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참새, 날개를 펴다 (4) (62/250)


62화 참새, 날개를 펴다 (4)
2022.04.03.


하후극은 연신 감탄사를 토해냈다.

자신이 누구인가. 오대세가에 비교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역사를 가진 무가의 장자였다.

그런데도 허리춤밖에 안 되는 여자아이에게 모든 공격이 차단되고 있었다. 반로환동한 노고수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황당하게도 소소는 한 손을 뒷짐 지고 있었다. 자신을 가르치던 아버지를 흉내 내고 있는 것이었다.

“검 끝은 바람처럼 거세고, 바위처럼 무거워야 해요!”

카앙-! 캉-! 카앙-!

하후극은 희열에 차오르고 있었다. 무림의 기인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니. 이보다 더한 기연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예! 감사합니다, 장군!”

카앙-! 카캉-! 카카캉-!

“느림 속에 빠름이 있다!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 그리고……. 아 뭐였지?”

아버지가 해줬던 다음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하후극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날카로워지고, 정교해지고 있었다. 소소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곧 검성의 가르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돌연 장군이 입을 다물자, 하후극은 다급해졌다. 기세를 몰아 조금 더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장군, 조금 더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소소는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대사가 없었다. 그렇지만 뭐라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한 가지 있었다.

내력을 가득 머금은 소소의 검날이 그의 공격을 강하게 쳐냈다.

까앙-!

하후극은 난데없는 반격에 휘청거리며 허점을 훤하게 드러냈다.

“방심은 죽음이에요!”

그 순간 지면을 박차고 떠오른 소소는, 하후극의 가슴팍에 오른발을 쑤셔 박았다. 청해에게 배운 화산파의 소엽퇴법이었지만, 짧은 다리로 펼친 그것을 알아본 자는 없었다.

콰직-!

“커억!”

나자빠진 하후극은 한 바퀴를 볼품없이 뒹굴었다. 구경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창피함 따위는 없었다. 이미 상대가 누구인지 다들 알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허리가 욱신거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하후극은 재빠르게 일어서서는 허리까지 숙이며 포권을 건네었다.

“감사합니다!”

소소는 연신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재밌기도 했으며,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니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이곳을 향해 경공을 펼치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의병대의 부장인 송겸이었다.

“장군, 관군의 정찰병에게 정보를 받았습니다. 마양촌으로 접근하는 약탈부대가 있으니, 주민들의 대피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소소는 두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누가요?”

“장양 장군께서 부탁한 일입니다.”

장양이란 말에 소소의 귀가 쫑긋했다.

“그럼 할아버지를 도와야죠!”

“예.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웅, 알았어!”

“바로 출발하겠습니까?”

“응!”

송겸이 뒤돌아 소리쳤다.

“출격 지시가 떨어졌다!”

삼백여 명의 의병들이 늘어서서 대열을 갖췄다. 첫 번째 임무였다. 무예를 단련하고 있는 호전적인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제가 앞장…….”

송겸은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눈앞의 장군이 양팔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안아달라는 듯한 몸짓이었다.

“장군께서 대인마차가 필요하시다고 하신다!”

십여 명의 무림인들이 자진해서 나섰다. 그들이 쪼그리고 앉자, 소소는 고민에 빠졌다. 역시 마차는 가장 큰 것이 승차감이 좋은 법이다.

소소는 체구가 가장 큰 무림인의 등에 업히며 말했다.

“헤헤. 고맙습니다~.”

“목적지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마양촌은 이곳에서 삼십여 리가 떨어진 곳이다. 그들은 대열을 형성하며 마양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갔다.

그러기를 한 식경. 서서히 마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 어귀에 늘어선 의병대는 바로 진입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반각이 지난 후 종남파 출신의 무현 부장이 말했다.

“한발 늦은 것 같습니다. 저쪽에 접근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백여 장이 떨어진 갈대숲이었다. 일장까지 높게 자란 갈대가 빽빽했다.

바람은 불지 않는데 갈대가 쉬지 않고 휘날리고 있으니, 약탈부대가 저곳에 은신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주민들이 도망치기 전에 은밀히 기습할 심산인 듯했다.

