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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장안성 탈환 작전 (2) (100/250)


100화 장안성 탈환 작전 (2)
2022.05.11.


투석기의 포격은 해가 저물 때까지 계속되었다.

“장군, 좀 쉬십시오.”

부관 양연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장양을 만류했다. 온종일 지휘 막사 앞에서 성벽만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으니 자네라도 좀 쉬어두시게.”

“아직 랑아대가 임무를 완수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습니다. 그래도 체력을 좀 비축해두심이…….”

그때였다. 장양이 다급한 목소리로 투석기 부대의 장교를 향해 소리쳤다.

“선풍포의 타점을 아래로 낮추시게! 어서!”

양연정의 시선이 성벽을 향했다. 그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확인한 그의 미간이 급격히 좁혀졌다. 성벽 위에 어린아이들이 매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방패막이로 민간인을 인질로 세우다니. 적군의 잔악함에 입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놈들이 기어코 선을 넘는군요.”

“어찌 저리 몹쓸 짓을…….”

궁수들을 공격하던 투석기는 타격지점을 낮추어 성벽을 때리기 시작했다.

쾅-! 콰쾅-!! 콰콰쾅-!!!

선풍포 따위에 무너질 장안성의 성벽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들의 사기를 낮추고 시선을 끌기 위해선 공격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한식경이 지난 뒤엔 좀 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성벽 위에 매달린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무엇인가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하지 마세요!!!”

“회군하세요!!!”

예닐곱 살쯤 되는 아이가 회군이 무슨 의미인지 어찌 알겠는가. 휘나라의 병사들이 강제로 협박해서 시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틈에 한 어린아이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장군님!!! 어서 구출해주세요!!!”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 둘 휘나라의 병사들이 아니었다. 등 뒤에 있던 병사가 다급히 검을 움직이며 아이의 입을 막아버렸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본 장양은 양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무 부장……. 어서 서둘러 주시게…….’

랑아대가 일을 마치기 전까진 군단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이 서문을 넘어 민가를 통과한 후 남문의 성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때부터 아군의 총공세가 시작될 것이다.

지휘부는 애타게 그들을 기다렸다.

그때 말을 탄 기수 하나가 먼 곳에서 황급히 달려왔다. 군단의 정찰병이었다.

“장군! 위급 전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황급히 말에서 내린 기수는 다급히 말했다.

“휘나라의 기마대가 동쪽 성문을 빠져 나왔습니다!”

수비병보다 적은 병력으로 성을 포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대신 성의 주위로 물샐 틈 없는 정찰을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기마대라니? 그들의 규모는 얼마인가? 방향은?”

“저는 바로 달려와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잠시 뒤 추가적인 전보가 당도할 것입니다.”

평야에서 기마대에 후미를 기습당한다면 궤멸 수준의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장양이 황급히 지휘부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창병대를 즉시 후미와 측면에 배치하고 목책을 설치하라!!!”

“예, 장군!”

장교들이 서둘러 뛰어나가며 병사들을 이동시켰다. 아군의 대열이 출렁이며 진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장창을 움켜쥔 병사 사천 명이 후미에서부터 동쪽으로 방어진을 형성했다. 곳곳에서 미리 준비해온 목책을 설치하며 대 기마전을 준비했다.

곽철 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장군, 이 정도면 어지간한 기마대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습니다. 헌데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으십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네.”

“무엇이 말입니까?”

“적군은 우리 군단이 기마대와의 싸움에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걸세. 그리고 정찰능력도 말이지. 개전 첫날부터 무리해서 우리를 기습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그럼 다른 이유로 성 밖을 나왔다는 말씀입니까?”

“어디까지나 직감일세.”

잠시 후 또 한 명의 정찰병이 황급히 말을 몰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해질 터.

“장군, 큰일 났습니다! 휘나라의 기마대부가…….”

그들의 목적지가 이곳이 아니라는 것쯤은 말투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향한 곳이 어디더냐!”

“우리 군단을 우회하여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규모는!?”

“이천입니다.”

장양은 서둘러 지휘 막사 안으로 들어가 탁상 위의 지도를 살폈다. 다급히 곽철 부장이 따라와서 물었다.

“기마부대가 왜 남쪽을 향하는 것입니까?”

“마을들을 타격하여 우리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주고, 회군을 유도하려는 수작인 듯하네.”

“왜 그런 짓을…….”

