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태백산 협곡 전투 (3) (65/250)


65화 태백산 협곡 전투 (3)
2022.04.06.


의병대는 목표했던 보급기지에서 오십여 장이 떨어진 언덕 너머에 집결했다. 삼면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토성이었다.

“규모로 보아 병참의 양이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 옮기려면 쉽지 않을 텐데,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참모 양흥의 말에 간부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직접 와서 보니 보급기지의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났다. 송겸 부장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하나씩 들고 경공으로 나릅시다.”

“그렇게 해서는 끝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시간을 오래 지체하면 적들의 요격부대에 당할 우려도 있습니다. 최소한만 노획하고 나머지는 없애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막상 하나씩 들고 옮기려니 생각보다 골칫거리였다. 이들에게 좋은 묘책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땅콩 같은 손가락이 앞으로 내밀어지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모두가 소소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토성의 주변으로 흐르는 강물이었다. 그곳에는 여섯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우리 끝나고 저거 타고 갈래요?”

한 번도 배를 타본 적이 없던 소소였다. 막상 가까이서 보니 너무나도 타고 싶어졌다.

양흥이 자신의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역시 장군께서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요!?”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배를 타는 계획을 세웠어요.”

양흥이 놀랍다는 듯 연신 감탄하며 말했다.

“선박으로 노획한 물품을 옮기고 퇴로까지도 동시에 염두에 두셨다니……. 그야말로 최고의 묘책입니다.”

무현 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리 의병대에 해군 출신 병사들이 몇 명 있으니, 항해도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표정이 밝아진 양흥이 토성을 훑어보며 말했다.

“노획과 퇴각의 방법은 찾았으니, 이제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문제로군요. 적들의 방비가 생각보다 잘 갖춰져 있습니다.”

송겸이 성벽 위를 가리키며 답했다.

“토성의 성벽 위로 적들의 경계가 삼엄합니다. 이 정도면 병력이 우리보다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어느 정도의 사상자는 각오해야 합니다.”

토성의 성벽을 정면에서 공격하자니 피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흥이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성문을 열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모두의 시선이 소소를 향했다. 자신들의 걱정과는 다르게 연신 싱글벙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배를 탄다는 말에 소소는 신이 나 있었다. 자신의 소원을 들어줬으니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히히. 문을 열면 되는 거예요? 제가 가서 열고 올게요!”

말을 마친 소소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에 의병대의 간부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신 감탄했다.

“역시, 대단한 기개이십니다.”

“행동에 망설임이 없으시다니……. 반로환동의 부작용이 좀 있으셔서 그렇지, 전성기에 대단하셨던 분이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장군께서 성문을 열면 바로 돌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십시오.”

의병들은 전투태세를 갖추는 한편, 모두가 긴장한 모습으로 소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편 성벽 위에서 경계하고 있는 휘나라의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쟤 뭐야?”

“꼬마가 여기를 왜?”

웬 여자아이가 양팔을 휘저으며, 토성을 향해 직진으로 다가오고 있다. 허리춤엔 장난감 같은 검까지 둘러매고 있었다. 경계감이 들기는커녕 웃기는 상황이었다.

“부모라도 죽었나? 미쳤나 본데?”

“예쁘장한 게 대장님의 시중으로 딱인 거 같아. 제 발로 찾아오다니.”

묵묵히 병사들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던 장교의 귀가 쫑긋했다. 보급기지의 지휘관에게 잘 보일 좋은 기회였다.

그의 고개가 성벽의 아래로 향했다.

“저 꼬마년 잡아 와!”

끼이이익-!

토성의 성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이들의 행동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성문에서 체구가 큰 병사 하나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소소의 걸음이 십여 장이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

병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가 무서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경공을 펼쳐 잡으면 되기에 도망가도 상관은 없었다. 단지 조금 귀찮아질 뿐.

“얌전히 와. 도망치면 처맞는다.”

약탈과 노략질로 단련된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어린아이라고 봐주는 경우가 없었다.

“안 도망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연신 두 눈을 끔뻑이며 묻는 모습이 진심으로 궁금한 듯 보였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간 병사는 한 손으로 소소의 뒤쪽 옷깃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이렇게 되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소소는 계속해서 조잘댔다.

“아저씨, 저 배 타봤어요? 재밌었어요?”

병사는 성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며 말했다.

“뭔 말이 이렇게 많아? 곧 대장님이 예뻐해 줄 테니까 그때까지 닥치고 있어.”

“아저씨들 나쁜 사람들 맞죠?”

“아주 좋은 사람이야.”

“힝. 미안해요, 아저씨~”

“무슨 소리야?”

“휴……. 일광 삼촌이 거짓말하는 나쁜 악당들은 꼭 두들겨주라고 했거든요.”

