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퉁소 부는 아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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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퉁소 부는 아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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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퉁소 부는 아이 (6)
2022.04.26.
무진과 모용후는 입을 떡하니 벌린 채 뻐금거렸다.
그 누가 감히 검성의 아내를 건드린단 말인가. 만약 그가 정파를 향해 검을 들기라도 한다면 그 피해는 상상조차 힘들 정도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무진이 모용후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 우리가 지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뻔한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최소한 죽이지는 않았으니 다행이군요.
- 근데 어찌하며 검성이 마두와 사랑에 빠졌단 말입니까? 게다가 둘 사이에 딸까지 낳았다니.
소무는 눈앞의 두 명이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대화 내용이 짐작되었기 때문에 마음이 썩 불편했다.
“계속 이러고 있을 것이오?”
무진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휴. 함께 마교도를 척살하던 시절이 바로 어제 같거늘 이런 재회라니……. 앞으로 어찌하실 생각이시오?”
“나와 부인은 앞으로도 무림의 일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니 더는 찾아오지 마시오. 또다시 이곳에 발을 디디는 자가 있다면 그때는 참지 않겠소.”
모용후가 무진에게 다시 전음을 보냈다.
- 검성의 뜻이 단호하니 방법이 없는 듯합니다.
-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으니.
- 무슨……?
- 검성의 딸 말입니다. 백룡대원들에게 죽기라도 한다면 파멸적인 상황이 올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무당파와 모용세가는 멸문도 각오해야 합니다.
모용후의 동공이 흔들렸다.
충격적인 상황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백룡대가 검성의 딸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늦기 전에 서둘러 수습해야 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
“부디 해로하시길.”
소무가 포권을 마주 건네며 답했다.
“살펴 가시오.”
인사가 끝남과 동시에 무진과 모용후의 신형이 벼락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백룡대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들이 사라지자 연설화가 뒤에서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온 거 보니 내 제자는 무사한 거 같네.”
“말할 기운은 있나 보군. 바로 앉아봐.”
내상으로 기혈이 뒤틀려 있었기에 서둘러 바로잡아야 했다. 그녀가 가부좌를 틀자 소무가 등 뒤에서 운기조식을 도왔다.
일다경이 지난 후 연설화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걸을 수 있겠어?”
그녀가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외상도 치료해야 했기에 암자로 옮겨야 했다. 두 손으로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갈대처럼 가벼웠다.
그때 연설화가 양손을 내뻗으며 살며시 소무의 목을 감쌌다. 순간 그녀에게서 기분 좋은 꽃향기가 느껴졌다. 소무의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자, 연설화가 장난기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부끄러워? 아까는 부인이라며.”
“그건…….”
이어질 내용이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연설화가 말을 잘랐다.
“됐고, 상처에 약이나 발라줘.”
소무는 어색하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암자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침상과 서재, 정돈된 집기류 등 깔끔하게 관리되어있는 실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를 목재 침상 위에 조심스럽게 눕히며 물었다.
“금창약은 어디에 있어?”
“서재 위에.”
금창약은 연꽃잎이 그려진 원형의 나무통에 들어 있었다.
약을 바르기 위해 찢어진 그녀의 겉옷을 걷어냈다. 그러고는 금창약을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바르기 시작했다.
“으윽.”
“이 정도로 엄살을 부려? 그래도 용케 치명상은 다 피했군.”
“죽립이나 쓰고 있을 시간에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안 다쳤잖아.”
연신 신음하면서도 투덜대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어?”
연설화는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은연중 기대는 했지만,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더는 이어지는 대화가 없었다.
소무는 묵묵히 그녀의 상처에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어깨와 왼쪽 옆구리의 자상이 조금 깊어 보였다. 흉터가 크게 남지 않도록 최대한 꼼꼼히 덧대었다.
그러기를 한참 뒤.
금창약을 바르다 보니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근데 내가 왜 이걸 발라주고 있지? 팔은 움직일 수 있잖아?’
소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연설화가 따지듯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어차피 말싸움으론 이길 수 없었다. 그냥 무시하고 하던 작업을 계속하려던 찰나.
갑자기 암자의 문이 벌컥 열리며 소소가 후다닥 들이닥쳤다. 병상에 누운 스승님의 모습에 몹시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어, 어떡해……. 괜찮아요……?”
연설화가 눈을 슬쩍 흘기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소야……. 스승님 곧 죽을 것 같아. 아버지가 늦게 와서…….”
소소는 눈물을 흘리며 밤톨 같은 주먹으로 소무의 허리를 마구 때렸다.
“흐어엉…….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퍼퍼퍽-!
“크윽. 아버지도 죽일 생각이야?”
힘 조절을 안 했는지 허리가 욱신거렸다.
딸아이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무림을 종횡하던 시절, 사부의 원수를 갚겠다고 강호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는 자들을 많이 보았으니.
하지만 스승을 구해주고 나서도 두들겨 맞으니 왠지 모르게 서러웠다. 그때 한술 더 떠서 연설화가 후련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제 조금 살 것 같구나.”
소소는 연설화의 손을 잡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죽으면 안 돼요……. 알았죠?”
그녀의 부상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기혈을 바로 잡았기 때문에 며칠 푹 쉬면 어느 정도는 운신이 가능할 것이었다.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에 소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된 소소가 물었다.
“스승님 배고프죠?”
연설화는 소소의 눈빛을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본인이 배고파서 물어보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극마지체의 신체는 식음을 전폐하고도 열흘 이상을 버틸 수 있다. 고작 한 끼를 안 먹었다고 배가 고플 리가 없었다.
그녀는 은근슬쩍 소무를 흘겨보며 말했다.
