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장안성 탈환 작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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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장안성 탈환 작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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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장안성 탈환 작전 (5)
2022.05.14.
“적장이 죽었다!!!”
성벽 위에서 궁수들의 거센 함성이 메아리쳤다. 아래에서 정신없이 싸우던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붉은 술이 달린 검은 투구. 그리고 칠흑처럼 어두운 흑갑을 입은 장수 하나가 군단장 적운의 수급을 움켜쥐고 있었다.
환호에 찬 아군의 함성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
“소무 대장이 적장을 죽였다!!!”
“랑아대장 만세!!!”
사기가 절정에 달한 병사는 극도의 흥분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상태에선 어떠한 두려움도 없으며, 넘쳐나는 힘은 적병을 찾아 분출해야 했다.
하나하나가 맹호와 같은 용맹한 기세를 뿜어내니, 그것을 마주한 휘나라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푸욱-! 써컥-! 촤아악-!!!
“크윽!”
“크아악!”
곳곳에서 일방적인 대학살이 펼쳐졌다. 뒷걸음질 치던 휘나라의 장교 몇 명이 눈빛을 교환하고 소리쳤다.
“동문으로 퇴각한다!!! 모두 퇴각하라!!!”
동문을 빠져나가 낙양 방향으로 도망칠 요량이었다. 모두가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병사들이 등을 보이며 죽기 살기로 내달렸다.
한중의 병사들이 그들을 뒤쫓으며 추격전을 개시했다.
“어딜 도망쳐!!!”
“감히 우리 백성들을 죽였겠다!!!”
아군 병사들 개개인의 무공수준이 적들을 압도한다. 하물며 경공이라고 어찌 다르겠는가.
장안성은 궁성을 앞에 두고 중앙에서 각 성문까지 장엄한 주작로가 이어져 있다. 이 넓은 대로에 휘나라 병사들의 시신이 계속해서 널려갔다. 어느새 생존한 그들의 수는 삼천 남짓에 불과했다.
계획대로 악비 장군이 함곡관을 점령했다면 저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을을 떠돌며 약탈할 것이 불 보듯 뻔할 터. 장양은 이들을 성 밖으로 보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한 놈도 빠져나가게 해선 안 된다!!!”
장양도 말을 몰며 병사들과 함께 추격대열에 가담했다. 랑아대는 많이 지쳤기에 극소수만이 합류하여 함께하고 있었다.
일각이 지난 후.
도망치던 휘나라의 병사들은 동문이 막힌 것을 보고는 기겁했다. 성문 앞에서 천여 명의 창병들이 밀집하여 창진(槍進)을 펼쳐놓고 있었다.
도저히 뚫을 엄두가 안 나는 진형이었다. 파훼하기 위해선 궁수들이 필요하나, 도망치던 병사들은 대부분이 근접보병이었기에 어림도 없었다.
“마, 망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우왕좌왕하는 그들을 향해 한중의 군단이 포위하듯 둘러싸며 공격을 개시했다. 휘나라의 병사들은 절망 속에서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 * *
양화촌에서 십여 리가 떨어진 한적한 산기슭. 그곳에 진지를 꾸린 구호대는 이틀째 대기하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 수백 대의 수레가 모여 있었고, 곳곳에는 포수들이 경계망을 펼쳤다.
구호대원들은 곳곳에서 야영하며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닥불 위에 올려놓은 작은 가마솥의 주위로 십여 명의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군침을 흘렸다.
“배고프지?”
“응…….”
“빨리 먹구 싶어, 소소 언니.”
아이들의 얼굴은 어느새 많이 밝아져 있었다. 배불리 먹고, 보살핌을 받다 보니 닫혀있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익었나 보자.”
소소가 달궈진 솥뚜껑을 부여잡았다. 뜨거울 법도 했건만, 내공으로 손가락을 보호했기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안에서 연기가 와락 뿜어지며 얼굴을 덮쳤다.
“크억!”
소소는 헛기침하며 손을 휘저었다. 이윽고 솥뚜껑을 다시 내려놓고는 울먹이며 소리쳤다.
“흐잉……. 다 탔어!”
옆에 있던 아이들도 눈물을 글썽였다.
내용물은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떼어 각종 조미료와 함께 끓이는 박탁(餺飥)이라는 음식이었다.
