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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하나가 되다 (4) (70/250)


70화 하나가 되다 (4)
2022.04.11.


현화당을 나온 소무는 한중의 거리를 순시하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었기에 거리에서 한 시진이 넘도록 돌아다녔다.

날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이 무척 흥미로웠다. 지금의 한중은 한때 송나라의 수도였던 개봉조차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하. 소무 대장님 아닙니까? 이것 좀 드셔보십시오, 오늘 따온 복숭아인데 맛이 괜찮습니다.”

바로 옆에서 노점을 열고 있는 잡화상인이었다. 복숭아는 본인이 먹으려고 싸 왔던 간식이리라. 입맛은 없었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요즘 우리 아들놈이 대장님이 우상이라고 난리입니다. 자기도 커서 나중에 꼭 랑아대에 들어가야겠다고 하네요.”

“후후. 언제든 환영입니다.”

소무의 시선이 상인의 잡화 진열대로 향했다. 잠시 고민하고는 분홍빛이 감도는 머리끈 두 개를 집었다.

“얼마입니까?”

품속에서 엽전을 꺼내자 상인이 손사래를 치며 극구 만류했다.

“어이쿠, 넣어두십시오! 목숨 걸고 지켜주시는 것도 고마운 일인데 어찌 돈을 받겠습니까.”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가져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의 시선이 허리춤의 검집으로 향했다. 검의 손잡이를 장식하고 있는 술을 풀러 상인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아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이, 이것을 어떻게?”

상인은 좋아하면서도 쉽게 건네받지 못했다. 랑아대의 대장이 지니고 다녔던 물건이었다. 아들놈이 좋아서 방방 뛸 것이 틀림없었다.

“저도 딸아이에게 줄 머리끈을 선물 받았으니, 이것은 저의 도리입니다.”

술을 건네받은 상인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거리를 계속 나아갔다.

교위의 관복을 입고 나온 것이 문제였다. 마주치는 백성마다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걸어왔다. 잡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에게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지간하면 사복 차림으로 다녀야겠군.’

그는 거리를 벗어나 군영으로 향했다. 한식경을 걸어 근처까지 당도하였으나, 더는 진입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길목을 통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인기척을 내자 근처에 있던 병사가 반사적으로 기립했다. 그는 가슴에 주먹을 올려 상급자에 대한 예를 갖추며 말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장님. 잠시 후 성내에 배치된 투석기들의 타점을 맞춘다고 합니다. 위험할 수 있기에 거리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석기는 큰 돌을 적진으로 쏘아 던지는 공성병기다. 수성의 입장에서는 정확도 때문에 활용도가 크지 않지만, 대군을 상대로는 얘기가 다르다.

소무의 시선이 병사들의 십여 장 뒤로 향했다. 그곳에는 세 대의 대형투석기가 배치되어 있었다. 한 대당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들러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고생하는군.”

병사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뒤쪽의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랑아대의 대장님이시다! 어서 길을 열어드려!”

모두가 인정하는 군단의 제일 맹장이 등장했다. 병사들이 존경의 눈빛과 함께 황급히 대열을 벌렸다. 소무가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괜찮아. 여기서 같이 좀 지켜보지.”

소무는 병사들과 뒤섞여 투석기를 응시했다. 지레의 원리를 이용한 인력식 투석기였다.

일반적인 중형 투석기조차 장전할 때 오십여 명의 인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더욱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초대형 투석기였다. 한중의 병사들이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꿀 병기였다.

“당겨!!!”

장교의 지휘에 따라 병사들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투석기 한 대당 삼십여 명의 병사들이 달라붙어 죽기 살기로 밧줄을 잡아당겼다.

“끄으윽!!!”

“까아아악!!!”

투석기의 지레가 조금씩 당겨지고 있었으나, 그 속도는 무척이나 미미했다. 실패할 게 분명해 보였다. 다급해진 장교가 소리를 연신 고함을 질렀다.

“입으로만 당기지 말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란 말이야!”

이대로라면 병사들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병사들의 사이를 지나쳐 다가가자, 장교가 기립과 동시에 다급히 말했다.

“도, 도와주십시오, 대장님!”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투석기의 밧줄로 다가갔다. 잡을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괜찮으니 물러나 있어.”

다섯 명의 병사들이 동시에 물러섰다. 그러자 나머지 병사들이 밧줄에 사정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소무의 양손이 움직이며 밧줄의 끄트머리를 부여잡았다.

꾸욱-!

지레가 무엇인가에 고정된 듯 움직임이 단번에 정지했다. 손아귀의 느낌이 묵직했다.

이 투석기는 사거리와 파괴력에만 집중한 나머지, 단점을 보완하지 못했다. 병사들이 당기지를 못한다면 실패한 병기나 마찬가지였다.

‘일반인들은 백 명이 달라붙어도 어림없겠군.’

소무가 내력을 끌어올리며, 양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관복의 소매로 드러난 팔뚝의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끼이이이익-!

밧줄이 사정없이 당겨지고 있었다.

소무의 얼굴에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 모습에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측에 있던 또 하나의 투석기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십여 명의 병사들이 넘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크헉!”

“큭! 안 돼!!!”

소무는 왼손으로 밧줄을 움켜쥐고, 우측으로 달렸다.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또 다른 투석기의 밧줄을 낚아챘다.

꾸우욱-!!!

문제는 그 과정에서 달라붙어 있던 병사들이 상당수 넘어졌다는 것이다. 두 개의 초대형 투석기를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당기고 있었다. 양팔의 근육이 꿈틀대며 핏대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이렇게 힘을 써보기도 오랜만이군.’

