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퉁소 부는 아이 (4) (83/250)


83화 퉁소 부는 아이 (4)
2022.04.24.


장양은 집무실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눈앞의 소무가 지인의 도움으로 수거해온 비급들 때문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마교는 황실에 꾸준히 금은보화를 헌납하여 환심을 샀던 세력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마공을 연마한다고 한들 국가적 차원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내공의 성질과 무관하게 사용 가능한 무공들도 있지만, 제대로 된 마공을 펼치려면 처음부터 그들의 심법으로 내공을 쌓아야 합니다.”

“무속성의 무공들은 부장들이 익히게 하겠네만, 다른 비급들은 부작용 때문에 고민이 좀 되는군.”

마공을 수련하는 이들 중 간혹 마성에 빠져들어 살인귀로 변하는 자들이 있다. 대의를 위해서라지만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아시다시피 화산파와 종남파의 무공비급이 모두 강탈당했고, 마교에서도 같은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휘나라가 지금 무슨 짓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니 우리도 대비해야 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일세. 만약 그들이 음지에서 초인적인 병사들이라도 양성하고 있다면, 그 어느 군단이라도 막아낼 수 없을 것일세.”

“군순포의 포수들이 마공을 익혀보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백성들의 안전과 치안을 담당하는 포수들이 마공을 익힌다?”

신선한 발상이었다. 군순포는 군단의 예비군이기도 했다. 게다가 대부분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마공의 내공심법을 수련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부작용이 덜할 것입니다. 한때 왈패들이었던 그들의 심성을 개과하기 위해 불법과 도교의 경전을 수련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네. 모두가 하루에 한 시진씩 도덕경(道德經)과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공부하도록 지시했지.”

“그렇다면 마성에 빠지지 않고 온전하게 마공을 수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장양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리함세. 당분간은 랑아대에서 그들의 무공수련을 좀 도와주시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림의 정파 세력에서 반발이 좀 있을 수 있습니다.”

“무림은 지금껏 관군의 일에는 관여한 적이 없지 않은가?”

과거 소무가 몸을 담았던 세력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공이라면 치를 떠는 자들이지요. 그래도 관군에게는 맞서려 들지는 않을 것이니, 적당히 무시하십시오.”

“감수해야겠지. 잘 알겠네.”

몇 가지 논의를 마친 소무는 집무실을 나와 랑아대의 막사로 향했다. 당분간은 딱히 일정이 없었다. 군순포의 일은 대원들에게 맡기고 명상을 통해 수련할 생각이었다.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자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완벽한 신체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그렇기에 육체적인 단련보다는 정신적인 수양이 더욱 중요하다. 은화파파와의 만남에 대비하여 심신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 * *

특별한 일 없이 한중의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겨울을 코앞에 두고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어느 날이었다.

한설빙(漢雪冰). 한중에서 빙과 식품을 파는 유일한 음식점의 이름이다. 겨울이 아니라면, 가격이 비싸서 부호들이나 가끔 찾아오는 곳이기도 했다.

오늘은 평상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여자아이 셋이 손님으로 찾아와 눈빛을 빛내며 주인장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중년의 남성이 아이의 얼굴보다 큰 접시를 들고 나왔다. 수북하게 쌓인 얼음 위에 팥과 앵두즙, 그리고 온갖 과일이 놓여 있었다.

“자 꼬마 아가씨들, 주문하신 내락반앵도(奶酪拌櫻桃)가 나왔습니다.”

“히히.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은 숟가락을 내밀어 한입씩 떠먹어보았다. 시원하고 달콤한 얼음이 입속에서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맛있는지 아이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떠올랐다.

“맛있어?”

“응, 소소 언니.”

“헤헤. 너무 맛있어.”

아해와 청아를 데리고 나온 소소였다. 얼마 전 연설화를 따라 이곳에 와서 먹어보고는 설빙(雪氷)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자본의 맛을 깨달은 소소는 축국대회에서 받은 상금 중 남은 일부의 돈을 알차게 쓰고 있었다. 아버지와 스승님한테 오리고기를 사주고도 아직 상당한 엽전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히히. 맛있지? 우리 다음에 또 올래?”

“응, 정말?”

“언니 돈 남았어?”

소소는 허리춤의 전낭에서 엽전 뭉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세 번은 더 먹을 수 있어.”

