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퉁소 부는 아이 (2) (81/250)


81화 퉁소 부는 아이 (2)
2022.04.22.


한중성의 번화가는 오늘따라 활기가 더욱 넘쳐나고 있었다. 퉁소를 불며 거리를 지나다니는 한 아이 때문이었다.

굉장한 실력에 상인들이 갈채를 보내며 환영했다.

해심소(海心笑). 소소가 좋아하는 이 곡은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워지는 효과가 있다.

또 한 번의 연주가 끝나자 근처의 노점 상인이 손짓하며 다가오라고 했다. 인자하게 생긴 중년의 여성이었다.

“아가, 이름이 뭐니?”

“헤헤. 소소예요!”

“예쁘기도 하지. 이것 좀 먹어보아라.”

과일을 꿀에 절여 만든 밀전이었다. 그것을 냉큼 받아든 소소는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얻어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만 해도 울적했다. 오늘은 놀아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고, 스승님도 내일까지 쉰다고 했다. 그래서 모처럼 거리로 나와 시간을 보내고 있던 터였다.

퉁소가 뿜어내는 아름다운 음률은 주변의 이목을 사고 있었다. 무료하던 거리의 일상에 활기를 넣어주고 있었기에 모두가 환영했다. 그리고 다른 의미에서 반기는 자들도 있었다.

소소가 걸어가는 위치에서 십여 장이 떨어진 골목길의 모퉁이. 백의 무복을 입은 다섯 명의 무림인이 기척을 숨긴 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저 꼬마의 퉁소 실력이 자연스러운 거냐?”

“확실히 수상합니다, 조장님.”

“분명 뭔가가 있어. 옥화신녀의 전문은 칠현금이라고 했지?”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저 아이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무림맹 소속 맹호대의 대원들이었다.

그때 가장 앞에서 숨어보던 대원이 다급히 말했다.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뒤쪽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미행했다는 걸 눈치채면 곤란해.”

대원들은 골목길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모두 다리가 불편한지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맞아서 쩔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곧이어 그들은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거리를 벌렸으나 퉁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계속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연일 뿐이다. 좀 더 이동해.”

이들은 자신들의 미행이 발각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추적 기술을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아니었던가. 결코, 꼬마에게 발각될 만큼 어설픈 수준이 아니었다.

“조, 조장님. 막다른 길목입니다.”

“후……. 애가 왜 자꾸 이쪽으로 오는 거야?”

“어떡합니까? 만약 옥화신녀가 근처에라도 있다면 우리는 개죽음입니다.”

대원들의 마음은 불안해졌다. 다행인지 아직 옥화신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퉁소를 부는 여자아이 홀로 천천히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눈을 흘기며 웃고 있는 듯했다.

이제 와서 골목의 담을 뛰어넘는다면 미행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는 꼴이었다.

“일단 자연스럽게 위장한다. 쳐다보지 마.”

대원들은 소소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각자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거나, 뒤돌아서서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조장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돌멩이로 땅에 뭔가를 그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길 잠시 후. 퉁소의 연주가 멈추며 아이의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들, 왜 따라다녀요?”

대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움찔했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조장이 눈길도 안 주며 대꾸했다.

“응? 누가?”

“히히. 저는 다 알아요~ 아까부터 저 쫓아왔죠?”

“우, 우리가?”

조장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때 아이의 질문이 다시 들려왔다.

“제 연주를 듣는 게 쑥스러웠어요?”

그 순간 대원들은 긴장이 탁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휴. 어떻게 알았지…….”

“눈치채고 있었어?”

소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헤헤. 이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인데, 아저씨들한테만 들려주는 거예요.”

앵두같이 작고 붉은 입술이 퉁소의 입구에 닿으며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곡명은 풍운유곡(風雲流哭)이었다. 청아하고 맑은 음률은 마치 바람을 타고 구름을 떠다니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대원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연주가 끝나자 대원들이 동시에 갈채를 보냈다. 물론 목적을 숨기려는 의도였지만, 어느 정도는 진심도 담겨있었다.

“대, 대단해!”

“훌륭하다!”

소소는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때 한 대원이 조장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 어떻게 하죠? 일단 끌고 가서 조사해볼까요?

- 가만히 있어 봐. 추적자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상대는 건드리지 말라는 기본도 잊었어?

어제도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가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었다. 그 때문에 다리가 불편하여 지금까지 무림맹으로 출발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본능적으로 무엇인가의 불길함이 느껴졌다. 허리춤에는 소검(小檢)까지 차고 있으니 확인부터 해봐야 했다.

조장은 손에 쥔 돌멩이에 내력을 가득 담으며 소리쳤다.

“꿀벌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설픈 연기였지만, 아무래도 관계없었다.

그는 전력을 다해 돌멩이를 쏘아 보냈다. 목표는 아이의 겨드랑이 사이를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무공을 수련했다면 무엇이든 반응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얍!”

아이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검이 돌멩이를 가르고 있었다.

쩌억-!

두부 썰리듯 정확히 두 쪽으로 갈라져 나갔다.

피하거나 무시할 줄 알았지만, 설마 그것을 가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검에 서려 있는 유백색의 검기(劍氣).

‘이럴 수가…….’

검기를 순간적으로 뽑아내는 것은 어지간한 내공으로는 시도조차 어려운 일이다. 물론 무림맹에도 이 정도의 고수는 많았지만, 문제는 고작 꼬마라는 것에 있었다.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광경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반로환동이라도 한 노고수란 말인가? 설마 이 아이가 옥화신녀는 아니겠지?’

그때 소소가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는 따지듯이 물었다.

