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태백산 협곡 전투 (1)
(63/250)
63화 태백산 협곡 전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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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태백산 협곡 전투 (1)
2022.04.04.
“장군, 적의 본진이 십 리 앞까지 당도하였습니다!”
야전지휘소의 상석에 자리한 장양이 전술지도를 점검하며 물었다.
“곧 있으면 도착하겠군. 적들의 군세가 얼마나 되는가?”
“족히 십만이 넘는 규모입니다.”
군단의 총 병력은 일만 오천이다. 그중 이천을 한중의 수비대로 남겨두었고, 천여 명이 정찰 활동에 동원되고 있었다.
싸울 수 있는 전력은 일만 이천. 적의 군세가 십만이라 하니, 병력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었기에, 놀라는 인물은 없었다.
“적들의 수가 우리의 열 배에 가깝지만, 이곳은 폭이 좁은 협곡이기에 능히 버틸 수 있을 것이네.”
양연정 부관이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버텨야 합니까?”
“마음 같아선 모든 백성이 안전히 대피할 수 있도록 닷새 이상 시간을 끌어주고 싶네. 하지만 고작 하루 정도가 한계겠지. 첨병들을 모두 후방의 마을들로 보내어, 아직 남아있는 주민들의 피난을 독려해주시게.”
“예, 장군.”
장양이 지휘기를 움켜쥐며 일어섰다.
“자, 그럼 모두 준비하세. 이번 전투는 내가 직접 지휘하겠네.”
“알겠습니다, 장군.”
장양의 시선이 소무를 향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랑아대가 너무 어려운 임무를 맡았네. 정말 이 전술이 가능하겠는가?”
“군단의 특공대를 믿으십시오. 이곳은 폭이 좁아 적들에게 포위되지 않으니 문제없습니다.”
소무의 어깨를 다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령이니 절대 쓰러지지 말고 끝까지 버텨내시게.”
“알겠습니다.”
소무는 대원들을 인솔하여 진형의 선두로 나아갔다.
흑갑으로 무장한 랑아대는 모두 방패를 하나씩 움켜쥐고서 일자진(一字陣)을 형성하여 길게 늘어섰다.
고작 백여 명으로 협곡의 길목을 틀어막은 것이다. 대원들의 사이사이로는 도합 이백여 자루의 투창이 땅속 깊이 꽂혀있었다.
랑아대의 십여 장 뒤로는 천여 명의 창병들이 밀집하여 창진(槍進)을 준비했다.
창병대에서 정예들로만 차출된 이들은 양연정 부장이 이끌고 있었다. 창병들의 뒤로는 진립 부장이 이끄는 이천여 명의 궁수들이 자리를 지켰다.
말을 타고 지휘기를 움켜쥔 장양은 궁병대와 창병대의 틈새에 있었다. 나머지 병사들은 후미의 본진에서 대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찰병이 빠르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적들이 당도하였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지 않은 곳에서 적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면을 빼곡히 메우며 등장하는 그들의 군세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위압감에 아군의 진영이 정적에 휩싸였다.
병사들이 동요할 조짐을 보이자 장양이 지휘기를 높이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동요하지 마라!!! 이곳이라면 적들의 규모가 백만이라도 우리는 막아낼 수 있다!!!”
병사들의 눈빛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연승의 기록으로 사기가 충만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숨 돌린 장양은 다시 전면을 바라보았다.
적군은 아군과 백여 장의 거리를 앞두고 대열을 형성하고 있었다. 십만 군세가 한 번에 협곡으로 밀고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두에 테무르라고 알려진 사령관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색 휘장이 장식된 투구를 눌러쓴 그는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사령관을 호위하듯 뒤쪽으로 늘어선 천여 명의 병사들이 눈에 띄었다.
피처럼 붉은 갑주를 두른 그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일당백의 전사들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고 알려진 살라타이였다.
잠시 후 삼천여 기의 기병들이 진형의 선두로 이동했다. 협곡의 길목을 단번에 돌파하여 뚫어낼 심산인 듯했다.
“대열을 정비하라!!!”
