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마교의 부활 (2)
(119/250)
119화 마교의 부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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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마교의 부활 (2)
2022.05.30.
“마교가 부활했다니?”
갑자기 웬 뜬금없는 소리란 말인가.
소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착각마저 들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일세. 이례적으로 공표까지 했고, 이미 행동을 개시했네.”
“무슨 행동을?”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 세 곳이 같은 날 공격당했네. 생존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확실해.”
“마교의 잔당들에게 그럴 만한 힘이 남아있었던가?”
허규는 머뭇거리며 은근슬쩍 설화를 바라보았다.
마교의 전대 교주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의견이 몹시 궁금하던 참이었다.
묵묵히 지켜보던 설화의 한쪽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정마대전에서 패배하고, 그다음에는 영교한테 밀려난 녀석들이 무슨 힘이 있다고. 상황을 보니 영교가 마교의 이름을 내세워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거야.”
허규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도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교주님 말씀대로…….”
“이제 교주 아니다.”
“아, 예……. 죄송합니다. 혹시 정보가 있는지요?”
허규가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그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검성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보자마자 자신의 목을 비틀었을지도 모르는 인물임을.
게다가 마교의 전대 교주라면, 정파에서는 구파일방의 수장에 비견되는 배분이다. 분타주 따위가 맞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영교 또한 마교에서 갈라져 나온 계파잖아. 본연의 이름으로 바꿔 활동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토록 알고 싶었던 정보가 술술 흘러나왔다. 허규의 입장에서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다.
“왜 이름을 바꿔서 활동을 시작했을까요?”
“알고 있잖아? 영교가 휘나라와 연관된 애들이라는 거. 군부에서도 파악하고 있을걸?”
소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 영교의 이름으로 활동하면 우리 쪽에서도 관군이 개입할 테지. 하지만 마교는 원래 무림의 세력이었기 때문에 이목을 피할 수 있고. 근데 왜 하필 이 시점에 칼을 뽑았는지가 궁금하군.”
허규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극비 사항이긴 한데, 사실 짐작 가는 바가 있네.”
“어서 얘기해봐.”
잠시 고민하던 허규는 소무에게 전음을 보냈다.
- 이 자리에서 얘기해도 정말 괜찮겠는가?
- 나와 연매 사이에 비밀은 없어. 우리 편이니 안심해도 돼.
- 후. 여자는 관심도 없던 자네가 어떻게 이 공포의 여신을 유혹했는가. 그것도 뒤늦은 나이에 말이야.
-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는 법이지. 하던 얘기나 어서 털어.
- 알았네. 옥화신녀가 같은 편이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군.
허규는 헛기침을 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림맹은 장양 장군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네. 만약 그 정보가 영교에 유출되었다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는 일이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와해시키려는 목적으로.”
충분히 일리가 있었지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내부정보를 어떻게 알아서? 설마 무림맹에 배신자라도 있다는 말인가?”
허규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설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정마전쟁 당시에도 무림맹에 마교의 첩자가 있었어.”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어이가 없군. 어쩐지 작전이 계속 빗나가더라니. 누구였어?”
“천룡도객 백무성.”
소무와 허규가 동시에 놀란 눈을 부릅떴다.
절정을 넘어선 고수로, 누구보다 열심히 전쟁에 참여했던 인물이 아니었던가. 정마전쟁이 끝난 뒤 자취를 감춘 것은 의문이었지만.
“그자가 왜 마교의 첩자 노릇을 해?”
“당시에 교주 독혈신마가 가족을 인질로 잡아놨었거든.”
악랄했던 마교의 수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간 금나라를 은밀히 장악해왔던 영교라면, 더한 짓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군.”
“당연하지. 마교에서도 그런 종자들만 모인 계파였으니까.”
첩자의 가능성이 확인되었지만, 이 부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소무의 시선이 다시 허규를 향했다.
