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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화 수확을 거두다 (3) (58/250)

58화 수확을 거두다 (3)2022.03.30.

한중의 군단이 드디어 출진을 개시했다. 일만 삼천여 명으로 이루어진 적지 않은 군세였다. 나머지 이천여 명은 군순포와 함께 성을 지키는 수비군으로 남았다. 이미 이틀 전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기에 백성들의 응원이 대단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이 두 손을 들고 뜨거운 열기를 토해냈다. “장군님, 꼭 무사히 돌아오세요!!” “우리를 지켜주세요!!” “반드시 승리하실 겁니다!!” 처음의 출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센 열광이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무려 수만 명에 달했다. 병사들도 마음이 뿌듯해지며, 사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장양 장군과 함께 선두에는 이천 기의 기마부대가 자리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보병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병대의 선봉은 랑아대의 차지였다. 이들의 인기도 장양 장군 못지않게 대단했다. “저. 저기 랑아대가 있다!!!” “무적의 보병대라며!?” “이번에도 휘나라 놈들을 아주 묵사발 내주세요!!!” 대원들이 백성들을 향해 손 인사를 건네는 가운데, 돌연 누군가가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 형님들 저기 좀 봐요!” 모두의 시선이 우측으로 오 장 거리에 보이는 단상을 향했다. 십여 명의 백성이 일렬로 늘어서서 북을 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피리를 불며 응원하는 광대들의 모습도 보였다. 가지각색의 응원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었다. 랑아대의 뒤로는 검병대와 창병대, 그리고 궁병대가 연이어 등장했다. 새로 창설된 의료부대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대열의 가장 후미는 수레를 이끄는 병참부대의 차지였다. 병참병 한 명이 조금 전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코 고는 소리 들리지 않아?” 분명 어디선가 드르렁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살펴봐도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병참부대의 장교가 그를 향해 눈짓을 보냈다. “요령 피우지 말고 수레나 끌어!” “예…….” 한중성을 빠져나온 군단은 계속해서 전진해 나갔다. 그들이 정해놓은 목적지까지는 나흘이 걸린다. 주변의 촌락들은 아직 대부분이 대피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행군을 시작한 지 반나절이 넘었을 때쯤이었다. 정찰병 한 명이 재빨리 다가와 장양에게 보고했다. “장군, 촌민들이 세 대의 수레를 끌고 와 전면의 길목을 막고 있습니다. 병사들을 끌고 가 몰아내겠습니다.” 장양은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닐세. 그냥 내버려 두시게. 가보면 어떤 영문인지 알게 되겠지.” 한 식경이 지난 후. 정찰병의 말대로 세 대의 수레가 길목을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십여 명의 촌민들과 함께 말이다. 장양이 선두에서 말을 끌고 다가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길래 이리들 계시는 것이오?” 촌민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장군님, 저희는 소화촌에서 온 농민들입니다. 얼마 안 되는 곡식이오나 저희의 마음이니 받아주십시오.” 장양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전란으로 삶이 풍요롭지 못할 터인데, 백성들의 마음이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말에서 내리고는 두 손으로 그들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 고맙소. 마음을 함께 해주어 든든하오.” “힘내십시오, 장군님!” “저희가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군단의 병량은 충분하고도 넘치는 상황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을 가지고 출진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장양은 이들의 성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고맙고, 또 고맙소. 머지않아 적들의 침공이 시작될 것이니, 이레 안에 성 안으로들 대피하시오.” 세 대의 수레는 병참부대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군단은 다시 진군을 시작하였으나 머지않아 또다시 길목을 막히고야 말았다. 무현촌에서. 그리고 당화읍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나는 마을마다 곡식이나 말 먹이는 물론 병사들의 간식거리까지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때마다 장양은 수레를 모두 전달받는 한편, 백성들의 피난을 계속 독려했다. 군영에서 서른 대의 수레를 끌고 출발했으나,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는 곱절로 불어나 있었다. 양연정이 다가오며 물었다. “장군, 병량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어디에 쓰시려고 합니까?” 장양의 시선이 지평선 너머로 지그시 향했다. “한중 근처의 마을들은 여유가 있지만, 멀어질수록 백성들의 삶이 피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피난을 떠날 수가 없는 처지이지 않은가…….” 가난한 백성들은 마을 그 자체야말로 자신들이 가진 모든 재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잠시 대피는 할지언정, 결코 터전을 버리고 피난을 가지는 않을 이들이었다. 양연정은 이해하였다는 듯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장군.” 이어지는 풍경은 장양의 예상대로였다. 응원하는 백성들은 꾸준하였으나, 어느 시점부터는 더는 수레가 나타나지 않았다. 도시에서 멀리 위치한 마을일수록 조금씩 가난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열이 양천읍의 길목에 이르자 장양이 행군을 멈추게 했다. “이곳에서부터는 마을의 규모에 따라 수레를 나눠주시게.” “예, 장군.” 양연정은 후미로 다가가 병참부대의 장교에게 지시했다. “이 마을에 다섯 대의 병량 수레를 건네주고 오거라.” “예, 부관님!”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수레를 이끌고 마을에 진입했다. 이미 백여 명의 백성들이 거리로 나와 응원하고 있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 곳에서 수레를 전달받는 주민들의 모습에 병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수레를 이끌고 돌아가는 백성들이 감격에 복받쳐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선두로 다가온 양연정이 장양을 바라보며 물었다. “기쁜 일이 아닙니까? 왜 한숨을 쉬십니까?” “이곳은 시작에 불과하지 않은가. 깊이 들어갈수록 가난해지고 있으니, 약탈을 당한 마을들은 그 삶이 얼마나 고되겠는가…….” “이번 방어전에서 승리할 수만 있다면, 하루빨리 우리가 장안을 탈환해야겠습니다.” “물론이네. 열심히 살아도 굶주리는 이 백성들이 가여워…….” 장양은 말을 하다 말고 도중에 멈추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을 모를 양연정이 아니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 * * 양천읍의 주민들은 격정에 휩싸여 있었다. 관군으로부터 식량을 보급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역사상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수천여 명의 주민들이 마을 공터에 자리한 회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다섯 대의 수레를 둘러싼 그들은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이미 눈물을 쏟아내는 자들도 있었다. 어느새 나타난 읍장이 수레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한평생 부모가 없이 자라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항상 부모를 가진 자의 마음이 궁금했지요……. 