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장안성 탈환 작전 (1) (99/250)


99화 장안성 탈환 작전 (1)
2022.05.10.


관중평원까지 무혈진입에 성공한 한중의 군단은 바로 장안성으로 향했다. 거대한 성벽을 마주하게 된 병사들은 하나같이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당나라 왕조의 수도로 애용되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대도시. 그리고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거대한 암벽처럼 웅장하고 장엄했다. 게다가 폭이 육 장에 이르는 해자까지.

“뭐 저리 높아?”

“설마 우리가 저길 그냥 기어올라야 하는 건 아니겠지?”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장군님께서 우릴 개죽음으로 내몰 리가 없잖아.”

병사들은 다들 긴장했지만, 두려움에 떠는 자는 없었다. 아군의 지휘관들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군단은 장안성의 남문을 마주하고 진을 설치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처 입은 백성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터. 목적지에 당도한 이상, 시간을 끌 이유는 없었다.

“선풍포를 준비하라!”

장양의 외침에 후미에서 오십여 대의 수레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단에는 간이용 투석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투석기의 초기 형태는 지렛대에 오십여 개의 가는 밧줄이 매달려 수십 명이 동시에 끌어당기는 구조였다. 한중의 선풍포는 병사들의 무공 수준에 따라 지렛대의 크기를 좀 더 키우고, 밧줄의 숫자도 이십여 개로 줄였다.

쿠쿠쿠쿠쿵-!!!!

선풍포들은 일자진을 형성하여 사정거리에 성벽이 들어올 때까지 접근했다. 지휘부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곽철 부장이 말했다.

“성벽 위로 궁수들의 숫자가 상당합니다.”

얼핏 보아도 일만에 가까운 적병이 성벽 위에 포진하고 있었다.

예비 병력까지 포함한다면 총 군세가 이만 명에 육박한다는 정보는 틀림없을 터. 반면 아군의 병력은 고작 일만 사천 명에 불과했다.

“공성전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과거의 전투들과 비교해보면 매우 양호한 수준이지 않은가.”

장양이 반쯤 농담 식으로 던진 말이지만, 웃어야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병사들의 수준이 높다고 한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쉽게 뚫을 수 없는 차이였다.

곽철 부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후후. 만약 성벽을 기어오른다면 아군이 전멸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걸세. 나는 랑아대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네.”

“틀림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한중의 특공부대가 임무에 실패한 적은 없었지요.”

장양이 성벽 위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적병들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시게.”

병사들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경직된 모습이 몹시 긴장한 듯 느껴졌다. 분명 유리한 상황임에도 아군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리라.

“확실히 우리 병사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군요.”

“겁에 질린 열 명의 병사는 용맹한 병사 한 명도 당해낼 수가 없는 법이지.”

그때 진립 부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장군, 선풍포의 장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목표는 성벽 위의 궁수들입니다.”

“머뭇거릴 이유는 없겠지. 어서 시작하시게.”

진립 부장이 손짓을 보내자 한 장교가 신호기를 흔들었다.

“발사하라!!!”

오십여 대의 선풍포가 동시에 움직임을 개시하며 석탄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투콱-! 콱-! 콰콰콰콱-!!!

석탄들은 성벽 상단 곳곳에 부딪히며 거센 굉음을 토해냈다.

쾅-! 콰쾅-! 콰콰콰쾅-!

성벽이 뒤흔들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기에 성벽 위의 궁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첫 발은 조준점을 맞추기 위한 예비사격일 뿐. 두 번째부터가 진짜였다.

선풍포는 장전할 수 있는 무게가 대선포의 일할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매우 빨리 발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잠시 후 투석기부대의 장교가 다시 한번 신호기를 흔들었다. 천여 명의 병사들이 밧줄을 잡고 거침없이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발사하라!!!”

투콱-! 콰콱-! 콰콰콱-!!!

또다시 오십여 개의 석탄이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절반 정도가 성벽 위를 향해 정확히 다가갔다.

쾅-! 콰쾅-! 콰콰쾅-!!!

“크아아악!”

“크허억!”