“근데 무림맹이 지금 와서 관군과 함께하려는 이유는 뭐지? 그동안 전쟁엔 신경도 안 쓰더니.”
“지금까진 망설일 수밖에 없었지. 황제가 무림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나중엔 뒤통수 맞을 운명이 훤히 보이지 않았는가.”
“지금은 황제가 살해당했으니 판도가 바뀌었단 얘기군. 근데 왜 장양 장군을 선택했지?”
“무림이라는 틀에 있어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알고 있네. 황제가 후계도 없이 죽었지만, 누군가는 자리를 대신해야겠지. 우린 가장 확률이 높은 인물에게 운명을 거는 것뿐일세.”
정마대전의 결과로 위세가 쇠약해진 무림맹이 생존을 이어가려면 전쟁을 계속 방관할 수는 없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동아줄을 선택해서 붙잡아야 했다.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말이다.
소무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거야. 그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이거든.”
“본인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네. 저잣거리에 좀 나가보시게. 이미 세상이 그렇게 원하고 있어.”
소무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지금 왕좌를 노리고 있는 절도사들이 얼마나 많을까? 경쟁자들을 모두 굴복시키려면 덕망뿐 아니라 압도적인 무력이 필요해.”
“큭큭. 자네가 있지 않은가. 쉬쉬하고 있지만, 무림맹의 핵심 간부들은 알고 있네. 랑아대의 대장이 검성이라는 것을.”
소무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어떻게?”
“적장들을 두부처럼 썰고 다니면서 언제까지 숨길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하긴……. 하지만 계속 침묵해줬으면 좋겠군. 피곤한 일은 사양하고 싶으니.”
“걱정하지 마시게. 내부에서도 입단속을 하고 있으니.”
어차피 모두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일. 입이 무거운 무림맹의 간부들 정도라면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무튼 무림이 장양 장군을 선택하는 과정에, 나도 계산에 포함되었다는 말이로군.”
“그것이 가장 핵심적이었지. 홀로 일개 군단의 무력을 넘어서는 검성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아, 한 명이 있군. 무안절도사 한세충.”
“나도 한번 본 적이 있어. 검을 겨뤄보기 전에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겠더군.”
“대단한 인물이지. 하지만 우리는 자네에게 걸었네. 그러니 반드시 장양 장군을 황제로 만들어 주시게. 검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니 그만한 자격이 있겠지.”
잠시 고민하던 소무는 화두를 돌렸다.
“눈앞의 문제가 시급하니 이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는 것이 좋겠군. 앞으로 어쩔 생각이지?”
“마교의 이름을 내세운 영교는 우리만으로 감당할 수 없네. 짐작하건대 그들의 무력은 정마전쟁이 시작되기 전보다 강할 수도 있어.”
허규의 말대로라면 무림맹이 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런데도 소무의 표정은 오히려 밝아져 있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야. 찾으려 했던 놈들이 스스로 나와 줬으니.”
“역시 자네답군.”
“내가 도와줄 방법을 찾아볼 테니, 무림맹은 빨리 첩자나 색출해.”
“나도 그 일부터 추진할 생각이네. 일을 도모하기 전에 내부 단속이 우선이겠지.”
“당분간은 우리 둘 다 바빠지겠군.”
허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안성에 개방의 지부를 새로 마련했으니, 조만간 접선을 시도하겠네.”
할 일이 태산이었기에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연설화를 향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그때 묵묵히 있던 설화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더니 다소곳이 포권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살펴 가시지요.”
생각지 못한 반응에 허규가 짐짓 놀라며 마주 포권했다.
그가 사라지고 나자 소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믿기지 않는군. 연매가 정파 인물에게 포권을 다하고 말이야.”
“지켜보니 보통 사이가 아니던데? 우리 낭군님의 막역지우면 존중받을 자격이 있어.”
그녀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고마워…….”
“말로만?”
소무는 한 발자국을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오늘 저녁에 다시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설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잠시 후 그녀의 시선이 원두막을 향했다.
