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꼬마장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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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꼬마장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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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꼬마장수 (2)
2022.05.08.
최초의 점령전을 앞두고 군단의 장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전술지도 앞에서 곽철 부장이 상황을 설명했다.
“군단이 장안으로 진격할 수 있는 길은 두 갈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령산맥을 넘어 태백현을 지나 서문을 공격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호현을 통과하여 관중평원 중앙에서 남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상석에 앉은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음. 우선 병력 상황부터 보겠네.”
“장안성의 방어병력은 이만 내외로 추정됩니다. 아군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새로 모집된 신병들은 아직 투입할 수가 없으니 방어병력으로 제외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일만 사천 내외일 것입니다.”
공성전에서는 공격자가 세 배의 인원을 동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적은 수로 공성전을 준비하는 지금이 기이한 상황이었다.
“계속 말씀하시게.”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압도적으로 불리합니다만, 질적인 수준과 사기를 고려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내 생각도 같네. 주력이 직전의 전투에서 몰살을 당했으니, 성에 남아있는 병력은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겠지. 게다가 그들의 사기는 매우 감소해 있을 것이네.”
“예. 그렇기에 우리에게 감히 야전으로 맞설 생각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큰 저항 없이 관중평야까지는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네. 장안성의 성벽은 두텁고 높아, 정면 공격으로는 승리하더라도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네. 선풍포의 준비는 어찌 되었는가?”
선풍포(旋風砲). 이 간이용 신형 투석기는 지렛대에 수십 개의 밧줄을 매달아 동시에 여러 명이 당길 수 있게 된 구조로 연사속도가 매우 빠르다.
수레에도 설치할 수 있으며 이동이 편하고 회전이 가능한 장점이 있으나, 크기가 소형이다 보니 위력이 다소 약한 단점도 함께 가지고 있다.
선풍포의 관리를 맡은 진립 부장이 대답했다.
“현재 우리 군단이 보유한 오십 대의 선풍포 모두 수레 장착이 완료되었습니다.”
“고생했네. 이것은 성벽 위의 궁수들을 견제하기 위한 용도일세.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여 점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접근해야 하네. 좋은 의견이 있는 자는 어디 제안해 보시게.”
군사회의실이 잠시 정적에 빠졌다. 그리고 일다경의 시간이 지난 뒤 소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전술지도를 바라보며 일각 동안 의견을 제시했다.
소무의 말이 끝나자 장양의 얼굴에 놀랍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만약 자네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군. 하지만 과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한중의 특공부대를 믿으십시오.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장양은 잠시 고민하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자네에게 가장 어려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군. 우리의 병사들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부탁하겠네.”
“맡겨 주십시오.”
부관 양연정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만약 우리가 장안을 점령하여 섬서 지역을 탈환할 수만 있다면, 관문들을 거점으로 한중까지 아우르는 완벽한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됩니다.”
“관중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세. 그만큼 지리적으로 천혜의 이점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지.”
“하지만 우리가 장안을 점령하는 순간, 휘나라는 낙양을 방어하기 위해 함곡관에 병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난공불락의 관문을 다시 빼앗을 방도가 없습니다.”
함곡관은 중원과 관중을 사이에 둔 관문으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전투가 일어난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잘 알고 있네. 함곡관의 방비가 허술할 때 미리 탈환하는 것이 좋겠지. 그래서 내 악비 장군께 부탁해놓았네.”
“악비 장군께서 움직이신단 말입니까?”
“요청했더니 흔쾌히 수락하였네. 하남성을 통과하여 함곡관을 공격해주기로 하였지. 미리 선점하려는 의도 외에도, 장안으로 가려는 적의 지원군을 막아줄 걸세.”
“하지만 악가군의 병력은 고작 천 명 남짓 아닙니까? 그들만으로 어떻게 함곡관을…….”
“황유 장군의 군단이 휘하로 합류하였네.”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탄성을 터뜨렸다.
“황제와 간신배들을 참살한 황유 장군 말씀입니까?”
“맞네. 나라에서 반란군으로 낙인이 찍혔으니 몸을 둘 곳이 없었겠지. 악비 장군과 인연이 있기도 하였고. 게다가 호남과 호북의 추종세력들이 추가로 합류하였으니, 현재 악가군은 오천 군세에 이를 것이네.”
“기쁜 소식이로군요.”
