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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도둑이 들다 (1) (109/250)


109화 도둑이 들다 (1)
2022.05.20.


소무가 눈빛을 빛내며 의병대의 송겸 대장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동굴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던 겁니까?”

“살아 돌아온 의병도 삼십 장 밖에서 경계를 섰던 인물이라…… 내부의 모습은 살펴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동굴 밖까지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합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직접 가서 확인해볼 수밖에.

“아직도 그곳에 있겠습니까?”

“확실하진 않습니다. 저희 의병들의 능력으로는 다시 가볼 엄두도 안 났습니다.”

지켜보던 장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셨습니다. 우리 관군에서 한번 살펴보지요.”

“예, 부디 조심하십시오. 스무 명의 의병들이 순식간에 쓰러졌을 만큼 무공이 고강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찾아와 말씀하십시오.”

“예, 장군. 바쁘실 텐데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의병대의 간부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포권을 건네고는 돌아갔다.

장양과 소무는 자리에 남아 이 문제에 대해 고심했다.

“동굴에서 시체 썩는 냄새라니……. 또 그 시체는 누구란 말인가. 떳떳하지 않은 일일 테니 반드시 진상을 확인하여 막아야 하네.”

“제가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장양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적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인원이 얼마나 있는지 알 수가 없네. 혹시 모르니 랑아대를 이끌고 다녀오는 것이 어떻겠는가?”

“우선 정찰을 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그리하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장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직감과 판단을 신뢰하는 만큼 더는 만류할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오래 걸리진 않겠군. 언제 출발하시겠는가?”

“시간을 오래 끌 만한 일도 아닙니다. 잠시 막사에 들른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혼자서 무리하지 말고 부디 몸조심하시게. 섬서의 영웅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많은 이들이 슬퍼할 걸세.”

소무는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

장양과 작별을 고한 소무는 랑아대의 막사로 향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다면 관복 차림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예상대로 막사 안에는 일광 혼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소무는 관복을 벗어두고, 사복으로 갈아입으며 물었다.

“깨달음은 좀 있었어?”

일광은 눈을 감은 채로 투덜거렸다.

“아니. 나 같은 돌머리가 깨달음이라니, 그냥 돌아버리겠어. 어떻게 한 건지 좀 알려줘.”

무(武)에 대한 집념만은 군단에서 일광을 따라갈 인물이 없었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진 죽을 때까지 막사에 틀어박혀 명상할 기세였다.

“머릿속에 우주(宇宙)를 그려봐. 그리고 그 광활한 시공간 속에 티끌 같은 너의 존재도 함께 말이지.”

“계속 말해줘.”

“우주 속에 너의 육신과 마음을 자유롭게 해봐.”

“어떻게?”

“네가 바로 육신의 주인이고, 마음의 주인인데 안 될 건 또 뭐가 있을까? 그 사실을 인지한다면 자신의 의지대로 우주에 변화를 줄 수도 있지.”

일광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전신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 실마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사복 차림을 마친 소무는 막사 밖으로 나서며 한마디를 더 중얼거렸다.

“그것은 너 자신이 곧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주가 지배하는 모든 공허는 곧 너의 공간이며, 네 것처럼 이용할 수도 있는 법이지.”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의 깨달음을 얻은 자가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이보다 더한 기연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머지는 그의 자질에 달린 일이었다. 만약 그가 성공한다면 화경(化境)의 단계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깨달음이 두뇌 수준과 비례한다면, 문관들이 천하제일고수가 되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일광의 자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막사 밖으로 나선 소무. 그의 모습은 어느새 장삼을 입고 죽립을 눌러쓴 무림인의 모습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또 한 군데 들를 곳이 있었다.

장안의 거리를 활보하던 그는 연화당으로 향했다. 먼 곳에서부터 기척을 내면서 왔기에 그녀가 문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연설화는 가슴 아래로 팔짱을 낀 채 도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즘 낮에 자주 오네.”

“후후. 그래서 싫다는 거야?”

“흥, 누가 싫다고 했나. 이 시간에 온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겠지?”

“연매 보고 싶어서 왔어.”

연설화가 의심의 눈초리로 소무의 위아래를 훑어봤다.