“꿀벌을 죽이면 어떡해요? 아저씨는 꿀 안 좋아해요?”

“조, 좋아하지……. 앞으로 살려줘야겠구나.”

“정말이죠?”

“응, 당연하지! 앞으로 꿀벌을 죽이는 놈은 내가 다 혼내줄 거야.”

소소는 해맑게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의 위치로 보아 오(午)시쯤 되어 보였다.

“헤헤. 밥 먹을 시간! 아저씨들 나중에 또 봐요!”

군영에 가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지면을 박찬 소소는 단번에 골목의 담벼락을 뛰어넘으며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맹호대의 대원들은 긴장감에 저마다 한숨을 토해냈다. 감히 자신들이 쫓을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엄청난 움직임이었다.

“후……. 저 꼬마의 정체가 뭘까요?”

“모르겠어. 아무튼, 나의 기지가 아니었으면 너희들 오늘 다 죽을 뻔한 거야.”

“역시 조장님이십니다. 이제 어떡하죠?”

“분명 뭔가가 있지만, 우리의 능력으론 미행이 어렵다는 건 확실해. 우선 본맹으로 돌아가서 대주님께 보고한다.”

* * *

이십여 년 전, 마교는 중원진출을 위한 물밑작업으로 본거지를 지장산(地長山)으로 이전했다. 감숙성과 섬서성의 경계 부근에 있는 이 장엄한 산은 한중에서 경공으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아늑하게 노을이 지고 있는 지장산의 산자락. 한때 마교의 터전이었던 이곳으로 소무와 연설화가 산책하듯 나란히 진입하고 있었다.

소무가 주변을 쓱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잔당들이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모양인데?”

“쓸 만한 고수들은 전부 어딘가로 차출되어 이동했어. 남아있는 얘들은 별거 아닐걸?”

“불편하면 나 혼자 다녀오지.”

연설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무를 바라봤다.

“왜?”

“비록 영교에 흡수되었지만, 한때 동료들이었잖아.”

“마교에는 그딴 거 없어. 서로가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관계일 뿐.”

전면으로 십여 채의 전각과 그곳을 경계하는 무사들이 보였다. 흑의를 입은 그들의 숫자는 백여 명에 육박했다. 소무와 연설화는 이들을 무시한 채 태연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의외로 솔직한 면이 있군.”

그때 한 명의 흑의인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연설화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멈춰라!”

그녀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단지 오른손에 묵빛의 기류가 타오르며 휘몰아쳤을 뿐이었다. 곧이어 섬전처럼 움직이는 손바닥이 상대의 앞가슴을 후려쳐버렸다.

쩌억-!

“끄헉!”

신음과 함께 튕겨나간 상대는 무려 십여 장을 날아가 바닥에 축 늘어졌다.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릴 무렵. 연설화의 입이 다시 달싹였다.

“유일하게 마교의 좋은 점이 하나 있지. 가식이 없다는 거.”

“후후. 그래도 한때는 교주까지 했었다며?”

“네가 상위 서열을 모두 죽여준 덕분에. 고맙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어?”

그 순간 또 한 명의 흑의인이 소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손등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상대의 얼굴을 강타했다.

쩌억-!

기습하려던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히며 늘어졌다.

“고맙다는 말은 사양하지. 이곳에서 교주로 얼마나 있었어?”

“한 열흘 정도.”

“기간이 짧아서 그런가? 부하들이 교주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 같은데?”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흑의인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마교의 전대교주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인상착의마저 흡사했다. 몇몇은 안면이 있는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옆에 있는 남자는 경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흑의인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소리쳤다.

“투항을 거부하고 도망쳤던 마귀 년일 뿐이다! 물러서지 말고 검진을 펼쳐!”

연설화가 그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였다. 꽃잎이 피듯 아름다운 표정이었지만, 당사자에게는 죽음의 미소로 다가왔다.

“교육이 좀 필요한 것 같지?”

소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이들을 포위한 무사들은 긴장한 얼굴로 검을 내뻗었다. 소무가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처치한 수가 적은 사람이 오늘 저녁을 사는 것으로 하지. 어때?”

이미 연설화는 여덟 개의 비침을 꺼내어 양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튕기자 내력을 가득 머금은 비침이 빛살처럼 흩어져 비산했다.

파팍-!! 파파파팟-!!!

“크윽!”

“컥!”

비침은 하나같이 흑의인들의 급소를 정확히 가격했다. 그들이 쓰러지는 순간, 연설화가 소무를 흘겨보며 말했다.

“여덟 명.”

“암기는 너무 치사하잖아.”

“한번 따라해 보시든지~”

암기는 소무의 방식이 아니었다.

검날이 노을빛에 반사되며 울음을 토해내는 그 순간. 소무의 신형이 흑의인들을 향해 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에 상대들은 검진을 펼칠 생각조차 못 했다. 그의 검끝이 허공을 가르자 초승달 모양의 붉은 강기가 전면을 휩쓸어갔다.

써컹-!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다섯 명의 상대가 바닥을 구를 무렵. 어느새 그들의 틈새에 파고든 소무가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한편 연설화도 정신없이 암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한 번씩 휘저을 때마다 어김없이 서너 명의 흑의인이 바닥을 뒹굴며 고혼이 되었다.

“크아악!”

“끄헉!”

처절한 비명이 끊이질 않고 뿜어져 나왔다. 흑의인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못 한 채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마교의 마지막 교주이자, 극마의 고수 연설화.

그리고 정파의 영웅이었던 검성 소무.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결코 영교의 잔챙이들로는 대적할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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