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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한중 방어전 (2) (72/250)


72화 한중 방어전 (2)
2022.04.13.


뿌우우우-!

병사들의 소집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였다. 드디어 휘나라의 대군이 당도한 것이다.

“우리도 출발하지.”

소무를 따라 랑아대가 막사를 나섰다.

이미 소소는 연설화에게 맡겨놓은 상황이었다. 정파의 영웅이 마교 출신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나, 이것저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녀의 보살핌 아래에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청해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우리는 투석기를 맡는 거죠?”

병사들이 곳곳을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랑아대의 대원들만이 묵묵히 대장을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소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려울 것 없어. 다들 어제 해봤던 훈련대로만 움직인다.”

적군이 몰려드는 북문으로 대선포가 세대씩 나뉘어 총 아홉 대가 배치되어 있다. 랑아대는 세 갈래로 나뉘어 각자의 위치로 이동해야 했다.

군영을 벗어나자 청해가 이끄는 무리가 먼저 헤어지며 격려 인사를 보냈다.

“모두 무사하세요!”

“조준 잘해!”

곧이어 일광도 오른손을 올리며 다른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뒈지지 말고 살아서 다시 보자!”

소무가 맡은 세 대의 투석기는 성문의 바로 뒤쪽 중심부였다.

수성용 투석기는 모두 성 내에 배치된다. 그렇기에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떠한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장전하고 발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좀 지루할 거야.”

대원들의 얼굴에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군의 기세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은 몹시 경직되어 있었다.

투석기 한 대당 열댓 명이 둘러싸서 위치를 잡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 뒤 철두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공격이 바로 들어오는 게 아닌가 보네요?”

소무가 피식하고 웃으며 설명했다.

“수상비를 펼쳐서 해자를 건너고, 성벽을 단번에 도약할 수 있는 고수가 몇이나 될까? 해자에 다리를 놓을 준비부터 해야겠지.”

“그럼 계속 이렇게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아니, 지금 시작된 것 같아.”

철두는 의아한 표정으로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몸을 숙인 채 웅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였다.

꽈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성벽이 뒤흔들렸다. 적들의 투석기가 공격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성벽 너머에서부터 자욱한 먼지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우리는 왜 공격을 안 해요?”

“사거리가 된다고 해도 투석기를 정확히 조준해서 맞출 수가 없어. 미리 타점을 맞춰놓은 위치로 적들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이러다 성벽이 무너지면요?”

“한중의 성벽은 두꺼워서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런데도 저렇게 계속 돌을 날려 보내는 건, 우리의 사기를 꺾겠다는 의도가 가장 크다고 봐야겠지.”

대원들의 시선이 성문 근처를 향했다. 예비 병력으로 편성되어 대기 중인 수천 명의 병사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연달아 뿜어지는 굉음과 무너질 듯 진동하는 성벽.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불안한 것이리라.

소무가 그곳을 향해 다가가서는, 은연중 기세를 발출했다.

쏴아아악-!!!

난데없는 기의 파동에 병사들이 어리둥절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숨이 막혀올 정도로 엄청난 기세. 그것이 아군의 것임을 확인한 병사들은 용기를 얻었다. 군단의 최고 맹장인 랑아대의 대장이었다.

소무가 그들의 중심으로 걸어가며, 목소리에 중후한 내공을 실었다.

“움츠러들지 말고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해. 우리는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무적의 군단이다.”

크지 않은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병사들의 귓가에 똑똑히 틀어박히고 있었다.

장교급의 병사가 다가와 기립하며 인사를 건넸다.

“대장님이 근처에 계셔서 든든합니다.”

소무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병사들은 위치로 돌아가는 소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들의 눈빛에 더는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소무의 시선이 성벽의 중심에 있는 적루를 향했다. 병사 한 명이 명령기를 움켜쥔 채 신호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적들이 돌격을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발사 준비!”