“그 복장으로?”

머쓱해진 소무는 씨익 웃으며 물었다.

“같이 산책이나 좀 할까?”

어차피 오늘은 일정이 없었기에 할 일도 없었다. 소무와 연설화는 장안성을 벗어나 목표지점을 향해 나란히 내달렸다.

“요즘 산책은 경공으로 하나 보지?”

“이렇게 같이 달려본 지도 오랜만인데. 좋지 않아?”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 봐.”

“회양산 근처 어느 동굴에서 의병들이 살해당했어.”

연설화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섬서에 있는 휘나라 애들은 다 죽은 거 아니었어?”

“아직 흉수가 누구인지는 몰라. 근데 동굴 안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더군. 그곳에 왜 고수들이 버티고 있을까?”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그녀가 되물었다.

“음……. 혹시 마공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지금은 마교가 그런 무공을 익히지 않는다는 건 알아. 하지만 연매의 식견이라면 뭔가 내가 놓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서.”

식견이 뛰어나다는 칭찬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서렸다.

“알긴 아네.”

일반인에게 오십 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나, 이들에겐 그저 산책 정도 수준의 거리였다.

일각이 더 지난 후 목표지점에 당도했다. 대략적인 위치는 이미 송겸 대장에게 설명을 들은 이후였다.

“분명히 이 근처인데.”

연설화도 팔짱을 끼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동굴 안이라면 기척을 감지하기가 쉽지가 않았기에, 예상과 달리 동굴을 찾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길 한참 뒤. 그녀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네.”

“응? 어떻게 알아?”

“마교가 은신처에 사용하는 표식이야.”

암벽에 미세하게 새겨진 역십자 문양. 분명 사람이 새겨 넣은 흔적이 분명했다.

“역시 연매를 데려오길 잘했다니까.”

은연중 연설화의 가냘픈 턱이 올라갔다. 연이어 칭찬을 받으니 으쓱한 모양이었다.

연설화가 암벽에 다가가 내력을 뿜어내 보았다.

“확실히 안은 비어있어.”

“그렇다면 입구만 찾으면 되겠군.”

이들은 기척을 죽인 채 암벽을 따라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시체가 썩는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왔다.

“으윽! 꼭 이런 데 데려와야 했어?”

“극마라면 한식경은 호흡을 멈출 수 있잖아?”

“반드시 그 안에 끝내.”

초인들의 후각은 일반인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해있다. 그렇기에 악취의 고통은 강도가 더 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서둘러 마무리하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길 잠시 후.

드디어 동굴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속닥거리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소무가 오른손을 들어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대화를 엿들어 보기 위해서였다.

“어우 X팔!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해?”

“우리 쪽은 오십 명만 더 잡아 오면 끝이야.”

“오늘 저녁에 오신다고 했지?”

“응, 그러니 늦지 않으려면 지금 가서 잡아 와야 해.”

“빌어먹을……. 노파가 노년에 무슨 개짓거리를 하는 거야.”

“조금만 참아.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에게 본교의 상승 무공비급을 전부 넘겨준다고 했잖아.”

“그게 아직도 그대로 있을까? 영교 새끼들이 안 가져갔다고?”

“간부들만 아는 장소에 숨겨져 있대. 아무튼, 파파께서 흉마살혼조(兇魔殺魂爪)를 완성한다면 천하에 당할 자가 없을 거야.”

“도대체 왜 본교에서조차 금지한 이런 흉악한 무공을 익힌다는 거야?”

“나도 모르지. 반드시 죽여야 할 연놈들이 있다고 했어.”

“도대체 누가 천하의 파파를 그런 꼴로 만들었는지 궁금하군. 그나저나 기간이 얼마나 남았지?”

“열흘. 그 안에 천 명의 정기를 모두 흡수하지 못한다면 물거품이야.”

그때 연설화가 뒤에서 허리를 콕콕 찔렀다. 더는 들을 것도 없으니 빨리 마무리하자는 신호였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여섯 명. 하나같이 일류고수였지만, 랑아대원들이 일대일로 맞붙는다면 이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더는 몸을 숨길 필요도 없었다. 소무와 연설화가 나란히 동굴 입구를 틀어막으며 안으로 진입했다. 흑의를 입은 여섯 명의 마인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너, 너희들 뭐야?”

