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참새, 날개를 펴다 (2)
(60/250)
60화 참새, 날개를 펴다 (2)
(60/250)
60화 참새, 날개를 펴다 (2)
2022.04.01.
한중의 군단은 화평읍(花平邑)에서 이틀째 주둔하고 있었다. 장양은 그 대가로 주민들에게 군단의 보급품을 상당량 나눠주었다.
게다가 민가에 폐를 끼치는 병사가 있다면 참수하겠다고 엄포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주민들이 두 손 들고 환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천여 명이 넘는 정찰병들을 파견하여 그물 같은 감시망을 펴고 있었다. 후방에선 나무를 날카롭게 깎아 묶은 목책을 대량으로 제작했다.
마을 입구의 길목 어귀에는 야전 지휘소가 설치되어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말이 지휘소지, 햇빛 때문에 천장만 가려놓은 천막이었다. 내부는 전술지도가 펼쳐진 탁상 하나와 의자들이 전부였다.
장양이 곽철 부장을 지목하며 물었다.
“적군의 본진이 이곳에 당도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가?”
“본진은 나흘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별동 기마대라면 반나절 후부터는 당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슬슬 준비해야겠지. 랑아대가 고생 좀 해주시게.”
소무가 일어서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등을 돌린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돌연 전면의 길목에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분명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소무가 검집을 움켜쥐자 장양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이쪽을 지나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무림인들 같습니다.”
작전지역이었기에 그냥 보내줄 수가 없었다. 민간인들은 다른 길로 우회하도록 만들어놓은 상황이었다. 영문을 알아봐야 했다.
길목을 막아서자 달려오던 자들이 손을 들어 보이며 다급히 멈춰섰다.
“한중의 군단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장양 장군님을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십여 명의 무림인들이었다. 모두가 동일한 문양이 수놓아진 적색 무복을 입고 있었다. 이들의 말투에서 적개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소 흥분된 목소리였다.
어느새 장양이 직접 이쪽으로 다가왔다. 평소 무림인들을 마주할 기회가 흔하지 않았기에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었다.
“내가 한중의 장양입니다.”
무림인들이 동시에 포권지례를 해 보였다. 가장 앞에서 무리를 이끌던 자가 말했다.
“저희는 보계현의 의천문(義天門)입니다. 장군님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무의 기억에는 없는 문파 이름이었다. 문주로 보이는 인물은 이류 정도의 기세가 느껴졌으며, 문도들은 아직 삼류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었다.
“헌데 무림의 인사들이 작전지역에는 어인 일인지요?”
“양천읍에서 의병대가 소집되고 있다고 하여 합류하기 위해 가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작전지역인 줄 몰랐습니다.”
양천읍은 군단이 며칠 전에 지나친 마을이었다. 아마도 그곳을 떠난 직후 긴급히 소집된 모양이었다.
뜻밖의 희소식에 장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허허허……. 강호의 대협들이 힘을 보태준다니 든든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의병장이 어느 분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의천문의 문주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소소 장군이라 들었습니다. 무예가 대단하시다고 합니다.”
장양과 소무가 동시에 흠칫했다. 귀에 익은 이름이었기에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중원은 넓고 같은 이름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는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침 잘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적들의 본진이 우리를 노리고 있기에, 소규모로 움직이는 약탈부대들은 대응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소소 장군께 고하여 최선을 다해 약탈부대를 격파해보겠습니다.”
장양이 걱정스럽다는 눈빛을 보냈다.
민간인을 상대로 한 약탈부대의 병사들은 무공 수준이 별로 높지 않다. 하지만 군사훈련을 받지 않은 의병들은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전투가 불가능하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찰대에서 수집된 적군의 동향을 의병대에 전해주겠습니다. 무리해서 맞서지 마시고, 주민들의 피난을 우선적으로 지원해달라고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군. 직접 만나 뵙고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의병 활동에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말씀하라고도 전해주십시오. 관군과 의병대가 연계한다면 작전에 큰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 빠짐없이 전하겠습니다.”
작별인사를 건넨 의천문은 다시 경공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이들의 대화를 들은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뿌듯한 심정이었다.
소무가 지휘소에서 나간 뒤로 한 식경이 지난 후. 드디어 군단이 움직임을 개시했다.
이들은 화평읍에서 십 리가 떨어진 평야에서 다시 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적들의 기습부대는 십중팔구 기마부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숲이나 산지를 전장으로 택하는 게 정석이다. 평평하고 넓은 대지에 진을 치는 것은 기병들에게 죽여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대열의 뒤쪽에서 소란이 일자 병사들이 다급히 길을 터주기 시작했다.
