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장안성 탈환 작전 (4) (102/250)


102화 장안성 탈환 작전 (4)
2022.05.13.


장안성 남문 앞. 지금 이 순간에도 성벽을 향한 투석기의 포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곽철 부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장군, 말씀하신 대로 경공이 빠른 보병들에게 방패를 지급하여 선두에 세웠습니다.”

“한백 부장의 기마대가 빠졌으니, 보병들로 승부를 봐야겠지. 돌격을 시작하면 궁수들이 바로 엄호사격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시게.”

“알겠습니다.”

장양은 손에 땀을 쥐고 성벽 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질로 잡혀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휘나라의 장수 한 명이 적루 위에서 소리쳤다.

“회군하지 않으면 지금부터 이 아이들을 한 명씩 죽이겠다!!!”

장양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가슴이 찢어지고 있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린다면 저들의 만행이 더욱 심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할 터.

그는 입담이 좋은 장교에게 눈짓을 보냈다. 명령을 받은 장교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서서 소리쳤다.

“어디 한번 해 봐!!! 너희들의 잔혹한 짓거리는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할 뿐이다!!!”

“이 아이는 네놈 때문에 죽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입 닥치고 해보라니까, 새끼야!!!”

휘나라의 장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상대의 말대로 오히려 적군이 독기를 품고 전의가 치솟을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했던 말을 물릴 수는 없었다.

그는 성큼성큼 근처의 한 아이를 향해 걸어갔다. 날카로운 검이 서늘한 살기를 머금으며 움직임을 개시했다.

아래에서 지켜보는 자들은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검을 휘두르던 장수가 얼음이 된 것처럼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리둥절할 찰나, 장양이 나직이 말했다.

“때가 왔군. 돌격을 준비하시게.”

“예……?”

곽철 부장이 잠시 눈빛을 빛내어 성벽 위를 살펴보았다. 휘나라의 장수 뒤에 검은 인영 하나가 유령처럼 서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무 부장일세.”

쩌억-!

둔탁한 타격음이 이곳까지 들려왔다. 동시에 휘나라의 장수가 성벽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미친 듯이 비명을 토해냈다.

“크아아악!!!”

풀썩-!

그것이 시작이었다. 성벽 위로 흑갑을 걸친 랑아대의 대원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숫자는 오십여 명이었다.

랑아대원들은 곳곳으로 내달리며 병사들을 거침없이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목표는 인질로 매달린 아이들이었다.

살라타이 같은 정예부대가 아닌 이상 랑아대를 막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그들에게 잠시라도 맞서 버티는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나머지 대원들은 아래에서 성문을 열고 있을 것이 분명할 터.

‘고생들 했네.’

성벽 위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여 보인 장양은 말 위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전원 전투준비!!!”

방패를 움켜쥔 정예병사들이 전면으로 나서며 돌격태세를 갖추었다. 후미로 검병과 창병이 도열했으며, 궁병대가 화살을 뽑아 들며 엄호할 준비를 마쳤다.

모두가 긴장한 모습으로 장양의 명령 신호를 기다렸다. 아직 성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성벽 위는 선전하고 있었지만, 성문 뒤쪽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모두가 마음속으로 랑아대를 응원했다.

한편 소무는 성벽 위에서 거침없이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이미 그의 손에만 백 명이 넘는 병사들이 쓰러졌다. 야차 같은 모습에 그에게 다가가는 적병이 없었다.

정신없이 질주하던 소무의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했다. 성벽 아래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장!!!”

다급히 자신을 부르는 일광의 목소리였다.

‘이곳에 화경급 장수가 남아있었단 말인가?’

소무는 다짜고짜 성내로 뛰어내렸다.

타앗-!

지면에 내려선 그는 성문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질주했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서걱-! 촤아악-!

이십여 명의 병사들을 베어 넘긴 후 성문 앞에 도착했다.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장창을 움켜쥔 한 명의 장수. 그를 향해 스무 명 남짓의 대원들이 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나머지 대원들은 주변을 둘러싸고 다가오는 적병들을 쳐내는 모습이었다. 다친 대원이 여럿 보였지만, 목숨을 잃은 부하는 없는 듯했다.

