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태백산 협곡 전투 (2) (64/250)


64화 태백산 협곡 전투 (2)
2022.04.05.


삼만에 이르는 군세를 고작 백여 명의 랑아대가 맞서 버티고 있었다. 협곡이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대원들은 왼손의 방패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적군과 힘 싸움을 계속했다. 방패를 비집고 적들의 무기가 계속 들어오고 있기에 오른손도 바삐 움직여야 했다.

쿵-! 쿠쿠쿵-!

방패에 병장기들이 연달아 부딪치는 소리였다. 대원들이 서로를 독려하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

“무조건 버텨!!!”

후방의 궁수들은 뭘 하는지 한참 전부터 지원사격이 없었다.

소무가 잠시 뒤를 돌아보니, 궁수들은 이미 협곡의 양쪽으로 대열을 갖추어 후퇴하고 있었다. 장양 장군 혼자 쓸쓸히 지휘기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오직 랑아대만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상태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대원들의 내력이 소진되기라도 하면 끝장이었다.

랑아대의 중심에 있던 소무가 있는 힘껏 기성을 뿜어냈다.

“맹타(猛打)!!!”

협곡에 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대원들의 방패가 빠르게 움직였다. 왼손에 붙들린 방패가 좌측으로 휘둘러지며, 전면에 자리한 병사들을 사정없이 후려쳐갔다.

콰앙-! 콰콰쾅-!

수백여 명의 적들이 방패에 맞아 뒷걸음질 치거나 쓰러졌다. 대신 방패로 가려져 있던 대원들의 앞가슴이 훤하게 드러났다. 그 틈을 노리고 또 다른 적병들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그때 다시 한번 소무의 외침이 뿜어져 나왔다.

“충검(衝劍)!!!”

검기를 머금은 백여 자루의 검 끝이 전면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푸욱-! 푸푸푹-!!!

“크윽!”

“컥!”

선두의 적들이 쓰러짐과 동시에 소무가 방패를 전면으로 내뻗으며 소리쳤다.

“전격(前擊)!!!”

수없이 반복해온 훈련이었다. 대원들은 방패와 두 다리에 내력을 집중하고는 내달리듯 전진했다.

“밀어붙여!!!”

콰앙-!!! 콰콰쾅-!!!

랑아대의 맹렬한 기세에 협곡을 가득 메운 적병들이 뒷걸음질 쳤다. 시신이나 말의 사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참격(慘擊)!!!”

방패를 내민 채 대원들의 자세가 동시에 낮춰졌다. 백여 자루의 검 끝이 아래로 향하며 넘어져 있는 적들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푸욱-! 푸푸푹-!!!

“컥!”

“끄윽!”

그때였다. 돌연 랑아대의 후미에서 말발굽 소리가 거세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무의 고개가 순간적으로 뒤를 향했다. 미친 듯이 협곡을 질주해오고 있는 삼백여 기의 기병들이 보였다. 장창을 길게 내뻗은 채 질주하는 아군의 기마대는 모든 것을 박살 내버릴 태세였다.

“지금이다!!!”

소무의 신호와 함께 대원들이 좌우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른 그들은 곡벽에 검을 꽂아 넣고 버텼다. 마치 암벽을 등반하기 위해 매달린 듯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랑아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아군의 기병들이 충격돌파를 시작했다.

콰앙-! 콰콰쾅-!!!

무방비 상태에서 기병의 돌진을 마주한 보병들은 혼비백산했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크아악!”

“커억!”

말 머리에 부딪히고, 장창에 꿰뚫린 적병의 수가 오백여 명을 웃돌았다.

군마들이 속도를 잃자 기수들이 다시 말 머리를 돌리려 했다. 적병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군의 기마대를 보호한다!!!”

벽면에서 날아오른 소무의 신형이 기병들의 후미로 착지했다. 그의 신형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며 다가오는 적병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대원들도 기병들의 후퇴를 돕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촤아악-! 푸욱-!

“크윽!”

“컥!”