첫발은 이미 장전되어있기에 언제든 발사할 수 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호흡을 멈춘 채 신호를 기다렸다. 성벽을 사이에 두고 적군과 아군의 함성이 거세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했던 공격 신호가 떨어졌다.

“발사!!!”

대원들이 묶어놓은 밧줄을 해제하는 순간, 대선포의 지레가 움직임을 개시했다.

끼이이이익-!!!

콰앙-!!! 콰쾅-!!!

이백 근에 달하는 거대한 돌멩이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무려 중형 투석기의 두 배에 가까운 중량이었다. 그것은 곧 성벽을 넘어서며 적진을 향해 모습을 감췄다.

쿠웅-! 쿠쿵-!!!

성 밖에서 낙하하는 소리가 성 내에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병사들은 또다시 장전을 준비했다. 두 명의 대원이 투석기에 돌멩이를 올려놓는 순간, 여덟 명이 밧줄을 잡아당겼다. 중후한 내력을 가진 대원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발사!!!”

콰앙-!! 콰쾅-!!!

초대형 투석기임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투석기보다 빠른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광과 청해가 지휘하는 위치에서도 돌멩이가 연이어 날아올랐다.

잠시 후 적루 위에서 한 장교가 푸른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적들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리라. 그 모습을 확인한 소무가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산탄(散彈) 장전!!!”

대원들이 바위 같은 돌멩이를 치워버리고 촘촘한 그물망을 들고 왔다. 그것에는 작은 돌멩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거리는 짧아지지만, 대량 살상이 가능한 공격이었다.

투석기의 포대에 장전이 마무리되자 소무가 다시 한번 외쳤다.

“산탄 발사!!!”

투콱-!! 콰콰콱-!!!

한 개의 투석기당 수백 개가 넘는 돌멩이가 성벽을 넘어 산개했다. 그 광경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투하 장소에는 아마도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을 것이 확실했다.

적들이 해자에 다리를 설치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성벽 위의 궁수들이 화살을 연사하기 시작했다.

랑아대도 쉼 없이 산탄을 쏘아 올렸다.

“발사하라!!!”

투콰콱-!! 콰콱-!!!

성벽 너머로 아군의 공세가 거침없이 기염을 뿜어냈다. 그러기를 한식경이 지났다.

기어코 성벽 위에서 장교 한 명이 붉은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해자가 돌파당한 것이다. 동시에 성벽의 곳곳에서 난전이 시작되었다.

“성벽을 지원한다!”

랑아대의 대원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소무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여유롭게 성벽의 계단을 일일이 타고 오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선두에서 경공을 펼치던 소무가 도약을 시도했다. 계단의 중심에 내려서고는, 다시 한번 뛰어올라 단번에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

전면으로 드러난 광경에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휘나라의 병사들이 개미 떼처럼 성벽 앞을 까마득하게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해자 위로 떠다니는 적들의 시체가 물고기 떼처럼 엄청났지만, 밀려드는 적들에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아군의 궁수들이 쉼 없이 화살을 쏘아대고 있었으며, 근접보병들은 성벽 아래를 향해 죽기 살기로 창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무의 앞발이 성벽 위로 막 올라서는 병사의 앞가슴을 걷어찼다.

콰직-!

“크악!”

가슴이 함몰된 병사는 하늘을 날아 먼 곳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소무의 검이 번뜩이며, 성벽을 기어오른 두 명의 병사를 동시에 쳐냈다.

써컥-!

그의 검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한두 명의 적병들이 어김없이 갈라지며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주위에서도 대원들이 쉼 없이 검을 휘두르며 적들의 접근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군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이렇게 일일이 하나씩 쓰러트려서는 답이 없었다.

“이곳은 우리가 맡을 테니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소무가 근처의 정규군을 다른 곳으로 유도했다. 그러자 이십여 장에 늘어서서 포진해있던 오백여 명의 병사들이 자리를 이탈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삼십 명의 랑아대가 넓게 포진하며 일자진을 형성했다. 잔챙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적병들을 성벽 위로 올려놓고 한 번에 쓸어버리려는 의도였다. 무력이 압도적으로 강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성벽으로 올라서는 적병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소무와 대원들의 검 끝에서 눈부신 검기가 타올랐다. 대원들이 검무(劍舞)를 추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사정없이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푸욱-! 최아악-!