그런데…… 지금에서야 비로소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수레는 곧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부모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것 또한 자식들의 마음이었다. 그때 백성 중 누군가가 목청이 터질 듯 소리쳤다. “장군님을 위해서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중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 상황이었다.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쉽게 답변하지 못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크게 화답했다. “의병을 모읍시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단아한 백의 장삼을 걸치고 있는 한 중년인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인물이다. 소싯적 군단에 몸을 담았던 퇴역군인 양흥이었다. 백성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며 합류 의사를 전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나도 싸우겠소!” 양흥이 황급히 양손을 내저으며 모두에게 자중을 요청했다. “무예를 연마하지 않은 자들은 너무 위험합니다. 각 마을을 돌며 무림인과 퇴역군인들을 모아봅시다.” 그때 청색의 무복(武服)을 입고 있는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진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재천문(渽天門)의 문주였다. 재천문은 양천읍에 있는 유일한 문파로, 삼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류고수들은 대부분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자들도 이름 없는 의병대에는 합류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흥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급조된 의병대의 전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의병 활동은 전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백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럼 어떤 활동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투는 관군이 수행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마을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피난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병 활동이 될 것입니다.” “음. 관군이 지금처럼 부수적인 일에 병력을 빼내도 되지 않으니, 확실히 장군께 도움이 되겠군요. 저도 한 손을 거들겠습니다.” “진 문주님께서 나서주시니 든든합니다. 또 누가 함께하겠습니까?” 몰려든 주민들도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반인들은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그들의 심경을 알고 있던 진백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주변의 마을로 흩어져서 한가락씩 하는 자가 있다면 이곳으로 모이라 선전해주십시오. 저는 우리 양천읍에서 무예를 익힌 자들을 소집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 문주님.” “이렇게라도 도울 수 있으니 기쁩니다.” “맡겨만 주세요.” 백성들은 한마음으로 의기투합했다. 한중의 관군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읍장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두 분께서 나서주시니 든든합니다.” 양흥은 포권을 한 번 해 보이고는 진백 문주에게 말했다. “의병장은 진백 문주께서 맡아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삼류문파의 문주에게는 과분한 자리입니다, 호전적인 의병들을 통솔하려면 무예가 가장 강한 자가 우리를 이끌어야만 합니다. 내일 아침에 의병장을 선출할 터이니 모두 서둘러 주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다섯 대의 수레는 회관의 창고로 이동되었다. 한 식경이 지난 후. 갑자기 회관의 창고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일었다. 돌연 수레 위를 덮고 있던 짚단이 꿈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짚단이 열리며 참새처럼 작은 얼굴이 빼꼼히 내밀어졌다. “하아…….” 바닥으로 뛰쳐 내려온 소소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고민에 빠졌다. 수레에 몰래 숨어서 따라 나온 것까진 좋았지만, 양천읍에 도착하기 직전에 깜빡 잠들었던 것이었다. 한숨이 계속 나왔다. 홀로 남았다는 무서움보다는, 아버지와 삼촌들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실망 때문이었다. 창고에서 나오자 한적한 마을의 풍경이 보였다. 한참을 걷던 소소는 허름한 민가 앞에서 솥에 무엇인가를 찌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냉큼 다가가 물었다. “할머니! 저는 한중으로 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솥뚜껑을 만지던 할머니는 아이를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한중은 저쪽으로 이틀은 가야 한단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디 있니?” “휴. 저만 버리고 갔어요.” 할머니의 얼굴에 연민이 가득 차올랐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전란 속에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소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휴. 이렇게 예쁜 아가를 버리고 가다니. 어찌 세상에 이런 못난 부모가 있을꼬…….” 소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연신 안쓰럽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배고파…….” 힘없이 걸어가는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신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아가야! 잠시만 기다리거라!” 할머니는 솥뚜껑을 재빨리 열고는 보자기에 만두 두 개를 둘둘 말았다. “이거라도 좀 먹으면서 가거라! 배가 고프면 언제든 이곳으로 찾아와. 알았지?” 소소는 금세 기분이 나아졌다. “헤헤.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 만두를 들고 폴짝폴짝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데려다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소소는 마을 어귀에 자리한 거대한 자작나무 위에 뛰어올랐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었다. 소소는 나뭇가지에 걸터앉아서 만두를 먹으면서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굳이 한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었다. 가봐야 놀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군영으로 돌아가려면, 다시 이 마을을 거쳐 가야 할 것이 아닌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기도 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있었다. 소소는 단화를 벗어놓고는 나뭇가지 위에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콩알 같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한참이나 밤하늘을 구경했다. 배를 채우고 나니 슬슬 잠이 쏟아졌다. 어느새 눈이 스르륵 감긴 소소는 드렁드렁 코를 골며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소란스러움에 소소의 눈이 뜨였다. 어느새 새들이 지저귀고, 아침 햇살이 마을을 비추고 있었다. 십여 장이 떨어진 공터였다. 이백여 명에 이르는 건장한 장한들이 모여서 무엇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소소의 눈에 들어왔다. “그럼 지금부터 비무를 통해 의병장을 선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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