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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한중 방어전 (3) (73/250)


73화 한중 방어전 (3)
2022.04.14.


까앙-!

거센 폭음과 함께 휘나라의 장수와 소무가 동시에 물러났다. 일합을 겨룬 그들은 서로 기수식을 취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휘나라의 장수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협곡에서 방어를 지휘했던 장수로군. 이름이 무엇인가.”

통성명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지만, 상대는 그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랑아대의 대장.”

소무의 검끝이 상대를 겨눴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창무교위(彰武校尉) 소무다.”

상대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나는 군단장 야율환이다.”

예상보다 거물급의 인물이었다.

지금 한중을 공격하는 휘나라의 대군은 다섯 개의 군단이 연합해있다. 그중 하나를 이끄는 군단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공성전의 선봉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시작하지.”

통성명과 함께 둘의 신형이 맞물렸다.

까앙-!

창과 검이 부딪친 순간, 소무의 신형이 상대의 측면으로 미끄러져 갔다. 소무의 검이 야율환의 측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카앙-! 카카카캉-!!!

밝은 빛살이 연이어 터져 나오며, 주변으로 맹렬한 기세가 요동쳤다.

시작부터 수세에 몰린 야율환은 적지 않게 놀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손의 떨림. 그리고 믿을 수 없이 빠른 반응 속도는, 최소한 자신과 같은 화경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한중의 군단에 맹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수준인지는 몰랐다.

“크윽!”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과 뒤틀리는 기혈에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야율환은 뒷걸음질 치며 초식을 전개했다. 여덟 개로 늘어난 창끝이 상대의 팔방을 동시에 압박해갔다.

순간 소무의 발이 신묘하게 움직이며 보법을 밟았다. 전신이 유령처럼 흔들리며 야율환의 창을 계속해서 비껴냈다.

‘뭐 이런 경우가…….’

황당할 정도로 빠른 움직임에 야율환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자신의 코앞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거리가 짧아질수록 자신이 불리했다. 앞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빛무리는 공격을 허용하는 즉시 필사(必死)였다.

야율환은 다급히 창을 짧게 잡으며, 창 자루로 비껴치는 것에 성공했다.

까앙-!

간담이 서늘해지는 공격이었다. 한 걸음을 다시 물러서는 야율환의 머리에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현경……?”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이 해석될 수 없었다.

송나라에 한세충을 제외하고 또 다른 현경의 고수가 있다니. 반드시 살아남아 이 사실을 본진에 알려야 했다.

그러나 그를 순순히 보내줄 소무가 아니었다.

소무의 검이 찬란한 검강을 뿜어내며 연격(連擊)을 개시했다. 머리에서부터 하체까지 전신을 향한 공격이 연달아 뿜어졌다. 다급해진 야율환은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며 방어해갔다.

캉-! 카캉-!!

숨 쉴 틈도 없이 공세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주위로 광풍이 휘몰아치고, 병사들은 거리를 벌리기에 바빴다.

카캉-! 카카카캉-!!

손발이 점차 어지러워지는 야율환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어느 순간 상대의 공격이 갑자기 정지했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상대가 돌연 검집에 검을 꽂아 넣었기 때문이다.

‘발검술?’

자세를 낮추며 검집을 움켜쥔 동작은 분명 발검술의 기수식이었다.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극속의 쾌검술로 승부를 보려는 것임을. 야율환은 생각할 것도 없이 창을 내지르며 절초를 펼쳤다.

붉은 강기에 휩싸인 야율환의 창끝은 돌풍을 일으키며, 직선으로 쇄도해갔다.

소무는 묵묵히 공격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의 앞가슴이 창끝에 적중될 찰나, 드디어 검날이 빛을 발했다.

탈혼검법 일 초식, 탈혼일섬(奪魂一閃).

야율환은 눈부실 정도로 밝게 빛난 한줄기 섬광을 볼 수 있었다.

번쩍-!

섬광이 사그라진 순간 그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졌다. 느껴지는 통증은 없었지만, 자신이 밀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한 호흡이 지난 후, 예상했던 결과가 나타났다.

스팟-!

바람 소리와 함께 왼쪽 허벅지의 근육이 한 움큼이나 베어져 나갔다.

“크윽!”

‘급소가 아닌 다리를 노렸다?’

자신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초식이었다. 그렇다면 필살의 일격은 지금부터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미 상대가 다음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탈혼검법 이 초식, 전광추흔(電光追痕).