넘어졌던 병사들이 다시 일어나 잽싸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두 개의 투석기가 안정을 되찾으며 동시에 잡아당겨지고 있었다.

그때 돌연 소무의 시선이 우측 십여 장으로 향했다. 낯익은 인물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검은 무명옷에 기품 있는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는 여인. 마성의 매력에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무가 보고 있는 인물은 그녀가 아니었다. 연설화의 왼손을 붙잡고 있는 자신의 딸아이였다.

“아버지 뭐해요? 히히히.”

퉁소를 배우고 나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또 다른 투석기의 병사들이 다급히 말했다.

“소, 소소 왔구나.”

“아저씨들 좀 도와줄래?”

소소는 군단의 유명인사였다. 천신의 재림. 천하장사의 현신 등 온갖 소문이 나도는 상황이었다. 그전에 모두에게 이쁨을 받는 아이였다.

“안녕하세요~”

허리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는 투석기를 향해 잽싸게 달려갔다.

아이에게 도움을 받는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 다른 밧줄에 소소의 손이 닿자 투석기의 지레가 다시 올라갔다.

“야아압!”

끼이이익-!!!

소무 부녀의 도움으로 세 대의 투석기를 모두 장전하는 것에 성공했다. 병사들이 동시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고맙습니다, 대장님!”

“소소야, 수고했어!”

소무는 병사들을 뒤로한 채 딸에게 다가가서 머리끈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소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내 선물이에요?”

“응. 잠시 가만있어봐.”

아이의 머리에 끈을 묶기 위해 시도하고 있었으나, 한 번에 될 리가 없었다. 느리고 어설픈 모습이 답답했는지 연설화가 다가오며 말했다.

“이리 주세요, 아버님.”

아이 앞에서 반말이 오갈 수는 없었다. 소무는 묵묵히 머리끈을 내밀었다.

그것을 건네받은 연설화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소소의 머리를 단번에 묶는 데 성공했다. 양쪽으로 나누어 토끼 귀처럼 말아 올린 모습이 제법 그럴싸했다.

“헤헤. 나 예뻐요?”

“응. 우리 소소가 선녀가 되었구나.”

그때 소무의 귓가로 연설화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 엄마 없이 직접 낳았다고 했다며? 거짓말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 애한테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마.

- 별말 안 했으니 걱정하지 마.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 근데 이곳까지 무슨 일이야?

연설화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전음을 보냈다.

- 스승이 제자 바래다주는 게 뭐가 어때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옥화신녀에게 이런 자상한 면이 있었다고? 무림맹에서 알면 놀라 자빠지겠군.

- 됐고, 내일 사(巳)시까지 현화당으로 보내.

말을 마친 연설화는 바로 등을 돌려 떠났다.

소무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들만 그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스승님한테 음악 배우는 거 힘들지 않아? 다른 거 배워볼 생각은 없어?”

소소는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니요……. 히히……. 나 스승님 좋아요…….”

혹시나 해서 떠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때 소무의 시선이 우측으로 향했다. 낯익은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할아버지~!”

“어이쿠, 우리 손녀 왔구나.”

한달음에 달려나간 소소는 어느새 장양의 품에 안겨있었다.

“이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투석기의 시험 발사를 참관하러 왔네. 그런데 소소가 드디어 스승을 찾은 모양이군. 어떻던가?”

현화당은 장양이 직접 행정병들을 시켜 수소문하여 알아봐 준 곳이다. 성의를 봐서라도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고맙습니다. 실력은 아마도 중원에서 최고일 겁니다. 실력만은…….”

“허허. 그것 참 다행이지 않은가. 장차 조예가 깊은 숙녀가 되겠어.”

물론 음악만 익힌다면 장양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자후(獅子吼)를 연마하는 숙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개세영웅(蓋世英雄)이나 쓸법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무공을 말이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표정 관리에 실패하기 전에 화두를 돌려야 했다.

“그나저나 아직도 사라진 의병장을 찾지 못한 것입니까?”

장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쉽다는 말투로 말했다.

“음,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하네. 의병들은 어쩌면 그가 정말 신선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더군.”

“세상은 넓고 기인은 많은 법이지요. 그럼 앞으로 의병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소소 장군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송겸 대협이 우선 이끈다고 들었네.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고 있는 모양일세. 아까운 여장부가…….”

장양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품에 안겨있는 소소가 목을 끌어 앉으며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잖아요. 제가 소소 장군이에요, 할아버지.”

말을 마친 소소는 토끼 같은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장양 장군이 명령을 내릴 때의 모습을 흉내 내듯이 말이다.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어코 소무와 장양이 동시에 터지고야 말았다.

“풉!”

“크허허!”

둘은 한참이나 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허허허. 병사들 앞에서 체면을 잃었구만그래.”

“하하. 저도 소소가 이렇게 농담을 하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

겨우 진정된 그들은 애써 표정을 유지했다. 상상만으로도 웃겼기에 더는 거론할 수도 없었다.

“어서 투석기의 발사 시연이나 함께 봅세.”

“예, 장군.”

장양이 손짓을 보내자, 장교가 깃발을 들고 명령을 보냈다.

“발사하라!!!”

투콱-! 콱-! 콰쾅-!

굉음을 토해내며 세 대의 투석기가 거대한 돌멩이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성벽을 넘어 거침없이 날아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모두가 감탄과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소소 혼자 입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억울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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