“의병대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에게는 일선 전투에 참여하지 말고, 각 마을에 주둔해있는 적군의 잔당들을 소탕해달라고 요청해놓았습니다.”
“잘하셨네. 아직 의병대는 전력이 높지 않으니 지원 임무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겠지.”
악가군의 경우 화경의 고수인 악비와 경험 많은 백전노장의 부장들이 즐비하다. 반면 섬서 의병대는 대부분이 이류와 삼류급의 무인들로 구성된 상황이니 일선에서 활약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장양의 시선이 다시 일광에게 향했다.
“일광 백부장, 군순포의 준비는 어찌 되었는가?”
묵묵히 눈치를 보던 일광은 자신이 지목당하자 긴장한 모습으로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천 명의 포수 중 절반이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습니다. 대장 황개칠이 이들을 이끌고 구호대를 완벽히 호위할 것입니다.”
“고생했네. 그리고 위진철 부장은 오천 명의 신병들과 함께 이곳 한중을 지켜주시게. 자네의 능력을 가장 신뢰하기 때문에 맡기는 것일세.”
위진철은 함께하지 못해 내심 서운했지만, 장양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말에 힘차게 대답했다.
“예, 장군!”
장양은 다시 신의(神醫) 모청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종심을 넘어선 나이에도 매일같이 군단에 나와 환자들을 돌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모청 대장에게는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네.”
“제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뭐든 명하십시오.”
“의료부대에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니, 이번 전투가 끝나면 의무병을 대대적으로 늘려주시게. 섬서 북부 주민들의 상황이 생각보다 열악할 것일세……. 백성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민간 의료를 돕는 것보다 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장군. 의원이 없어서, 그리고 돈이 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백성이 한 명도 없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장양은 부장들을 둘러보며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출진할 일만 남았군. 섬서의 백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모두 서둘러 채비를 맞춰주시게. 이틀 후 야간에 출진을 시작할 것이네.”
장내의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장군!”
* * *
이틀 후 랑아대의 막사.
모든 대원이 특공부대의 갑주를 챙겨입고서 출발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소무가 허리춤에 검집을 묶으며 물었다.
“우리 딸은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
“네, 저는 내일 가요!”
“가면 쌀가마니 같은 거 날라야 해. 괜찮겠어?”
“네~ 천하제일 소소 장군이잖아요. 히히.”
뜬금없이 천하제일 장군이라니. 왠지 모르게 느낌이 싸했다.
아무렴 어떠하랴. 그녀가 같이 가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스승님 잘 따라다니고. 어려운 사람들 많이 도와주고 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소소는 허리를 꼭 끌어안고는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알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
삼촌들도 하나둘씩 나가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인사를 건넸다.
“힘내라, 구호대원 소소!”
“삼촌 보고 싶어도 좀만 참아야 해.”
“헤헤. 삼촌들도 잘 다녀와요~”
랑아대의 대원들이 모두 사라지자 막사 안이 썰렁해졌다. 날이 어둑해져 있기에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소소는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모처럼 혼자 막사에 있으니 심심해진 소소는 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비상 간식을 꺼내먹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없겠지?”
신병들을 제외하곤 모두 출진하였기에 놀아줄 사람도 없었다. 바닥을 뒹굴뒹굴하던 소소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오전.
막사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자로 뻗은 소소가 화음을 맞추어 코를 드르릉 골고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없이 자던 아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응?”
벌떡 일어선 소소는 나무로 만들어진 창문을 열고 해의 위치를 살폈다.
“어, 어떡해!”
늦잠을 자고야 말았다. 소소는 정신없이 전투복을 챙겨입고는 미리 챙겨둔 짐과 함께 후다닥 뛰쳐나갔다.
벌컥-!
막사 밖의 군영은 썰렁하기만 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군순포의 장원으로 내달렸다.
쌔앵-!
바람이 휘몰아치듯 한달음에 달려왔으나…….
“흐잉……. 다 어디 갔어!”
눈물이 찔끔 나왔다. 구호대가 이미 출발한 것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소소는 근처의 나무의자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던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제자는 잠꾸러기로구나.”
고개를 올려보니 단아하게 차려입고 나온 스승님이 보였다.
연설화의 목적은 바람이라도 쐴 겸 따라나서는 것뿐. 자신이 구호대원들하고 같이 쌀가마니를 옮길 일은 없지 않은가. 굳이 소소처럼 작업복을 챙겨 입을 필요가 없었다.
