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참새, 날개를 펴다 (3) (61/250)


61화 참새, 날개를 펴다 (3)
2022.04.02.


“장교들부터 잡는다!!!”

소무의 지시에 따라 랑아대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휘나라의 기마장교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전신을 감싼 화려한 갑주는 물론이고, 군마도 마갑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무의 움직임은 물속을 헤집는 물고기와도 같았다. 그가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는 순간, 서늘한 검날이 한줄기 빛무리를 뿜어냈다. 검날에서 쏘아진 초승달 모양의 강기는 지척에 있는 기마장교를 향했다.

써컹-!

기마장교는 영문도 모른 채 두 토막이 났다. 그 순간 하늘 높이 떠오른 소무가 허공에서 검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수십 개의 강기 다발이 기병들을 향해 뿜어져 나가며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이십여 기의 기병들이 낙마하며 참혹한 몰골로 비명을 토해냈다.

“크아악!”

“끄억!”

지면에 내려선 소무는 기마대의 사이를 비집으며 전광석화처럼 질주했다. 그의 검이 한 번씩 번뜩일 때마다, 기수들이 말과 함께 추풍낙엽처럼 갈라져 나갔다.

휘나라의 기마부대는 전장의 중앙에 모여들어 우왕좌왕했다. 밀집한 기병들은 갈 곳을 못 찾고 서로 뒤엉켜 있었다. 장교들이 먼저 죽어 나가자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뭉텅이로 모여있는 기수들은 랑아대원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써컹-!

“십육!”

촤아악-!

“십칠!”

랑아대의 철두였다. 자신이 쓰러트린 적들의 숫자를 입으로 세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철두의 코앞으로 집채 같은 주먹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의 머리를 사정없이 강타했다.

콰아앙-!

군마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단 방에 즉사했다. 기수는 그 아래 깔려 미동조차 없었다. 아마도 이렇게 무식한 사내는 섬서를 통틀어 단 한 명밖에는 없을 것이다.

일광이 철두를 바라보며 씩 웃어 보였다.

“삼십칠!”

악마 같은 일광의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측면을 바라보자 어느새 양연정 부관이 합류하여 적들을 학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뒤로 수천여 명의 보병들이 속속들이 난전에 합류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돌연 후방에서부터 말발굽 소리가 거세지며 지면을 울렸다.

두두두두-!

아군의 기마부대였다. 이천 기의 기수가 장창을 전면으로 내뻗은 채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선두에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한백 부장이 보였다.

“적들을 모조리 꿰어버려라!!!”

아군의 기병들은 전력으로 내달리며 장창에 온 힘을 집중했다.

무지막지한 돌진에 휘나라의 기수들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이천 자루의 창끝이 그들을 사정없이 관통하기 시작했다.

푹-! 푸욱-! 푸우욱-!

“크으윽!”

“끄아아악!”

수백 마리의 말들이 동시에 고꾸라졌으며, 꼬치처럼 꿰어진 기수들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기병의 최대 강점은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신속한 돌파력에 있다. 이미 포위망에 갇혀 우왕좌왕하는 휘나라의 기마부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였다.

“장군을 노린다!!! 장군의 목을 치고 목책을 넘어 퇴각한다!!!”

아직 한 명의 기마장수가 살아있던 모양이었다. 실책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장군을 잡으려는 것이다.

그를 따라 천여 명에 이르는 기수들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말 머리를 돌린 그들은 포위망을 비집고 장양 장군을 향해 직선으로 돌진해 나갔다.

그 모습을 발견한 궁병대의 진립 부장이 다급히 소리쳤다.

“장군을 보호해야 한다!!! 저들을 향해 집중사격하라!!!”

파파팟-! 파파파팟-!

날아오른 화살들이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기병들을 저지했다.

푸푹-! 푸푸푹-!!!

“크윽!”

“컥!”