“헤헤헤.”

“신난다!”

아이들은 접시에 머리를 박은 채 정신없이 떠먹기 시작했다. 일각이 지난 후에는 접시가 국물 하나 안 남기고 깨끗이 비워졌다.

계산을 마친 소소는 가게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언니는 이제 스승님한테 가봐야 해.”

“응. 다음에 또 봐!”

“잘 다녀와, 소소 언니.”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소소는 한중성의 서문을 향해 경공을 펼쳐 달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진 듯 연신 싱글벙글했다. 자신의 등 뒤를 미행하는 그림자도 모르는 채 말이다.

천룡도객(天龍刀客) 모용후. 모용세가의 제일 고수로 오래전 화경에 이른 인물이었다.

무림맹의 핵심인물이기도 한 그는 강호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거물급이다. 그가 직접 한중에 나타나 아이를 미행하고 있었다.

‘어찌 저 나이에 저런 움직임이…….’

그는 소소의 경공술에 혀를 내둘렀다. 화경인 자신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수준이었다. 맹호대의 대원들이 미행을 포기했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 정도의 자질이라면 훗날 천마(天魔)가 될 수도 있을 아이다. 안되었지만 화근의 불씨는 미리 제거해두어야겠지.’

모용후는 은밀히 소소를 따라 계속해서 내달렸다.

한중성의 서문을 벗어나 일각을 달리자 정군산이 나타났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산속을 헤집고 다니기를 잠시 후. 돌연 그의 눈빛이 빛나며 살기를 머금었다.

‘여기 숨어있었군.’

옥화신녀가 분명했다. 그녀는 암자 근처의 원두막에서 아이와 함께 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모용후는 다시 등을 돌려 하산했다. 옥화신녀는 자신 혼자서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이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지원군을 불러올 생각이었다.

* * *

연설화는 소소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입가에 팥가루가 묻어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며 물었다.

“뭐 먹고 왔어?”

“내락반앵도를 먹고 왔어요~”

일전에 연설화가 사준 것은 밀사빙이었다. 내락반앵도는 자신도 아직 못 먹어본 설빙이었다.

“그건 스승님도 못 먹어 본 건데. 맛있었어?”

“네, 엄청 맛있어요~ 히히.”

연설화가 삐진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음엔 스승님도 데려가서 사줄 거지?”

소소는 잠시 고민하다 흔쾌히 대답했다. 아직 남은 돈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음~ 좋아요! 초희 언니도 데려가요.”

연설화는 흡족하다는 미소를 머금었다. 아이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한번 떠봤던 것일 뿐이었다.

“아쉽지만 초희 언니는 당분간 볼 수 없어. 폐관수련에 들어갔단다.”

그녀가 수련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소소는 호기심이 일었다.

“왜요?”

“음,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란다. 소소도 예뻐지고 싶으면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지?”

“네, 저도 스승님처럼 예뻐지고 싶어요!”

연설화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졌다. 그녀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분명 그렇게 될 거야. 그럼 우리 풍운유곡(風雲流哭)을 한 번 더 연주하고, 보법 수련할까?”

마교에서 가져온 천마환영보를 얘기한 것이었다.

수련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소소는 벌써 흉내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은 연설화를 매번 감탄하게 만들고 있었다.

“네~ 스승님!”

연설화의 손이 칠현금의 가락을 튕기자, 그에 맞춰 소소가 퉁소로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이 둘의 합주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었다. 서로가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어감에 따라 합주의 기술이 완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주는 일각이 지나도록 계속해서 이어졌다. 풍운유곡의 마지막 구절에 이르는 순간, 돌연 칠현금의 선율이 빨라졌다.

기존의 풍운유곡이 아니었다. 소소는 돌발적인 상황에서도 음을 맞추는 한편 당황했다. 그때 연설화의 전음이 귓가로 날아들었다.

- 연주를 멈추지 말고 스승님 말을 잘 듣거라.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소소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음을 맞추는 한편, 그녀의 이어지는 전음을 기다렸다.

- 손님들이 찾아온 것 같구나. 내가 신호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치거라.

난데없이 도망치라니.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극마지체를 이룬 연설화의 오감은 소소가 범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참 뒤에서야 소소도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왠지 모르게 무서워졌지만, 스승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이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 소소가 먼저 도망쳐야 스승님도 도망칠 수 있단다. 이해했으면 고개를 끄덕여줘.

