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하나가 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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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하나가 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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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하나가 되다 (2)
2022.04.09.
닷새가 지난 후 드디어 축국대회가 시작되었다. 드넓은 연병장을 일반인과 병사들이 가득 메우고 뜨거운 열기를 토해냈다.
곳곳에는 찻집과 노점상들이 자리하여 온갖 먹거리를 팔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군중들이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장 먼저 탈락한 것은 백성들로 조를 꾸린 양연정 부관과 기병들로 구성된 한백 부장의 조였다. 첨병대로 이루어진 백문휘 부장도 선전했지만, 군순포로 구성된 일광의 조에 패배했다.
보급병들로 꾸린 진립 부장의 조는 살왕의 활약으로 준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소무의 조와 붙어 한 끗 차이로 아쉽게 탈락했다.
어느덧 경기는 결승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소무 대장님, 꼭 이기세요!”
“군순포 힘내요!”
“일광 대협 이겨라!”
공은 양강이란 병사의 발아래 있었다. 몇 걸음을 내달린 그는 근처의 아군을 향해 걷어차며 소리쳤다.
뻐엉-!
“소무 대장님!!!”
가슴 위로 공을 받은 소무는 상대 진영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몸으로라도 막아!!!”
측면에서 일광이 따라붙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갈지(之)를 그리며 두 명의 포수를 손쉽게 따돌렸다.
소무는 본연의 힘에 극히 일부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름대로 경기에 재미가 붙었다.
순식간에 상대 진영의 십오 장 앞까지 돌파하는 것에 성공했다. 세 명의 포수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소무의 발이 조금 더 빨랐다. 오른발이 곡선을 그리며 공의 하단부를 강하게 강타했다.
뻐엉-!
날아오른 공은 상대 진영의 구멍을 향해 쏜살같이 다가갔다. 이 장 높이의 허공에 설치된 이 구멍은 풍류안(風流眼)이라고 부른다.
“아, 안 돼!!!”
“으악!!!”
포수들이 절규했다.
그때였다. 작은 그림자 하나가 전광석화처럼 경기장을 질주했다. 그러더니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허공으로 솟구쳐오르는 것이 아닌가.
풍류안의 문을 가로막은 자는 머리를 양쪽으로 묶은 여자아이였다.
“얍!”
소소가 머리로 공을 받아내자 군순포의 포수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아아아!”
“잘했어, 소소!!!”
공을 넘겨받은 일광이 거침없이 내달렸다. 병사들이 다급히 달려들었지만, 저도 모르게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체구가 황소처럼 돌진해오는 모습이 너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형님, 소무 대장님이 그쪽으로 갑니다!!!”
일광의 눈이 힐끔 좌측으로 향했다. 무서운 속도였다. 감히 따돌릴 엄두가 안 났다.
“개칠아!!!”
일광이 내지른 공이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군순포의 대장 황개칠이 나름대로 날렵하게 공을 받아냈지만,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좌우에서 두 명의 병사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세 걸음을 내디딘 그의 시선에, 우측으로 내달리는 소소가 보였다.
“소소야!!!”
뻐엉-!
공은 정확히 소소의 발아래에 무사히 도착했다. 작은 발이 움직이며 공을 머리 위로 튕겼다.
통-! 통-!
신이 나는지 머리 위로 공을 튕기면서 웃었다.
“헤헤. 이제 제 차례예요?”
소소의 이마가 공을 때린 것이 시작이었다. 짧은 다리가 움직이며 쏜살같이 질주를 개시했다.
한 명의 병사가 다급히 움직이며 아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인 소소는 공과 함께 미끄러지며 그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했다.
촤아아악-!
작은 체구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몇 걸음을 내달리던 소소는 재빨리 두리번거렸다. 근처에 아군이 보이지 않았다.
풍류안과의 거리 이십여 장. 다소 멀었지만, 이 정도면 한번 시도해볼 만했다.
“얍!”
전갈의 꼬리처럼 세워진 발이 거센 타격음을 뿜어냈다.
뻐어엉-!!!
어찌나 세게 찼는지 소소는 뒤로 한 바퀴를 회전하고 있었다.
하늘 높이 떠오르는 공을 막을 수 있는 능력자는 없었다. 한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어느새 나타난 소무가 지면을 도약하며 중간에서 공을 낚아채고야 말았다.
“흐잉.”
딸아이가 울상을 짓고 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승부는 냉정해야 하는 법.
