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장안성 탈환 작전 (3) (101/250)


101화 장안성 탈환 작전 (3)
2022.05.12.


장안은 주변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특정 길목만 틀어막으면 뚫릴 수가 없는 천혜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반대로 길목을 돌파하지 못하면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관중평야 남부의 출구인 호현 입구의 대로. 지금 이곳을 칠백여 명의 장한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어서 서둘러! 곧 있으면 기마대가 도착한다고 한다!”

의병들은 저마다 통나무와 나뭇가지, 돌멩이들 따위의 장애물을 가져와 길목에 쌓았다. 여유롭게 목책을 만들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손에 잡히는 것은 모조리 가지고 와서 펼쳐놓았다.

송겸 대장이 참모 양흥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게 과연 효과가 있겠습니까?”

“양연정 부관님은 노련한 장수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충분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병들과는 싸워본 경험이 없는 의병대였다. 게다가 병력까지 자신들의 세 배라고 하니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양흥이 의병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관군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모두 서둘러 주십시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의병들. 돌연 그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정지했다. 전면에서 거센 먼지가 일며, 지면이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 온다!”

“어, 얼마나 많은 거야?”

기마대의 강점은 빠른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것을 마주하는 자들은 어지간해선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의병들은 적군이 시야에 나타나기도 전에 주춤거렸다.

“어서 서둘러 모여!”

장애물들 뒤에 의병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군처럼 진형 따위는 없었다.

잠시 후 먼 곳에서부터 기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평야에서 기마대를 마주하고 어찌 태연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불안해진 의병들은 저도 모르게 겁을 집어먹었다.

“저, 저걸 어떻게 막아?”

“우리 오늘 여기서 죽는 겁니까?”

“애들아, 아버지 집에 못 돌아갈 것 같아…….”

적들의 규모가 아군의 세 배에 달했으며, 마치 한 몸처럼 돌진해오는 진형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송겸 대장이 선두로 나서며 소리쳤다.

“어차피 우리가 뚫리면 가족들도 다 죽어! 관군이 올 때까지 무조건 버텨야 한다!”

의병대의 결성 이후 가장 큰 위기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도주할 수도 없었다. 이곳이 뚫리면 자신들의 고향이 무참히 짓밟히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바로 섬서 의병대다! 목숨 걸고 막을 것이다!”

지휘관들이 연신 의병들을 독려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하는 인물까지 있을 정도였다.

기마대와의 거리가 백여 장 이내로 좁혀졌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때 돌연 의병대의 후미에서 거센 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파아앙-!

한줄기 바람이 휘몰아치며 의병들에게 뿜어졌다. 그 순간 낯익은 여자아이가 벼락처럼 나타났다.

후다닥 달려온 소소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헥헥! 힘들다. 아저씨들 안녕하세요?”

의병들의 얼굴에 반색이 떠올랐다.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자, 장군……!?”

“소소 장군님께서 우릴 도와주러 오셨다!!!”

“내가 그랬잖아!? 위험에 처하면 와주실 거라고!”

갑자기 분위기가 돌변하며, 의병들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아직 안 늦었죠?”

송겸이 소소의 앞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때맞춰 오셨습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용기가 생겨나고 전의가 불타오른 의병들. 그들은 손아귀에 움켜쥔 무기에 힘을 주며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십여 장이 떨어진 은행나무 아래의 그림자. 그들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던 연설화는 어리둥절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소소가 의병대의 장군이라니?’

그녀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어갔다. 그래도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대열의 선두로 나선 소소는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더니 양팔을 휘저으며 태극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저 자세는……?’

용격사자후(龍擊獅子吼)였다. 하늘을 나는 용을 사자의 포효로 떨어트린다는 마교 최고의 음공이다. 당대 무림에는 연마한 자가 없었기에, 그녀도 내심 위력이 궁금했다.

소소의 반경 이십 장으로 거센 기의 돌풍이 일어났다. 바람이 휘날리고, 지면의 풀들이 미친 듯이 흔들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야?”

“가, 갑자기 웬 폭풍이?”

의병들은 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에 당황했다. 돌풍을 일으키는 소소가 씨익 웃었다.

“히히. 아저씨들, 모두 귀 막으세요.”

“모두 양쪽 귀 틀어막고 뒤로 물러나!”