합주는 구슬픈 음률로 변해갔다. 소소는 퉁소를 부는 한편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칠현금과 통소의 음이 동시에 정지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십여 명에 이르는 정파의 고수들. 무림맹의 최정예인 백룡대의 대원들이었다.

연설화의 시선이 향한 인물들은 오직 두 명이었다.

모용세가의 가주 천룡도객(天龍刀客) 모용후.

그리고 또 한 명.

백룡대를 이끄는 대주이자 무당제일검(武當第一劍) 무진.

정파에서 자랑하는 화경의 고수가 둘이나 등장했다. 연설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모용후가 등 뒤에서 도를 뽑아 들며 말했다.

“마두 옥화신녀. 무수한 살생을 저지르고도 태연히 이곳에 숨어있었군.”

연설화는 기세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내가 정파인들을 죽인 건 살생이고, 너희들이 마교도를 죽였던 건 정의실현인가?”

“용케도 지금까지 잘 도망 다녔다만, 오늘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입만 산 정파의 망나니들.”

연설화는 은연중 한 움큼의 비침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모용후와 무진의 두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마화비전이다. 너희들은 나서지 말고 퇴로를 차단하라.”

마화비전(魔華飛電). 이 마교 최강의 비침술에 죽어간 정파인들은 셀 수조차 없이 많았다. 백룡대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거리를 벌리며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움직였다.

연설화의 시선이 살며시 소소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추밀원사 장준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공포. 화경의 고수를 적으로 볼 때의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두 명이었다.

- 준비되었지?

소소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 순간 연설화의 양손이 활짝 펼쳐지며 수십 개의 비침이 쏟아져 나왔다.

파파팟-! 파파파팟-!!!

“모두 피해!”

비침을 피하기 위해 백룡대원들이 회피 동작을 개시했다. 무진과 모용후만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 채 비침을 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한 소소가 이를 악물고 질주를 시작했다.

타앗-!

후다닥 내달리는 아이의 모습에 모용후가 다급히 소리쳤다.

“놓치지 마! 반드시 잡아야 한다!”

연설화가 두 명의 발을 묶고 있는 사이 백룡대의 고수들이 다급히 막아서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검기를 발출할 수 있는 무림맹의 정예들이었다.

두 개의 검기가 아이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검기에 적중당하기 직전, 소소가 지면을 박차고 회전했다.

쉬익-! 촤아악-!

두 자루의 검이 허공을 가를 무렵. 지면에 내려선 소소는 백룡대원들을 피해 측면으로 질주했다.

연설화가 비침을 날려대며 다급히 소리쳤다.

“그쪽이 아니야!”

하필이면 무당제일검 무진이 있는 위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틈을 놓칠 인물이 아니었다.

“대협, 잠시 옥화신녀의 발을 묶어주시오.”

말을 마친 무진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미끄러지며 소소를 향해 다가갔다.

무당의 경신법인 추운적성(追雲跡星)이었다. 구름처럼 미끄러진 무진은 어느새 소소의 눈앞에서 검 끝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순간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이 무공은?’

헛손질한 무진의 뇌리에 의문이 떠올랐다. 마치 검성의 경신법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교도의 딸이 그의 무공을 펼칠 리가 없었다.

어느새 아이는 삼 장 밖을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결코, 이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지면을 미끄러지며 검끝을 내질렀다.

푸욱-!

손에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아이의 신형이 스르륵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천마환영보(天魔幻影步)?’

무진은 재빨리 두리번거리며 목표의 위치를 찾았다. 아이는 이미 이십여 장을 벗어나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가 추격을 개시하려 했지만, 어느새 다가온 옥화신녀가 쌍장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양손을 휘감고 있는 묵빛의 기류가 보였다. 흑룡신장(黑龍神掌). 적중당한다면 살점이 타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무공이었다.

무진의 검날이 태극을 그리며 그녀의 쌍장을 쳐내어갔다.

꽈아앙-!!!

서로가 두 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그 순간 모용후가 옥화신녀의 퇴로를 막아서며, 백룡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천마의 자질을 타고난 아이다! 저 아이를 놓치면 정파의 미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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