소무의 신형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전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결코 상처 입은 몸으로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자가…….’

검은 그림자가 야율환의 코앞을 벼락처럼 스쳐 지나갔다.

써컥-!

수급이 허공으로 튕겨 오르는 소리였다.

검성의 무공이 연이어 나왔지만, 그의 빠른 움직임과 초식을 알아챈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휘나라의 선봉장이 랑아대의 대장에게 쓰러졌다는 사실이었다. 근처에서 아군 병사들의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적장이 쓰려졌다!!!”

“와아아아아!!!”

“소무 대장 만세!!!”

성벽 위에 올라와 있던 휘나라의 병사들은 움찔했다.

군단장 야율환이 누구인가. 휘나라에서는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명장이었다. 휘하의 병사들은 전의를 잃고, 사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순간 한중의 병사들이 반격을 개시했다. 핵심은 단연 랑아대의 대원들이었다.

“모두 쓸어버려!!!”

우박이 떨어져 내리듯, 휘나라의 병사들이 성벽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벽 아래의 적병들은 올라갈 엄두조차 못 내고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상황은 전장의 곳곳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다.

소무는 야율환의 수급을 움켜쥐고 적루를 향해 나아갔다. 전장을 지휘하고 있는 장양 장군의 주위로도 적병의 시신이 백여 구를 상회했다. 상흔으로 보아 대부분이 살왕에게 당한 듯했다.

“고생했네. 적장을 쓰러트렸으니 적들이 곧 물러갈 걸세.”

소무는 장양에게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였다.

근처에서 한 장교가 수급을 건네받고는 물었다.

“장군, 이자의 수급을 적루의 깃대에 매달지요?”

장양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미 적들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으니 의미가 없는 행동이겠지. 게다가 아군의 도발은 적들의 도발을 불러올 것이니, 우리가 먼저 시작할 필요는 없네. 우선 기다리게.”

“예, 장군!”

얼마 지나지 않아 휘나라의 본진에서 퇴각을 알리는 뿔피리가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우-!!!

기다렸다는 듯이 적병들이 죽기 살기로 도주를 시작했다.

성벽 위에서 해자를 향해 뛰어내리는 병사들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무거운 갑주를 입고 깊은 물속을 헤엄칠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해자 아래로 가라앉는 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도 궁수들의 화살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곳곳에서 아군 병사들이 뿜어내는 승리의 함성이 뜨겁게 타올랐다.

“와아아아아!!!”

“적들이 물러간다!!!”

지휘관들도 밝은 표정으로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첫 번째 수성전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적들이 이대로 물러갈 리는 없었다.

그때였다.

“장군, 저쪽을 보십시오!!!”

다급히 한 병사가 적루로 뛰어오며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성벽 왼쪽 끄트머리 아래로 향했다. 낯이 익은 한 장수가 적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배, 백문휘 부장입니다!”

휘나라의 고수들이 아군 장수를 포박하여 본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떨어진 사기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수작을 부리려는 듯했다.

소무가 검을 움켜쥐자 장양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멈추시게……. 자네까지 잃을 수는 없네.”

이미 수백 명의 살라타이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경지를 알 수 없는 장수들까지 근처에 포진해있었다.

“후…….”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홀로 수만 명의 적진을 돌파하고 백문휘 부장을 구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적진에서 홀로 진법에 포위라도 된다면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존재가 적군에게 노출될 것도 감수해야 한다.

소무는 장양의 양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격정에 휩싸여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로 변한 백문휘 부장은 이미 다리가 풀려있었다.

“배, 백문휘 부장…….”

“부장님…….”

승리의 기쁨도 잠시, 곳곳에서 탄식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

어느새 적들은 모두 퇴각하고 본진에서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적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인 백문휘의 모습에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평소 그와 가까웠던 곽철 부장이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끼들이 기어코 공개처형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틀림없었다. 한 병사가 대도를 움켜쥔 채 그의 뒤에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지켜보던 소무가 옆에 있던 궁수에게 말했다.

“활 좀 잠시 빌려줘.”

활을 낚아챈 소무는 다짜고짜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적들과의 거리는 백여 장에 가깝다. 명중은커녕 도달조차 쉽지 않은 거리다. 그런데도 소무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끼이이이익-!