“언제 일어날까?”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 일광과 소소. 평온해 보이는 저들을 깨울 수는 없었다.
“혼자 내려가야겠군. 한 시진 안에는 일어날 거야. 그럼 난 군영에 좀 다녀올게.”
가냘픈 손이 뒤에서 허리를 살며시 안았다.
“빨리 다녀와.”
* * *
소무의 발걸음은 바로 장양 장군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퀭한 그의 눈빛을 보니 제대로 잠도 못 잔 모양이었다.
“행정관들을 더 뽑지 그러십니까?”
“허헛. 자네 왔는가.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네. 예전엔 한중의 일만 처리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섬서 전체의 행정을 살펴야 하니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군.”
소무의 시선이 그가 움켜쥐고 있는 종이를 향했다. 마치 학사들이나 볼 법한 어려운 문구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설마…… 과거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요?”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유능한 인재들의 기용을 멈추어선 안 되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지.”
관리의 기용은 황제의 권한으로 도성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전란으로 몇 년째 답보상태였으며, 황실이 증발한 지금은 진행조차 불가능했다.
그 일을 지금 장양이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섬서에서만큼은 왕의 권능을 가진 최고의 권력자였다.
다른 절도사들이 반발하겠지만, 장양은 남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 아니었다. 거침없는 그의 추진력은 다시 한번 소무를 놀라게 했다.
“흥미로운 일이군요. 섬서 북부의 행정기관들이 정상화되었지만, 지방 관리들의 수가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그것 때문일세. 원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 시험을 볼 수 있게 하고, 능력이 있는 자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든 기용할 생각이네.”
소무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여성도 과거를 볼 수 있겠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나라를 위한 일에 성별이나 나이의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이지요.”
“허허. 자네의 뜻이 나와 같다니 무척 기쁘군. 나라의 인재는 가뭄이거늘, 그동안 재능있는 여인들이 그릇된 제도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지 않은가. 반드시 바뀌어야 할 부분이었네. 이참에 소소 장군과 같은 여장부가 나왔으면 좋겠군.”
딸아이의 이름이 나오자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
“시험 내용은 무엇으로 준비하고 있는지요?”
“무과는 전술 능력과 무공이 우선시되어야겠지. 문과의 경우 기존에는 유교의 경전과 역사, 문학이었지만 난세에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실무에 빠르게 투입할 수 있도록 자질 평가가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맞는 자를 만난다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는 법이다. 장양은 기분이 매우 좋아져 있었다.
“허허. 시원스럽게 말이 통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군. 서책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닌, 개개인이 가진 도덕적인 가치관을 평가하고, 능력과 자질을 갖춘 자가 뽑히도록 준비할 것이네.”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이젠 내가 얘기를 들어볼 차례군. 자네가 날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을 것으로 짐작하네만.”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소무는 허규에게 들었던 마교에 관한 부분을 모두 얘기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장양의 표정이 진중하게 변했다.
“정리해 보면 휘나라의 배후에 있는 영교가 이름을 바꿔 마교로 활동을 시작했고, 정파 무림을 와해시키려 한다는 것이군.”
“그렇습니다. 우리가 돕지 않는다면 그들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무림맹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으려면, 우리 관군이 먼저 신뢰를 보여주어야겠지.”
그 순간 소무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그럼 저들의 싸움에 개입해도 되겠습니까?”
“무림이란 그늘에 숨어 우리 영토를 활보하는 적군을 어찌 가만히 내버려 두겠는가. 최대한 확실하게 해야 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리해주시게. 자네만 한 적임자는 없을 테니. 헌데 계획이 있는 것 같은데, 어찌할 생각인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색출하여 체포할 것입니다. 저항하는 자는 상황에 따라 즉결처형하겠습니다.”
장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판단에 맡기겠네. 필요한 만큼 모든 병력을 가용해도 좋으니 조심하시게. 얘기를 들어보니 만만한 자들이 아닌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