석탄의 크기는 어른의 머리보다도 작지만, 위력은 성벽을 일 척 이상 파고들 정도로 엄청나다. 적중당한 병사는 단번에 고꾸라졌으며, 튕겨 오르는 파편에 주변의 병사들까지 피해를 입기 일쑤였다.

하지만 작은 석탄만으로 적군을 어느 정도나 죽일 수 있겠는가. 선풍포의 목적은 살상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양이 진립 부장을 향해 물었다.

“선풍포의 탄환이 얼마나 남았는가.”

“속도를 조절한다면 내일 일출까지는 공격이 가능할 것입니다.”

“다행이군. 랑아대가 움직일 수 있도록 적들의 시선을 최대한 이곳 남문으로 집중시켜야 하네. 병사들을 교대하여 사격을 멈추지 마시게.”

“예, 장군.”

“나머지 병사들은 푹 쉬어두라 일러두시게. 새벽녘에 모두가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 * *

진령산맥의 서쪽을 넘어 은밀하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검은 갑주를 두른 백여 명의 전사들. 조금의 소음도 없는 걸음걸이에서는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개가 느껴졌다.

붉은 술이 장식된 투구를 눌러쓴 자가 선두에서 오른손을 올려 보였다.

“이곳에서 잠시 대기한다.”

소무의 명령에 대원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정지했다. 바로 뒤에 있던 청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날이 어두워져야겠죠?”

“응. 이곳부터는 몸을 숨길 곳이 없어. 성벽의 사방이 트여있으니 기습도 쉽지 않고……. 궁수들의 가시거리가 짧아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근데 우리만으로 성벽을 넘을 수 있겠어요? 높이가 한중은 비교도 안 된다던데.”

“걱정할 것 없어. 남문에서 본진이 불을 지피고 있으니 서문에는 병력이 얼마 없을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대장의 말투에 청해는 헛웃음을 머금었다.

“하하. 말이 쉽죠. 성벽 오르다가 강노에 한 방이라도 맞으면 즉사예요.”

강노(强弩). 발로 장전하는 이 거대 활은 매우 강력하며, 개조된 것은 연사까지 가능하다. 무림인의 호신강기조차 단번에 꿰뚫는 강노의 위력은 소무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미 개방에서 건네준 정보로 장안에 강노병들이 상당수 배치되어있는 것으로 파악되어 있었다.

“물론 그냥 오르면 우리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내가 잠시 적병들의 시선을 끌어 볼 테니, 그 틈에 먼저들 올라가.”

지척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현정이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적군의 병력이 남문에 집중되어있다고 한들, 못해도 수백에서 천 명 이상은 배치돼있을 것이 틀림없을 터. 쏟아지는 화살비를 홀로 피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광이 현정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대신 답했다.

“대장이 화살 따위나 맞고 죽을 사람은 아니니까 우리나 걱정해.”

“역시…… 그렇겠죠?”

“당연하지.”

소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거 너무들 하는군.”

대원들은 곳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날이 어둑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가시거리가 짧아지자 소무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슬슬 출발하지.”

랑아대는 다시 평야를 내달렸다. 머지않아 거대한 성벽을 마주하자 소무가 손짓을 보냈다. 대원들은 측면으로 이동했으며, 그는 곧장 성문을 향해 질주했다.

성벽 위로 얼추 천여 명에 이르는 병사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딴청을 피우거나 방심하고 있었다.

랑아대의 흑갑은 매복과 야습 등 특수임무에 적합하도록 제작되어 있다. 어둠 속에 움직이는 검은 이리의 질주는 은밀하고 고요했다.

소무가 성문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인기척을 내자, 몇몇이 눈치채고 경계신호를 보냈다.

“적병이다!!!”

“성문 앞에 적병이 왔다!!!”

난데없는 소란에 방심하고 있던 수비병들이 화들짝 놀랐다. 야간에는 피아식별이 어렵기에, 공성전이 벌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모두가 어리둥절하며 상황을 살폈다.

상대는 고작 한 명. 그는 성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정체를 밝혀라!”

“뭐 하는 놈이냐!?”