“뭐 하는 연놈들이냐!?”

기척도 없이 동굴 입구까지 접근했으니 놀랄 수밖에.

안에서 보이는 광경은 가관이었다. 백여 구가 넘는 처참한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정기가 모두 빨려 나가 말라비틀어진 모습이었다.

치를 떠는 소무와는 달리 연설화는 상황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미 불쾌함이 한계까지 차올라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녀가 가공스러운 마기(魔氣)를 흑의인들을 향해 폭사시켰다.

쏴아아아악-!!!

“크윽!”

“큭!”

기세에 짓눌린 상대들이 움찔했다.

“뭐 하는 연놈들이냐고? 교주 얼굴도 못 알아보네.”

흑의인들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오, 옥화신녀?”

“네, 네년이 어떻게…….”

상대가 옥화신녀라면 그들이 살아나갈 확률은 바늘구멍보다 작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온 남자가 그 작은 구멍조차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다.

“나는 검성이라고 하는데. 들어봤을지는 모르겠군.”

소무가 오른손을 펼치자 허리춤의 검이 스스로 뽑혀 나오며 붕 떠올랐다.

스르릉-!

그가 검을 틀어쥐는 동작에서 거짓이 아님을 확인한 흑의인들. 그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 이런 미친…….”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파파의 말이 사실이었다고……?”

검성과 옥화신녀가 함께 나타나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은화파파가 왜 기를 쓰고 흉마살혼조를 익히려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소무가 연설화를 슬쩍 바라보며 물었다.

“잡아서 심문할 필요가 있을까?”

“필요한 정보는 이미 다 들었어.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으니까, 그냥 끝내.”

“넷, 둘?”

연설화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셋, 셋.”

몇 명씩 맡을 것인지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모를 흑의인들이 아니었다.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조장급으로 보이는 자가 검을 치켜들며 검기를 뽑아냈다.

“여기가 마지막이군. 모두 명예롭게 죽자.”

연설화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명예 같은 소리하고 있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묵빛의 기류에 감싸진 그녀의 양손. 흑룡신장을 마주한 상대들은 최후의 몸부림 속에 하나둘씩 고꾸라져 갔다.

쩌억-! 콱-! 콰직-!

“크윽!”

“커헉!”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에 그녀의 손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기세에 눌려있던 흑의인들은 변변한 저항조차도 못한 채 순식간에 쓰러졌다.

나름대로 빨리 처리했다고 자신했지만, 소무가 한 발 더 빨랐다.

“이번엔 내가 이겼군.”

“그 정도는 되어야 내 낭군이지. 일단 나가서 얘기해. 쓰러질 거 같으니까.”

둘은 재빨리 동굴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연신 들이켰다. 연설화가 턱짓으로 동굴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멈이 교주였던 시절 만든 마교의 흑무대야. 영교에게 투항하지 않고 도주했었나 봐.”

“인원은 얼마나 되지?”

“백 명쯤. 할멈이 뒤를 봐주고 있어서 콧대 높은 놈들이었어. 언젠간 손봐주려고 생각했었는데 잘 만났네.”

“역시나 은화파파와 관련이 있었군. 기어코 여기까지 오다니……. 흉마살혼조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응. 마교 칠대 교주가 이 무공을 익힌 후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기록을 봤어. 한 달 동안 천 명의 정기를 흡수해야 완성이 가능한, 금지된 무공이지.”

소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최소한 수백 명을 납치해서 죽였단 얘기군. 다른 데서도 이 짓을 벌이고 있다는 거고.”

“곳곳에 숨겨진 은신처는 할멈하고 지정된 대원들만 알고 있어.”

은화파파의 악랄한 행적에 치가 떨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마교도를 마주해왔지만, 이보다 더한 악인은 없었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그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오늘 저녁에 이곳에 온다고 했지?”

“나도 확실히 들었어. 드디어 할멈을 잡을 기회가 온 것 같네.”

둘은 은연중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속이었기에 매복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소무가 적당한 장소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기 숨어 있다가 동굴로 들어가면 입구를 막고 잡는 게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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