“자, 모두 비켜주세요!”
“목책들 이동합니다!”
후방에서부터 끊임없이 등장하는 목책은 수백 개에 이르렀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깎여나간 나무들이 하나둘씩 고정되기 시작했다.
일다경이 지난 시점에서는 삼십여 장의 거리에 목책이 일(一) 자로 길게 늘어섰다. 그것도 무려 두 겹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앞 열의 목책은 전면으로, 뒷줄의 목책은 아군이 있는 후미를 향해 설치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궁병대의 진립 부장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궁병대 앞으로!!!”
이천여 명의 궁병이 목책의 뒤로 길게 늘어섰다. 보통 궁병은 후미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궁병대가 선두의 중앙을 차지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없는 진형이었다.
“마름쇠 투척!!!”
마름쇠는 삼각주침(三角柱針)이라고도 불린다. 끝이 뾰족한 네 개의 쇠침으로 만들어진 이것은, 사람과 말의 이동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면에 뿌려두는 방어용 무기다.
궁수들이 오른손을 동시에 내뻗으며 마름쇠를 있는 힘껏 내던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목책의 앞으로 수천 개의 마름쇠가 내리깔리며 날카로운 가시가 하늘로 향했다. 그 순간 양연정이 등장하며 거센 고함을 뿜어냈다.
“좌군 앞으로!!!”
후미에서 검병과 창병들로 이루어진 사천여 명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궁병대의 좌측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우측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을 지휘하는 이는 위진철 부장이었다.
“우군 앞으로!!!”
같은 수의 검병과 창병들이 우측을 점하며 대열을 형성해 나갔다. 하나같이 맹훈련을 거쳤는지, 병사들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았다.
순식간에 보병대가 대열을 완성했다. 삼십 여장이 떨어진 후미에는 병참수레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다시 백여 장이 떨어진 후방에는 한백 부장의 기마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휘부의 위치는 궁병대의 후미였다.
이는 모두 장양이 고안해낸 진법으로, 이름하여 연환아금진(連環牙擒陳)이었다.
진법이 완성되자 모두가 대열을 유지한 채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마치 낚싯대를 내려놓고 기다리듯이 말이다.
그러기를 한 시진. 드디어 입질이 오기 시작했다. 전면에서 미친 듯이 경공을 펼치며 내달려오는 인물이 보였다. 첨병대를 이끄는 백문휘 부장이었다.
“장군! 전방에서 백여 기의 기병들이 오고 있습니다!”
병사들이 무기를 부여잡으며 일어서려 했다. 장양이 옆에 자리한 병사의 지휘기(指揮旗)를 빼앗고는 황급히 신호를 보냈다.
“모두 앉아 있거라!!!”
모두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비록 소수일지언정 적군이 다가오는데도 앉아 있으라니.
일각의 시간이 더 지나자 드디어 백여 기로 이루어진 기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열을 형성한 채 흐트러짐 없이 다가오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거리는 계속해서 가까워졌고, 전면에 자리한 병사들은 속이 타들어 갔다.
거리가 이십여 장까지 좁혀지자, 장양이 다시 소리쳤다.
“전투 준비!!!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
병사들이 뒤늦게 일어서는 것을 보고, 기병들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한눈에 보아도 오합지졸들의 반응속도였기 때문이다.
선두에서 진립 부장이 소리쳤다.
“궁수 조준!!!”
이천여 명의 궁수들이 동시에 활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대기하라!!!”
기병들은 활의 사정거리에 진입하는 순간 산개하며 방향을 틀었다. 그러더니 먼 거리에서 군단의 주위를 헤집었다.
역시나 장양의 예상대로였다. 이들은 지금 군단의 진형을 탐색하기 위한 정찰부대였던 것이었다.
아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한참을 둘러보던 기병들은 유유히 자리에서 사라져갔다.
장양의 옆을 보좌하고 있던 곽철 부장이 물었다.
“정찰대의 움직임이 대담한 것을 보니, 기마부대의 본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백문휘 부장, 적들의 규모가 파악되었는가?”
“주변으로 경계가 삼엄하여 깊게 다가갈 수는 없었습니다. 첨병들의 정보를 모아보면 족히 팔천 기는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군보다는 다소 적은 숫자였지만, 기병의 가치는 보병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평야에서 맞서려면 정상적으로는 최소 다섯 배가 넘는 인원이 있어야 한다.
