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개세영웅 (2) (77/250)


77화 개세영웅 (2)
2022.04.18.


한중은 지금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그 어느 곳보다 평화로운 곳이 있었다.

현화당(炫花堂). 중원에서 제일가는 음악의 대가가 있는 곳이다.

칠현금과 퉁소의 합주가 은은하게 들려오며 자연을 노래하고 있었다.

청량하면서도 구슬픈 음률은 부드러우면서도 기개가 넘쳤으며, 때로는 황홀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어느 순간 퉁소의 음이 멈추었다.

“스승님, 누가 왔어요!”

현화당의 근처로 하나둘씩 접근하는 기운들. 연설화는 한참 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서문이 돌파당한 모양이군.’

전쟁의 승패 따위는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제자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얘기가 달랐다.

칠현금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신 그녀의 손은 비침이 담긴 작은 나무통을 움켜쥐었다.

“퉁소 연주를 멈추지 말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네~ 스승님!”

소소는 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퉁소 연주를 시작했다.

연설화의 손이 움직이며 문을 활짝 열었다. 무공을 상당 수준으로 익힌 십여 명의 병사들이 보였다. 성내에 혼란을 유도하여 북문의 병력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을 품고 온 듯했다.

곧이어 그녀의 미간이 좁혀지며, 두 눈에 노기가 서렸다. 병사들이 음흉한 시선으로 자신의 위아래를 훑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단아한 인상과는 전혀 다른 소름 돋는 목소리. 살기가 깃든 음성에서 병사들은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움을 느꼈다.

그때 조장급의 병사가 주변을 향해 말했다.

“고상한 년이로군. 죽이지 말고 기절시켜.”

명령과 함께 다섯 명의 병사가 연설화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거리가 삼 장 이내로 좁혀진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 소름 돋는 마기(魔氣)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악-!!!

난데없는 기세에 병사들의 걸음이 동시에 정지하며 휘청거렸다.

“크윽!”

“컥!”

병사들의 얼굴이 고통스럽다는 듯 일그러졌다. 전신이 오싹해져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오른손이 활짝 펼쳐졌다. 그러자 원형의 나무통에서 다섯 개의 비침이 스스로 허공으로 떠올랐다.

“감히 너희들 따위가 나를 넘본 대가다.”

연설화의 오른손이 오므려졌다가 활짝 펼쳐졌다. 비침들이 비산하며 병사들의 목젖을 향해 쏜살같이 쇄도했다.

푹-! 푸푸푹-!

“큭!”

“끄흑!”

다섯 명의 병사는 목젖에서 선혈을 뿜어내며 동시에 쓰러졌다.

무림의 고수였다. 그것도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지원군을 부르기 위해 다급히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익-!!!

십호장이 검을 내뻗으며 어이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어디서 이런 마귀 같은 년이…….”

그 순간 연설화의 신형이 바람처럼 미끄러졌다.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간 그녀는 어느새 그의 코앞에 당도해 있었다.

“헉!?”

연설화의 오른손이 쏜살같이 움직이며 십호장의 목을 단번에 틀어쥐었다.

꾸욱-!

“다시 한번 지껄여봐.”

백옥같이 하얀 손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병사의 얼굴로 스며들며, 독처럼 번져갔다.

극상승의 마공(魔攻). 무수히 많은 정파 고수들의 목숨을 앗아간 수법이었다.

연설화가 손을 놓자 십호장은 온몸이 축 늘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녀의 시선이 현화당의 담장 너머로 향했다. 세 명의 살라타이가 검기를 뿜어내며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연설화의 양손으로 묵빛의 기류가 타올랐다. 잠시 후 그녀가 내지른 쌍장이 세 가닥의 검기와 충돌하며 굉음을 토해냈다.

콰콰쾅-!!!

살라타이들은 동시에 튕겨나가며 담벼락에 등을 부딪쳤다.

“크윽!”

“컥!”

미끄러지듯 후방으로 이동한 연설화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소소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퉁소를 불어대고 있었다.

“음률이 흔들리고 있구나. 평정을 유지하거라.”

어느새 현화당의 주변으로 살라타이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서문의 코앞인 이곳을 점거하려는 수작인 듯했다.

