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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설화원 (3) (106/250)


106화 설화원 (3)
2022.05.17.


최근 들어 양연정의 표정이 무척 밝아졌다. 평소 무뚝뚝했던 그가 연신 웃고 다니는 모습은 병사들이 어색해할 정도였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두 명의 형제가 군단에서 함께하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장양 장군의 집무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궁성 외각에 위치한 아담한 전각의 입구를 지키는 두 명의 병사가 보였다. 양연정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허허. 수고들 많네!”

“부관님, 오셨습니까?”

“이미 소무 대장님이 먼저 와계십니다.”

“음, 그래. 고생들 많구만.”

양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병사들이 멍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너 지금까지 부관님 웃으시는 거 본 적 있어?”

“당연히 처음 보지. 갑자기 웃고 다니니까 무서워.”

“형제들을 구출해서 기분이 좋으신가 봐.”

병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근데 얘기 들었어? 소소가 발견했대.”

“뭐, 소소가? 하핫! 궁성 구경하겠다고 이곳저곳 헤집고 다니더니, 한 건 했네.”

“말도 마. 마주치기라도 하면 부관님이 업고 다니고 난리도 아니래.”

“세상에 별일이 다 있네. 무뚝뚝한 분이 그런 면도 있었다니.”

병사들은 재밌는 화젯거리가 생겼다는 듯 연신 키득거렸다. 그리고 집무실의 안에서는 삼인이 모여 담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양연정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 비어있는 전각이 많은데 좀 넓은 곳을 사용하시지요. 절도사께서 체면이 서지 않습니다.”

“허헛. 고작 집무 보는데 탁상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지, 공간의 크기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한중에서 사용하던 크기가 익숙해서 좋네.”

오늘따라 장양의 얼굴이 몹시 밝아 보인다.

“기쁜 일이 있으신 가 봅니다.”

“자네에게 기쁜 일이 있으니 나에게도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내 오늘 자네 형제들을 만나보고 왔네.”

“아우들을 말입니까?”

장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찻잔을 채워주었다.

“상세가 많이 좋아졌더군. 모청 대장이 수고가 많았지.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훌륭한 장수들인 것 같더군.”

“아직은 부족한 녀석들입니다.”

“나라의 제일 무가(武家)인 양가장의 무장들이 부족하다니. 어찌 그런 소릴 하시는 겐가.”

양연정은 머쓱한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아우들이 우리 군단에서 함께할 수 있도록 얘기해놓겠습니다. 제 말이라면 철석같이 따르는 녀석들입니다.”

“허허. 그렇게 해준다면 고마운 일이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일세.”

“과찬이십니다. 선대의 업적에 비교한다면 아직 저희는 많이 부족합니다.”

양강과 양소의 합류로 인해 장양은 흐뭇한 듯 연신 미소를 머금었다. 잠시 후 그의 손이 탁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가리켰다.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하나 더 있네. 악비 장군이 함곡관을 점령한 사실을 확인했네. 그리고 지금은 무관을 공략하기 위해 이동 중이라 하더군.”

함곡관은 장안과 낙양의 중간 관문으로, 이곳을 차지한 쪽이 공격에 주도권을 가지게 되므로 압도적인 우위에 서게 된다.

지도를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가 감탄하며 대답했다.

“악가군의 기세가 대단하군요. 함곡관에 비교하면 무관은 비교적 수월할 것입니다.”

“휘하에 훌륭한 무장도 많이 있지만, 전술도 굉장한 분이지. 이제 남은 것은 서쪽의 대산관 뿐일세.”

“그곳은 지금 비어있으니 무혈 입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네 말이 맞네. 이제 우리가 이 세 개의 관문을 지킨다면 섬서 전체를 안전하게 방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일세.”

소무가 지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양양성이 건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지요. 현재 한중은 후방이라 안전하지만, 양양이 무너지면 전선에 놓이게 됩니다.”

“나도 그게 가장 큰 고민일세. 한세충 장군이 몇 달째 양양성을 방어하고 있지만, 압도적인 병력 차이로 성 안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고작일세.”

“성을 포위하고 고사작전을 하는 모양이군요.”

양양성의 방어병력은 오만 명에 이르는 수준이다. 반면 그곳을 침공하고 있는 휘나라의 군단은 세 배에 육박하고 있었다.

“몇 달 내에 식량을 보급받지 못한다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네.”

“유광세 상장군은 아직도 움직임이 없는 것인지요?”

상장군 유광세와 절도사 장양. 둘 다 무관의 최고 품계인 종이품이기 때문에, 서로 간 명령은 할 수 없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장양은 앞서 상장군에게 양양성을 공격하고 있는 휘나라의 후미를 공격해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었다. 몇 번이고 전령을 보내 출진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출진을 안 하고 있더군. 며칠 전에 전령을 한 번 더 보냈네. 이번에도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양연정이 동조하며 대답했다.

“상장군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양양을 지원해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음. 우선 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군. 당분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니.”

“예, 장군.”

