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벚꽃 핀 어느 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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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벚꽃 핀 어느 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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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벚꽃 핀 어느 날 (6)
2022.05.28.
마화비전(魔華飛電) 일 초식 유설만개(油雪滿開).
소소의 손에서 쏘아져 나간 앵두들. 중후한 내력을 가득 머금은 이 과실들은 훌륭한 암기로 변모되어 있었다.
파파파팟-!
설마 꼬마가 앵두를 이용해 암기술을 펼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방심하고 있던 흑무대원들은 완전히 허를 찔리고야 말았다. 몇 명은 다급히 자리를 이탈하여 피했지만, 일부는 얼굴에 무차별적으로 적중당하고야 말았다.
퍽-! 퍼퍼퍽-!
앵두는 이마에 틀어박히거나, 콧구멍 속으로 쑤셔박히기도 했으며, 이빨을 날려버리며 입안을 가격했다.
“크윽!”
“컥!”
“아악!”
마교 최강의 암기술이라 불렸던 마화비전이 아니던가. 아직 화후가 낮아 상대를 격살시킬 수는 없었지만, 일시적으로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이 틈을 보인 찰나의 순간 일광이 전광석화처럼 쏘아져 나갔다. 흑무대원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막아!”
“안 돼!”
다급히 막아보려 했지만 화경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어느새 일광은 초희를 낚아채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넋 놓고 지켜보던 흑무대장 매천풍. 그의 입에서 분노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냥 죽이라고 했잖아! 이 병시…….”
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어느새 그의 턱 밑에 일광의 주먹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콰앙-!
“컥!”
반죽음 상태에서 정통으로 맞은 일격은 그를 단번에 절명시켜버렸다.
흑무대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 있겠는가.
“겁먹을 거 없어! 저놈은 지금 서 있기도 힘든 상태다!”
“당황하지 말고 진법을 펼쳐!”
그들의 시선은 일광의 전신을 훑어보고 있었다.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 다리. 게다가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까지. 그는 이미 한참 전부터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삼촌 괜찮아요?”
소소도 삼촌이 걱정되는지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일광은 조심스럽게 초희를 내려놓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누구도 손대지 못합니다.”
초희의 눈가에 저도 모르게 물기가 차올랐다. 언니를 제외하면 이렇게까지 자신을 챙겨주는 인물은 처음이었다.
“일광 씨……. 저 때문에…….”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일광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떨리는 다리를 겨우 지탱했다.
“선생님 모시고 먼저 내려가…….”
소소는 망설이고 있었다.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삼촌을 어찌 혼자 두고 내려간단 말인가. 결심을 굳힌 듯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소검을 뽑아 들었다.
“삼촌이 내려가요.”
평소 같았으면 웃음이 나왔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적들은 흑무대에서도 가장 강한 대원들이다. 이미 몇몇은 검기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열 명의 흑무대원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선공을 개시하려는 수작이었다.
“저 무식한 놈부터 노려!”
그것이 신호였다. 동시에 돌격하는 열 명의 흑무대원. 그들이 초식을 전개하려는 그때였다.
“형님!”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동굴 입구 쪽에서 쏜살같이 날아드는 두 개의 그림자. 일광과 소소의 틈새를 지나친 그들은 전면을 향해 동시에 검기를 흩뿌렸다.
콰콰콰쾅-!!!
열 명의 흑무대원은 공격이 막히자 한 걸음을 물러서며 미간을 좁혔다. 누군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들은 또 뭐야!?”
청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화산의 후예들.”
그 순간 청해와 현정이 동시에 검을 앞으로 내뻗었다. 전면으로 나아가던 검이 다시 곡선을 그리며 매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화산파?”
화산파의 매화검법이 분명했다. 멸문한 것으로 알려진 화산파의 고수들이라니. 매화검법은 화산파의 기본 검술이지만 시전자에 따라 위력의 궤를 달리한다.
매화검법(梅花劍法) 팔 초식 매화만변(梅花萬變),
흑무대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두 번째 합을 마주했다.
캉-!! 카카카캉-!!!
현정이 우측 어깨 위로 검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매화낙섬(梅花落暹)!”
두 개의 검 끝이 동시에 하늘로 향했다. 검기를 가득 머금은 검날이 섬전처럼 내리꽂히며 전면을 압박했다.
캉-! 카캉-!!!