“수고했네. 적군이 곧 몰려올 테니, 그때까지 병사들에게 최대한 쉬어두라 일러두게.”
기마부대의 반응은 빨랐다. 반 시진도 안 되어 군마들의 말발굽이 지면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대가 진형을 바꾸기 전에 최대한 서둘러 공격하려는 심산이리라.
진형의 중심에서 곽철 부장이 지휘기를 흔들며 말했다.
“전투 준비!!!”
모두가 긴장한 모습으로 무기를 움켜쥔 채 태세를 갖췄다.
잠시 후 지평선 끝에서부터 먼지가 일며 기마부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염을 토해내며 맹렬히 접근해오는 기병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지릴 정도였다. 모두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움켜쥔 무기에 힘을 주었다.
군단의 중심에서 장양이 목청이 터질 듯 소리쳤다.
“겁먹지 마라!!! 우리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적의 군단임을 명심하라!!!”
각 부대의 부장들이 병사들을 독려하며 태세를 정비했다.
기병들이 백여 장 이내로 근접하자 궁수들이 활에 시위를 먹였다. 근접전에 약한 궁수들이 비록 선두였지만, 그들의 앞으로는 두껍게 펼쳐진 목책이 있었다.
휘나라의 기마부대는 목책에 들이받아 아까운 군마를 희생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들이 활의 사정거리에 인접한 순간, 돌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팔천 기의 기병들이 구십 도로 각도를 틀며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급류에 솟아있는 바위에 물결이 갈라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기병들의 움직임은 탄성이 나올 정도였다.
그들이 무엇을 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빠른 기동력으로 우회하여 전열을 무시한다.
그리고 뒤쪽의 보급부대를 먼저 타격하고 후미에서부터 보병대를 공격할 심산이리라. 목책을 피하고 적들의 진형을 무너트리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었다.
갈라진 기병들은 어느새 아군의 보병대를 지나쳐 옆구리로 진입하고 있었다. 목책 뒤에 숨어 전면을 지키던 보병들은 바보가 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으하하! 세상에 이런 바보들이 다 있나?”
“하하! 이걸 진법이라고 펼쳐놓았던 거야?”
군마를 몰고 있는 기병들은 이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너무나도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벌써 자신들이 대승을 거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자신들이 연환아금진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앞에 삼십여 대의 병참수레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것들만 불태우고 후퇴해도 엄청난 성과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기마부대는 이대로 끝낼 마음이 추후도 없었다.
기마대의 선두가 수레의 삼 장 근처까지 다가섰을 즈음이었다.
그 순간 기병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돌연 수레를 덮은 짚단이 열리며, 백여 마리의 검은 이리들이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헉!”
“뭐, 뭐야?”
창공을 꿰뚫을 듯이 솟구친 랑아대원들은 기수들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검기를 흩뿌렸다.
서걱-! 촤아악-!
“크윽!”
“컥!”
하나같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몸놀림이었다. 그들의 일격은 말과 기수를 함께 벨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선두에서 달리던 말들이 날뛰고, 쓰러지자 대열이 뒤엉키며 기동력을 상실했다. 기마부대의 장교들은 이제야 자신들이 유인작전에 당했음을 깨달았다.
진로를 바꿔야 했다. 이들을 무시하고 다른 보병대의 후미를 타격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궁수들이 먼저 움직임을 개시하고 있었다.
“발사하라!!!”
진립 부장의 명령과 동시에 이천여 발의 화살이 기병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푸욱-! 푸푸푹-!
“크아악!”
“크헉!”
진립은 세 대의 화살을 동시에 꺼내 들며 소리쳤다.
“연사하라!!!”
궁수들의 공격이 너무나 매서웠다. 눈 깜짝할 사이 활의 시위를 먹이는 그들은 명사수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기마부대는 진형의 옆구리로 다시 이탈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양연정과 위진철이 이끄는 보병대가 질주하며, 퇴로를 막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공까지 펼치는 보병들은 한눈에 보아도 쉬운 상대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후미에서는 한백 부장이 이끄는 이천 기의 기마대가 맹렬히 다가오고 있었다.
휘나라의 기수들은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어, 어떻게 이런…….”
팔 천기의 기마대가 적진의 중심에서 사방이 포위되고야 말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물쭈물하는 기마부대를 헤집고 랑아대가 무쌍을 보이고 있었다. 후미에서는 쉼 없이 화살 세례가 날아오고 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