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참새, 날개를 펴다 (1) (59/250)


59화 참새, 날개를 펴다 (1)
2022.03.31.


섬서에서 일어선 최초의 의병대였다.

비록 주요 결성 목적이 전투가 아닌 마을 안정과 피난 보조였지만, 많은 장한이 기다렸다는 듯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만큼 휘나라에 사무친 원한을 품고 있던 자들이 많았던 것이었다.

의병장을 선출하는 일은 굉장히 치열했다.

많은 이들이 진백 문주가 우승하리라 예상했지만, 그는 일찌감치 패배하고 말았다. 예상대로 일류고수는 한 명도 오지 않았지만, 의외로 이류급의 무림인이 많이 모였다.

중소 문파들이 상당히 많이 합류했으며, 퇴역군인들도 많았다.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자는 궤멸당한 종남파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인물이었다.

“다음 상대 없습니까?”

종남파의 이대 제자인 무현이였다. 문파 내에서는 중간 이하의 실력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굉장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미 그의 손에 십여 명의 도전자가 쓰러졌다. 더는 나서는 이가 없었다. 지켜보던 모두는 그가 의병장이 되리라 확신했다.

그때였다.

“여기 있소!”

먼 곳에서 누군가가 경공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무복과 한 자루의 유엽도. 얼굴에 사선으로 각인된 한 줄기 자상이 인상 깊어 보였다.

마을 인근에서는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었다. 지켜보던 장한 중 몇몇이 그를 알아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일전도객(一電刀客) 송겸?”

“송겸 대협까지 왔다고……?”

무현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두 명은 거리를 벌리고는 포권을 마주 건네었다.

“종남파의 이대 제자 무현이오.”

“일전도객 송겸이오. 그럼 한 수 청해보겠소.”

통성명이 끝남과 동시에 싸움이 개시되었다. 서로가 선공을 양보할 수 없을 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무현과 송겸의 신형이 맞물리자, 굉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카카캉-! 카카카카캉-!

종남파의 무공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무현의 공세가 일품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받아내는 송겸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 둘의 싸움은 팽팽하여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공수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오십 합을 넘어섰다. 계속해서 상대의 허점을 살피며 승부수를 노렸다.

칠십 합에 이르렀을 즈음이었다. 무현의 검이 여러 개로 늘어나는 듯 보이며, 송겸의 팔방을 동시에 압박해 들어갔다.

“운룡검법(雲龍劍法)?”

“와……. 드디어…….”

비록 상승검법은 아니었지만, 구파일방의 무공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무인들의 탄성이 거침없이 토해져 나왔다.

그러나 송겸 또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의 도가 재빨리 움직이며 사방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카카캉-! 카카카캉-!

“드디어 송겸 대협의 일전도법(一電刀法)이 나왔어!”

유연함이 깃든 한 자루의 검과 벼락같이 빠른 유엽도가 계속해서 맞물렸다. 지켜보던 이들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시선을 집중했다. 그 순간 둔탁한 굉음이 뿜어져 나왔다.

콰앙-!

서로가 뒷걸음질하며 물러섰다. 그러더니 동시에 무기를 회수하고는 마주 포권을 건네었다. 군중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였다.

“저 못생긴 아저씨가 이겼어요! 히히.”

구석에서 지켜보던 무림인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군복을 입은 쪼그만 여자아이가 자신들의 틈새에서 싱글벙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웃기는 아이였지만, 꼬맹이 따위한테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비무의 결과를 확인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무현의 옷자락 중 일부가 갈라지며,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끝내 송겸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굉장했던 결투의 광경에 모두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머금었다.

“이 일전도객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앞으로 나오시오!”

더는 아무도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군중들의 틈새에서 여자아이가 물었다.

“이기면 뭐 주나요? 밥도 주나여?”

옆에 있던 장한이 눈길도 안 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밥뿐이겠냐. 의병대의 장군이 되는 거지.”

소소는 몹시 배가 고팠다. 먹성이 대단한 아이가 어제부터 만두밖에 먹지 못했다. 밥을 준다는 말에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 순간 송겸의 외침이 다시 한번 토해졌다.

“정녕 이 송겸의 도를 받아 볼 자가 없습니까? 아무도 없다면 내가 의병장이 되어보겠소!”

그때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도전자가 나타났다.

“저요!”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군중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웬 여자아이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있으니 장난으로 보였다.

“쉿! 조용해.”

“어서 집에 들어가. 어른들 있는데 나오면 못써.”

나무라던 군중들은 동시에 입을 떡하니 벌리고야 말았다. 아이가 지면을 박차고는 새처럼 도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삼 장의 높이를 말이다.

“뭐, 뭐지?”

“저게 가능해?”

타앗-!

나뭇잎이 내려앉듯 사뿐하게 내려선 소소는 송겸과 마주했다.

송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무공을 익힌 아이임은 확실했다. 그런데 어찌 허리춤밖에 안 되는 꼬맹이와 싸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망설이고 있자 소소가 먼저 양손을 모으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무현과 송겸이 했던 포권지례를 흉내 내는 것이었다.

“저는 소소예요!”

“하아…….”

송겸의 입에서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어 싸우지 않고 승리를 거머쥐는 방법이었다.

“송겸이다.”

짧게 한마디를 내뱉은 송겸은 유엽도를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도의 끝부분에서 십여 가닥의 빛살이 모습을 드러내며 출렁거렸다. 완성되지 않은 초기 단계의 도기(刀氣)였다.

군중들은 또다시 놀라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무예를 연마한 자라면 섬뜩한 도기를 보고 겁먹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설령 아이일지라도 말이다.