병사들의 앞으로 창을 움켜쥔 장수가 앞으로 나섰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닌 고수였다.

“마공을 익힌 계집이로군. 네년의 정체가 무엇이냐.”

꽃잎처럼 붉은 연설화의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남자들의 정신을 홀릴 정도로 마성의 미(美)가 물씬 풍겨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살기서린 음성은 오싹할 정도로 서늘했다.

“내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연설화가 등 뒤를 향해 오른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칠현금이 붕 떠오르며 스스로 날아와 붙잡혔다. 격공섭물(隔空攝物). 화경이나 극마를 이룬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승기술이었다.

그녀의 무위를 눈치챈 장수가 적지 않게 놀라며 다급히 소리쳤다.

“진법을 펼쳐!!!”

살라타이들이 방위를 선점하기도 전에 연설화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가냘픈 손가락이 칠현금의 가락을 연달아 튕기자, 옥구슬이 굴러가듯 경쾌한 선율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그 음파에는 옥화신녀의 마공이 깃들어 있었다

띠링-! 띠리링-!

“크윽!”

“큭!”

살라타이들이 걸음을 멈추고 비틀거렸다. 이들을 이끄는 장수도 접근하지 못한 채 비질 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설화가 등 뒤를 향해 말했다.

“천살소(天殺召)를 연주하거라.”

소소가 부는 퉁소의 음률이 바뀌며 조금씩 빨라졌다. 그것에 맞추어 연설화의 칠현금이 합주를 시작했다.

퉁소와 칠현금의 음률은 하나가 되어 전면에 자리한 적들을 향해 집중적으로 뿜어졌다.

다른 이들이 듣기에는 그저 박자가 빠른 경쾌한 곡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것을 정면에서 받는 당사자들은 기혈이 뒤틀리며 비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끄으윽!”

“끄악!”

내공이 약한 병사들은 양쪽 귀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픽픽 쓰러져나갔다.

“귀를 막아!!!”

장수가 전투복의 일부를 찢으며 자신의 양쪽 귀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살라타이들도 행동을 같이했다.

찌이익-! 찌이이직-!

아직도 기혈이 들끓고 있었지만,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몇몇이 연설화를 향해 돌진을 개시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러더니 연주를 멈추고는 칠현금을 전면으로 돌려 세웠다. 내기를 가득 머금은 손가락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한 가닥의 현을 튕겼다.

투웅-!

음파는 강기로 변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다가오는 병사의 몸에 적중했다.

투콱-!

고작 손가락을 한 번 튕김으로써 살라타이를 두 동강 냈다. 무시무시한 위력에 모두가 움찔했다.

“검기로 막아!”

장수와 함께 검기 발출이 가능한 살라타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연설화는 쉬지 않고 현을 튕기며 음파를 발출했다.

퉁-! 투퉁-! 투투퉁-!

끊임없이 쏟아지는 초승달 모양의 유백색 강기는 가공스러울 정도였다. 마주 선 병사들이 정신없이 강기를 쳐내며 막아갔다.

캉-! 카캉-!! 카카캉-!!!

내력이 먼저 소진되는 쪽이 당하는 상황이었다. 소소에게 적지 않은 공력을 나눠주었지만, 극마에 이른 그녀의 단전은 아직도 살라타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전각에서 오 장이 떨어진 화원의 구석.

새로이 등장한 십여 명의 병사들에게 동생 연초희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한때 마교의 군사부에 소속되었던 그녀의 전문 분야는 무공이 아니었다.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연설화가 등 뒤를 향해 나직이 말했다.

“초희 언니가 위험하구나.”

그 말이 뜻하는 의미는 분명했다. 퉁소를 내려놓은 소소는, 재빨리 자신의 소검(小劍)을 움켜쥐었다.

정세가 어수선한 만큼 아버지가 언제나 호신용 검을 소지하게 하고 다녔다. 후다닥 내달리던 소소는 뛰쳐 오르며 단번에 연설화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초희 언니!”

언니라고 부르기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컸지만, 아이는 시키는 대로 부를 뿐이었다.