의병들이 황급히 소소의 뒤쪽으로 늘어서며 귀를 막았다. 어느새 기마대와의 거리는 이십 장 이내로 좁혀졌다.

소소는 학이 날개를 펴듯 양손을 서서히 움직이며 요동치는 기를 다스렸다. 그리고 아이의 입이 벌어진 순간. 거세게 휘몰아치던 기의 파동이 작은 입으로 순식간에 증발하듯 빨려 들어갔다.

“후우우우웁-!”

요란스러웠던 기의 파동이 사라지고, 주변이 폭풍전야처럼 고요해졌다. 어느새 소소는 호두 같은 두 주먹을 허리춤에 붙이고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한편 기마부대의 기수들은 눈앞의 의병들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자 어리둥절했다. 아무렴 어떠하랴. 그냥 한 방에 밀어버릴 심산으로, 그들은 돌파를 준비하며 무기를 움켜쥐었다.

선두에서 내달리던 기마부대의 장수가 무기를 높이 치켜든 순간이었다.

찰나의 순간. 소소의 입이 열리며 천지를 진동시키는 사자의 울음소리가 토해져 나왔다.

“크아아아앙-!!!”

부채꼴로 뿜어지는 음파는 전면으로 삼십여 장의 풀들을 모조리 꺾어버렸다. 의병대가 모아놓은 장애물들이 폭발하듯 허공으로 날아가며 비산했다.

“크악!”

“컥!”

“크허헉!”

수백 명의 기수들이 귀에서 피를 쏟으며 낙마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이 잘된 몽골초원의 군마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히이잉-!!!

말들이 서로 부딪치고 쓰러진 기수들을 짓밟으며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리고 허공으로 날아오른 통나무와 돌멩이들이 그들의 머리 위에 신의 징벌처럼 쏟아져 내렸다.

후두둑-! 콰직-! 콰앙-!

“크어억!”

“크윽! 뭐, 뭐야 이 미친 상황은?”

“끅.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음파를 정면에서 맞은 기수들은 쓰러져서 경련을 일으켰다.

중간 대열은 기혈이 들끓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며, 후미의 병사들만 겨우 말에서 뛰어내려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소소가 뒤를 돌아보았다. 입을 떡하니 벌린 의병들이 붕어처럼 입을 뻥끗하고 있었다.

송겸이 겨우 마음을 추스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장군…….”

단 한 방에 기마대의 돌진을 무력화시켰으니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소가 반쯤 감긴 흐리멍덩한 눈으로 말했다.

“졸려요……. 저 좀 자도 돼요?”

용격사자후는 준비가 오래 걸리며, 엄청난 내력을 순간적으로 발출하는 만큼 기력의 소모 또한 크다는 단점이 있다. 무리해서 힘을 썼으니 당연히 졸릴 수밖에.

송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센 고함을 내질렀다.

“장군께서 뒤는 우리보고 정리하라고 하셨다!!! 모두 무기를 들고 공격하라!!! 이 쓰레기들을 당장에 치워라!!!”

사기가 하늘 높이 치솟은 의병들이 돌격을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돌격!!!”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기병들은 바로 대항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말들이 미쳐 날뛰고 있었기에 퇴각할 수도 없었다. 그들을 향해 의병대가 들이닥치며 분노의 칼부림을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감히 우리 마을을 노려!?”

“우리 장군님의 위력을 봤지!? 뒈져!”

푸욱-! 촤아악-!

의병대들의 활약으로 앞쪽에 자리한 기병들이 학살을 당하기 시작했다.

전세가 의병들에게 기우는 듯했지만, 문제는 후미의 기병들이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한지 말에서 내려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의병들보다 숫자도 많았다.

대로에서 처절한 난전이 시작될 무렵, 소소는 전장에서 조금 벗어난 은행나무 밑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더니 정신없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드르렁-! 드르렁-!

그러길 잠시 후. 은행나무의 뒤편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군님. 이제 가실까요?”

은행나무의 그림자에서 가냘픈 인영이 나타나 아이를 안아 들었다.

‘용격사자후의 위력이 엄청나군. 육성인데 이 정도면…… 십성이면 기마대가 동시에 격살당했겠어. 그런데 왜 의병들이 소소를 장군이라 부르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왼손으로 소소의 엉덩이를 받치고 가슴으로 안아 든 연설화. 그녀의 발걸음은 구호대가 있는 방향으로 향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멈추었다. 등 뒤에서 처절하게 메아리치는 비명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음…….”