이백여 기가 넘는 기수들이 낙마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막다른 길목에 몰린 상대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갑주를 뚫고 화살이 곳곳에 틀어박힌 상태에서도 멈추는 기수가 없었다.

그때 묵묵히 지켜보던 장양이 명령을 내렸다.

“궁병대는 좌우로 물러나라!!!”

궁사들이 근접전에서 기병을 맞는다면, 파멸적인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미리 대피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궁병대가 물러나면 장군을 보호할 수가 없게 된다.

진립 부장은 잠시 망설였지만, 명을 거역할 수 없었다. 궁사들을 대피시키는 한편, 장양 장군을 향해 소리쳤다.

“장군께서도 어서 대피하십시오! 부관님이 있는 곳으로 합류해야 합니다!”

양연정이 이끄는 보병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장양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누군가는 궁수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적들의 시선을 끌어야 했다. 장군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미끼였다.

“나는 괜찮으니 어서 먼저 물러서! 명령이다!”

어느새 기마부대는 장양의 이십여 장 앞까지 당도하고 있었다. 홀로 남겨진 그는 묵묵히 검을 전면으로 내뻗었다.

그때였다. 돌연 장양의 앞으로 검은 기류가 스르륵 발현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류가 서서히 사라지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살왕(殺王). 그가 전장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오른손에는 태도를, 왼손에는 삼 장 길이나 되는 채찍을 움켜쥐고 있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십시오.”

기마대의 선두가 오 장 이내로 접근하는 순간, 살왕의 채찍이 일직선으로 쇄도해나갔다.

촤르르륵-!

삼 장까지 뻗어 나간 채찍은 선두에서 다가오는 기수의 몸을 뱀처럼 휘어 감았다.

쫘아악-!

“크윽!”

무지막지한 힘에 허공으로 떠오른 기수는 옆에 자리한 기수와 충돌했다.

콰앙-!

채찍은 한 바퀴를 회전하고 또다시 다가오는 기수들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쫘아아악-!

세 명의 기수가 동시에 갑주째로 갈라지며 말 위에서 낙마했다.

채찍은 사용하기가 까다롭지만, 위력으로만 따진다면 무기 중에 최고봉에 속한다.

거기에 살왕의 내력이 더해지자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기다란 채찍이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두세 명의 기수가 거침없이 고꾸라져갔다.

그러나 파괴적인 채찍에도 한 가지 단점이 있다. 무기의 끝으로 공격하는 것이기에, 상대가 지근거리로 파고든다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채찍을 놓은 살왕은 태도를 어깨높이로 추켜세웠다. 그 순간 눈부신 도강(刀剛)이 솟구쳐 나오며 출렁였다. 그 모습을 마주한 기수들은 화들짝 놀랐다.

도강이 무엇인가. 깨달음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지고한 경지이다. 그러나 내력의 소모가 무지막지하여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살왕은 일부러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어 적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도강 앞에 기수들은 본능적으로 주춤했다.

살왕이 보법을 밟자 그의 신형이 여러 개로 늘어나며, 주위로 거센 폭풍이 휘몰아쳤다. 한 호흡에 수십 번씩 휘몰아치는 태도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파파파팟-!

그의 반경 삼 장 이내로 접근하는 기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분쇄되어 나갔다. 후방에서 이 가공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기병들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장군을 포기한다!! 모두 목책을 넘어 퇴각한다!!!”

두 겹으로 되어있는 목책을 뛰어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미 후방에서 자신들의 장군을 지키겠다고, 수천여 명의 보병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죽음뿐이었다.

비장한 표정을 머금은 기병들은 물살이 갈라지듯 장양과 살왕을 무시한 채 내달렸다. 군마들이 있는 힘껏 도약을 시도했으나, 목책을 성공적으로 넘은 숫자는 삼 할도 채 되지 않았다.

푸우욱-! 푸욱-!