의병대의 참모 양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을 주민들을 돕자면 전투가 불가피합니다. 병력은 얼추 우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등 뒤에서 뛰어내린 소소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악당들이에요?”

“백성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천하에 죽일 놈들입니다.”

소소는 눈빛을 빛내며 약탈부대의 행동을 주시했다. 이곳까지 느껴지는 살기(殺氣). 한눈에 보아도 몹쓸 짓을 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쁜 짓을 하기 전에 때려줘야 하는 거죠?”

송겸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장군. 모조리 때려 죽여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소소는 허리춤에서 소검(小劍)을 뽑아 들었다. 날이 없는 뭉툭한 검이었다.

그때 한 명의 병사가 검을 움켜쥔 채 갈대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의 목표는 근처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가 무기를 치켜든 순간, 소소가 쌍심지를 켜고 질주를 개시했다. 짧은 다리로 재빠르게 펼치는 경공은 마치 지면을 미끄러지는 듯했다.

눈 깜짝할 사이 병사 앞에 도착한 소소는 뭉툭한 검날로 그의 손목을 강타했다.

“나쁜 손 치워요!”

빠악-!

손목이 꺾이며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끄악!”

이윽고 곡선을 그리는 소검의 날은 병사의 종아리를 거침없이 타격했다.

뻐억-!

“크아아악!”

병사가 고꾸라지며 바닥을 뒹굴 무렵. 이미 소소는 갈대숲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홀로 적진을 향해 용맹하게 나아가는 장군의 모습에 의병들은 용기를 얻었다.

“모두 장군을 따르라! 지금부터 우리 의병대의 무서움을 보여줄 것이다!”

송겸과 무현이 가장 앞장서서 소소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광란의 응징이 시작되고 있었다. 갈대가 흔들리며 둔탁한 타격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빠악-! 뻑-! 뻐버벅-!

“크아악!”

“크억!”

갈대들을 비집고 처절한 비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무림으로 따지면 고작 삼류의 수준에 불과한 병사들이었다. 결코,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소소의 뭉툭한 검에는 살의(殺意)가 담겨있지 않았다. 대신 내력이 가득 담겨있을 뿐이었다. 소검에 적중당한 병사들은 단번에 전투불능에 빠지며 입가로 거품을 물었다.

가공스러운 소소의 무위에, 뒤따르던 의병들은 전율에 휩싸였다.

“역시 우리 장군님이시다!”

“모두 힘을 보태라!”

갑작스러운 의병대의 난입에 휘나라의 약탈부대는 혼비백산했다.

이미 소소가 등장한 이후부터 사기가 꺾여버린 상태였다. 병사들은 변변히 맞서보지도 않고 의병들의 일격을 맞고 쓰러지기 일쑤였다.

소소의 검에 쓰러진 병사 중 죽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그들은 뒤따르는 의병들의 손에 의해 고혼으로 변해갔다. 겁에 질린 병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 후퇴하라!”

“이곳을 벗어난다!”

병사들이 숲을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순순히 보내줄 의병들이 아니었다. 첫 번째 전투였으며, 하나같이 의욕이 넘쳤다.

“모두 잡아!!!”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의병들은 눈에 불을 켜고 미친 듯이 뒤쫓으며, 병사들의 등짝에 사정없이 검을 내질렀다.

푸욱-! 촤악-!

“크윽!”

“크아악!”

전투는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일다경이 지난 후. 마양촌의 입구로 의병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그들은 시체를 한곳에 모아놓고 품속을 뒤졌다.

참모 양흥이 의병들을 향해 연신 소리쳤다.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이곳으로 모아오시오!”

이들의 행동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의병대는 국가에서 녹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자급자족을 위한 필수행위였다. 귀중품들과 다량의 은자까지. 의외로 전리품이 괜찮았다.

어느새 촌락의 주민들이 죄다 몰려들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병대의 결성은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젊은 여인 한 명이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왕춘 아저씨!”

의병 중 누군가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나이가 지긋한 노장이었다. 그는 퇴역병사로, 십여 년 전부터 줄곧 이 마을에서 생활해왔다.

“아진이 아니냐? 왜 아직도 대피를 안 가고 있는 게냐?”

“에이, 아저씨도 참! 우리한테는 이 마을이 전부인데 어디로 가요? 정착할 자금 한 푼 없이 떠나면 바로 굶어 죽어요.”