이들 셋은 몇 가지 담화를 더 마친 후 대화를 마무리했다.

장양의 집무실을 나오는 소무는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전령을 다시 보낸다고 한들 상장군이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겪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 상장군은 과거 남소평야에서 직속 군단만 이끌고 홀로 도주한 전례가 있었다.

그 때문에 연합군단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궤멸하지 않았던가. 앞서서 처리한 추밀원사 장준에 필적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의 발걸음은 대로변을 지나 연설화의 거처로 향하고 있었다.

주변을 들러보니, 어느새 주민들의 얼굴에 하나둘씩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구호물자가 충분히 지급되고 있었기에 더는 굶주리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시가 정상화가 되려면 아직도 많은 시일이 필요할 터였다.

잠시 후 화원이 딸린 이 층 구조의 전각이 보였다. 안에서는 퉁소와 칠현금이 함께 연주하는 청량한 음률이 들려왔다. 소소도 함께 있는 모양이었다.

“흐흠!”

인기척을 내자 연주가 멈추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끼이이익-!

“아버지!”

소소가 후다닥 뛰쳐나오며 폴짝 뛰어 안겼다.

“잘하고 있었어?”

“네~”

왼손으로 아이를 안아든 소무는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연설화는 무릎 위에 칠현금을 올려둔 채 옅은 미소로 물었다.

“웬일로 이 시간에 왔어?”

“시간이 좀 남아서. 소소 얼굴도 볼 겸.”

그녀의 얼굴에 서운한 표정이 미세하게 서렸다. 자신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앞에서 애정행각을 벌일 수는 없었다.

“설화원은 잘 되고 있어?”

“응. 아직 정리는 마무리가 안 되었지만, 우선 급한 대로 이틀 전에 개원을 시작했어. 다 연매 덕분이야. 큰돈까지 기부해주고…….”

연설화가 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알았어?”

“서명란에 연매 옷소매에 새겨진 꽃송이가 있더군.”

“아……. 눈썰미는 좋네. 내 이름을 따서 만들었는데 잘 굴러가게 해야지. 초희는 잘하고 있으려나?”

“응. 벌써 적응이 많이 되었나 봐. 애들도 잘 따르는 것 같고 표정도 많이 밝아졌어.”

“다행이네. 처음에는 토라졌는지 나랑 말도 안 하더라.”

“왜 토라져?”

“대인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고쳐주려고. 그래서 설화원에 아이가 몇 명 없다고 말했지.”

소무는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 평화반의 아이들이 가장 많아. 이백 명은 될걸?”

설화원은 여섯 개의 반으로 나뉘어있었다. 그리고 평화반은 연초희가 맡은 반이었다. 보육 선생이 추가로 확보되면, 차후 열 개 반으로 나뉠 예정이었다.

이백 명이란 말에 그녀도 참지 못하고 깔깔대고 웃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무엇인가 기억이 난 듯 그들의 웃음이 동시에 정지했다. 무심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소 앞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해오지 않았던가. 자연스럽고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실내가 정적에 휩싸이며 한기가 휘몰아쳤다. 무릎 위에 앉은 소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연매가 뭐예요?”

연설화가 당황하며 전음을 보냈다.

- 어, 어떡해?

- 모, 몰라. 연매가 어떻게 수습 좀 해봐.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그녀가 당황하며 말했다.

“어, 어른 친구들끼리는 그렇게 부르는 거야. 아버지랑 친구 하기로 했어……. 그, 그렇지?”

“응. 친구…….”

소소가 큰 눈을 몇 번 끔벅이더니 히죽히죽 웃었다.

“히히……히히힛.”

소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웃어?”

“나는 다 알아요~”

“뭐, 뭘……?”

갑자기 소소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궁금하죠?”

쪼그만 녀석이 진지한 얼굴로 물으니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왠지 모르게 느낌이 싸했다. 지금 상황에서 폭탄 발언이라도 나오면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연설화가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 막아.

고개를 끄덕인 소무가 손가락으로 아이의 옆구리를 살며시 긁었다. 소소가 꺄르륵 웃으며 자지러졌다.

“히히~ 간지러워~”

연설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우리 제자도 설화원에 가볼래?”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소소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정말요? 가고 싶어요~”

“응. 오후반에 한 시진씩 참석하면 적당하겠구나.”

“그럼 지금 갈 수 있어요?”

소무도 찬성이었다. 장안성에는 아직 친구들이 없지 않은가. 청아랑 아해를 만나러 한중으로 갈 수도 없는 일.

“시간은 얼추 맞겠는데?”

“짐부터 챙겨주자. 어서.”

소무와 설화는 보따리에 간식과 그림 도구 등 그럴듯한 물품을 챙겼다. 그러고는 아이의 등 뒤에 사선으로 메어주었다.

“자 스승님 손잡고 갈까? 늦기 전에 바로 출발하자꾸나.”

소소는 조금 떨어져서 걷는 아버지에게 왼손을 올려 보였다.

“아버지도 손!”

