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화 벚꽃 핀 어느 날 (1) (112/250)


112화 벚꽃 핀 어느 날 (1)
2022.05.23.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물들어있다.

벚꽃잎이 하나둘씩 흩날리며,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어찌 이 아름다운 광경을 놓칠 수 있겠는가. 상처 입은 아이들의 정서와 마음을 치유하기에 이보다 좋은 치료제는 없을 것이다.

여섯 개의 반으로 나뉜 설화원의 고아들은 교대로 소풍을 나왔다. 그리고 오늘은 연초희가 담당하는 평화반의 차례였다.

삼십여 명의 병사가 지원하여 아이들의 인솔을 도왔다. 목표한 숲속에 도달하자 십부장급 병사가 소리쳤다.

“모두 멀리 가지 말고, 산 위로는 절대 올라가면 안 돼!”

들떠있는 아이들의 귓가에 그의 말이 들려올 리가 없었다. 이백여 명의 아이들은 곳곳으로 흩어지기 바빴다.

소소도 몇몇 아이들하고 같이 숲속을 뛰어다녔다.

“히히히. 뭐 하고 놀래?”

여섯 살 소봉이가 훨훨 나는 나비를 쫓아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소소 누나, 나비 잡아주면 안 돼?”

“나비는 손으로 잡으면 아파해……. 대신 개구리 잡아줄까?”

소소는 연신 바닥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이곳에 개구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느새 초희가 다가오며 아이들의 등을 감싸며 말했다.

“우리 친구들, 우선 꽃씨부터 심어야지? 나중에 다시 오면 이곳이 꽃밭이 되어있을 거야.”

아이들이 등 뒤에서 봇짐을 풀며 물었다.

“와~ 빨리 보고 싶어요.”

“꽃이 피면 예뻐요?”

“그럼~. 이곳이 알록달록 예쁘고 향기가 가득한 세상이 될 거야.”

아이들은 보따리에서 준비물을 꺼내었다. 설화원에서 미리 챙겨준 것이다.

작은 모삽을 꺼내는 아이들과 꽃씨를 투척할 준비를 하는 아이 등 각자의 역할이 분담되어 있었다.

역시나 소소의 역할은 땅을 파는 것이었다. 조그만 손이 능숙하게 일을 해나가자 아이들이 감탄하며 손뼉을 부딪쳤다.

“소소야, 정말 최고야.”

“누나, 멋있어!”

창찬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소소는 더욱 열심히 땅을 파나갔다. 한 호흡에 서너 번이나 땅을 푸는 엄청난 속도는 두더지도 울고 갈 정도였다. 지켜보던 초희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헤헷. 얘들아, 어서 심어 봐.”

“응, 알았어.”

꽃씨가 땅에 뿌려지고 흙이 덮이며 작업이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다른 쪽 아이들은 이제 막 준비를 시작하는 단계였다.

“멀리 가지 말고 있어…….”

초희가 다른 쪽으로 사라지고, 남은 아이들은 모여서 뭘 할지 궁리했다.

“소소 언니, 우리 이제 뭐해?”

소소는 놀거리를 찾기 위해 안광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흥밋거리를 발견했다.

“앵두 먹어봤어?”

“아니…….”

“앵두가 어디 있어?”

산길의 초입에 야생 앵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저기 있어. 빨리 가서 먹어보자.”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양 갈래로 머리를 묶은 또래 여자아이가 물었다.

“산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미 모두 이동 중이었다. 소풍의 낭만은 모험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병사들의 감시망을 피해 산길의 초입까지 당도한 아이들. 모두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가장 먼저 앵두 하나를 따서 먹어본 소소는 입이 귓가에 걸렸다.

“맛있어, 히힛. 빨리 먹어봐.”

여섯 명의 아이는 나무를 둘러싸고 정신없이 앵두를 따먹기 시작했다.

“새콤해~”

“너무 맛있어, 언니.”

일각이 지난 후에는 모두의 입술이 붉게 물들었다.

소소는 뭔가 좀 아쉬운 듯 주위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고작 앵두만 먹고 배가 찰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미리 준비해온 도시락이 있었다.

“우리 여기서 밥 먹고 갈래?”

“응, 좋아!”