“병사들 대부분이 섬서 출신이 아니던가. 빠른 기동력으로 남부까지 밀고 들어가서 마을들을 휘젓는다면, 병사들이 가족들 걱정에 어찌 제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후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호대가 가장 먼저 도살당할 우려가 있었다.

“구호대원들이 위험할 수 있겠습니다. 호위를 맡은 군순포가 상승마공을 수련하고는 있지만, 대 기마전의 전술훈련은 아직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개개인의 무공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집단전투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 그것을 모를 장양이 아니었다.

“지금 의병대는 어디에 주둔하고 있는가?”

“관중평야의 입구인 호현 관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지금 구호대의 위치와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기마부대는 반드시 호현을 지나야 한다. 그곳에서 막아야 하네. 믿을 수 있는 건 의병대밖에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 의병대의 수준으로 그들을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의병대는 대부분이 이류와 삼류로 이루어져 있다. 일류고수들을 보유하지 못했으니 군순포보다 낫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대안이 없었다.

“우리의 지원군이 당도할 때까지만 버텨주면 되네. 현재 경공이 가장 빠른 자가 누구인가.”

“랑아대가 모두 임무에 투입된 이상, 양연정 부관님이 제일입니다.”

말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내달려 휘나라의 기마부대를 따돌리고 의병대를 만나야 한다.

“양연정 부관과 한백 부장을 서둘러 불러오시게.”

행정병들이 쏜살같이 뛰어나가 그들을 불러왔다. 양연정과 한백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명령하십시오, 장군.”

“부관은 지금 즉시 호현 관아로 가서 의병대에게 시간을 끌어달라 전해주시게. 이후 구호대에 들러,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대피하라고도 말일세.”

“알겠습니다, 장군.”

양연정에게 명령을 내린 장양은 고개를 돌려 한백을 바라보았다.

“한백 부장.”

“예, 장군!”

“이천 기의 기병을 이끌고 전력으로 달려주시게.”

“맡겨 주십시오.”

양연정과 한백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장양은 다시 성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곽철 부장. 나머지 병력은 공성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시게.”

“예!”

* * *

호현으로부터 남쪽으로 삼십여 리.

양화촌에 도착한 구호대는 뿔뿔이 흩어져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날이 늦었기에 오늘은 이곳이 마지막 마을이었다.

구호대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곡식과 필수물자를 나눠주고,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약재도 보급해주었다. 굶어 죽어가던 주민들에게는 암흑 속에 서광이 나타난 것과도 다름없는 일이었다.

군순포의 대장 황개칠 또한 대원 몇 명을 이끌고 주민들에게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중에서 오셨다고요……. 고맙습니다.”

중년의 여성이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황개칠이 그녀의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으흐흑…….”

중년 여성은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전란이 일고 나서 이렇게 따뜻한 손길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황개칠이 그녀를 위로하듯 따듯하게 안아주며 토닥여주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조금만 버티십시오. 우리 장군님이 장안을 탈환하면 머지않아 삶이 바뀌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떨어져서 고개를 숙여 보인 황개칠은 다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그의 시선이 옆에 있는 대원을 향했다. 왈패 시절 개칠이파의 행동대장으로 오른팔 같은 동생이었다.

“임마, 너는 왜 질질 짜고 있어?”

“개칠이 형님이 이렇게 좋은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나쁜 놈 맞아. 상인들 돈이나 뜯어먹고 사는 왈패쓰레기였지.”

“그래도 지금은 모든 주민이 형님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형님 말고 대장님이라 부르라니까? 아무튼, 모두 장군님 덕분이지 뭐. 우리를 받아주고 새 삶을 주셨으니 목숨 바친다는 생각으로 보답해야 해. 그게 우리들의 방식이잖아.”

“예, 형님. 아니 대장님!”

군순포의 일원이 된 이후로 가는 곳마다 주민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으니 가슴이 뿌듯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포수들의 얼굴에는 정의로움이 가득 차고 있었다.

쉬지 않고 구호 활동을 벌이고 있었으나, 보급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몸이 아픈 자들보다는 마음을 다친 자들이 문제였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보듬어줄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우리 꼬마장수, 어디 갔나 했더니 저기 있었네.”

모두의 시선이 십여 장 거리에 있는 회관 입구로 향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한 중년 남성. 눈에 초점이 없는 그자 앞에서 소소가 퉁소를 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쪽으로 가시죠. 마침 집결 장소이기도 하니.”

“퉁소 연주가 듣고 싶었던 건 아니고?”