이미 대비하고 있던 흑무대원들은 쉽게 당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실력은 열세였지만, 압도적인 인원수가 그 차이를 메꿔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화만개(梅花滿開)!”
화산의 후예들이 움켜쥔 검 끝이 흔들렸다. 그것은 곧이어 검명을 토해내며 사방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캉-! 카카캉-!!!
사형제가 한 몸이 되어 펼치는 검술은 일품이었지만,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돌연 현정과 청해의 사이에서 아이의 외침이 들려왔다.
“진화난격세(進花亂擊勢)!”
어느새 틈새로 파고들어 온 소소였다. 쪼그만 녀석이 허리춤에서 초식을 외치는 모습이 황당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군단의 모든 병사가 익히는 관군의 검술, 천무검법 일 초식이었다.
세 자루의 검이 동시에 바닥을 차고 올랐다. 이어서 어깨높이에서 방향을 선회하며 한 바퀴를 회전했다. 흑무대원들이 다급히 방어했지만,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촤악-! 촤아악-!
“크윽!”
“크아악!”
두 명이 쓰러지고, 한 명이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또다시 소소의 입이 참새처럼 뻥긋했다.
“일섬무흔(一閃無痕)!”
왼발을 내디딘 세 명은 동시에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세 자루의 검 끝은 마치 생명이 깃든 것처럼 각도를 틀며 전면을 꿰뚫었다.
푹-! 푸푹-!!!
“크윽!”
“컥!”
소소의 검에는 살의(殺意)가 없었기에 부상을 입히는 것에 그쳤지만, 현정과 청해의 검에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남은 숫자는 고작 네 명. 이 인원으로 현정과 청해를 막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소소는 은근슬쩍 다시 뒤로 빠져 나왔다. 그런데도 상황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크악!”
마지막으로 들려온 단말마. 그것을 끝으로 더는 움직이는 상대가 없었다.
현정과 청해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일광 형님?”
“어떻게 된 거예요?”
일광은 끝내 정신을 잃고 주저앉아 있었다. 랑아대원들이 등장한 순간 긴장이 풀리며, 누적된 충격이 한 번에 몰려온 것이다.
“일광 씨, 정신 좀 차려봐요…….”
초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깨워보았으나 응답이 없었다. 청해가 손목을 진맥해보더니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맥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이 몸으로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는지…….”
날벼락 같은 말에 소소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내며 일광을 흔들었다.
“삼촌 죽으면 안 돼요……. 빨리 일어나요!”
“가만히 있어 봐. 그렇게 흔들면 진짜 죽을 수 있어.”
“으흐흑……. 우리 일광 삼촌, 어떡해요?”
“서둘러 의선당에 데려가야 해. 모청 대장님의 의술이라면 아직 희망은 있어.”
아직 희망이 있다는 말에 소소는 울음을 그쳤다. 대신 일광을 자신의 등에 업으려고 시도했다.
“삼촌, 빨리 업혀요!”
무공을 익힌 이상, 일광의 체중을 감당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신체조건의 제약을 어찌 힘으로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웃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현정과 청해는 기어코 뿜어버리고 말았다.
“푸하핫! 토끼가 곰을 업을 수 있다고 생각해?”
“하하! 장안성까지 끌면서 가려고? 도착할 때쯤이면 무릎이 없어지겠어.”
* * *
사건이 있던 날로부터 일곱 날이 지났다. 모두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그때의 기억도 서서히 잊혀갔다.
오늘은 설화원의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보육 선생들도 모처럼 휴식하며, 별도의 관리자들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오후 들어 할 일이 없었던 소소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멀지 않은 곳에서 낯익은 인물을 발견했다.
“할아버지!”
뒷짐을 지고 걸어가던 장양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헛! 소소구나. 어디 가는 게냐.”
“히히. 저는 일광 삼촌 병문안 가요.”
“마침 잘되었구나. 나도 그곳으로 가고 있었단다.”
소소는 활짝 웃으며 왼손을 올렸다.
“정말요? 같이 가요, 할아버지.”
장양은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의선당으로 이동했다.
의선당(醫善堂). 관군과 민간의료를 목적으로 창설된 역사상 가장 큰 의료기관이다.
“요즘 설화원을 다닌다더니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느냐.”
“네, 할아버지. 너무 좋아요. 헤헷.”
