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마교의 부활 (5)
(122/250)
122화 마교의 부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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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화 마교의 부활 (5)
2022.06.02.
곤봉과 한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맞물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묘진의 얼굴이 일그러져 갔다.
“모욕하지 마라!”
공격은 오로지 그녀 혼자서 하고 있었다. 문제는 모든 공격이 펼치는 족족 차단당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녀를 가지고 노는 듯한 움직임.
소무는 지금 무공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교의 탈을 뒤집어쓴 영교의 검법을 말이다.
“이제 알 것 같군.”
그 순간 처음으로 소무가 공격을 개시했다.
뭉툭한 곤봉의 끝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화산파의 모든 제자가 익히는 매화검법(梅花劍法)의 일 초식이었다. 검성이 그것을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곤봉이 다가오자 백묘진이 반사적으로 손목을 흔들었다. 그러자 돌연 검 끝이 갈라지며 환영을 뿜어냈다.
뻗어 나가는 곤봉을 흘려보내며, 전신을 압박해오는 강기. 완벽한 파훼 초식이었다.
다른 초식을 몇 번 더 펼쳐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정파의 초식이 펼쳐지는 족족 차단당하다니.’
이들은 정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이 아니었다. 강탈해간 무공들을 분석하여 파훼 무공을 만들었다.
아직은 초기 단계이지만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 무공을 창안할 수 있는 굉장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했다.
더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었다.
소무의 주변으로 밝은 섬광이 번뜩였다.
번쩍-!
눈부신 빛무리가 사그라진 순간, 그는 백묘진의 뒤에 있었다.
곡선을 그리는 곤봉이 그녀의 등짝을 향해 매섭게 다가갔다.
쩌엉-!
가까스로 막아낸 백묘진은 자세가 흔들렸다.
그 순간 소무가 보법을 밟았다. 그녀의 주위를 빠른 속도로 맴돌며 맹공을 퍼부었다.
백묘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일격이 적중했다.
빠악-!
곤봉으로 복부를 맞은 백묘진은 반사적으로 상체가 꺾여버렸다. 이어서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른 곤봉이 그녀의 등짝을 강타했다.
콰앙-!
“크헉!”
백묘진은 한 움큼의 핏물을 쏟아내며 무릎을 꿇었다.
초식도 없이 자신을 이기다니. 그녀의 눈빛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관군에 엄청난 장수가 한 명 있다는 정보였다.
“랑아대장 소무……?”
강호에서 검성의 이름을 아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별호로 모든 것이 통했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소무는 무관의 투구를 더욱 눌러쓰며 말했다.
“맞아. 나도 묻고 싶은 게 많은데, 가서 얘기할까?”
활짝 펼쳐진 손날이 그녀의 목 뒤를 가격했다.
쩌억-!
고개를 푹 숙인 백묘진은 소무의 어깨 위에 걸쳐졌다.
지부에 남아있는 것은 포역(浦役)들이 와서 조사할 터. 더는 이곳에 볼일이 없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포졸들이 마인들을 묶어놓은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다리까지 묶으면 어떻게 끌고 가려고?”
포졸들의 대장인 반두가 와서 고개를 조아렸다.
“혹시라도 도중에 반항하면 위험하지 몰라서…….”
“장안의 뇌옥으로 끌고 갈 것이니, 호송은 관군들이 해야겠지. 모두 고생 많았어.”
“감사합니다, 교위님!”
포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관아에서 심문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대들이었기 때문이다. 군단에서 포로를 이관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고개를 숙이는 포졸들의 눈빛에는 존경이 가득했다. 마교의 일개 지부를 단신으로 때려 눕혔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전각 밖으로 나오자 관군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다섯 명의 마인들. 이 층에서 도망쳤던 천살대의 고수들이었다.
랑아대의 현정이 다가와서 말했다.
“모두 잡긴 했지만, 저항이 심해서 대부분 죽여야만 했습니다.”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수고했어. 우선 장안으로 돌아간다.”
* * *
포로들은 장안의 뇌옥에 가둬놓았다.
조만간 한 명씩 심문할 예정이었다. 급할 것은 없었다.
우선 연설화를 만나봐야 했다. 상의해봐야 할 것이 있었다.
양주산 분지의 암자.
한달음에 달려온 소무는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과는 달리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사(巳)시쯤 되어 보였다. 소소와 함께 무공을 수련할 시간이 아니던가.
‘모처럼 둘이 어디 놀러 갔나 보군.’
연설화가 없다면 다른 인물이라도 만나봐야 했다.
그의 신형이 쌩하고 사라지며 근처의 마을로 향했다.
장안성에서 오십 리가 떨어진 태진현.
한때 휘나라의 약탈로 초토화가 된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경제활동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섬서 전체에 대대적인 일자리 정책이 펼쳐지고 있었기에, 누구든 의지만 있다면 쉽게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구걸을 본업으로 삼는 거지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소무의 시선이 노점식당 앞에 주저앉은 거지에게 향했다.
손가락을 튕기자 엽전 몇 개가 날아갔다. 엽전은 거지가 움켜쥔 바가지 안에 정확히 안착했다.