소소는 단숨에 연설화의 허리를 안으며 기뻐했다.
“히히. 스승님, 저 기다렸던 거예요?”
“응, 우리도 가볼까?”
둘은 손을 맞잡고 나란히 경공을 펼치며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요?”
“음. 바닥에 수레바퀴 자국이 있네. 멀리 못 갔을 거야.”
드넓은 대로에 바퀴 자국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속도는 빠르지 못할 터.
경공을 펼친 지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수레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우와…….”
소소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일렬로 끝없이 줄지어 늘어선 수레는 수백 대에 이르렀다. 그 길이가 무려 오백여 장에 이르렀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구호물자였다.
삼천여 명의 주민들이 전부 수레에 달라붙어서 이끌고 있었다. 장안성까지 이동하면서 많은 양이 줄어들겠지만, 처음이라 그런지 힘에 부치는 모습이었다.
“스승님, 우리도 도와주러 가요!”
“응……?”
“수레 끌어야죠~ 히히히.”
연설화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함께 수레를 끌자니?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자신의 역할은 은밀히 행렬 전체의 안전을 살피는 것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기습에 취약한 후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리를 이탈할 수 없었다.
“다, 다리가…… 좀 삐끗해서, 스승님은 천천히 가야겠어. 소소 먼저 가 있을래? 천천히 뒤따라갈게.”
“힝……. 스승님 아프면 안 돼요. 업어줄까요?”
소소가 손바닥만 한 등을 뒤로 내밀자 웃음이 나왔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네, 그럼 이따가 봐요!”
연설화는 행렬의 가장 후미에. 그리고 소소는 선두로 나아갔다.
앞에서 수레를 이끄는 인물들은 실력이 가장 강한 포수들이었다. 마공의 경지가 꽤 높아졌는지 안광에서 은은한 마기(魔氣)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두 수레에 낯익은 인물이 보였다.
“개칠이 아저씨!”
군순포의 대장 황개칠. 둘은 축국대회에서 같은 편으로 함께했던 인연이 있었다.
“어? 소소 왔구나.”
“이거 제가 끌게요. 헤헤.”
쌀가마니가 가득 찬 수레로 일반인은 한 대당 여덟 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움직인다. 군순포의 포수들도 서너 명씩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키보다도 훨씬 높은 수레를 혼자서 끌다니.
하지만 지금 자신있게 나서는 이는 랑아대장의 딸이며 한중의 꼬마장수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아이였다. 지켜보던 포수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와……. 엄청나잖아……?”
“저게 말이 돼……?”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무림제일고수인 검성이 강제로 환골탈태를 시킨 후 내공 수련을 직접 돕고 있다는 것을.
게다가 마교의 마지막 교주였던 옥화신녀가 공력까지 나눠주었다. 이 갑자를 웃도는 소소의 내공은 무림에서도 흔치 않은 수준이었다.
선두에서 수레 하나를 홀로 이끄는 소소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많은 사람과 함께 줄지어 이동하니 여행이라도 가는 듯 신이 났다.
특별한 일 없이 행군은 이틀간 계속되었다. 가난한 마을부터 구호물자를 조금씩 나눠주기 시작하여 장안성까지 도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들러야 할 마을이 많았다.
그리고 첫 번째 구호물자가 지급되는 마을. 양천읍이란 이 가난한 마을은 소소도 알고 있던 곳이었다. 섬서의 의병대가 결성된 마을이었으니.
“이곳은 다섯 대입니다!”
황개칠이 소리쳤다. 그러자 선두에 있던 소소가 냉큼 달렸다. 아는 주민들이 있으니 빨리 가서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갔다 올게요!”
수레 한 대가 날개를 단 듯 엄청난 속도로 마을을 향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이미 소식을 듣고 일부 주민들이 몰려나와 있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가진 아이였다. 마을 읍장을 포함한 몇몇 주민이 소소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자, 장군!?”
“안녕하세요, 아저씨~”
“그동안 어디 가셨나 했더니 구호대를 이끌고 계셨군요? 역시 훌륭하십니다…….”
소소는 쑥스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헤헤. 맛있게 드세요~”
“고, 고맙습니다, 장군님…….”
“저는 이제 다른 마을로 가봐야 해요. 히히. 안녕히 계세요.”
이곳에서부터 십여 장이 떨어진 나무 그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소의 뒤를 따라왔던 연설화는 이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