성문 앞에 우뚝 선 소무는 묵묵히 손을 펼치고 있었다. 잠시 후 붉은 강기에 휩싸인 그의 손바닥이 다짜고짜 성문을 후려쳤다.

쩌어엉-!!!

성문이 뒤흔들리며, 타격 부위가 움푹 들어갔다. 거센 진동이 성벽 위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엄청난 괴력. 충차가 때리는 것보다 더한 듯했다.

수비병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욕설을 뿜어냈다.

“저, 저 새끼 뭐야?”

“미친!”

“조준해!!!”

그의 손바닥이 어느새 또 한 번 성문을 후려치고 있었다.

쩌어엉-!!!

마치 혼자서 성문을 때려 부수겠다는 몸짓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장안성의 성문을 말이다.

성벽 위의 장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발사!!!”

궁수들과 강노병들이 성문 아래로 화살 세례를 날리기 시작했다.

파파팟-!! 파파파팟-!!!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며 다가오는 화살들. 그리고 그것이 당도하기 전에 소무는 이미 보법을 밟고 있었다.

그의 신형이 후방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지며 물러났다.

푹-! 푸푹-! 푸푸푹-!!!

소무가 서 있던 자리로 수백 발의 화살이 땅속 깊이 파고들었다. 심상치 않은 몸놀림에 수비병들은 긴장했다.

그들이 다시 장전을 준비할 무렵. 소무가 또다시 성벽을 향해 벼락처럼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이 다시 성문을 후려쳤다.

쩌어엉-!

이대로라면 정말 성문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게 무슨 미친 상황이야!?”

“모두 이쪽으로 오라고 해!!!”

수비병들이 다급히 지원하기 위해 달려오며, 성문을 막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리고 성문에서부터 오십여 장이 떨어진 어둠 속에서는, 랑아대의 대원들이 눈빛을 빛내며 때를 기다렸다.

밧줄을 둘둘 말아 어깨에 걸친 일광이 대원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어서 출발해. 우리 대장 고슴도치 되기 전에.”

사인일조(四人一组)를 이룬 대원들이 순차 적으로 성벽을 향해 질주했다. 폭이 육 장에 이르는 해자가 있으나, 이 정도의 거리라면 수상비를 펼치는 데 문제없었다.

두 개 조가 선두에서 먼저 움직이며 물 위를 박찼다.

타앗-! 타앗-!

성벽에 당도한 여덟 명은 서로 마주 보고 어깨를 붙잡았다.

한 호흡이 지난 뒤 세 번째 조가 다가왔다. 지면을 짧게 박차고 날아오른 그들은 앞서 당도한 대원들의 어깨 위를 밟고 올라탔다. 이어서 당도한 네 번째 조도 도약하며 그들 위에 지지대를 형성했다.

인간탑을 쌓고 있는 랑아대의 대원들. 순식간에 육 층 구조의 탑이 완성되자,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몸으로 탑을 구성하고 있던 자들은 긴장했다. 거대한 체구의 일광이 선두에서 내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광의 무게를 감당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기세만은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헉!”

“이런!”

이백 근이 넘는 거대한 체구가 새처럼 날아올랐다.

탑의 중간쯤에 몸을 날리자, 뼈대 전체가 휘청거렸다. 지지대 역할을 하는 대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불평했다.

“형님은 밑에서 받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도대체 왜…….”

일광은 탑의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며 말했다.

“나랑 어깨높이가 맞는 놈이 없잖아.”

잠시 후 꼭대기에서 거대한 불곰이 성벽 위를 향해 날아올랐다.

타앗-!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 호흡에 서너 명씩 계속해서 성벽 위로 뛰어오르길 반복했다.

그러길 잠시 후. 랑아대의 움직임이 기어코 수비병에게 발각되고야 말았다.

“저, 저 새끼들 뭐야!?”

“빨리 전부 떨궈버려!”

화들짝 놀란 수비병들이 검을 뽑으며 질주를 개시했다. 그러나 이미 절반이 넘는 대원들이 성벽 위로 올라온 이후였다.

일광은 어깨 위에 있던 밧줄을 밑으로 던지며 좌우를 향해 말했다.

“뭐해? 빨리 가서 전부 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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