“허허. 우리 소소는 마음씨도 착하고 예쁘니 친구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둘은 의선당의 입구에 도착했다.
애초에 황제가 머무를 용도로 지어진 거대한 전각이었다. 입구부터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수백 개의 목재침상과 의무병들이 보였다.
의료부대의 장교가 재빨리 다가와 기립했다.
“오셨습니까, 장군.”
“고생이 많네. 헌데 환자 수가 많이 줄었군.”
거듭된 휘나라의 횡포에 주민들의 건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초기에는 환자들로 북적댔지만, 지금은 그 수가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예, 많은 주민들이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 후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장양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허허……. 매우 기쁜 소식일세. 누구든 몸이 아파 찾아오는 자가 있다면, 가족으로 여기고 성심껏 보살펴 주어야 하네. 상처가 많은 가여운 자들이니…….”
“알겠습니다, 장군.”
장교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의선당의 깊숙한 곳으로 진입했다. 그때 환자 한 명이 장양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소리쳤다.
“우리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환자들이 동시에 침상에서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상세가 안 좋은 환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고령의 노인들까지 예외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를 이렇게 돌봐주시고…….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장군님 덕분에 제 형님이 살았습니다……. 끄흑…….”
장양이 다급히 양손을 휘저었다.
“이러시면 제가 불편하니 편히 누워 계십시오. 여러분들이 빨리 건강을 회복해서 이곳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보답입니다.”
의선당에 있던 장안의 백성들은 눈물을 훔치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저 점령군이 바뀌었을 뿐이거늘 이렇게 삶이 바뀌다니. 주민들이 감정에 복받쳐 오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장양은 환자들을 다독이며, 소소와 함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의선당의 가장 안쪽 끄트머리. 그곳엔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전신에 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누워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든 일광은 이들이 온 줄도 모르고 코를 골았다.
“삼촌이 아직도 많이 아픈 모양이구나.”
소소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어제도 나랑 얘기했어요. 한번 보실래요?”
“음……?”
장난기가 발동한 소소는 곯아떨어진 일광의 코를 움켜쥐었다.
“히히.”
말리려던 장양은 이미 늦었음을 깨닫고 그냥 놔두었다. 그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온 일광이 두 눈을 부릅떴다.
“컥! 누구……. 장군!?”
화들짝 놀란 그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직 상처가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누워있으시게.”
“죄, 죄송합니다. 몸이 이래서…….”
“허허. 신경 쓸 필요 없네. 그래, 몸은 좀 어떠한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헌데 이 누추한 곳까진 어인 일로…….”
“아이들을 무사히 구해냈다니 수고가 많았네. 이 말을 전해주려고 왔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장양은 누워있는 일광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얹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잘 있는 것을 보았으니 되었네. 당분간 군단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시게.”
“감사합니다, 장군…….”
볼일을 마친 장양이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소는 좀 더 있다 오거라.”
“네~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허헛. 그래 나중에 또 보자꾸나.”
장양이 사라지고 난 뒤 소소가 일광의 침상에 기어올랐다. 그러더니 두 다리를 늘어트리고는 물었다.
“삼촌, 아직도 많이 아파요?”
“죽을 것 같아…….”
“정말요?”
“이 꼴을 봐.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아니요.”
일광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분명 소소가 이렇게 물어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근데, 왜 왔어?”
침상에서 뛰어 내려온 소소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오늘 우리 아버지가 국수해준대요.”
그때였다. 죽어가던 일광의 눈빛에 갑자기 생기가 감돌았다.
“뭐!?”
몇 년 동안 그리워했던 소호객잔의 고기국수가 아니던가.
“끄으으으윽!”
안간힘을 쓰며 일어선 그는 어느새 침상 밑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기적 같은 광경에 근처에 있던 의무병들이 다급히 달려왔다.
“백, 백부장님!?”
“뭔데? 무슨 일이야?”
의무병들은 당황하며 주춤거렸다. 그들의 가진 의학적 지식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회광반조인 것 같아…….”
회광반조(回光返照). 죽어가던 사람이 숨을 거두기 직전 순간적으로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일광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래……. 죽더라도 국수는 먹고 죽어야겠다.”
소소도 놀랐는지 큰 눈을 계속 끔뻑였다.
“삼촌, 괜찮아요?”
일광은 소소를 번쩍 들어 어깨에 걸치고는 소리쳤다.
“가자! 국수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