아이들은 등 뒤의 보따리에서 이것저것을 꺼냈다. 설화원을 떠나오기 전에 배분받은 감자와 만두들.

모두의 시선이 소소에게 향했다. 자신의 몸통만큼이나 큰 보따리에서는 온갖 종류의 간식이 끊임없이 나왔다. 전병과, 유과 그리고 떡과 과일들까지.

“맛있겠지? 어서 먹어봐.”

소소도 자주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이 아니었다. 연설화가 친구들이랑 먹으라고 특별히 챙겨준 것이었으니. 아이들은 크게 좋아하며 허겁지겁 집어먹기 시작했다.

“나 그동안 이거 먹고 싶었는데…….”

“헤헤. 너무 맛있어.”

소소도 흐뭇하게 웃으며 떡 하나를 들었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나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었다. 갑자기 아래에서 다급한 호각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삐이이이익-!!!

“응? 뭐지?”

“우리 찾나 봐.”

아이들이 어리둥절하며 소소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소소가 진지한 표정으로 떡 하나를 꿀꺽 삼키고선 말했다.

“큰일 났어.”

“누나, 왜 그래?”

보따리에서 자신의 소검(小劍)을 꺼내 들며 대답했다.

“악당들이 쳐들어왔어.”

다른 아이들은 볼 수 없었지만, 소소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온몸이 성치 않은 십부장급 병사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흩어지지 말고 아이들부터 한곳으로 모아!!!”

어디선가 나타난 수십 명의 흑의인들. 복면까지 두른 이들은 하나둘씩 아이들을 낚아채서 어딘가로 나르고 있었다.

병사들이 막아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무공을 익힌 정예병들임에도 속수무책이었다. 한 병사가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뭐 하는 놈들이냐!?”

캉-! 카캉-! 카카캉-!

폭풍처럼 이어지는 연격에 병사는 연신 뒷걸음질 쳤다. 동료 병사가 도와주기 위해 다가왔지만, 열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병사들과 곳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희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모두 이곳으로 모여!”

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아서 지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공포가 극에 달하면 다리가 얼어붙게 되고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흐흑.”

“으허엉…….”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가장 많았다.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자들이란 말인가. 목적이 납치에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잡혀간 아이들의 숫자가 이미 오십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대장으로 보이는 복면인이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적당히 모았으면 철수해!”

부하들이 양쪽 어깨에 아이들을 한 명씩 올리며 철수를 시작했다. 그때 대장의 눈에 한 명의 아리따운 여인이 눈에 들어오고야 말았다.

“저년도 데려와!”

“예!”

두 명의 복면인이 초희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 또한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미약한 수준으로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언니에게 의지해왔기에 실전경험도 없지 않은가.

“후회할 것이다…….”

푸욱-!

한 복면인이 움직일 수 없도록 점혈하여 어깨 위에 들쳐메었다.

그녀도 같은 마교 출신이지만 전면으로 나선 적이 없었기에 못 알아보는 듯했다. 병사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다쳐 널브러져 있었기에 더는 방해하는 이들이 없었다.

한참을 내달리던 중 누군가가 재밌다는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거 식은 죽 먹기인데? 진작 여기로 올 걸 그랬어.”

“그동안 한두 명씩 잡아다가 개고생한 걸 생각하면 횡재한 거지.”

이들의 정체는 은화파파의 하수인들인 흑무대였다.

관군의 감시망이 대단하고, 모든 마을에 주민들의 인구조사가 매일 실시되고 있었기에 최근 납치 활동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무더기로 몰려나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부족한 수는 오늘 한 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이 짓도 오늘로 이제 끝이구나.”

조금 더 나아가니 마차 두 대와 십여 명의 복면인이 더 대기하고 있었다. 그 안에도 이미 아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출발한다!”

손쉽게 일을 마친 흑무대는 두 대의 마차와 함께 어딘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누군가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 대장! 뒤를 보십시오!”

그들의 시선이 은연중 등 뒤를 향했다.

황당한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허리춤밖에 안 되는 여자아이가 검을 움켜쥔 채 후다닥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청난 속도의 경공술은 한눈에 보아도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짐작게 했다.

“내 친구들 돌려줘요!”

흑의인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도토리 같은 꼬맹이는 뭐야?”

