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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마교의 부활 (3) (120/250)


120화 마교의 부활 (3)
2022.05.31.


정오품 무관 충무교위(忠武校尉) 소무. 그가 이번 일의 총 책임을 맡게 되었다.

관군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무림에 개입하는 것은 사상 최초였다.

나진현의 관아 입구.

관복을 차려입은 소무의 뒤로 삼백여 명의 병사들이 줄지어 들어서고 있었다.

현감과 포졸들이 재빨리 다가와 기립했다.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위님.”

고개를 끄덕인 소무는 장원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상석에 자리하고 앉자, 뒤따라 온 정규군들이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하나같이 무공을 익힌 정예병들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수십여 명의 포졸들이 주춤거렸다.

“긴장할 것 없네. 일은 어떻게 되고 있지?”

현감이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관할 마을 전체에 수배문을 붙여놓았습니다. 게다가 포역(浦役)들이 곳곳을 조사하고 있으니, 흔적이 발견된다면 이곳으로 즉시 알려올 것입니다.”

포역은 도망친 범죄자들을 찾거나, 증거를 조사하는 하급관원이다.

소무의 손에는 죄인들을 매타작할 때 쓰이는 곤봉이 들려져 있었다. 그가 곤봉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적국과 내통하여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놈들이니, 모조리 잡아 국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발견하게 된다면 섣불리 나서지 말고 나에게 고하게.”

“알겠습니다.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소무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아는 부분이라면 말해주지.”

“정규군이 저희 관아에만 파견된 것인지요? 놈들이 이곳에 있더라도, 빠져나간다면 답이 없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스무 개의 부대로 나뉘어 섬서 전체를 수색하고 있으니. 랑아대원들이 각 부대를 이끌고 서로 연계하고 있고.”

랑아대의 십부장이 가지는 위세는 여타 부대의 백부장을 넘어선다. 전공은 물론 개개인이 장수급의 무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역시……. 명성대로 빈틈이 없으시군요.”

“찾기만 하면 뒤는 내가 알아서 하지.”

“예. 교위님께서 저희 관아에 계시니 정말 든든합니다.”

소무는 묵묵히 앉아서 정보를 기다렸다.

마교 세력은 섬서와 호북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본진인 휘나라의 영토와 가깝고 연계가 가능한 지역이었으니.

물샐틈없는 수색이 벌어지는 가운데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기대와는 다르게 해가 질 때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다른 관아에서 들려온 소식은?”

현감이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정보망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나, 다른 곳들도 모두 깜깜무소식입니다.”

“아주 작정하고 숨었군. 하지만 섬서를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소무는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대적인 수색이 진행되고 있으니 기다리면 단서가 나올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언제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저무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물러서시오!”

관아의 입구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소란스러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소무는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신경을 집중해보았다.

“이곳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소! 정체를 밝히시오!”

“비켜.”

“흐익…….”

누군가가 겁에 질려 물러서는 기척. 그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

소무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정중히 모셔오게. 부하들이 다치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현감이 무어라 소리치자 포졸들이 재빨리 길을 터주었다. 이어서 입구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곱게 말아 올린 머리에 눈꽃이 수놓아진 검은 비단옷. 게다가 마성적인 매력이 물씬 묻어나는 걸음걸이까지.

장원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그녀의 손아귀에서 정체불명의 사내가 피떡이 된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역시 내가 도와줘야겠지?”

자리에서 일어선 소무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전음을 보냈다.

- 연매가 여긴 어떻게 왔어?

- 마교 애들 보고 꼭꼭 숨으라고 곳곳에 광고를 하셨던데. 잡을 생각이 있는 거야?

- 사실 나도 후회하던 참이었어. 근데 이놈은 누구야?

- 오는 길에 시장에서 한 놈 잡아 왔어. 식량을 사재기하고 있더라고. 은신처를 알고 있다는 얘기겠지?

일만에 가까운 관군과 포졸들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안아주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우선 부하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분은 외부에서 모셔온 전문가이니 모두 정중하게 모시도록.”

“예, 교위님.”

모든 관원이 고개를 조아렸다.

소무의 시선이 개처럼 끌려온 인물을 향했다. 마기(魔氣)를 갈무리하고 있지만, 안광에는 마공을 익힌 흔적이 남아있었다.

“확실하군. 이제 심문만 하면 되겠어.”

설화의 입가가 미소를 그렸다. 도도한 매력 속에 서늘함이 감도는 웃음이었다.

“할 수 있겠어?”

확실한 자신은 없었다. 죽임을 당하더라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고문과 심문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었다. 그래도 물어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쪼그려 앉은 소무는 그에게 정중하게 제안했다.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하겠다면, 고통 없이 보내주겠다.”

마교도는 가소롭다는 듯 입을 닫은 채로 웃기 시작했다.

호의를 베풀었지만 비웃음이라니. 기분이 더러워질 찰나, 뒤에서 설화의 음성이 들려왔다.

“입을 열 수 없을 거야. 자결하지 못하게 막아놨거든.”

소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교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마치 위로하듯이 말이다.

“아직 이분이 누군지 모르니 그럴 수도 있겠지. 힘내.”

자리에서 일어선 소무는 근처의 허름한 전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곳이 포로를 심문하는 장소라더군.”

설화는 묵묵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한식경.”

한식경 안에 입을 열도록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설화의 손에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가는 마교도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가늘고 고운 손이 한 움큼의 비침을 움켜쥐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켜보던 소무는 끌려가던 사내에게 전음을 보내주었다.

- 네 짐작이 맞아. 옥화신녀.

