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마교의 부활 (4)
(121/250)
121화 마교의 부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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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화 마교의 부활 (4)
2022.06.01.
뻐억-!
뼈가 부러지는 굉음이 실내를 울렸다.
곤봉에 맞은 마인은 단 방에 고꾸라지며 눈알이 뒤집혔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마인들의 틈새로 파고든 소무가 본격적인 매타작을 시작했다. 몽둥이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여지없이 한 명씩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뻐억-! 빡-! 빠바박-!
“끄헉!”
“컥!”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마교도가 쓰러지자 실내가 공포에 휩싸였다.
“뭐, 뭐야?”
기껏해야 관아에서 나온 일개 무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마치 무림의 절대고수를 보는 듯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물러서지 마!”
검기 발출이 가능한 몇 명의 마교도가 앞으로 나섰다. 절도 있고 패기가 넘치는 일류고수의 움직임.
그를 보는 소무의 얼굴에 가소롭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단숨에 떨쳐낼 수도 있었지만, 이들의 무공을 살펴보기로 했다.
좌우에서 다가오는 두 자루의 검. 소무가 상체를 흔들자 검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검날이 중간에서 각도를 틀며 소무의 인후와 후두부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역시로군.’
지금까지 겪어왔던 마교의 검술과는 확연히 달랐다.
기존의 마교는 대부분의 공격이 강(强)과 쾌(快)에 무게를 두어 패도적이면서도 빠른 공격이 특징이었다.
지금 공격에는 유(柔)와 환(幻)의 기세를 함께 담고 있어 눈속임이 많고, 부드러움이 가미되어 있었다. 게다가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 일격까지.
미간을 좁힌 소무는 고개를 비틀며 유유히 회피했다.
촤악-! 푸욱-!
검 끝이 바람을 가르며 소무의 머릿결로 뿜어졌다.
그 순간 자세가 무너진 마인들을 향해 몽둥이가 다가갔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콰직-! 쾅-!
“크윽!”
“컥!”
호기롭게 공격한 두 명의 고수도 단 일격에 쓰러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또다시 세 개의 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무가 움켜쥔 곤봉의 표면으로 유백색의 기(氣)가 발현되며 휘몰아쳤다. 이번엔 직접 초식을 부딪쳐볼 생각이었다.
쾅-! 콰콰쾅-!!!
뭉툭한 소음이 연달아 몰아쳤다.
삼대 일의 상황이었지만 소무의 표정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포위하고 있던 마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점차 당황했다.
곤봉으로 기를 발출하는 것은 검기(劍氣)보다 곱절은 어려운 법이다.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왼손을 뒷짐 쥔 소무는 한쪽 팔만 이용하여 모든 공격을 쳐내고 있었다.
“이건 대체 무슨 검법이지?”
“알 거 없다!”
콰쾅-! 콰콰쾅-!!!
순순히 대답할 리가 없었다. 초식을 분석하던 소무의 머릿속에는 의아함이 떠오르고 있었다.
‘분명 이들의 공격은 마공을 근원으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매 초식이 정파의 검법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화산파의 검법이 가지는 부드러움과 현란함. 게다가 종남파의 특징인 날카로움까지. 심증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강탈해갔던 정파의 무공을 개조하여 마공과 결합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짓이었다. 수준급의 고수와 만난다면 뭔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층에서 느껴지는 가공스러운 마기. 이곳의 지부장을 만나봐야 했다.
“여기까지 하지.”
곤봉을 감쌌던 유백색의 곤기(棍氣)가 푸른빛으로 변했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광명의 빛이 번뜩이는 그 순간. 세 자루의 검기와 곤봉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폭음을 터트렸다.
카앙-!!!
소멸하는 검기와 함께 검날이 부러지는 소리였다.
공격하던 세 명의 마인은 질겁하며 주춤거렸다.
곤강(棍强)이라니. 천하에서 이것을 구사할 수 있는 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고난도의 기술이었다.
소무는 곤강을 소멸시키며 보법을 밟았다. 순간적인 발출은 문제없었지만,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다. 곤강은 검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내력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마인들의 틈새로 파고든 소무는 뭉툭한 곤봉으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다. 초식 따위는 필요도 없었다. 압도적인 속도. 그것이면 충분했다.
한 호흡에 열댓 번씩 퍼붓는 공격은 마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빠악-! 빠바박-!!!
“끄윽!”
“끄헉!”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가는 마인들. 차원을 넘어선 무력 앞에 그들은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야 말았다.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쳤다.
“후, 후퇴하라! 지부장님이 상대하실 것이다!”
몇몇 마교도가 이 층으로 올라가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한 줄기 섬전이 그들의 사이를 벼락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경쾌한 타격음이 연달아 뿜어졌다.
빠바바바박-!!!
“크윽!”
“끄아악!”
쓰러진 마인들의 수는 오십 명을 웃돌았다. 그들의 중심에서 소무가 입구를 바라보았다.
“뭣들하고 있어? 포박하지 않고.”
입구에서 지켜보던 포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마치 헛것을 본 듯한 표정들이었다.
우두머리 포졸 반두가 떨리는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포, 포박하라…….”
포승줄과 곤봉을 움켜쥔 포졸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져 신음하는 마인들은 완전한 항거불능 상태였다. 그런데도 포졸들은 내심 불안했다. 자신들과는 다르게 무공을 익힌 자들이 아니던가.
포졸 한 명이 포승줄을 움켜쥔 채 주춤거리며 물었다.
“괘, 괜찮겠지?”
옆에 있던 포졸이 대답 대신 마교도의 머리에 곤봉을 내리쳤다.
빠악-!
