것일세.” 양연정 부관이 물었다.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십만이 넘는다고 하더군. 다섯 개의 군단이 연합하였으며, 사령관은 테무르라는 자일세. 아쉽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없네.” 일만 오천 명으로 십만 이상의 적군을 막아내야 한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니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을 요청할 군단은 없겠습니까?” “낙양의 병력이 양양을, 개봉의 병력 또한 안휘성의 회남을 노리고 있었네. 아마 지금쯤이면 출진을 했을지도 모르겠군. 다른 군단들 또한 우리를 지원할 여력이 없을 것일세.” 언제 한중의 군단이 지원군의 도움을 받으며 싸웠던가.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었다. 장양이 곽철 부장을 지목하며 물었다. 군단의 정보망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적들의 진격로는 어디인가?” “움직임으로 보아 미현(眉縣)을 통해 남진해올 것이 확실합니다. 북문에 집결하여 집중공격을 벌일 심산인 듯합니다.” 한중성의 동문과 서문, 그리고 남문은 한수강과 산맥이 두르고 있어 대군이 움직이기 적합하지 않다. 이들이 미현을 통해 북문을 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역시 그렇군. 적들이 당도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있겠는가.” “대규모이기 때문에 진격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한중에 도착하기까지 보름은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설마 야전을 벌일 생각입니까?” 일만 오천 병력이 십만 이상의 강군을 상대로 야전을 벌이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장양은 망설임이 없었다. “성 밖의 백성들이 안으로 대피할 시간은 벌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진립 부장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적군은 우리 군단이 기습과 야습에 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대비를 철저히 할 터.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때 장양이 소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적들은 어떻겠는가?” “휘나라는 남소평야에서 기마부대만으로 기습하여 유광세가 이끄는 대군을 격파했습니다. 우리가 야전에 나선다면 필시 기습을 해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양은 오히려 표정이 밝아진 듯했다. “내 생각도 같네. 그 말은 우리는 적들의 행동을 알고 있다는 얘기와도 같지. 그렇다면 대비책을 마련하여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양연정 부관이 물었다. “묘안이 있으십니까?” “전술지도를 펼쳐보시게.” 근처에 있던 백문휘 부장이 재빨리 움직이며 지도를 갈아 끼웠다. 그러자 장양은 지휘봉으로 이곳저곳을 집으며 한참을 설명해나갔다. 미리 생각해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장양의 설명은 일다경이 지난 이후에서야 끝이 났다. 부장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묘책이십니다.”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작전입니다.” 소무조차도 장양의 전술에는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 작전은 이곳 화평읍(花平邑)에서부터 준비하겠네. 이곳에서부터 야전을 벌인 후 한중으로 복귀한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을 걸세.” “예, 장군.” “진립 부장. 성벽의 방어 준비는 어찌 준비되고 있는가?” “열 대의 대형 투석기 외에도 다섯 대의 노포와 일만여 개의 마름쇠가 제작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따로 말씀하신 돌문도 며칠 전 완성되었습니다.” 돌문(突門). 성벽의 외부로부터는 문이라는 것을 알 수 없게끔 위장해놓고, 적들 몰래 출입을 할 수 있는 특수시설이다. “고생했네. 자네의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묵묵히 지켜보던 위진철 부장이 물었다. “언제 출진을 하시겠습니까?” “이틀 뒤 날이 밝는 대로 출진하겠네. 미리 가서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 그전에 성 밖의 모든 마을에 이 사실을 알려주시게. 터전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피난을 원하는 백성들은 대피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지.” 기마부대의 한백 부장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장군. 마을마다 기병을 보내어 최대한 신속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해자에도 다시 물을 채워놓으라 하시게.” 해자 얘기를 꺼내는 장양은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최근 하루에도 수천여 명의 백성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자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백문휘 부장이 답했다. “예, 장군.” “자, 그럼 모두 돌아가 병사들을 독려해주고, 출진 준비를 마쳐주시게.” 군사회의는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 * * 랑아대로 향하는 소무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떻게 소소를 따돌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딸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전쟁터에 데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막사에 도착한 소무는 대원들에게 바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난 후. 야외 훈련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소소를 따돌려야 하는데, 오늘따라 종일 막사에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청아랑 아해 안 만나? 나가서 좀 놀지그래?” 소소는 옆으로 드러누운 채 하품을 하며 말했다. 피곤한지 눈이 반쯤 감겨있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그냥 여기 있을래요.” “왜?” “요즘 풀 뽑느라 바쁘대요.” 지금은 둔전의 수확기였다. 게다가 전쟁이 임박했으니, 서둘러 수확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농부의 아이들이니 일을 돕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 당연했다. 소무로서는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모두 밖에서 잠시 얘기 좀 하지. 중요한 일이 있어.” 대원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무를 바라보았다. 나가 보면 알 일이었다. 모두가 묵묵히 막사를 나설 무렵. 소무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소소도 따라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촌들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 소소는 잠시 안에 있을래?” “왜요?” 무엇인가 낌새를 느꼈던 것일까? 소소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수상하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뜨끔했지만 물러설 수가 없었다.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알았어요.” 웬일로 순순히 대답하다니. 평소의 소소답지 않았지만, 길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소무는 막사밖에 대원들을 모아놓고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출진에 대한 간략한 내용을 전달한 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내일 아침에 신병훈련장 가는 척 나와서 집결해. 잘 알아들었지?” “예, 대장님.” “알겠습니다.” 이미 한중에 남아있을 수비군에게 아이를 부탁해놓은 상황이었다. 이제 몰래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막사의 문 앞에서 소소가 엿듣고 있을 가능성을 말이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대원들의 어설픈 발연기가 시작되었다. “어휴. 오늘도 신병들 훈련 도와주는 날이지?” “응. 오늘은 왜 갑주까지 차고 나오라는지. 귀찮아 죽겠네.” 하나둘씩 갑주를 입은 대원들은 진검까지 챙겨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검은 또 왜 가져 오래?” “빨리 가자. 신병들 기다리겠다.” 막사를 나서는 대원들은 곁눈질로 소소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일어나지도 않고, 옆으로 팔베개를 하고 누운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뭔가 이상했지만,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 딸, 막사 잘 지키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소소는 말없이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다람쥐 같은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소무와 대원들이 막사 밖으로 모두 사라졌다. 그 순간 감겨있던 소소의 눈이 서서히 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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