가까스로 말머리를 돌린 기수들은 왼쪽 곡벽으로 붙어 신속히 후퇴했다. 그러나 기마부대의 활약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또다시 삼백여 기의 기병이 우측 곡벽에 붙어서 다가오고 있었다. 교대하며 연달아 돌진해오는 기병들의 공격에 휘나라의 보병들은 절망에 빠졌다.

기병들의 공격은 무려 다섯 차례나 반복되었다. 랑아대의 방해 공작에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적들의 대열이 흔들렸다. 한 장수의 짜증 섞인 명령이 협곡을 울렸다.

“모두 물러서!!!”

전방에 있던 병사들이 물러서고, 창병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장양이 지휘기를 다시 흔들었다. 아군의 기병이 모두 후퇴하고, 후미에서 검병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진철 부장을 필두로 수천여 명의 검병들이 협곡을 내달렸다.

“모두 쓸어버려!!!”

“우리가 바로 한중의 검병대다!!!”

아군의 사기가 대단했다.

소무의 시선은 장양의 지휘기를 향해 있었다. 랑아대에도 후퇴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상병을 업고 물러난다!”

부상병이라고 해야 수십여 명의 기수들이 전부였다. 대원들은 부상병들을 어깨 위에 들쳐메고 후방으로 물러섰다. 검병대와 교대하기 위함이었다.

장양 장군과 소무의 눈이 마주쳤다.

“랑아대는 후미에서 운기조식을 하고 체력을 보충하시게.”

“저는 괜찮습니다만, 대원들은 조금 쉬게 하겠습니다.”

길게 얘기할 틈이 없었다. 장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원들은 명령에 따라 후미의 의료부대가 있는 곳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소무의 고개가 전방을 향했다. 아군의 검병대와 휘나라의 창병대가 맞물리며 접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협곡을 가득 메운 병사들은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죽기 살기로 맞섰다.

그의 시선이 곧이어 창병대를 이끄는 장수를 찾아냈다. 그자의 무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한 호흡에 두세 명씩 아군의 병사를 쓰러트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검을 움켜쥔 소무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꾸욱-!

그 순간 그의 신형이 움직임을 개시했다.

섬전처럼 내달리던 그는 병사들의 어깨 위를 밟고 도약하며, 곡벽을 타고 옆으로 질주했다.

그의 위치가 전장의 중심에 이르는 순간, 다시 한번 곡벽을 차고 날아올랐다. 매처럼 날아 순식간에 적진의 한가운데에 착지했다. 창병대의 장수가 있는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소무의 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 그의 전신에서 무형의 강기가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아악-!!!

전신의 경기를 체외로 분출시켜 상대를 격살하는 반탄강기(返彈罡氣)였다.

콰쾅-!!!

주변에 자리한 적들이 사정없이 뒷걸음질하며 신음을 토해냈다.

“헉!”

“크윽!”

눈 깜짝할 사이 적진의 한가운데 작은 공터가 생겨났다. 그곳에는 반탄강기를 버텨낸 창병대의 장수만이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소무와 마주쳤다. 잠시 후 둘의 신형이 맞물리며, 장수들 간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 * *

마양촌은 의병대의 임시 근거지가 되었다. 주민들은 모두 피난을 떠났고, 곳곳에는 의병들이 대신 포진해 있었다.

어느새 의병대의 숫자는 오백여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무인들이 계속해서 합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길목에는 목책과 임시 망루까지도 보였다. 관군에 비교한다면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의병대의 전력은 분명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가장 크고 깨끗한 민가의 앞으로 두 명의 의병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무현 부장이 다가가서 물었다.

“장군께서 일어나셨는가?”

“아직 한참 주무십니다.”

무현의 시선이 은연중 하늘을 향했다. 해가 중천이었다.

“하긴……. 어제 장군께서 전투불능으로 만든 적병의 수를 생각해보면 피로하실 만도 하겠지. 논의할 일이 있으니 내가 한 번 깨워보겠네.”

“예 부장님.”