날카로운 목책의 가시에 군마와 기수들이 꼬치처럼 꿰어지는 소리였다. 목책의 주변으로 처참한 광경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목책을 뛰어넘은 기수들도 무사할 수가 없었다.

히이이잉-!

돌연 말들이 비명을 토해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휘나라의 병사들은 다급해졌다.

“뭐야, X팔!?”

“이거 왜 이래?”

미리 설치해둔 마름쇠였다. 날카로운 마름쇠의 가시는 말발굽을 깊숙이 파고들기에 충분했다.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말들이 본능적으로 주춤거렸다. 멈칫하는 군마들과 뒤따르는 군마들이 충돌하며 아비규환을 만들었다.

콰쾅-! 콰콰콰쾅-!

그 순간 기병들의 좌우에서 수천 발의 화살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측면으로 물러나 다시 대열을 형성한 궁병대였다.

파파파팟-!

푸욱-! 푹-! 푸욱-!

“크헉!”

“끄아악!”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졌다. 설상가상 그들의 후미로 보병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단연 선두는 경공이 가장 빠른 랑아대의 대원들이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더는 체계적인 도주가 불가능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기병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각자도생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수는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미미했다.

일각이 더 지난 후에는 전장에서 살아있는 적군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드디어 전투가 끝난 것이다.

누군가가 검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승리의 함성을 내뱉었다.

“우와아아!!! 우리가 승리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군단의 병사들이 동시에 뿜어내는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무려 팔천 기에 이르는 적군의 기마부대를 궤멸시킨 것이다. 그에 반에 아군의 피해는 고작 삼백여 명에 불과했다.

그것도 대부분이 부상자였으며, 사망자는 고작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기적적인 대승이었다.

승리의 함성이 진동하는 가운데, 가장 바빠진 것은 기마부대였다. 아군의 기수들은 재빨리 서너 마리의 말들을 끈으로 엮어 빈 수레에 연결했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서른 대의 마차는 전장을 오가며 부상병들을 싣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멀지 않은 곳에 설치돼있는 아군의 의료 막사였다.

* * *

한편 양천읍으로 몰려든 의병들은 어느새 삼백여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무예를 익히지 않은 자들은 받지 않았다.

중소문파의 무림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인근에 위치한 세가의 무인들도 일부 합류했다. 게다가 퇴역군인들과 용병까지. 다양한 부류가 모여들었다.

숫자는 적었지만 나름 그럴듯한 전력이었다. 참여한 의병들이 자발적으로 지원금을 기부함으로써 당장에 급한 자금도 확보되었다.

호전적인 무인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열기가 끌어 오르는 법이다. 양천읍의 공터에선 환호성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었다.

“장군! 저도 한 수 가르침을 청해도 되겠는지요?”

한 번 보고 배운 것은 잊어먹지 않는다. 소소는 습관처럼 포권을 건네었다.

“소소예요!”

“저는 용화표국의 표사였던 장패입니다.”

장패는 통성명이 끝남과 동시에 다짜고짜 질주했다.

상대는 반로환동한 기인이라고 한다. 겉모습이 아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선공을 양보할 수 없었다.

체구가 작아서 머리가 아니면 타점을 찾기 힘들었다. 그의 검 끝은 정확히 소소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아직 비무에서 양보란 걸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상체를 낮춘 채 쏜살같이 접근하는 소소의 움직임은 섬전과도 같았다. 장패의 검이 소소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는 순간, 어느새 호두 같은 주먹이 그의 복부에 쑤셔박히고 있었다.

쩌엉-!

“쿠헉!”

장패는 토악질을 하며 한 손을 다급히 올렸다.

“져, 졌습니다.”

단 한 방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미 그보다 앞서 패배를 시인한 무인들이 수십여 명에 이르러 있었다. 장패가 물러나기 무섭게 또 한 명의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장군, 저는 하후세가의 무사들을 이끌고 합류한 하후극입니다. 저도 한 수 청해보겠습니다.”

“히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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