“끄윽……. 왜…… 왜 때려……?”
마교도는 억울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포졸들이 신음하는 마인들을 향해 동시다발적으로 곤봉을 내리쳤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기절할 때까지 쳐라!”
빡-! 빠박-!! 빠바박-!!!
“큭! 그냥 포박해, 이 새끼들아!”
“커헉!”
“크억!”
마교도들의 처절한 비명이 전각을 비집고 나와 아귀산을 뒤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무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왔다.
실소를 머금은 소무는 뒷짐을 쥔 채 계단으로 향했다.
손아귀에 들려진 곤봉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이 층에 있는 지부장이 어떤 인물일지 궁금했다. 은은하면서도 중후하게 느껴지는 한 가닥의 마기. 기(氣)를 갈무리하지 않는 것을 보니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처맞기 전까진 다들 그랬지.”
다각-! 다각-! 다각-!
계단을 밟는 소리가 정적에 휩싸인 이 층으로 은은히 퍼져나갔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드디어 소무가 이 층에 도달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혈의를 입은 서른 명의 마인들. 한눈에 보아도 아래층에 있던 자들보다 수준이 높은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소무의 흥미를 끄는 자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붉은 용포. 그리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백발에 수려한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소무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인상착의였다. 정마대전이 한창일 때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알려진 인물과 일치했다.
“용케도 살아있었군. 천검마녀(天劍魔女) 백묘진.”
백묘진은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관군이 자신을 알아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날 어떻게 알지?”
소무는 붉은 술이 장식된 무관의 투구를 깊이 눌러썼다. 서로가 실제로 마주친 적은 없었기에 자신을 몰라보는 듯했다.
“혹시나 해서 떠봤는데 확실해졌군.”
백묘진의 흰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나를 놀리다니.”
그녀가 검을 틀어쥐자 기세가 바뀌었다. 숨 막히는 마기가 소무를 향해 파도처럼 쏘아져 나왔다.
쏴아아악-!!!
주변으로 한기가 몰아치는 듯했다. 일류고수조차 겁에 질리게 할 정도의 거센 마기였다.
그러나 상대가 누구인가. 감히 검성을 향해 기세를 발출하다니.
소무의 한쪽 입가가 미소를 그렸다.
정마대전 당시 백묘진의 서열은 연설화보다 몇 단계나 아래에 있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었나 보군.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걸 보니.”
소무가 왼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 공간을 지배하던 마기가 단숨에 증발해버렸다.
백묘진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정, 정체를 밝혀라!”
소무가 곤봉을 사선으로 내리깔며 말했다.
“알고 있잖아? 마교도 잡으러 온 관군인 것을.”
백묘진은 점차 불안해졌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보이는 태연함. 게다가 한계를 알 수 없는 무공 수준까지. 굳이 검을 섞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그 순간 백묘진의 얼굴에서 적대감이 사라지며, 매혹적인 표정이 떠올랐다.
“마교는 지금껏 관군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군부와 무림은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거늘, 왜 우리를 공격합니까?”
백팔십도 돌변한 그녀의 태도는 황당할 정도였다. 옅은 수작에 넘어갈 소무가 아니었다.
“적국과 내통한 혐의가 있으니, 떳떳하다면 관아로 가서 조사를 받아라.”
“증거가 있습니까?”
“끝까지 발뺌하는군. 하나만 묻겠다, 천검마녀. 너는 영교에 투항했던 것인가, 아니면 애초부터 영교의 인물이었나?”
“무, 무슨…….”
영교를 언급하는 순간 당황하는 모습이라니. 소무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미 다 알고 왔다. 마교의 이름으로 무림을 정벌하고, 휘나라 군부와 함께 안팎에서 중원을 전복시키려는 계획을 모를 줄 아는가?”
백묘진은 입을 꾹 닫았다.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던 소무는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지금 마교의 교주는 휘나라 황제일지도 모르겠군.”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정곡을 찌르니 또다시 태도가 바뀌는군.”
백묘진은 계속되는 유도 심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한테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소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그럴까? 네 입을 열게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거든. 만나보면 너도 누군지 알 것이다.”
마교의 지부장을 관아로 압송하려 하고 있다. 그것도 태연하게 말이다. 무림의 역사상 이러한 사건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때 혈의를 입은 마인 한 명이 백묘진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희가 시간을 벌어볼 테니, 어서 피하십시오.”
마인들도 아는 모양이었다. 천검마녀가 결코 눈앞의 무관을 당해낼 수 없음을.
백묘진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부하들만으로 막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상대로부터 도망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천살대에 명한다! 너희들은 즉시 이곳을 벗어나, 모든 교도에게 섬서에서 철수하라 이르거라!”
관군에게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들어오는 이상 섬서에서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천살대가 도주할 낌새를 보였지만, 소무는 느긋했다.
“생각처럼 될까? 관군을 아주 물로 보는군.”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던 마인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누군가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 지부장님! 완전히 포위당했습니다!”
백묘진의 시선이 창문 밖을 향했다.
어느새 전각의 주변을 관군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기개로 보아 무공을 익힌 병사들임이 분명해 보였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겨우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뚫고, 빠져나가! 한 명이라도 살아나가야 한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빠져나가 지금의 상황을 전해야 했다.
천살대의 마인들이 하나둘씩 창문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열다섯 명의 랑아대원과 천오백 명의 관군이었다. 무모해 보이는 몸부림이었다.
밖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쉼 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무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우리도 마무리해야지? 선공 양보해줄 때 빨리 들어와. 시간 없으니.”
미간을 좁힌 백묘진은 검을 어깨 위로 잡아당기며 기수식을 잡았다.
“방금 그 말, 후회하게 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