고작 꼬마 하나 때문에 멈출 수는 없지 않은가.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누군가를 지목했다.

“네가 가서 처리하고 와!”

한 명이 남아 후미를 막으며, 나머지는 계속해서 전진해나갔다.

잠시 후 뒤쪽에서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쩌억-!!!

상황이 마무리되었음을 예상했지만,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는 모두의 예측을 뒤엎었다.

“끄아아악!!!”

선두에서 대장이 뒤돌아보자 자신의 부하가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느새 꼬마와의 거리는 더욱 좁혀져 지척까지 이르렀다.

“어디서 이런 햇병아리가…….”

마차 안의 몇몇 아이가 소소를 발견하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소소야, 우리 어떡해……. 으흑.”

“흐어엉……. 살려줘 언니…….”

소소의 미간이 좁혀졌다. 짧은 다리가 지면을 박차고 참새처럼 날아올랐다.

조장급 흑무대원 둘이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검기를 뿜어내며 도약했다. 허공에서 셋의 검이 맞물리는 순간 소소의 신형이 폭풍처럼 회전했다.

쾅-!! 콰쾅-!!!

“큭!”

“으윽!”

후방으로 퉁겨나가는 흑무대원들은 신음을 토해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내공과 쏜살같이 빠른 움직임.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이었다.

상대의 무위를 확인한 이상 흑무대는 더는 방심하지 않았다. 십여 명의 복면인이 추가로 합류하며 소소 앞에서 검진을 구성했다.

그때 멀어져 가는 흑무대원의 어깨 위에서 연초희가 소리쳤다.

“어서 가서 아버지를 불러오너라!!!”

자세를 잡고 있던 소소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 혼자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전면에서 복면인들을 이끄는 흑무대의 대장. 그자의 무위가 계속해서 소소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확실한 건 자신 혼자서는 모두를 구출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소소는 울상을 지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얘들아, 어떡해…….”

다시 한번 연초희가 있는 힘껏 외쳤다.

“어서!!!”

더는 시간을 끌 수가 없었다. 소소는 다짜고짜 등을 돌려 내달렸다.

검진을 펼쳐놓고 기다리던 흑무대원들은 어이없다는 눈빛을 했다. 도저히 자신들이 쫓을 수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욕지거리와 함께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만 지그시 응시했다.

내달리는 소소의 얼굴에서 한 방울의 굵은 눈물이 흘러나왔다.

장안까지의 거리는 고작 십여 리에 불과하다. 경공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소소는 목적지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잠시 후 장안성의 서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보였다.

쌔앵-!

바람이 휘몰아치며 그들의 얼굴을 강타했다.

“뭐, 뭐야?”

“방금 뭐가 지나간 거야? 소소 같았는데?”

병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소소는 랑아대의 막사를 향해 섬전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사의 입구가 눈앞에 들어왔다. 머뭇거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벌컥-!

막사의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고 보니 삼촌들이 훈련을 갈 시간이 아니었던가. 내부는 텅 비어있었다. 한 명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멍한 눈빛으로 드러누워 있는 거대한 사나이. 일광은 어제부터 막사에서 종일 이러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서서히 문 앞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야……?”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씩씩대는 소소였다. 분하다는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삼촌, 우리 아버지 어디 갔어요!?”

“왜……?”

상황을 설명하려던 소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삼촌에게 다가가 옷자락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나쁜 아저씨들이 내 친구들 데려갔어요. 우리 선생님하고……. 흑흑…….”

무표정하게 있던 일광이 벌떡 일어났다. 흉악하게 일그러지는 불곰의 얼굴. 그곳에 자리한 투박한 입술이 실룩거리며 물었다.

“어떤 새끼들이!?”

“몰라요……. 흐잉…….”

아침에 조카를 바래다주며, 소풍 장소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병사들이 호위해준다고 했었는데, 그들이 당했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네 아버지는 애인 만나러 갔어.”

한마디를 남긴 일광은 막사 밖을 향해 뛰쳐나갔다. 랑아대의 문짝이 거대한 체구와 부딪치며 박살 났다.

콰앙-!

뿌드득 갈리는 일광의 입속에서 살기서린 목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누굴 건드려……. 오늘 다 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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