두 명의 의병이 자리를 비켜주자 무현이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장군, 무현 부장입니다.”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귀를 대어보니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무현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대자로 뻗어있는 소소 장군의 모습이 보였다.

“장군!”

인기척에 소소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응?”

“잠시 지휘소로 같이 가주실 수 있는지요? 논의할 일이 있습니다.”

“하아~~~.”

앉아서 하품을 내쉰 소소는 양팔을 쭉 내뻗었다.

“안아줘요~.”

잠시 망설이던 무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 보니 장군께서는 불필요하게 걷는 걸 싫어하셨지. 조만간 전용 대인마차를 준비해야겠군.’

무현은 조심스럽게 소소를 안아 들었다.

그의 발걸음은 의병대의 야전지휘소로 향했다. 어느새 의병대의 간부급 인사들이 모여있었다.

“장군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립했다. 무현의 품에서 내린 소소는 비어있는 의자에 올라타서 앉았다. 다리가 짧아 발이 지면에 닿지 않았다. 그러자 송겸이 뒤쪽에 있는 의병에게 말했다.

“장군을 위한 전용 의자를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나.”

“예, 인근 사냥꾼에게 노획한 무기 중 일부를 내어주고 호피 가죽 한 장을 얻었습니다. 지금 제작하고 있으니, 아마도 잠시 후면 준비될 것입니다.”

“알겠네.”

의병대의 지휘소는 꽤 그럴싸한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갖가지 집기류는 물론이거니와 전술지도까지 갖춰져 있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간부들이 전술을 짜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훌륭한 전술가는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를 통해서만 탄생한다. 참모인 양흥조차 어깨너머로 몇 번 배워본 것이 고작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양흥이 탁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 전술지도를 살펴봐 주십시오.”

태백산 일대를 축소해놓은 지도에 작은 깃발이 곳곳에 꽂혀있었다. 관군이 보내준 정보들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깃발들이 밀집해 있는 곳을 향했다.

“이곳이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수적으로만 봐도 우리의 관군이 압도적으로 열세입니다.”

송겸이 지도를 살펴보다가 물었다.

“관군은 우리에게 몸을 사리고 대기하라 당부하였지만,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길목이 좁아 우리가 관군에 합류할 틈이 없습니다.”

“그럼 적진의 후미를 기습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양흥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적들의 군세가 십만이 넘습니다. 고작 이 숫자로 기습하면 우리는 바로 전멸입니다.”

“후. 지금은 그냥 관군을 응원하며 대기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무심코 지켜보던 무현 부장이 소소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군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소소는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때 전술지도 위에 푸르스름한 돌멩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깃발들이 밀집해 있는 위치에서 한참이나 뒤쪽이었다.

“저건 뭐예요?”

“이곳은 토성으로 만들어진 적들의 보급기지입니다. 장안성에서 오는 보급품이 이곳에 비축되고, 일정 간격으로 다시 전방의 군단으로 이동됩니다. 아마도 대부분이 식량일 것입니다.”

식량이란 말에 소소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먹은 게 없어서 배가 몹시 고픈 상태였다.

“식량이요? 그럼 우리 이거 뺏어 먹을래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간부들은 말문을 닫은 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기를 잠시 후. 돌연 양흥이 손뼉을 부딪치며 탄성을 내뱉었다.

“최고의 묘책입니다! 본진이 전투 중이기에 후방의 보급기지에는 병력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곳에 타격을 줄 수만 있다면, 군단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탈취까지 생각하셨다니…….”

무현과 송겸 부장의 얼굴이 반사적으로 소소를 향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소소는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보조개가 깊게 들어가는 모습이 머쓱한 듯했다.

“헤헤. 빨리 가요.”

송겸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휙 돌아가며 뒤에 있던 의병을 향했다. 의병대의 행정을 총괄하는 사마강이었다. 무림의 사마세가 출신으로, 송겸의 후배이기도 했다.

“장군께서 즉각 출진을 명령하셨다. 지금 즉시 모든 의병을 소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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