“모두 물러서!!!”

검진이 해체되며 대원들이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그 사이로 소무가 난입해 들어갔다.

달빛을 머금은 검날이 푸른 섬광을 토해내며 상대를 양단해갔다. 휘나라 장수의 창날에서도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오며 마주쳐왔다.

쩌엉-!

일합을 겨루고 거리를 벌린 그들은 삼 장 거리에서 마주 섰다. 휘나라의 장수가 놀라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테무르 장군이 당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군. 한중에 귀신같은 검술을 지닌 자가 하나 있다더니.”

“네가 이곳의 군단장인가? 금나라 출신의 장수는 아니로군.”

눈앞의 인물이 펼치는 무공은 마공에 가까웠다. 분명 화경이 아닌 극마였다. 그렇다면 금나라를 강탈한 영교의 인물 중 하나이리라.

“눈썰미가 대단하구나. 나는 적운이라 한다. 네놈의 이름을 밝히거라.”

소무는 검을 사선으로 내리깔며 일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 이놈은 신경 쓰지 말고 성문부터 열어.

일광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 순간 소무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랑아대의 대장. 충무교위 소무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시간을 오래 끌 여유는 없었다.

탈혼검법 이 초식, 전광추흔(電光追痕).

전신이 밝은 빛에 휩싸이며 적운을 벼락처럼 스치듯 지나갔다.

꽈아앙-!!!

지면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적운이 뒷걸음질 쳤다.

“크윽!”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일격에 자세가 무너질 정도의 엄청난 위력. 그의 두 눈이 놀라 부릅떠졌다.

‘현경(玄境)?’

직접 초식을 마주쳐보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화경급이라는 정보는 들었지만, 결코 그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어찌 이렇게 밀릴 수 있겠는가.

소무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번쩍-!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그는 어느새 적운의 뒤에서 다시 빛살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적운은 다급히 보법을 펼쳐 미끄러지며 등 뒤로 창을 휘둘렀다.

까앙-!

“크윽!”

일합을 마주할 때마다 자세가 불안정해졌으며, 기혈이 뒤틀리는 고통이 전해졌다. 그러나 본격적인 공격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푸른빛 섬광이 붉은 기운을 집어삼키듯 휘감았다.

카캉-!! 카카캉-!!!

사방으로 불꽃이 난무하며 거센 폭음이 진동했다. 지켜보던 몇몇 장수들이 적운을 구출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목숨을 바쳐 장군님을 구해라!!!”

그들을 순순히 보내줄 랑아대의 대원들이 아니었다.

“어딜!”

청해와 현정을 필두로 십여 명의 대원들이 장수들을 향해 마주 나아갔다. 다른 대원들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병사들을 쳐내느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 틈에 일광이 네 명의 대원을 이끌고 성문으로 접근했다.

장안성의 성문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옹성이라 하여 성문 안에 또 다른 성문이 있고, 그 사이에 궁수들이 배치되어 수직으로 화살 세례를 퍼붓는다.

무턱대고 접근하면 절정고수라 할지라도 고슴도치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앞서 성벽 위로 올라간 대원들이 미리 옹성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옹성을 탈환하기 위해 개미 떼처럼 달려드는 휘나라의 병사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방어하는 대원들은 다급해졌다.

“서둘러요!!!”

“빨리!!!”

끼기기기긱-!!!

성문이 조금씩 열리고 옹성의 내부가 드러났다. 그곳에서도 백여 명의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광이 선두에서 내달리며 검을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이윽고 붉은 화염처럼 서늘한 기운이 그의 양손을 휘감았다.

마교의 상승무공 섬멸폭권(殲滅爆拳). 그것이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는 순간이었다.

“으아압!!!”

집채만 한 주먹이 선두에서 마주 오던 병사의 복부에 사정없이 쑤셔박혔다.

쩌어억-!!!

단 한 방에 즉사한 병사가 허공으로 붕 떠오르며 후방으로 튕겨나갔다. 뒤따르던 다섯 명의 병사가 날아오는 사체에 맞고 뒹굴었다.