“응, 근데 몸이 이래서 음식을 할 수가 없구나…….”
소소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아버지, 음식 할 줄 알아요?”
장난기 섞인 연설화의 눈빛을 보며 소무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소호객잔의 주방장이 눈앞에 있음을.
객잔의 문을 닫은 뒤로는 다시 식칼을 잡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딸이 원한다면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뭐가 먹고 싶은데?”
소소가 연설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스승님, 혹시 국수 먹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겠네, 국수……. 재료는 있어……. 부엌에…….”
소무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암자 밖으로 나섰다.
‘휴. 정말이지 스승이나 제자나 어찌 저리 똑같을까…….’
* * *
한중성 군순포의 장원.
랑아대와 백룡대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었다.
포위당한 백룡대원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침묵을 지켰다. 무공 수준이 결코 자신들의 아래가 아니었다. 게다가 압도적인 인원수의 차이까지.
포수들은 구석으로 물러나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이곳으로 두 개의 인영이 다급히 날아들었다.
“모두 멈추시게!”
쏜살같은 움직임과 중후한 내공이 실린 음성. 오대세가의 대표인 모용후와 무당제일검 무진이었다.
랑아대원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다. 과거 추밀원사 장준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한 듯했다.
모용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으니 다들 물러서 주시오.”
랑아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죽기 살기로 진법을 펼친다면 한 번 맞서볼 만한 전력이었다. 그러나 양패구상(兩敗俱傷)은 피할 수 없을 터. 굳이 그럴 위험까지는 감수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일광이 양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모두 물러서.”
랑아대가 거리를 벌리며 포위를 풀었다.
백룡대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관군에게 밀려 치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안이 있었다.
백룡대의 조장이 어두운 안색으로 앞으로 나섰다.
“마두의 딸을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
모용후와 무진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표정이 밝아진 무진이 앞으로 나서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아이는 마두의 딸이 아니었네. 그러니 이제 더는 신경 쓰지 마시게.”
백룡대의 조장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무진에게 전음을 보냈다.
- 예, 대주님. 헌데 옥화신녀는 어찌 되었습니까?
이미 무진과 모용후는 입을 맞춰놓은 상황이었다.
검성이 마두와 정분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소문나면, 정파의 명예와 사기가 바닥으로 처박힐 우려가 있었다. 이것은 오직 무림맹의 최고 수뇌부만이 간직해야 할 비밀이었다.
무림을 떠난 이상, 들쑤시지만 않는다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다.
- 죽었네. 임무를 완수했으니 바로 본맹으로 복귀하시게.
조장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철수한다!”
무림맹의 고수들은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군순포를 빠져나갔다.
남겨진 랑아대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대원중 한 명이 어이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소소가 마두의 딸이라니. 정신 나간 놈들 아니야?”
“미친. 그럼 우리 대장님이 마두였다는 얘기네.”
생각만으로도 웃긴지 몇몇 대원들이 킥킥댔다.
일광이 양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오해했나 본데, 신경 쓸 필요 없어.”
조금 전의 일은 금세 기억에서 지운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뒤쪽에 있던 청해가 현정에게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사형, 분명 일광 형님은 머릿속도 근육으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확실해…….”
일광은 뒷짐을 지고 장원의 중심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러자 군순포의 대장 황개칠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모두 위치로!”
오백여 명의 포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열을 형성해갔다.
천여 명으로 이루어진 군순포는 이교대로 맹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포수들의 안광이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마공 수련을 막 시작하는 초반에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수준이 더 올라가게 되면 체외로 마기(魔氣)가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부터가 마인(魔人)으로 불리는 단계였다.
만약 연설화와 같이 극마(極魔)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면, 마기가 완전히 갈무리되어 일반인과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뒷짐을 쥔 일광이 기성을 토해냈다.
“일 초식 마룡참격(魔龍斬擊)!”
포수들의 검이 동시에 직선으로 내뻗어졌다. 그러고는 다시 곡선을 그리며 전면을 난자했다.
“이엽!!!”
“이야압!!!”
푸욱-! 촤아악-!!!
곳곳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기성만은 그럴듯했지만, 한 번에 될 리가 없었다. 어설픈 동작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랑아대원들이 중간중간에서 포수들의 자세를 바로잡아주었다.
포수들은 낮에는 마교의 상승무공과 보법 등을 수련하며, 밤이 되면 운기조식으로 단전에 마공을 축적했다.
그리고 이튿날은 또 다른 포수들과 교대하기를 반복했다. 근무 중에는 도덕경과 금강반야경을 항시 지참하여 공부했다.
지칠 법한 맹훈련이었지만, 단 한 명도 포기하는 자가 없었다.
장준이 이끌고 왔던 악룡대의 병사들에게 거리에서 두들겨 맞았던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관군의 보호 아래 합법적으로 상승무공을 익힐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이 초식 화마일섬(火魔一殲)!”
포수들이 동시에 지면을 박차며 회전했다. 정상적으로는 전면으로 강기를 뿜어내는 강력한 초식이다. 그러나 아직은 자세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넘어지는 자들이 태반이었다.
“큭!”
“으악!”
랑아대의 대원들은 애써 웃음을 참아야 했다. 신병훈련소에 있던 시절 자신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훈련은 해가 질 무렵에서야 끝났다. 군순포의 입구에 랑아대가 다시 집결하자 일광이 대원들을 인솔하며 말했다.
“수고들 했어.”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인데요?”
이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군영 내에 있는 랑아대의 전용훈련장이었다.
소무가 건네준 혈풍검법(血風劍法)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무속성의 상승검법이라 정파의 내공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무공이었다.
최근 일광도 섬멸폭권(殲滅爆拳)을 수련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