“배 고파, 누나…….”
“어떡해……?”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다른 아이들은 구호대원들의 보살핌 속에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고민하고 있을 무렵 옆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이 좀 부족한 것 같구나. 아직은 괜찮은 것 같네.”
어디선가 나타난 연설화였다. 그녀는 능숙하게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붓고는 휘저었다.
싱거워진 간을 맞추기 위해 조미료도 좀 더 넣었다. 얼굴이 활짝 펴진 소소가 그녀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히힛. 스승님 최고예요~”
그리고 다시 반각이 지난 후. 그녀는 준비된 나무그릇에 박탁을 넉넉히 퍼서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히힛. 맛있어~”
할 일을 마친 연설화는 다시 어딘가로 걸어갔다.
“스승님은 안 먹어요?”
그녀의 입이 포근한 미소를 그렸다.
“나는 먼저 먹었으니 많이들 먹어.”
아이들은 저마다 숟가락을 움켜쥐고 박탁을 맛보기 시작했다. 그중 한 아이가 뜨거운 박탁을 허겁지겁 퍼먹자 소소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먹어, 소봉아.”
“응……. 소소 누나.”
여섯 살 소봉이는 일광에게 죽은 눈사람 친구와 이름이 같았기에 더 정이 가는 모양이었다. 탄광에서 나온 것처럼 시커먼 소봉이의 얼굴이 히죽 웃었다.
근처의 나무 그늘에 몸을 기댄 연설화는 무심히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소소는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모습이었다. 작은 손으로 국자를 들고는 또래 아이들에게 더 먹으라고 퍼주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어찌 저런 따듯한 마음이…….’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자신은 그동안 처절한 삶 속에 차가운 마음으로 가득 채워진 인생을 살아왔다.
은화파파의 손에서. 그리고 암흑과도 같았던 마교의 생활이 인생의 대부분이었다. 뺏기지 않기 위해서 빼앗아야 했으며, 살기 위해서 죽여야만 했다.
얼음장 같았던 마음은 점차 소소와 함께하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저 아이가 이 세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난세에 피어난 순백한 한 송이 꽃이란 말인가……. 꺾이지 않도록 지켜줘야겠지. 암흑 속에 꽃씨가 뿌려질 수 있도록…….’
낭군이 기를 쓰고 지키려는 아이. 그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아이들에게 벗어나 우측 십여 장 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선 황개칠 대장과 그의 오른팔이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장, 언제까지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아마 지금쯤 결판이 났을 거야. 기밀인데, 일광 형님이 하루면 끝난다고 했어.”
“와……. 역시 대단하십니다, 형님. 이런 정보도 알고 계시다니.”
“대장이라고 부르라니까? 아마도 오늘이면 뭐든 소식이 당도할 거야. 수레는?”
“아직 이백삼십 대가 남았습니다.”
“그렇게 나눠주었는데 반 정도나 남았군.”
“아무래도 장안성의 인구가 제일 많지 않겠습니까? 나머지는 그곳으로 가야죠.”
“꼭 그렇지도 않아. 다 모아도 오만 명도 안 될 거래.”
포수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전성기에는 인구가 백만이 넘던 대도시가 아니던가.
비록 당나라 말기 전란으로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오만은 생각지도 못한 숫자였다. 피난민이 대거 몰려든 한중에 비교하면 고작 일 할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그럼 그동안 노예로 잡혀간 사람들은 다 어찌 된 겁니까?”
“도망쳤거나…… 죽임당했거나…… 굶어서 죽었거나…….”
“이 천벌을 받을 놈들…….”
분위기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입맛이 없어졌는지 황개칠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기를 일다경. 먼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황개칠 대장님, 어디 계십니까!?”
아군의 정찰병이었다.
“여기 있소!”
황개칠은 긴장한 모습으로 정찰병의 표정부터 살폈다. 나쁘지 않아 보였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진 대답은 그를 환희에 휩싸이게 했다.
“우리 군단이 승리했습니다. 장군께서 장안의 백성들이 굶주려 있으니 구호물자가 시급하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황개칠은 손바닥을 탁하고 부딪쳤다. 그러고는 격정에 차오른 목소리로 구호대원들을 향해 쩌렁쩌렁 외쳤다.
“여러분들!!! 우리 군단이 장안성을 탈환했다고 합니다!!!”