일광은 계속해서 성문을 향해 내달렸다. 그의 주먹이 좌우를 향해 연달아 내질러졌다. 붉은 권경(拳勁)이 뿜어져 나오며 다가오는 병사들의 가슴을 후려쳤다.

“크윽!”

“컥!”

쓰러지는 네 명의 병사는 갑주가 움푹 들어가며 선명한 주먹자국이 남았다. 소림의 백보신권(百步神拳)에 비견될 만한 강력한 위력이었다.

뒤따라오던 네 명의 대원이 소리쳤다.

“형님, 이곳은 우리에게 맡기고 성문을 열어주세요!”

“서둘러요!”

일광은 병사들을 무시한 채 성문으로 나아가며 소리쳤다.

“알았으니 보채지 마!!!”

성벽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장교들은 다급해졌다. 이대로는 성문이 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일군에서 삼군까지 모두 내려가!!!”

성벽 위에서 수천 명의 병사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다급해진 것은 성문 근처에 있던 랑아대의 대원들이었다. 대장은 이미 이곳에 없었다. 도망치는 휘나라의 군단장을 추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랑아대원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모두 성문으로 모여!”

내성의 성문을 등지고 버텨보려는 것이었다. 부상당한 대원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 삼십여 명의 대원들이 반월로 늘어섰다.

“옹성의 성문이 열릴 때까지만 버텨!!!”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병사들이 벌떼처럼 랑아대원들을 향해 돌진했다.

두려울 만도 하였으나,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고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성문이 열리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끝장이란 것을.

서걱-! 촤아악-! 푸욱-!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대원들. 그들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다. 내력이 점차 소진되며 검기가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문에서부터 쉬지 않고 달려오며 연이은 싸움을 해왔다. 시간이 갈수록 다리가 풀리고, 손아귀에 움켜쥔 검의 무게가 천근처럼 느껴졌다.

대원 중 누군가가 또다시 소리쳤다.

“일광 형님 서둘러요!!!”

그 순간 옹성의 어딘가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화답했다.

“닥치고 좌우로 물러나!!!”

일광의 음성이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거센 함성이 랑아대원들의 귓가를 울렸다. 드디어 성문이 열리고 아군의 본진이 당도한 것이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끄아아아악!!!”

한중의 병사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었으며, 오직 분노만이 가득 차 있었다.

랑아대원들은 재빨리 부상병을 업고 좌우로 물러섰다. 파도와 같은 기세를 마주한 휘나라의 병사들은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말을 탄 장양 장군이 검을 내뻗으며 외쳤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진립 부장과 곽철 부장이 선두로 내달리며 검기를 뿜어냈다. 마교의 상승무공을 익힌 그들의 무예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촤아악-! 푸욱-!

“크윽!”

“커억!”

그들의 뒤를 따라 한중의 정예병들이 들이닥치며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휘나라의 장교들이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군단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병사들의 사기를 올릴 방도가 없었다.

전장은 성문을 넘어서 계속 확대되었다.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진립 부장이 일부 병력을 이끌고 성벽 위로 내달렸다. 고지대를 점령하여 궁수들을 배치하기 위해서였다.

성벽 위에 있던 휘나라의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미 옹성 주변까지 랑아대가 점령하고 있었기에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모두 쓸어버려!!!”

촤아악-! 푸욱-!

“크윽!”

“컥!”

성벽 위를 탈환함과 동시에 주변으로 아군의 궁수들이 속속들이 배치되기 시작했다.

“발사!!!”

맹훈련을 거쳐온 한중의 궁수들은 솜씨가 제법이었다. 화살들은 정확히 휘나라의 병사들을 향해 다가가며 그들의 갑옷을 뚫어 재꼈다.

푸욱-! 푹-!! 푸푹-!!!

위아래에서 맹공을 퍼붓는 강렬한 기세에는 거침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휘나라의 병사들은 혼비백산했다.

전세가 완전히 기울자, 장양이 곽철 부장을 불러들여 말했다.

“자네는 창병 일천을 이끌고 동문으로 가서 대기하시게.”

“예, 장군!”

적들의 퇴로를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일각이 더 지난 후.

전장을 벗어났던 랑아대의 대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위에 우뚝 선 그의 오른손에는 군단장 적운의 수급이 움켜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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