“크아악!”

“끄헉!”

처참하게 변한 병사들의 시신이 성벽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사방이 적병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굳이 번거롭게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순식간에 백여 명의 병사들을 베어 넘긴 소무는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적들이 가장 필사적으로 노리는 곳은 장양 장군이 있는 적루였다. 하지만 살왕이 있는 이상 그곳은 걱정이 없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우측 오십여 장 지점으로 향했다. 백여 명의 살라타이에게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여 위태로운 곳이었다.

청해와 현정이 대원들을 이끌고 막아보고 있었지만, 인원수에 밀려 고전하고 있었다.

“모두 이곳을 지켜!”

말을 마친 소무는 성벽을 타고 그곳을 향해 내달렸다.

살라타이는 구성원 상당수가 검기를 다룰 정도로 휘나라의 최정예 부대였다. 이들의 숫자를 줄여놓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바람 속을 헤집고 나아가는 소무의 뒤로 적병들의 시체가 추풍낙엽처럼 늘어졌다.

목표지점에 근접하자 그가 지면을 박차고 창공을 꿰뚫을 듯이 날아올랐다. 첫 번째 목표는 청해를 포위하고 있는 다섯 명의 살라타이였다.

유성이 낙하하듯 그의 신형이 그곳을 향해 직선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화들짝 놀란 그들의 틈새로 소무가 돌파하듯 지나쳤다.

써컹-!!!

절단되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살라타이가 쓰러졌다. 청해가 남은 셋을 향해 반격을 개시하는 순간, 소무는 다른 대원들을 지원했다.

촤아악-! 푸욱-!

“끄헉!”

“컥!”

소무가 합류한 순간부터는 상황이 순식간에 안정화되었다. 살라타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검성의 기습을 진법도 없이 온전하게 받아낼 수는 없었다.

전세가 기울자 대원들이 분노의 역공을 시작했다.

“이놈들, 이제부터 우리 차례다!!!”

“어디 한번 너희도 당해봐!!!”

분노에 휩싸인 대원들의 검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무림으로 따지면 환골탈태를 겪은 최상급 일류고수들이었다. 결코, 살라타이는 일대일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소무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에서 계속해서 살라타이를 참살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삼합까지 버텨내는 자가 없었다.

검강을 사용한다면 일합에 죽일 수도 있었으나, 장기전에서 내력이 큰 기술은 적절치 않았다.

촤아악-!!!

소무의 검이 번뜩이자 또 한 명의 수급이 떠올랐다. 그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또다시 측면으로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현정을 압박하고 있는 살라타이의 등을 후벼팠다.

푸우욱-!

“크헉!”

순식간에 그의 손에 죽은 살라타이가 삼십 명을 넘어섰다. 검을 뽑아낸 그는 보법을 다시 펼치며 우측을 향해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대원 송화의 등 뒤로 접근하는 살라타이가 목표였다.

그리고 그의 검은 또다시 움직이며 상대를 양단해갔다.

까앙-!!!

그 순간 손끝으로 묵직한 느낌이 다가왔다. 소무의 공격이 다른 인물에 의해서 중간에서 차단당한 것이다.

어느 누가 감히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 막아낼 수 있단 말인가. 소무는 의아한 표정으로 상대의 정체를 확인했다.

황금빛이 번쩍이는 화려한 갑주와 붉은 망토. 창을 사선으로 꼬나쥐고 있는 눈앞의 장수는 휘나라의 고위급 인물임이 분명했다.

만인의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그의 무위는 굳이 검을 섞어 보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태산 협곡에서 자신이 점찍어둔 상대 중 하나였다.

그자가 선공을 개시하는 순간, 소무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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