“아가야, 이제 포기하겠느냐?”

송겸의 눈이 힐끔 움직이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싸움을 포기하려는 낌새가 보이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그거 나도 할 줄 아는데요?”

그 순간 아이가 들고 있던 장난감 같은 검에서 수백 가닥의 빛살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검날을 감싸는 밝은 빛무리는, 한눈에 보아도 송겸의 것하고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완성된 형태의 검기였다.

군중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비벼댔다.

“뭐, 뭐야!?”

“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많아야 일곱이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검기라니. 무림의 역사상 듣도 보도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체면을 구긴 송겸은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되고야 말았다.

“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구나. 선공을 양보할 테니 먼저 오거라.”

소소는 검기에 주입하는 내력을 최소한으로 줄여 수준을 맞추었다. 제대로 했다간 상대가 죽을 수도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배가 고팠기에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말을 마친 소소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벼락같은 속도에 송겸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토했다.

“헛?”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아래에서부터 맹공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캉-! 카카카캉-!!

검기와 도기가 맞물리자 번갯불이 번쩍번쩍하며 장관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송겸은 연신 뒷걸음질 치며 몹시 당황했다.

일합을 마주할 때마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내공의 차이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찌 알겠는가. 눈앞의 아이가 바로 무림제일고수라 칭송받는 검성의 전승자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검술은 미친 듯이 빨라지고 있었다. 몇 번의 호흡이 더 지나고 나서는 점차 손발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더는 손속에 사정을 봐줄 수가 없었다.

“어림없다!”

송겸의 도가 붉게 빛나며 곡선을 그려갔다.

고작 어린아이 따위한테 자신의 절초를 펼쳐야 한다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부아아악-!

초승달 모양의 빛무리가 아이를 삼키는 순간이었다.

소소의 신형이 한줄기 섬광과 함께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번쩍-!

‘이, 이형환위?’

이형환위(以形換位). 어지간한 무림의 고수도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경신법이다. 심지어 소소가 펼친 것은 이형환위보다 뛰어난 검성의 섬전비영보(閃電飛影步)였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자신의 옆구리에서 검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연달아 뿜어졌기 때문이다.

파파파파팟-!

송겸은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재빨리 회피 동작을 개시했다. 미끄러지듯 일장의 거리를 물러나서는 다급히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히히. 제가 이긴 거죠?”

어리둥절한 송겸은 곧이어 아이의 말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투투투툭-!

‘이, 이럴 수가.’

돌연 자신의 무복이 걸레처럼 너덜너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몸에 딱 맞는 옷이 말이다.

반격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참패였다. 인생에서 이보다 비참하게 당해본 패배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군중들을 향했다.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붕어처럼 입을 끔뻑거리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인물이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어, 어찌 꼬마가 이렇게 강할 수가 있단 말이오?”

그때 송겸이 입을 연 자에게 재빨리 눈짓을 보내며 소리쳤다.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니 예를 갖추시오!”

모두가 어리둥절하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짐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분께서는 반로환동을 하신 노고수이십니다!”

반로환동(返老還童). 깨달음을 얻은 노인이 아주 적은 확률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현상이었다.

“어쩐지…….”

“저런 기인께서 어찌하여 의병대에…….”

“와……. 그럼 우리 의병대의 전력이 장난 아니잖아?”

모두가 확신했다. 누구도 송겸의 말에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반로환동이 아니고서야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송겸이 군중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기인이실지라도,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가 똑같지 않겠습니까? 지금부터 이분이 우리 의병대를 이끌 장군입니다! 이의가 있으신 분 계십니까?”

감히 누가 반로환동한 고수에게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더는 비무가 무의미했다. 모두가 동의하며 갈채를 보냈다.

송겸이 군중들을 뒤로한 채 소소에게 다가가 허리까지 숙여 포권을 건네었다.

“장군! 별호가 어찌 되십니까? 앞으로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소소는 모두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당황하며 소리쳤다.

“천하제일 소소예요!”

천하제일이라는 별호를 자칭하다니. 굉장한 자신감에 모두가 다시 한번 감탄을 토해낼 때쯤이었다. 앵두 같은 소소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오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배고파요……. 이겼는데 밥도 안 주고…….”

원하는 것은 그저 따뜻한 밥 한 끼였다.

송겸은 소소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는 재빨리 뒤돌아서서는 군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장군께서 배가 고프시다고 합니다!”

마을 읍장이 냉큼 주민들을 불러 모았다.

“아주 중요한 분이시니 최대한 빨리 식사를 준비해주십시오. 비용은 읍청에서 지원할 터이니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이미 주민들도 소소의 무위를 확인했기에 의문을 품는 자가 없었다. 비무에서 이삼 위를 기록한 송겸과 무현은 규칙에 따라 의병대의 부장이 되었다. 참모는 퇴역군인인 양흥이 맡기로 되어있었다.

의병들은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지만, 감히 도전장을 내미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의병 중 누군가가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근데 기인께서 어째 말투가…….”

그러자 옆에 있던 종남파 출신의 무현이 다급히 그를 제지했다.

“말을 조심하시오. 반로환동에는 가끔 부작용이 있기에 행동과 말투가 같이 어려지기도 하는 법이니. 하지만 몸에 배어있는 경험과 무공이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게 될 것이오.”

“아, 알겠습니다. 부장님들이 보좌해주신다면 문제 될 것이 없겠지요.”

어느새 소소는 누군가가 건네준 의자에 올라타 다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식경이 더 지나자 의병 중 하나가 재빨리 다가오며 소리쳤다.

“장군! 식사가 지금 막 준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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