“허허…….”

마을 사람들이 왕춘을 향해 연신 인사를 건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병들은 하나같이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양흥이 소소에게 다가가 물었다.

“장군, 전리품은 어찌 처분할까요?”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같이 나눠 가져요!”

반대하는 의병은 하나도 없었다. 휘나라에 대항하여 터전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자원한 의병들이었니.

소소는 양손으로 한 움큼의 전리품을 움켜쥐고는 주민들에게 건네어갔다. 문제는 그것이 무려 전체의 팔 할이었다는 것이다. 잠시 당황하던 의병들이 호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역시 배포가 크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촌민들에게는 매우 큰 돈이었다. 일확천금은 아닐지언정, 주민들의 피난 자금으로는 충분했다. 나이든 중년의 여인이 당황하며 머뭇거렸다.

“아가야, 우리가 이걸 어떻게…….”

그때 송겸 부장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겉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예를 갖춰 받으십시오. 이분이 바로 의병대를 이끄는 소소 장군이십니다.”

촌민들은 어리둥절했다. 고작 허리춤 밖에 안 되는 예쁘장한 아이가 의병장이라니. 어쨌거나 의병들의 표정이 워낙 진지했기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예…….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덕분에 저희도 이 마을을 떠날 수 있습니다.”

주민들이 연신 고마워하자 소소는 기분이 좋아졌다. 마을의 주민들을 돕는 일이 재밌어졌다.

“헤헤. 다음은 어디예요?”

참모 양흥이 재빠르게 다가오며 답했다.

“이 마을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으면, 관군이 다음 목적지를 알려준다고 하였습니다.”

소소는 대기해야 한다는 말에 금세 시무룩해졌다.

“히잉…….”

그때 나이 든 노인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

“대피할 수 있는 자금을 이렇게 나눠주셨으니, 저희는 오늘 밤 떠날 것입니다. 그 전에 대협들께 따듯한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자 하오니 사양하지 말아 주십시오.”

순식간에 소소의 얼굴이 해맑게 변했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히히. 히히히. 감사합니다~.”

* * *

한중의 군단은 화평읍에서 다시 삼십 리가 떨어진 후방으로 이동했다.

태백산(太白山). 높이로만 따진다면 중원 제일로 손꼽히는 명산 중 하나이다. 이 태백산의 산어귀에 한중의 군단이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곳에 진을 친 이유는 미현(眉縣)에서 한중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양쪽으로는 산맥의 곡벽이 급경사를 이루어 협곡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들은 삼 일간 이곳에서 대기하며 정찰 활동에 매진했다.

그리고 진지의 중앙에 설치된 야전지휘소에는 지금 곽철 부장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장군, 의병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며칠 사이에 세 개의 약탈부대를 격파하고, 인근 마을의 피난민들을 모두 무사히 대피시켰습니다.”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말 다행일세. 우리가 이곳에 발이 묶여 있으니, 지금은 의병들을 믿을 수밖에 없네. 정찰병들이 수집한 정보는 빠짐없이 그들에 전달해주시게.”

곽철 부장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예, 장군.”

“현재 의병대의 규모가 얼마나 된다던가?”

“처음엔 이백여 명으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곱절을 넘어섰습니다. 게다가 그들 개개인의 무예가 우리의 정규군에 비교될 정도입니다.”

한중의 병사들은 모두 무공을 수련하는 강군이다.

의병대가 이들의 실력에 비교된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전력임을 의미한다. 다만 전술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의병장의 역량에 따라 전투력이 달라질 수 있다.

“허허……. 믿음직하구만. 의병장의 이름이 소소라고 하였지?”

“예. 알아낸 정보로는 여장군인데 용맹함이 맹수처럼 강대하여, 소호(小虎)라는 별호가 붙었다고 합니다.”

“작은 호랑이라……. 호전적인 의병들을 통솔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여장부가 대단하지 않은가.”

“의병들이 신처럼 믿고 따른다고 합니다. 우리의 정찰병조차 감히 접근이 허락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허허허. 여유가 생기면 꼭 한 번 만남을 주선해 주시게.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서 그분하고 같이 논의를 좀 해봐야겠네.”

“알겠습니다,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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