소무의 외침과 함께 대원들이 방패를 움켜쥐며 자세를 잡았다.
척-! 처처척-!
전면에 보이는 군마들은 어느새 말발굽을 구르며 돌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마대의 선두에는 황금빛 갑주를 두른 장수의 모습이 보였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기마 장수가 돌격 신호를 내리며 움직임을 개시했다. 그의 뒤를 따라 기병들이 대열을 형성하여 협곡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말발굽 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질주하는 기병들. 그 모습을 전면에서 바라보는 대원들은 본능적으로 아찔함을 느껴야만 했다.
“투창 조준!!!”
랑아대원들은 동시에 투창을 지면에서 하나씩 뽑아 들었다. 왼손에는 방패를, 오른손에는 투창을 옴켜쥐고 어깨 위로 치켜세웠다. 모두가 투창에 내력을 불어넣는 한편, 소무의 명령을 기다렸다.
기마대와 랑아대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들었다. 그리고 그 거리가 이십 장 이내로 가까워진 순간, 소무가 움켜쥔 투창의 끝이 붉은 기류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십여 장 이내로 좁혀지자 그의 입에서 기성이 뿜어져 나왔다.
“투척!!!”
화살이 쏘아지듯 소무의 어깨가 섬전처럼 움직임을 발했다. 손아귀에서 벗어난 투창은 바람을 찢어발기며, 기마 장수를 향해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쐐에에에엑-!!!
선두에서 내달리던 장수는 경악했다. 도저히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던 대부를 비틀었다. 대부의 넓적한 면이 드러나며 앞가슴을 방어했다.
쿠웅-!
두꺼운 대부의 날에 구멍이 뚫리는 소리였다. 내력까지 불어넣었음에도 창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강기를 머금은 투창이 그의 갑주를 사정없이 뚫어 재껴버렸다.
푸우우욱-!
“커억…….”
선봉장이 적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어이없이 낙마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기마부대는 사기가 한풀 꺾였음에도 돌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훈련의 강도가 대단했다.
곧이어 날아든 백여 자루의 투창이 기수들에게 사정없이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푸욱-! 푸우욱-!
“크헉!”
“컥!”
백여 명의 기수들이 쓰러졌지만, 전체의 숫자에 비교하면 흠집을 낸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였다.
“궁수 발사!!!”
진립 부장의 명령과 함께 후미에 자리한 궁수들이 하늘을 향해 시위를 놓았다.
파파파파팟-!!!
곡선을 그리는 이천여 발의 화살은 아군의 머리 위를 넘어 기병들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푸욱-! 푸푸푹-!!
“끄윽!”
“크아악!”
또다시 수백 명의 기병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 순간 소무가 투창을 한 자루 더 뽑아 들며 명령을 내렸다.
“창벽(槍壁)!!!”
밀집한 랑아대원들은 방패의 틈새로 투창을 고정했다.
처척-! 처처처척-!
투창의 끝부분은 지면에 맞닿게 했고, 치켜 올려진 창날은 전면을 향했다. 이제는 기마부대와의 충돌을 대비할 시점이었다.
랑아대원들에게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상장군 유광세가 이끄는 연합군단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으며, 그때보다 무공 수준도 높아졌다.
방패 벽의 뒤에서 대원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와라!!!”
“들어와 봐!!!”
아직도 이천 명이 넘는 기병들이 맹렬한 기세로 협곡을 내달리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압도적이었지만, 기수들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기마부대의 돌진 앞에 보병들은 주춤하거나 당황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백여 명의 보병은 조금의 흔들림조차도 없었다.
잠시 후 기마부대가 랑아대의 창벽과 충돌했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푸-! 푸욱-!!!
쾅-! 콰콰쾅-!!!
선두에서 내달리는 기병들은 투창에 찔리거나, 방패에 부딪히며 사정없이 고꾸라져갔다. 그 모습이 마치 자살하기 위해 바위에 부딪히고 있는 것 같았다.
사태가 이쯤 되자 장교급의 기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뛰어넘어!!!”
뒤따라 내달리던 기병들은 랑아대를 무시한 채 창벽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마부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전면을 향해 내뻗어진 천여 자루의 장창이었다. 랑아대의 십여 장 뒤에 대기하고 있던 창병들이었다.