참새처럼 날아오르는 모습이 기존보다 더욱 날래고 정교해졌다. 소소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구르며 연초희를 포위한 병사들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얍!”

빠악-! 빠박-!!!

“크윽!”

“컥!”

난데없는 기습에 두 명의 살라타이가 정신을 잃고 고꾸라졌다. 포위하던 이들은 거리를 벌리며 상황을 살폈다.

소검을 움켜쥔 여자아이가 자신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마치 그 모습이 화가 난 강아지처럼 보였다.

“나쁜 아저씨들, 초희 언니 때리지 마요!”

감정이 없다고 알려진 살라타이조차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햇병아리는 뭐야?”

연초희는 검상을 입었는지 왼쪽 어깨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을 비집고 가는 선혈이 흘러나왔다.

소소가 작은 체구로 연초희를 등 뒤로 숨겼다. 어느새 적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연초희의 마음에 동정심이 일었다.

“소소야, 언니는 괜찮으니 어서 도망가…….”

아이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적들의 숫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소소도 상황을 알고 있는지 표정이 조금 어두웠다. 기존에 싸워본 약탈부대의 병사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그때 연설화의 외침이 들려왔다.

“용격사자후(龍擊獅子吼)!”

아직은 고작 일성(一成)의 화후였다. 십성(十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된 사자후의 위력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소소는 반사적으로 내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이 갑자를 상회하는 가공할 진기가 가슴팍으로 급격히 몰려들었다.

반경 일 장으로 기의 파동이 일어나며 회오리쳤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병사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움찔했다.

그러길 잠시 후. 회오리치던 기의 파동이 단숨에 소소의 작은 입속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신기한 광경에 병사들이 어리둥절할 무렵.

소소는 두 주먹을 허리춤에 움켜쥐고는 기마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사자의 포효를 내뱉었다.

“크아아앙!!!”

작은 입에서 엄청난 기성이 뿜어져 나왔다. 포효는 음파로 변하여 주변에 자리한 병사들을 단번에 후려쳐갔다.

“크악!”

“큭!”

수십 명의 병사들이 고막에서 피를 쏟아내며 휘청거렸다. 비록 일성의 화후였지만, 코앞에서 펼쳐진 사자후의 위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소가 선공을 개시했다. 다람쥐처럼 쏜살같이 내달리며 병사들의 곳곳을 누볐다. 뭉툭한 소검이 그들의 다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빠악-!!! 빠바박-!!! 뻐억-!!!

“크윽!”

“컥!”

비틀거리던 살라타이들은 방어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갈대처럼 쓰러졌다. 여섯 명의 병사들이 쓰러지고 난 뒤에서야 누군가가 겨우 자세를 잡으며 소리쳤다.

“저년부터 인질로 잡아!!!”

연초희가 약점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다급해진 소소가 다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세 명의 살라타이가 검기를 발출하며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어떡해…….”

소소도 검기를 마주 뽑아내는 한편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연설화도 휘나라의 장수와 수십 명의 살라타이를 홀로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새 한 명의 살라타이가 연초희의 목에 검까지 들이대며 협박해왔다.

“이상하다 했더니 너는 의병대의 소호라는 구렁이였군. 이년의 수급 날아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무기 버려.”

연초희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도망쳐.”

소소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울상을 지었다. 눈에서는 물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흐엉……. 초희 언니…….”

살라타이들은 어서 빨리 아이가 검을 내려놓길 바랐다. 그 순간 달려들어 단번에 처치할 심산이었다.

그러나 한 호흡이 더 지난 후 그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울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해맑은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급격하게 표정이 변하다니. 아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감정변화였다.

“아저씨들 이제 큰일 났어요~ 히히.”

불길한 마음에 모두의 고개가 소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담장 너머에서 삼십여 개에 달하는 검은 그림자가 동시에 날아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최상급 일류고수로 짐작되는 범상치 않은 움직임. 사자후를 듣고 다급히 달려온 랑아대의 대원들이었다.

일광이 가장 먼저 달려들며 소리쳤다.

“전부 쓸어버려!!!”

그 틈을 노려 소소가 보법을 밟았다. 검성의 경신술인 섬전비영보(閃電飛影步)였다.

1654867517309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