포수들도 소소의 곁에 자리를 틀고 하나둘씩 주저앉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늘 임무는 끝났으니, 조금 쉬다가 야영을 준비할 참이었다.

강구연월지곡(康衢煙月之哭).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을 그리는 음악으로 소소가 지금 연주하고 있는 곡명이다.

맑고 청량한 음률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고향 생각에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반각이 지나자 포수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옆에 있던 포수가 울먹이며 물었다.

“대장님……. 지금 무슨 생각 했어요?”

“그냥 어렸을 때…… 개울가에서 아버지하고 물고기 잡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 지금은 안 계셔. 너는?”

“우리 형하고 어렸을 적 논밭에서 메뚜기 잡고 놀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가 따뜻한 팥죽을 끓여 주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형도, 어머니도…… 다시는 볼 수가 없어요.”

“그 시절 그때가 그립네……. 고향……. 다신 돌아갈 수 없는 기억이지만…….”

다들 침묵에 잠기며 추억의 회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반각이 더 지난 후 퉁소 연주가 끝을 맺었다.

소소가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응시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멍해있던 그의 눈이 서서히 초점을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어서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저씨, 왜 울어요?”

“죽었어……. 부인……. 그리고 아이들까지……. 모두…….”

“왜…… 왜요……?”

“산에 약초 캐러 갔다가 돌아오니 모두 죽어있었어……. 끄흐흑……. 그때 나도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소소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 어떡해요…….”

“아저씨……. 한 번만 안아줄 수 있니?”

소소를 보니 딸아이의 모습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작은 팔이 그의 목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했다.

“고맙구나……. 우리 딸…….”

황개칠이 중년인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며 말했다.

“유감입니다……. 위로는 안 되겠지만…… 이곳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같은 부모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우리와 함께 가시지요.”

잠시 머뭇거리던 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이곳에 포수들이 집결할 테니 함께 움직이시지요.”

그때였다. 갑자기 소소의 손가락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양 아저씨!?”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장창을 움켜쥔 장수 하나가 이곳으로 미친 듯이 내달려오고 있었다.

한중에서 제일가는 창잡이로 소문난 양연정 부관이었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그는 도착하기도 전에 소리부터 질렀다.

“황개칠 대장, 어디 있소!?”

“여, 여기 있습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지금 즉시 구호대를 이끌고 대피해주시오.”

“무슨 일입니까?”

“휘나라의 기마부대가 내려오고 있소. 송겸 대협이 이끄는 의병대가 호현에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지만,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오.”

이곳에 있던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황개칠이 검집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 군순포도 돕겠습니다.”

“마음은 알겠으나 구호대원들의 피난과 보호가 우선이오. 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면 다시 사람을 보내겠소.”

“……알겠습니다. 다시 그곳으로 가실 겁니까?”

“현재 의병대의 전력으로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으니 도와야 하지 않겠소…….”

말을 마친 양연정은 다시 호현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의병대의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아군의 기마대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했다.

“후…….”

질주하는 그의 입에서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경공의 속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리며 전력으로 내달려왔기에 몸이 지쳤기 때문이다. 그때 난데없이 인기척이 들려왔다.

“양 아저씨, 지금 어디 가요?”

화들짝 놀란 양연정이 다급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느새 여자아이 하나가 자신의 허리춤에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소소야, 네가 여긴 어떻게……?”

“의병대 아저씨들이 위험해요?”

“맞아, 그래서 도우러 가고 있다. 그러니 너는 어서 군순포 아저씨들한테 돌아가거라.”

“근데 이쪽 길로 가는 거 맞아요?”

“어차피 거기까진 외길이야. 근데 네가 알아서 뭐 하려고?”

“저 먼저 가 있을게요!”

갑자기 소소의 경공이 급속도로 빨라졌다. 예전보다 더욱 날래진 바람 같은 움직임에 양연정은 혀를 내둘렀다. 거리는 계속해서 벌어졌지만, 지쳐있는 그로서는 도저히 따라잡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당장 돌아와!!!”

“싫어요! 내가 아저씨들을 도와줘야 해요!”

양연정은 혀를 내둘렀다. 소소의 속도는 이미 말보다 세 배가량이나 빨라졌다. 아마도 순간적인 속도이리라. 이 절정의 속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탈진할 우려가 있기에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

소소의 고집은 아무도 못 당한다. 양연정도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장기를 두던 친구가 아니던가.

“휴…….”

그가 한숨을 내쉴 무렵. 쏜살같은 그림자 하나가 양연정을 지나치며 은밀히 소소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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