소무는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 의자에 앉고는 팔짱을 낀 채 바람결을 만끽했다. 고민거리가 사라지니 기분이 슬슬 좋아졌다.
그러기를 일다경.

심문소의 문이 다시 열렸다.

끼이이익-!

모습을 드러낸 마교도는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백팔십도 변한 모습이었다.

소무가 다가가서 물었다.

“왜 울어?”

“말, 말하겠습니다.”

“그러게 내가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랬나.”

“크흑……. 뭐든지 얘기할 테니 저를 죽여주십시오.…….”

연설화는 팔짱을 낀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 이제 난 가봐도 되지? 소소랑 저녁 먹으러 가기로 했거든.

- 고마워, 연매. 뭐 먹으러 가?

- 오리고기가 먹고 싶다던데.

- 하긴. 소소가 좋아하는 음식이지. 아무튼 수고했어.

소무가 오른손을 펴자 마교도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끄으…….”

격공섭물을 처음 보는 관원들은 놀라운 광경에 연신 감탄했다.

“어서 말해봐.”

“아귀산에…… 지부가 있습니다.”

마교의 지부라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일 터. 어지간한 문파들은 공격할 엄두도 못 내겠지만, 관군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병사들의 머릿수를 일개 지부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하나같이 무공을 익힌 정예병들이었다.

위치가 확인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눈짓을 보내자 두 명의 병사가 다가와서 마교도를 낚아챘다.

이윽고 곤봉을 움켜쥔 소무가 걸음을 옮기며 무거운 음성을 내뱉었다.

“출발한다.”

삼백여 명의 관군과 오십여 명의 포졸이 대열을 형성하며 뒤를 따랐다.

모두의 얼굴에는 긴장감 대신 기대감이 차올라 있었다. 섬서 제일의 영웅인 랑아대의 대장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귀산의 근처까지 최대한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동했다.

도중에 근방에 있던 세 개의 부대가 합류했다.

* * *

목표지점에서 일 리가 떨어진 아귀산의 중턱.

집결한 토벌대의 머릿수는 천오백 명을 웃돌았다.

열다섯 명의 랑아대원이 소무의 명령을 기다렸다.

“진입하지 말고 포위만 해. 내가 명령할 때까지 대기한다.”

“마교의 지부라면 고수들이 제법 많을 것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랑아대의 현정이었다. 화산파 출신답게 조심성이 많았다. 일반적인 무림인의 기준에서는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소무가 누구인가. 검성의 입장에서는 가소로운 전력이었다.

“포위나 잘해.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알겠습니다.”

이곳에 집결한 랑아대원은 열다섯 명이었다. 그들은 각기 백 명의 관군들을 이끌고 산개했다.

소무는 포졸들을 이끌고 묵묵히 적진을 향해 전진했다.

“걱정하지 마, 너희들보고 싸우라고는 안 할 테니. 포승줄이나 준비해.”

포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군들과는 달리 대부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자들이었다. 무림인을 상대로는 일합도 못 버틴다는 것을 본인들이 더 잘 알았다.

잠시 후 거대한 마교 지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족히 백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층 규모의 전각. 게다가 새로 지어진 듯한 외관이라니.

산속에 은밀히 이런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휘나라의 영토였던 기간에 추진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잘도 준비하고 있었군.”

소무의 시선이 전각의 주변을 향했다.

사방에서 관군들이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전각의 입구를 향해 다가가는 소무. 그의 손에는 곤봉 하나가 움켜쥐어져 있었다.

뒤에서 포졸들의 우두머리인 반두(班頭)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교, 교위님. 우리만 들어갑니까……?”

관군들은 포위망을 형성한 채 대기하고만 있었다.

아무리 랑아대의 대장이라지만, 너무 무리수처럼 보였다. 마교의 지부를 혼자서 공격하려는 무모함이라니. 황당하면서도 무섭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 될 거 있나?”

“그, 그건 아니지만…….”

“잘 봐둬. 공권력에 도전하는 놈들이 어찌 되는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소무는 어느새 전각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붉은 기류를 머금은 손바닥이 전각의 입구를 강타했다.

콰앙-!!!

문짝이 단박에 나가떨어졌다. 내부의 광경은 예상대로였다. 수십 명의 마인(魔人)이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대부분이 일류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층에서 느껴지는 마기(魔氣)는 일 층보다 더욱 고강했다.

대단한 전력이었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소무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 그런데도 도망치지 않았군. 어차피 소용이 없었을 테지만.”

마인들은 소무의 등 뒤에 있는 포졸들을 살펴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설마 너희들만 온 거냐?”

“킥킥.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왔네.”

무림에서는 관군의 무공 수준을 얕보는 경향이 있다. 마교를 접수한 영교의 고수들이라면 그 자만심이 하늘을 찌른다. 게다가 기(氣)를 갈무리한 소무는 일반인처럼 느껴질 테니 만만히 보일 수밖에.

소무가 곤봉을 앞으로 내뻗으며 나직이 말했다.

“적국과 내통하여 반역을 꾀한 혐의로 너희들을 체포한다. 순순히 관아에서 조사를 받겠다면 예우를 갖춰주지.”

마인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배꼽을 잡았다.

“하하핫!”

“하하! 저놈 뭐야? 미친 거 아냐?”

“그냥 닥치고 돌아간다면, 살려줄지 고민해보지. 우리가 말이야.”

소무도 피식하고 웃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웃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순순히 포박을 받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걸로 확실해졌다고 봐도 되겠군. 저항해주겠다니 고맙다. 나도 이런 방식이 편하거든.”

마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찰나. 소무의 신형이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 그는 선두에 서 있던 마인을 향해 곤봉을 후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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