내력을 가득 머금은 화살촉이 진동하며 울음을 토해냈다. 잠시 후 그의 손을 떠난 화살은 붉은 강기에 휩싸이며 포물선을 그렸다.

쐐에에에엑-!!!

난데없이 성벽에서 날아드는 한 발의 화살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백문휘를 참수하려는 병사의 가슴을 정확히 관통하고 지나갔다.

푸우욱-!!!

“크악!”

난데없는 돌발 상황에 양쪽 진영의 분위기가 다시 뒤바뀌려고 했다. 아군의 병사들이 통쾌하다는 듯 욕설을 뿜어냈다.

“저 개X끼, 아주 잘 뒈졌다!!!”

“감히 누구를 죽이려 들어!?”

반면 휘나라의 사기는 더욱 곤두박질쳤다. 장수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부장급을 잡아 왔으나 오히려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난데없는 소란에 백문휘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 올려졌다. 그의 눈동자를 마주한 장양 장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로가 함께한 세월이 적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옆에서 직언을 서슴지 않고 보좌해주던 인물이었다.

‘지켜주지 못하여 미안하네…….’

그의 심정을 모를 백문휘 부장이 아니었다. 그동안 한중의 군단에서 함께해왔던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 일은 백문휘 부장이 맡아주면 좋겠군. 자네의 고향인 수현읍은 어촌이 아니었는가. 아무래도 어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우리 중에선 가장 뛰어나겠지.》

장양 장군은 군단에서 자신의 고향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의 주마등은 어느새 얼마 전에 벌어진 협곡의 전투까지 이르러 있었다.

《장군, 저에게 병사 오백을 남겨주십시오. 아군이 후퇴할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나는 자네의 죽음을 허락할 수 없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으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시게. 우리 모두 살아서 함께 돌아가 보세…….》

삶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단지 먼저 가는 불충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백문휘는 자신에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장양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도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회답했다.

‘장군……. 끝까지…… 보좌하지 못하고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은빛이 감도는 갑주를 입은 장수가 백문휘의 등 뒤로 다가왔다. 곧이어 그의 검날이 번뜩이며 서늘한 빛을 뿜어냈다.

서걱-!

백문휘를 참수한 장수는 그의 수급을 깃대에 매달았다. 그것을 움켜쥐고는 홀로 말을 타고 성벽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는 이십여 장까지 접근해서는 깃대를 쳐들고 아군을 향해 도발했다. 성벽의 주위를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이다.

백문휘의 직속 휘하였던 첨병대의 병사들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끄흐흑…….”

“우리 부장님이…….”

병사들은 하나같이 슬픔에 젖어갔다.

뿌드득-!

소무의 이가 갈리는 소리였다.

어리석게도 놈은 단신으로 성벽의 근처로 다가왔다.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시 중앙으로 다가올 무렵, 소무의 발이 성벽을 박찼다. 끝없이 날아오르는 그의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독수리와도 같아 보였다. 랑아대장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놀라며 입을 벌렸다.

잠시 후 그의 신형이 곡선을 그리며 말을 탄 장수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기습에 휘나라의 장수가 화들짝 놀랐다. 피하려고 말을 박찼지만, 상대는 자신의 움직임을 예측한 듯이 자석처럼 다가왔다.

이윽고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소무의 발길질이 그의 앞가슴을 향해 쑤셔박혀 버렸다.

콰직-!

“크헉!”

야율환에 비한다면 무공이 한참이나 약한 장수였다. 일격에 낙마한 그는 피를 토하며 신음했다.

백문휘의 수급을 회수한 소무는 쓰러진 장수를 왼쪽 어깨에 올렸다. 그리고 그의 말 안장에 고정되어있는 창을 뽑아 들고 성벽을 향해 질주했다.

쐐에에엑-!!!

그의 손아귀에서 쏘아진 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콰직-!

창끝은 정확히 성벽의 중심에 틀어박혀 지지대를 만들었다. 소무는 수상비를 펼쳐 해자의 물 위에서 도약한 후, 창자루를 밟고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마음을 먹는다면 한 번에 도약할 수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무위를 전부 드러낼 수는 없었다.

단숨에 장수를 낚아채온 그는 백문휘의 수급을 병사들에게 건네고는 성안으로 뛰어내렸다. 그의 발걸음이 성큼성큼 향하는 곳은 아군의 초대형투석기인 대신포가 포진한 위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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