반 시진이 지나도록 치열한 공방은 계속되고 있었다. 서로가 아직 한 점도 따내지 못했다. 사전에 정했던 경기 시간이 지났기에, 먼저 점수를 따내는 측이 승리하는 상황이었다.
소무가 공격을 개시하고부터 병사들의 응원이 거세졌다.
“소무 대장님만 믿습니다!!!”
“힘내세요!!!”
반면 백성들은 군순포를 응원하는 상황이었다. 소무의 오른발이 휘둘러지며, 풍류안 근처에 있는 아군 병사를 향해 공을 넘겼다.
“받아!”
딸아이의 공을 막았기 때문에 자신이 마지막을 장식하기가 부담스러웠다.
화문이라는 병사가 소무의 공을 넘겨받고는 있는 힘껏 걷어차 올렸다.
“이여업!”
뻐엉-!
모두가 긴장한 눈빛으로 풍류안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겨우 한 치의 차이로 구멍을 빗나가고야 말았다.
투웅-!
강하게 튕겨지는 공은 진영의 중심부까지 이르렀다. 그 순간 포수 한 명과 병사의 발이 동시에 움직이며 공 아래를 강하게 걷어찼다.
뻐엉-!!!
아래쪽에서 후려 맞은 공이 구름을 꿰뚫을 듯 끝도 없이 솟구쳐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달려온 소무도 함께 지면을 박차고 떠올랐다.
그때였다.
“일광 삼촌!!!”
뒤를 힐끔 돌아보자 소소가 죽기 살기로 내달려오고 있었다. 의미를 알아챈 일광은 하체를 살짝 낮추며 어깨를 내밀었다.
“너만 믿는다!!!”
섬전처럼 질주하던 아이의 발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그러더니 일광의 어깨를 다시 한번 짓밟고 광란의 도약을 시작했다.
“이얍!”
밑에서부터 쫓아오는 딸아이의 모습에 소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마주치자 소소는 씨익 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호두 같은 주먹을 움켜쥐는 것이 아닌가.
“파산권(破山拳)!!!”
‘헉!?’
조그만 주먹이 밝게 빛나며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기습을 가할 줄이야. 도무지 피할 수 없는 방위였다. 막거나 반격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찌 딸아이를 때릴 수 있겠는가.
양팔을 교차하며 충격을 대비했지만, 이어지는 공격은 없었다.
‘설마 허초였단 말인가?’
어느새 소소는 머리맡에서 짧은 다리로 있는 힘껏 공을 후리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막을 수도 있었지만,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꽈아아앙-!!!
소무는 피식하고 웃으며, 소소를 안아 들었다. 너무 높이 떠올랐기에 혹여 다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속이다니.”
“히히.”
부녀는 사이좋게 내려서며 공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꽈앙-!!!
풍류안의 일부가 꿰뚫리는 소리였다. 그러나 공이 통과 한 것도 확실했기에 득점 인정이 다소 애매한 상황이었다. 어차피 경기도 더는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양은 양쪽 깃발을 동시에 치켜세우며 공동 우승으로 마무리를 선언했다.
“우와아아!!!”
“와아아아아!!!”
백성들과 관군이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모두가 뜨거웠던 경기 장면에 감탄하며 갈채를 보태었다. 전쟁을 앞둔 도시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장양이 단상 위로 올라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그의 연설을 기다렸다.
“우승자들이 있고, 그러지 못한 자들도 있으나 그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가 되었고, 마음이 통하였는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백만 대군이 쳐들어올지라도 우리는 굳건히 막아낼 수 있다는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의 승리자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장양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성들과 관군의 환호성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들려온 어떠한 것보다 거대했고, 열광적이었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그때 행정관이 다가오며 물었다.
“장군, 거리의 부호들이 자금을 낼 터이니 오늘 이곳에서 잔치를 열어도 되냐고 물어왔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중의 사기가 끓어오르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제안이었다.
“암. 환영하네.”
* * *
군영의 연병장에서 열린 대잔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관군과 백성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가족들과 조우한 병사들이 상당히 많았다.
소무도 사복으로 갈아입은 채, 딸아이를 목말 태우고는 곳곳을 배회했다. 자신을 알아보는 병사마다 기립하여 존경의 눈빛을 건네고 있었다.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느라 피곤할 정도였다.
“저는 검병대의 진철이라고 합니다. 대장님을 꼭 한번 가까이서 뵙고 싶었습니다.”
“기마대의 단규입니다.”
