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한중 방어전 (1) (71/250)


71화 한중 방어전 (1)
2022.04.12.


“돌격해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랑아대의 막사 안에서 뜬금없이 돌격이라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소무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얘가 지금 무슨 꿈을 꾸는 거지?’

대짜로 뻗은 채 잠꼬대를 하는 소소였다.

“돌격 그만하고 일어나야지?”

땅콩 같은 귀를 살며시 잡자, 아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응? 벌써요?”

“스승님의 성격이 좀 괴팍한 것 같은데 늦으면 혼날 수 있어.”

벌떡 일어난 소소는 씻기 위해 막사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눈뜨면 바로 달려갈 만큼, 요즘 퉁소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흥미를 돌린 것 같으니 다행인가?’

보급로가 정상화된 휘나라의 군단이 다시 남진을 개시하고 있었다. 놈들의 도착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소소를 연설화에게 맡겨둬야겠군. 한중에서 현화당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겠지.’

연약한 겉모습과 달리, 그녀가 본신의 힘을 드러내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옥화신녀가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최악의 상황에 한해서였다. 무림맹이 냄새를 맡으면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대원 중 막내인 송화가 다가오며 말했다.

“대장님, 그거 저한테 주시지요?”

그렇다. 지금 소무는 가부좌를 틀고 딸아이의 한복을 바느질하고 있었다. 한복의 원조국인 고려의 기술로 만들어진 고가품이었다.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수시로 찢어지고 해지기가 일쑤였다.

“후후. 괜찮아.”

모든 병사는 의복이 해지면 본인이 직접 수선을 해야 한다.

소무는 장수의 지위에 올랐으니 행정병에게 맡겨도 되었지만, 굳이 자신만 특혜를 받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소소의 옷만은 언제나 자신이 손봐주고 있었다.

“음. 이 정도면 입을 만하겠군.”

때맞춰 소소가 다시 막사 안으로 달려왔다.

“아버지, 빨리요!”

소무는 서둘러 아이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데려다줄까?”

잠시 고민하던 소소는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은 늦잠을 잤기에 경공으로 달려야 했다. 일각이면 충분했다.

“오늘은 혼자 갈게요!”

준비가 끝나자 아버지와 삼촌들이 인사를 건넸다.

“잘 다녀와.”

“이따 봐, 소소.”

“많이 배우고 와라.”

소소는 막사 입구에 서서 다소곳이 양손을 모으고는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적들이 오고 있기에 최근에는 야외 훈련이 거의 없어졌다. 대원들은 막사에서 언제든 출진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었으며, 운기조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인사를 마친 소소는 경공을 펼치며 쌩하고 내달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군영의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을 지키는 병사 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요즘 퉁소 배우러 다닌다며?”

“헤헤. 맞아요.”

인사를 마친 소소는 잠시 머뭇거렸다. 병사가 그 이유를 모를 리가 없었다.

미리 준비했다는 듯이 품속에서 양매(酿梅) 하나를 꺼내어 건네었다. 과일을 꿀이나 설탕에 담가서 말린 후 매실 껍질로 감싸 만든 간식이었다.

“잘 다녀와.”

“고맙습니다~”

소소는 양매를 입에 물면서 다시 내달렸다.

“히히. 맛있어.”

연화당에 도착하자 이미 연설화가 화원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그녀의 시선이 은연중 소소의 등 뒤를 살폈다.

“오늘은 혼자 왔니?”

“네, 아버지는 막사에 있어요.”

“그래, 어서 들어가자.”

연설화의 손길이 소소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며 안으로 안내했다. 그 모습이 마치 신주단지를 모시는 듯했다.

혹시라도 아이가 내일부터 안 나온다고 말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었다. 평생의 염원이 이 아이에게 달려있으니,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대해야 했다.

“자, 앉아보자.”

연설화는 마주 앉은 소소의 전신을 훑었다. 예리한 그녀의 시선은 어설프게 바느질된 아이의 저고리에 고정되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소소야. 잠깐 저고리 좀 벗어볼래?”

“네……. 부드럽죠? 헤헤.”

“응, 비단이라 그런지 부드럽구나. 스승님이 더 예쁘게 해줄게.”

저고리를 건네받은 연설화는 바늘과 실을 꺼내어 수선하기 시작했다. 능숙한 손놀림에 한복은 순식간에 새것처럼 탈바꿈이 되었다.

‘검만 제대로 쓸 줄 알지, 이거 허점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일평생 검을 잡던 손으로 바느질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무의 바느질 실력이면 랑아대에서는 중간 이상이었지만, 그녀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수선이 끝나자 연설화가 물었다.

“선물로 옷에 그림 하나를 넣어주어야겠구나. 매화꽃을 넣어줄까? 뭐가 좋을까?”

아끼는 저고리에 수를 놓아준다는 말에 소소는 신이 났다.

“히히. 토끼요!”

토끼라니…….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시도해 본 적은 없었지만, 못할 것은 없었다.

연설화가 손바닥을 펼치자, 수선함에서 여섯 개의 바늘이 스스로 허공을 날아왔다. 백옥같은 양손이 그것을 나누어 쥐고는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여섯 개의 바늘이 동시에 움직이며, 순식간에 토끼를 새겨나가는 모습이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와아……. 신기해요…….”

소소는 큰 눈을 연신 끔뻑이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연설화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소소도 이렇게 해보고 싶어? 퉁소 다 배우면 알려 줄 수 있는데.”

“네, 정말요?”

“응, 그럼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지? 중간에 포기하면 알려 줄 수가 없어.”

“헤헤. 매일 매일 나올 거예요!”