뒤돌아보지 않아도 의병대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자후의 영향으로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피했지만, 수적으로 열세였기에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다.

연설화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제자가 기를 쓰고 지키려고 했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냥 무시하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의병대가 전멸하면 슬퍼하겠지.’

결심을 굳힌 그녀가 다시 등을 돌렸다.

어느새 의병들이 점차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난전으로 연설화가 벼락처럼 다가갔다.

파아앙-!!!

그녀의 몸에서 숨 막히는 마기가 뿜어져 나오며 전장을 지배했다.

갑자기 난입한 정체불명의 고수에 많은 이들이 화들짝 놀랐다. 차원이 다른 움직임과 기세. 휘나라의 장교가 다짜고짜 소리쳤다.

“저년부터 잡아!!!”

십여 명의 병사들이 그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연설화의 입가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가 오른손을 내뻗자 허리춤에서 한 움큼의 비침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기마대가 어찌 알겠는가. 마교 최강의 비침술인 마화비전(魔華飛電)을 눈앞에 두고 있음을.

그녀의 손이 오므려졌다가 활짝 펼쳐지자, 비침들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날아갔다.

파파파파팟-!!!

푹-! 푸푹-! 푸푸푹-!!!

“크윽!”

“크아악!”

눈 깜짝할 사이 십여 명의 병사들이 쓰러졌다. 휘나라의 병사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아이를 안아든 연설화가 그들을 향해 마주 쏘아져 나갔다.

벼락이 치듯 병사들의 사이를 질주하며, 그녀는 사정없이 오른손을 휘둘렀다. 묵빛의 기류에 휩싸인 손은 한 호흡에 대여섯 번이나 움직임을 발했다.

쩌억-! 콰직-! 콱-!

그녀의 손바닥에 적중당한 병사는 목이 꺾이며, 고꾸라지거나 튕겨지듯 날아갔다.

“뭐, 뭐야?”

“미, 미친…….”

순식간에 수십 명의 병사들이 고혼이 되어 쓰러졌다. 항거할 수 없는 존재 앞에 휘나라의 병사들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기수들은 전술훈련에 중점을 두기에 개개인의 무력은 약한 편에 속한다.

검기를 발출할 수 있는 자는 찾아보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이들만으로 마교의 마지막 교주였던 옥화신녀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그때 의병 중 누군가가 환희에 휩싸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장군님의 부하가 우릴 도와주러 왔다!!!”

연설화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무력을 보고도 부하라고 판단하다니. 이들이 소소 장군을 얼마나 숭배하는지 알 만했다.

“우와아아아!!!”

“모두 쓸어버려!!!”

의병대의 사기가 다시 하늘을 꿰뚫었다. 이제는 군마를 잃은 기마부대의 병사들이 당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설상가상으로 창잡이 하나가 전장에 난입해 들어왔다. 창기(槍氣)를 사정없이 흩뿌리며 무쌍을 펼치는 양연정. 양가창법의 일인자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몸놀림이었다.

촤아악-!!! 써컥-!!!

그가 한 번씩 창을 휘두를 때마다 두세 명의 병사가 고꾸라졌다. 전세가 완전히 기울었음을 눈치챈 휘나라의 장교가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퇴각하라!!!”

올 때는 말을 타고 왔으나, 퇴각할 때는 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병사들의 뒤로 의병대가 눈에 불을 켜고 뒤쫓았다.

“놈들이 도망친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추격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휘나라의 기수들은 절망에 빠졌다. 전면에서 먼지가 일며 한중의 기마부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전장을 벗어난 연설화는 근처의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있었다.

‘더는 볼 필요도 없겠군.’

그녀는 소소가 편히 잘 수 있도록 자신의 등 뒤에 업었다. 나무 위에서 사뿐히 내려선 후 반대편으로 나아갔다.

구호대가 있는 곳으로 한참을 내달리고 있을 때였다.

“엄마…….”

연설화는 화들짝 놀랐다. 소소가 자신을 엄마라 부르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응?”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코 고는 소리만 들려왔을 뿐이다.

드르렁-!

‘뭐야……. 잠꼬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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