“음. 수고들 해.”
몇 걸음을 더 걸으니 낯익은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소소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그곳을 향했다.
“저기 철두 삼촌이에요!”
잔디에 앉아 할머니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철두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까지 찾아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을 터인데.’
소무는 노인의 기운을 감지해봤다. 맥박이 예전보다 더욱 약해져 있었다. 이대로면 반년도 못 버틸 정도로 악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급료는 충분했을 텐데, 치료를 받지 않았단 말인가?’
귀를 기울여 대화를 들어보았다.
“할머니, 요즘 의원에 잘 다니고 있어?”
“할머니는 이제 괜찮아. 우리 손자 얼굴만 봐도 다 나은 것 같아.”
“거짓말하지 마. 집으로 급료 보내준 거 어쨌어?”
“그건 안돼! 우리 철두 장가갈 때 쓸 거야.”
“어휴! 미치겠네, 진짜.”
철두는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소무도 숨이 턱하고 막히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무림에서 제일 신의(神醫)로 추앙받던 모청이 바로 이곳에 있지 않은가.
‘어르신에게 한번 들러서 봐달라고 해야겠군.’
소무가 마음을 다지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대장! 거리에 나가서 한잔 어때? 큭큭. 오늘은 내가 쏜다.”
일광이었다. 그의 뒤로 십여 명의 대원들이 보였다. 상금을 타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이들이 사복 차림으로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분명했다. 백부장인 일광은 행동이 자유롭지만, 대원들은 자신의 허가가 있어야만 군영 밖을 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 함께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열댓 명의 랑아대원은 거리의 화양객잔으로 이동했다. 많은 인파가 군영으로 몰린 상황이었기에 객잔 안은 다소 한적했다.
한쪽에 자리를 틀고 앉은 대원들은 각종 주류와 음식을 푸짐하게 시켜놓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얼떨결에 횡재한 소소는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소소는 상금 받은 거 뭐에 쓸 거야?”
어린아이가 은자 다섯 냥이라는 큰 상금을 받았으니, 사용처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해랑 아해랑 나눠줄 거예요.”
소무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가난한 친구들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기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만취한 백성들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혀가 꼬인 목소리로 보아 보통 취한 것이 아닌 듯했다. 위험한 발언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었기에,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이곳의 아이들을 납치해간 개자식들의 뒷배가 황실이라며?”
“암, 천하의 쓰레기들이지. 이번에 무안에서 온 조카가 있는데, 궁성의 증축공사에 강제로 끌려가서 일 년 동안 강제 노역하다 겨우 탈출해왔어. 건장하던 놈의 얼굴이 반쪽이가 되었단 말일세!”
“장준이란 놈도 봤잖아? 녹을 먹는 놈들은 하나같이 다 개자식들이야!”
무심히 지켜보던 랑아대의 대원들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일광이 젓가락을 내려놓자, 소무가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냥 놔둬.”
“쳇. 대장은 속도 좋군. 목숨 걸고 지켜주고도 싸잡아 욕먹는데 화나지도 않아?”
대원들과는 달리 소무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마저 떠올라 있었다.
“백성들의 소리를 듣기 싫다고 힘으로 누른다면 우리는 정체성을 잃게 되는 거야. 마음에 담아 둘 필요 없어. 잘 알잖아?”
일광도 분이 조금 풀렸는지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며 투덜댔다.
“그냥 한마디만 해주려고 했지, 나도 사실 때릴 생각은 없었다.”
다시 대원들이 먹는 것에 집중할 찰나였다.
타앙-!
탁상을 내리치는 소리였다. 돌연 만취한 손님들의 목소리가 매우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한중의 관군은 예외야! 그리고 만약 장양 장군님을 욕하는 놈이 있으면 내가 다 때려죽일 거야!”
“암, 그렇고말고! 우리 장군님 같은 분이 나라를 다스려야 세상이 바뀐다고!”
만약 랑아대가 관군의 복장으로 왔다면, 저들이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한들 이런 위험한 발언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엄연한 체포 대상들이었지만, 랑아대에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이리 좀 와보시오.”
일광의 부름에 점소이가 냉큼 달려왔다. 이윽고 품속에서 엽전 한 뭉치를 건네며 말했다.
“저쪽 손님들 음식 값은 이걸로 계산하고, 나머진 알아서 하쇼.”
입이 헤벌쭉해진 점소이는 연신 굽신대며 말했다.
“예, 나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