곳곳에서 음식을 먹던 구호대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라고?”
“그, 그게 정말입니까?”
곧이어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동시에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모두가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섬서 북부에서 합류한 일부 백성들은 서럽게 눈물을 훔쳤다.
“크흑…….”
“드디어…….”
포수들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대열을 형성했다.
“자, 여러분들 모두 장안으로 갑시다! 그곳의 주민들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얼마 남지 않았어요!”
서둘러 야영을 정리한 대원들이 속속들이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도 빈 수레에 올라타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선두에서 힘차게 수레를 끌던 황개칠이 옆을 바라보았다. 소소가 아이들이 탄 수레를 이끌며 훌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는 왜 울어?”
“저도 몰라요. 힝…….”
어른들이 우니까 그냥 따라서 슬퍼지는 모양이었다.
“열심히 가면 오늘 저녁이면 도착할 거야.”
“그럼 밥은 거기서 먹어요?”
점심을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저녁 생각을 하다니. 황개칠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 너는 밥 생각뿐이구나.”
소소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밥을 굶으면 힘들잖아요. 배고픈데도 밥을 못 먹으면 얼마나 슬플까요?”
“한중에서 배고픈데 밥 못 먹는 사람 봤어?”
“아니요…….”
“장안에도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러 가는 거야.”
“우리가요?”
“응.”
구호대는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목적지가 코앞이었다. 평야로 나온 뒤부터는 행렬이 속도가 붙었다. 장안까지 당도하는 데 어떠한 장애물도 없었다.
노을이 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질 무렵, 드디어 거대한 성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소소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와……. 엄청 크다.”
황개칠이 수레를 끄는 소소를 한번 쓱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안에서 보면 더 커. 궁성을 보면 깜짝 놀랄걸?”
“빨리 보고 싶어요!”
성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경계하고 있는 병사들이 구호대를 환영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성내로 입장하자 웃고 있던 소소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기대했던 모습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의 도시는 분명하지만, 거센 바람과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듯 고요만이 가득했다.
생명이 빠져나간 형태만 갖추고 있는 도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점은 하나도 없었으며, 거리에 나와서 구호대를 지켜보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곳곳이 활기차 북적이는 한중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다.
황궁으로 이어진 주작대로에 수레들이 줄이어 등장하자 주민들의 얼굴에 차츰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구, 구호대가 온 거야……?”
“응, 이제 우리 배불리 밥 먹을 수 있대.”
“고맙습니다, 한중 주민 여러분들……”
그때 군단의 지휘관들이 말을 타고 재빨리 다가왔다. 장양이 말에서 내리며 구호대원들을 향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들 하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장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함께합시다.”
우선 배고픔부터 달래는 것이 우선이었다. 구호물자의 보급이나 뒷정리는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터.
한중에서 온 삼천여 명의 주민들과 오백여 명의 포수들이 대로에 늘어서며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군영에서도 취사병들이 대거 몰려나와 함께했다.
벽돌로 만들어진 이 넓은 주작로는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었다. 장안의 주민들이 죄다 몰려들고 있음에도 전혀 비좁지 않았다.
모두가 준비에 열중인 가운데 소무는 대로를 순시하고 있었다.
‘얘가 어디 갔지?’
자신을 찾아오기는커녕 코빼기도 안 보이니 뭔가 이상했다.
머지않아 딸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구석에서 다리를 모으고 쪼그려 앉아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왜 그렇게 우울하게 앉아 있어?”
“아버지, 왜 이곳 사람들은 모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요?”
먹지도 못하고 노예처럼 궁성 복구 노역에 동원되어 시달렸던 자들이다.
성 안의 주민들이 성 밖의 촌민들보다 더욱 힘들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옆에 털썩 주저앉은 소무는 아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고통스러운 일을 많이 겪어서.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야.”
“왜 고통스러운 일을 겪었어요?”
“음. 다 쓸데없는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지.”
“힝……. 그럼 우리가 마음을 치료해줄 거예요?”
“그럼. 이곳뿐만이 아니고 지금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위해 우리 장군님이 싸우고 있는 거야.”
“휴…….”
“왜 한숨을 쉬어?”
“그럼 나도 싸워야겠어요.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장군이 될 거예요.”
소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네가 왜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