병사는 점점 인상이 구겨져 갔다.

“자꾸 짹짹대면 모가지를 그냥…….”

그때였다. 성문에 도착하자 소소가 해맑게 웃으며 소리쳤다.

“도착했다. 히히. 이제 내려줘요!”

“놀고 있네.”

그 순간 소소의 양손이 병사의 손목에 슬쩍 얹어졌다.

곧이어 아이의 작은 손이 마치 통나무를 쥐어짜듯 사정없이 비틀었다.

“끄허억!!!”

어깨째로 팔목이 우두둑 꺾인 병사는 고통에 눈이 뒤집혔다. 그 모습에 근처의 병사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떡하니 벌렸다.

팔목이 뒤틀린 병사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끄윽……. 그, 그냥 죽여!!!”

아이라고 봐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근처에 있던 한 병사가 성문의 중앙에 우뚝 선 아이를 향해 내달렸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

병사가 내지른 오른발이 곡선을 그리며 소소의 얼굴을 향해 다가갔다. 제대로 맞는다면 목뼈가 꺾일 수도 있을 만큼 강한 공격이었다. 그 대상이 일반인이었다면 말이다.

자세를 낮추자 병사의 오른발이 머리 위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나뭇가지같이 가냘픈 발이 거목을 때리듯 그의 왼쪽 무릎을 후려 찼다.

콰직-!!!

“끄아아아악!!!”

철퍼덕 넘어진 병사는 무릎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입에서는 거품과 함께 고함이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측면에서 안면을 노리고 또 하나의 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소소는 머리 위로 주먹을 내뻗으며 마주쳐갔다. 순간적으로 붉은 강기가 발현되며 주먹을 휘감았다.

파산권 삼 초식 일타섬격(一打閃激).

일광에게 배운 파산권 중 가장 극강의 속도를 자랑하는 초식이었다.

일개 병사에게 사용하기에는 너무 과한 초식이지만, 아이는 아직 적당히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마치 작은 돌멩이와 바위가 부딪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어진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콰앙-!!!

“크아아악!!!”

손뼈가 분쇄되며, 어깻죽지 뒤로 탈골된 어깨뼈가 살가죽을 뚫고 튀어나왔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켜보던 수백여 명의 병사들이 금붕어처럼 입을 연신 뻐금거렸다.

병사들은 무엇인가가 잘못되었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잠시 후 먼저 정신을 차린 몇몇 병사가 말까지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뭐, 뭐야?”

“이, 이 무슨 미친 상황이야?”

성벽의 위에서도 난리가 났다. 누군가가 뭔가가 기억났다는 듯 다급히 소리쳤다.

“소, 소호인 것 같습니다!”

작은 호랑이 소호(小虎). 최근 들어 휘나라의 병사들 사이에서 부쩍 유명해진 적장의 별호였다.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실제로 믿었던 자는 없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저, 저 악마 같은 년이 왜 이곳에…….”

아이는 어느새 허리춤에서 검까지 뽑아 들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장교급의 병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성문부터 빨리 닫아, 병신들아!!!”

병사들이 그걸 몰라서 안 닫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소호가 성문의 틈새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닫을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불길했던 느낌은 빗나가지 않았다. 멀지 않은 언덕에서 의병대가 모습을 드러내며 돌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장교는 다급해졌다.

“반로환동한 늙은 구렁이다!!! 겉모습에 속지 말고 한 번에 덮쳐!!!”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로 가공할 괴력을 뿜어내는 모습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병사 두 명이 검을 뽑아 들며 소소를 향해 내달렸다.

두 명의 병사가 검을 내지르는 순간, 소소가 지면을 박차며 회전했다. 그 모습이 폭풍우를 타고 승천하는 한 마리의 새끼용 같아 보였다.

소엽퇴법(掃葉腿法) 제 오초식 선풍회룡각(旋風廻龍脚).

두 자루의 검이 허공을 헤집는 순간, 회전하는 소소의 양발이 그들의 얼굴을 차례로 가격했다.

뻐벅-!!!

“크윽!”

“컥!”

일장 밖으로 튕겨나간 병사들은 힘이 빠진 듯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번에도 역시 단 한 방이었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성문 근처로 몰려들었지만 쉽게 다가서려는 자가 없었다.

“비켜!!!”

병사들을 헤집고 세 명의 장교가 나섰다. 갑주에 백호장을 상징하는 붉은 휘장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들의 검에서 동시에 검기(劍氣)가 타올랐다.

“날뛰는 것은 여기까지다.”

말과는 달리 백호장들은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상대의 소검에서도 유백색의 광채가 솟구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기. 그것도 완성된 형태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소소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가오지 마요!”