양손으로 아버지와 스승님의 손을 잡고 궁성으로 향했다. 소소는 연신 신이 나는지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셋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걷는 것은 지금이 두 번째다. 어색했던 처음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셋의 얼굴에 모두 미소가 떠올라 있지 않은가.

설화원은 궁성에서 가장 큰 전각 중 하나였다. 간단한 목재 공사를 통해 약간의 개조를 하였으며, 필요하면 언제든 다른 외부시설도 이용할 수 있었으니 부족함이 없었다.

한식경이 지난 후. 설화원의 입구에서 소무가 말했다.

“우선 내가 가서 초희 선생 데려올게.”

“응, 다녀와.”

소무가 사라지고 난 뒤.

연설화의 시선이 좌측 아래로 향했다. 웬일인지 소소의 표정이 조금 경직된 듯 보였다. 쪼그려 앉아 얼굴을 마주 보며 물었다.

“우리 제자 긴장돼?”

“떠, 떨려요…….”

사교성이 좋은 아이가 쑥스러움을 타다니. 하긴, 전각 안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어오니 그럴 수밖에.

“우리 소소가 데려온 친구들이야. 그러니 다들 기뻐할 거야.”

“정말요……?”

“응, 그럼. 소소는 예쁘니까 인기도 많을걸?”

“헤헷…….”

소소의 긴장이 조금씩 풀어질 무렵. 웅장한 설화원의 입구에서 소무와 함께 낯익은 인물이 걸어 나왔다.

“우리 소소 왔구나?”

“안녕하세요~”

초희가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설화를 바라보았다.

“오후반에 한 시진씩 한다고……?”

말투에서 약간 퉁명스러움이 느껴지는 듯했다. 언니에게 속았던 분이 아직 다 안 풀리는 모양이었다.

“응. 연주도 해야 하고 무공도 수련해야 하니, 그 이상은 시간이 안 맞아.”

“그럼 언니는 오후에 뭐 하는데……?”

“그냥 쉬고 있지 뭐. 왜?”

초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인력이 많이 부족하던데. 일일 선생들도 계속 초빙하는 상황이고.”

자신보고 나와서 일하라는 의미이리라.

설화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마교의 교주를 역임했던 자신이 고아들을 보육하다니. 세상이 알면 놀라 까무러칠 일이었다.

하지만 일일 선생 정도라면 낭군과 소소를 위해 협조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차후에 의논해 볼 문제였다.

“어서 들어가자, 소소야.”

그녀가 소소의 등을 살며시 밀며 안으로 들어가자, 초희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동생은 일 시키고…… 언니만 쉰다고…….”

“다 초희 너를 위해서야.”

거대한 전각에는 중앙의 통로를 기점으로 좌우로 여러 개의 반이 나뉘어있었다.

좌측으로 걸어가던 일행은 평화(平和)라는 현판이 새겨진 문 앞에서 멈추었다. 소무와 설화가 아이를 보내며 기를 북돋아 주었다.

“우리 딸, 잘 놀고 와.”

“잘할 수 있지?”

“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문 앞에 서자 다시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초희가 손을 들어 보이며 소무와 설화에게 더는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소소의 손을 잡고 문을 열며 들어갔다.

드르르륵-!

다시 문을 닫으려 했으나 이상하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왜 문이 안 닫히지…….”

초희가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들어보았다.

설화와 소무가 동시에 손을 내뻗으며 기(氣)로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격공섭물을 응용한 수법이었다. 반드시 문틈으로 구경을 해야겠다는 둘의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어휴.”

이들의 힘을 어찌 당하겠는가.

내부에는 이백여 명의 아이들이 대열을 맞추어 앉아 있었다. 앞에 종이가 한 장씩 펼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글씨를 배우는 듯했다. 그러다 소소가 등장하자 모두의 얼굴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자, 여러분! 오늘부터 오후에 함께할 친구예요! 다들 한 번씩 본 적이 있죠?”

아이들이 동시에 환호했다.

“네~!”

“저도 봤어요!”

“힘도 세고, 퉁소 잘 부는 친구!”

초희는 옆으로 한 걸음을 물러나며 말했다.

“친구들한테 자기소개해야지?”

머뭇거리는 모습이 잠시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백여 명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어있으니 그럴 수밖에.

잠시 후 얼굴이 붉어진 소소가 쑥스러운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 저는…… 소소라고 해요…….”

그때 귓가로 아버지의 전음이 다급히 들려왔다.

- 잘 봐달라고 해.

“……예, 예쁘게 봐주세요.”

실내가 정적에 휩싸이며 조용해졌다.

그러길 잠시 후.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소소 누나!”

자신이 데려온 여섯 살 소봉이가 아닌가. 친한 얼굴이 보이자 소소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다.

“우리 소소가 아는 친구인가 보구나? 저기 소봉이 옆에 가서 앉아 볼래?”

쭈뼛쭈뼛 걸어가고 있었지만 잠시 후면 금방 적응이 될 터.

은연중 초희의 눈이 문틈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소무와 언니 설화가 나란히 서서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키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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