마음이 놓인 연설화는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자신의 공력까지 나누어주고 있는 아이였다. 중간에 도망이라도 치면 답이 없었다.

연설화의 손은 일각이 지나서야 멈추었다.

“자, 다 되었네. 입어 볼까?”

한복을 건네받은 소소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고리에 새겨진 토끼를 연신 만져보았다. 금방이라도 옷에서 뛰쳐나올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는 자수였다. 어지간한 화가도 울고 갈 굉장한 작품이었다.

소소는 이미 입이 귓가에 걸려 있었다. 저고리를 입고 나서도 연신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기에 바빴다.

“히히. 히히히……. 너무 좋아요……. 스승님…….”

그 모습이 귀여웠던지 연설화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음을 연주하기 전에는 무엇부터 해야 한다고 했지?”

소소는 반사적으로 가부좌를 틀며 소리쳤다.

“명상을 통한 마음의 평온이요!”

물론 그럴듯한 말로 지어낸 것이다.

연설화는 은근슬쩍 운기조식을 하는 소소의 등에 오른손을 갖다 대었다.

자신의 공력을 나누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교의 멸문과 동시에 힘에 대한 갈망과 미련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였다.

“절대 눈을 뜨면 안 돼. 명상을 통해 자연의 기를 받아들여 봐.”

“네, 스승님~”

마기를 최대한 억제하고, 정순한 기운을 걸러내어 공력을 나눠주어야 한다. 그렇기에 한 번에 일을 끝마칠 수는 없었다.

소소가 이 갑자의 내공을 얻고 나면 그다음은 사자후를 연마하게 될 것이다.

용격사자후(龍擊獅子吼). 진일심소곡의 합주를 위해, 퉁소를 맡은 소소가 연마하게 될 무공의 이름이었다. 하늘을 나는 용을 사자의 포효로 떨어트린다는 극강의 음공이다.

기품을 중요시하는 연설화는 수련법을 알면서도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워낙에 무식한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내공 전이는 한식경이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구슬땀을 흘리며 호흡을 가다듬은 연설화는 가부좌를 틀고는 자신의 진기를 안정시켰다.

일다경이 더 지난 후. 둘의 운기조식이 거의 동시에 마무리되었다.

“마음이 좀 맑아졌어?”

“네, 몸이 새처럼 가벼워졌어요!”

자신의 공력을 받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연설화는 칠현금을 꺼내 들며 말했다.

“어제는 해심소를 연주했지? 오늘은 청심경을 연주해보자.”

“네~ 좋아요!”

* * *

한중의 모든 지휘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군순포의 감사를 담당하는 일광의 모습까지도 보였다. 군사회의실을 꿰차고 앉은 그들은 모두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보를 담당하는 곽철 부장이 말했다.

“휘나라의 병사들이 온 마을들을 헤집으면서 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주민들 대부분이 미리 피난을 가거나 대피했기에 피해는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찰병들이 수고가 많았네. 그러나 그들이 노리는 것은 약탈이 아닐세.”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까?”

“저들의 사령관은 보급기지를 강탈한 의병대에게 화가 많이 나 있을 게 분명하네. 그들을 찾기 위해 곳곳을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후미에 적을 두지 않겠다는 의도일세.”

부장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럴 상황이 아니지만, 의병대의 활약을 생각하니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다.

양연정 부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협곡전쟁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의병들에게 허를 찔렸으니 그럴 만도 하겠군요.”

“나는 그렇게 보고 있네. 의병대에 당분간 활동을 중지하고 힘을 비축해달라는 당부를 전해주시게. 그들만으로는 휘나라의 정예부대를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니.”

“알겠습니다, 장군.”

장양의 시선이 진립 부장을 향했다.

“적들이 하루 뒤면 당도한다고 했네. 수성 병기의 배치는 모두 완료되었는가?”

“예, 장군. 다만 대선포(大旋砲)는 아직 개조가 진행되지 않아, 이번 전투에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몰라서 우선 배치는 해두었습니다.”

대선포는 이번에 한중에서 새로 개발된 초대형 투석기의 명칭이다. 성능은 확실하지만, 장전이 쉽지 않아 반쯤은 실패한 무기였다.

“완성된 병기는 아니지만, 열세를 극복하려면 어떻게든 활용은 해야겠지.”

“오십 명이 달라붙어도 장전이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랑아대라면 어떻겠는가?”

소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우리 대원들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대선포는 랑아대에서 맡겠습니다.”

“그리하는 것이 좋겠군. 허나 살라타이 부대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우리 군단에서 랑아대뿐이네. 근접전이 시작되면 대선포를 놓아두고 성벽을 지원해주시게.”

“알겠습니다.”

“곽철 부장, 우리의 비축미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대풍년의 수확이 막 끝났기에 이 년 이상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자에서 물을 끌어다가 도시 곳곳에 저장해두었으니 식수도 걱정이 없습니다.”

수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식량과 식수의 문제였다. 최소한 한중은 이것으로부터는 거의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장양의 시선이 일광을 향했다.

“전투가 길어지면 백성들의 마음도 불안해지겠지. 도시의 안정과 치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군순포의 역할이 중요하네.”

처음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된 일광은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문제가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장양의 얼굴에 흡족하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들이 있어서 든든하군. 비록 적들의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어찌 감히 이런 한중을 쉽게 넘볼 수 있겠는가. 모두들 병사들의 체력과 사기 관리에 힘써주시고, 빈틈없이 준비해주시게.”

모든 지휘관이 힘 있는 목소리로 동시에 대답했다.

“예,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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