완벽한 창진의 형태였다. 앞 열은 최대한 낮게 앉아 장창을 내뻗고 있었으며, 두 번째 열은 웅크리고 좀 더 높은 자세를 유지했다.
세 번째 열은 허리춤에, 그리고 네 번째 열은 앞 열의 어깨 위에. 맨 뒤는 창끝이 대각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했다. 창진의 뒤에 자리하고 있던 병사들은 밀려나지 않도록 창 자루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헉!”
“이런 미친…….”
기수들의 눈빛에 후회가 가득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푸욱-! 푸푹-! 푸푸푹-!
“크아악!”
“끄억!”
기병들의 모습은 고슴도치의 가시를 향해 달려드는 쥐 떼처럼 보였다. 고통에 찬 말과 기수들의 비명이 협곡을 뒤흔들었다.
선봉으로 돌진해온 기마대는 순식간에 전멸해갔다.
선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무는 더 이상 기병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적군의 본진을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사령관의 뒤에 기립하고 있는 천여 명의 붉은 전사들이었다.
‘백양현에서 봤던 살라타이 부대로군. 개개인의 실력은 랑아대가 압도적이지만, 포위당한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 이 좁은 협곡이야말로 저들을 섬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소무는 사령관이 살라타이를 내보내길 원했다. 포위당할 우려가 없는 이곳이라면 랑아대가 저들에게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화근의 불씨를 미리 제거해두고 싶었다.
그러나 테무르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살라타이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삼만이 넘는 보병들을 앞으로 내보냈다. 압도적인 병력을 협곡에 때려 박아 힘으로 뚫어버릴 심산인 듯했다.
‘아까운 정예부대로 모험을 하지 않겠다는 속셈이군. 우리가 지친 이후에 살라타이를 투입할 참인가?’
아무래도 관계는 없었다. 아군 또한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으니.
삼만 군세의 보병이 먼지를 뿜어내며 협곡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이끄는 장수는 위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기마 장수가 어이없게 죽은 것을 보고 후미로 이동한 듯했다.
그때 아군 진영의 중심에서 장양이 지휘기를 움직이며 소리쳤다.
“창병대 후미로!!!”
길목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옆으로 걷어내고 있던 창병들은 장양의 지시에 행동을 멈추고는 재빨리 물러섰다.
그러자 협곡의 길목에는 오직 백 명의 랑아대와 이천 명의 궁수들만 남게 되었다.
아무리 랑아대가 날고 긴다고 한들, 이들만으로 삼만에 이르는 군세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슨 심산인지 모르는 휘나라의 지휘관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때 소무가 대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랑아대 오 보 후퇴!”
대원들이 후방으로 몇 걸음을 물러섰다. 앞서 쓰러진 기병들의 시체가 나름대로 방어벽의 역할을 해주어, 적군의 돌진 속도를 늦춰줄 것이었다.
전면에서 대기하는 보병들과의 거리가 삼십여 장 이내로 가까워졌다. 저마다 검과 대부, 그리고 장창들을 움켜쥐고 있었다.
보병들은 점차 보폭을 빨리하며 질주를 가속했다. 움직임에서는 무공을 익힌 티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맞서왔던 휘나라의 병사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렇다고 물러설 랑아대가 아니었다.
“투창 투척!!!”
대원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백여 자루의 투창이 하늘을 날아올랐다.
푸푹-! 푸푸푹-!
백여 명의 병사들이 쓰러졌지만, 전체적인 숫자는 조금도 줄어 보이지 않았다.
후방의 궁수들이 지원사격을 개시하며, 적들의 진격을 저지했다. 화살이 날아오르는 가운데, 소무가 홀로 세 보를 전진하며 거센 기성을 뿜어냈다.
“전투 준비!!!”
대원들의 손이 동시에 움직이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차차차창-!
휘나라의 보병들은 밀물이 들어오듯 협곡을 빼곡히 메우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방패 위에 검날을 고정한 랑아대는 맹수의 눈빛으로 충돌을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