외마디 기성과 함께 개시하는 선공.

다가오지 말라면서 본인이 먼저 공격하다니. 백호장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방어 초식을 전개했다.

카카캉-! 카카카캉-!

네 개의 검기가 맞물리자 주변으로 눈부신 번갯불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세 명의 백호장이 함께 펼치는 합격술은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소무의 공격에 비교한다면, 이들의 공격은 정교하지 못했으며 굼벵이처럼 느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백호장들은 자세가 조금씩 무너져갔다.

어느 순간 그들의 동공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의병들이 이미 성문의 코앞까지 접근해왔기 때문이었다.

오백여 명에 이르는 그들은 사기충천(士氣衝天)하여 미친 듯이 내달렸다.

선두는 송겸과 무현이었다. 나란히 달리던 둘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약속이나 한 듯 좌우로 갈라지며, 소소의 측면을 지원했다.

백호장들의 얼굴에 절망의 표정이 떠올랐다. 소소 하나도 벅찬 마당에, 도저히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촤아악-! 푸욱-!

“크윽!”

“컥!”

송겸과 무현의 검이 두 명의 백호장을 일격에 양단했다.

홀로 남은 다른 한 명은 절망하며, 다가오는 소소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검기를 소멸시킨 뭉툭한 검 면이 자신의 얼굴을 후려치고 있었다.

빠악-!!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무렵. 토성의 성문으로 의병들이 사정없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모두 죽여주마!!!”

“내가 바로 하후세가의 하후극이다!!!”

“우리 화영문의 원수들, 오늘 끝장을 보자!!!”

의병들의 기세가 해일(海溢)과도 같이 맹렬하여, 마주하는 병사들은 뒷걸음질 치며 당황했다.

그때 송겸의 시선이 토성의 중심부로 향했다. 화려한 갑주로 무장한 장수 하나가 대부를 움켜쥐고 다가오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모습이 한눈에 보아도 이곳의 책임자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소소는 배를 탈 준비를 하기 위해 허리춤에 검을 꽂아 넣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배에 타고 있을 작정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송겸 부장이 다급히 말했다.

“장군, 저들의 대장을 부탁드립니다!”

무현도 부담스러웠는지 동조하며 말했다.

“저놈만 처치하면 이곳이 곧 와해될 것이니, 바로 약탈품을 배에 싣고 출발할 수 있습니다!”

소소는 눈이 번쩍 떠졌다.

“저 아저씨를 두들겨야 배 탈 수 있는 거예요?”

“예, 장군!”

마음이 다급해졌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흥분되었다. 지면을 박찬 소소는 다짜고짜 적장을 향해 날아갔다. 단 두 번의 도약으로 그의 앞에 내려설 수 있었다.

날렵한 움직임에 놀란 적장은 반사적으로 대부를 휘두르며 일격을 내질렀다.

콰앙-!

대부의 날이 지면을 찍고 깊숙이 파고드는 소리였다.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어디 갔어, 이 날다람쥐 같은 년!?”

그의 바로 등 뒤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얍얍!”

호두 같은 두 주먹이 마치 장난을 치듯 그의 허리를 마구 때리고 있었다.

퍼퍼퍽-!!!

“크윽!”

살살 맞은 것 같은데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욱신거렸다. 짜증이 솟구쳐올랐다. 날카로운 부기(斧氣)가 바람을 찢어발기며 뒤쪽을 향해 사정없이 휘둘러졌다.

부아아악-!!!

조금이라도 스친다면 사지가 절단될 정도로 매서운 일격이었다. 그러나 그가 목격한 것은 눈부실 정도로 밝게 빛났다가 사그라진 섬광뿐이었다.

소소는 어느새 삼 장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러더니 고양이처럼 혀를 낼름하며 웃어 보였다.

“히히. 못생긴 아저씨, 나 잡아봐요!”

적장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상대는 아직 무기도 뽑지 않고 있었다. 일평생 이렇게 농락당해본 적이 없었다.

“너 잡히면 죽는다!!!”

적장이 인상을 쓰자 소소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잉. 죄송합니다~”

“이, 이 미친…….”

휘나라의 장수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완전히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말문이 막혀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의 도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돌연 양손을 모은 소소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무림인들이 하는 포권지례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저는 소소예요! 한 수 청하겠습니다!”

“죽여버리겠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도발이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눈이 뒤집힌 적장은 방어를 도외시한 채 소소를 향해 내달렸다.

그 순간 허리춤의 소검을 뽑아 든 소소는 왼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허공을 한 번 휘저은 검 끝은 곧 직선으로 서서히 뻗어 나가며 검무를 그려나갔다. 백팔식광풍쾌검의 기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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