타앙-!
눈을 동그랗게 뜬 거지는 소무를 향해 납작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복 받으실 겁니다요!”
“분타주 아직 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지? 지인이 왔으니까 냉큼 오라고 해.”
개방의 제자는 눈알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고위 무관의 관복. 게다가 분타주가 이 마을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 지인치고는 너무 젊어 보이지만,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엽전까지 주었으니 망설일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개방의 문도가 사라지자, 소무는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치마를 두른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직 재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요리는 세 종류만 가능합니다.”
들어보니 돼지고기찜과 닭죽, 그리고 채소볶음이었다.
“하나씩 해주시오. 술은 괜찮소.”
“예.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나으리.”
소무는 한쪽 팔을 식탁 위에 걸치고는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빠져 있던 주민들. 그들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이 유의미한 결실을 보자 가슴이 포근해졌다. 삶의 질이 한중의 백성들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주민들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 보였다.
‘하긴 풍요로움만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겠지. 빼앗겼던 자유를 되찾고 배고픔에서 벗어났으니,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무엇이 있겠는가.’
잠시 후 주방에서 음식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 올려진 요리를 보니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릇을 가득 채울 정도로 양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일 인분씩만 주문했는데 잘못 들으신 것 같소. 허나 음식 값은 모두 지불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중년인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나으리, 모두 일 인분이 맞습니다.”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뜻 보아도 족히 열 명은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일 인분이 왜 이렇게 많소……?”
“분명 일 인분입니다. 단지 제 마음을 조금 더 넣었을 뿐입니다.”
“마음이라니…….”
“우리의 삶을 되찾아준 관군이지 않습니까. 형편만 된다면 뭐든 보답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한 이유라면 환영이었다. 그런데 조금 넣었다는 그 마음이 감당을 못할 정도로 많았다. 부담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고맙소.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말씀해보시오.”
주인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소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 말씀해보시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모든 것을 잃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휘나라 놈들에게 가족이 전부 살해당하고…….”
객잔 주인은 목이 메는지 말을 하다 말고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정말 유감이오…….”
“아닙니다. 제가 죽으려 했던 그 날 한 아이가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음악도 들려주고…… 저를 따듯하게 안아주었지요. 먼저 보냈던 제 딸을 다시 보는 것만 같았어요……. 삶의 용기를 되찾게 해준 아이입니다…….”
“마음씨가 이쁜 아이로군요.”
말을 이어가던 중년인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끄흐흑……. 아직…… 아직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못 해줬습니다. 반드시 그 말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누구나 되돌아보면 아쉬운 것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소무가 그의 손목을 잡아주며 말했다. 은연중 따듯한 진기를 넣어주면서 말이다.
“누군지 말해주면 내가 그 말을 전해주겠소.”
“그게…… 사실 이름을 모릅니다……. 자기 아버지가 관군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혹시나 해서 말씀드려봤습니다…….”
소무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식탁 옆에 손바닥을 펼쳐보았다.
“혹시 키는 요만하고, 머리를 토끼처럼 묶은 꼬맹이가 아니었소?”
객잔 주인의 얼굴이 활짝 퍼졌다. 그러더니 환희에 휩싸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 맞습니다! 그 아이가 확실합니다!”
소무의 입가가 흐뭇한 미소를 그렸다.
“반드시 약속하겠소. 꼭 전해주리다.”
“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중년인은 고개를 연신 숙여 보이며 물러갔다.
딸아이에게 말 한마디 전해주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나중에 이곳에 데려와서 식사라도 한 번 먹고 가야겠군.’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좋아서 그리 흐뭇하게 웃고 있는가? 별일이군. 자네가 그런 표정을 짓다니.”
허규는 맞은편에 앉으며 젓가락부터 움켜쥐었다.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지.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많이 먹어둬.”
“왜 이렇게 많이 시켰어? 정말 먹어도 되는 거야?”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불안한 법이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음식을 주문해놓다니. 허규는 바로 먹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의 심정을 모를 소무가 아니었다.
“부탁하려고 온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허허헛. 그럼 잘 먹겠네.”
맛있게 먹는 허규의 모습에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방의 분타주가 이리도 소탈한 모습이라니. 오늘따라 그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묵묵히 지켜보던 소무는 나직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제 아귀산에 있는 마교의 지부를 털었어. 모두 잡아다가 뇌옥에 처넣었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소무의 손바닥이 다급히 식탁 위로 올라오며 기막(氣膜)을 펼쳐냈다. 허규의 입에서 음식물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풉! 뭐, 뭐라고!?”
마교의 지부 하나가 하루아침에 털리고 모두 체포되다니.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다.
“방금 얘기한 대로야. 그리고 확실히 기존의 마교 놈들은 아니었어.”
허규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영교 놈들이 확실하다니깐. 우리 무림맹에서는 이제 그들을 신(新)마교라 부르고 있네.”
소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였다.
“그래. 아무튼, 휘나라와 마교가 같은 세력임이 확인되었으니, 우리 관군도 무림맹이 당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게 되었어.”
“그래야겠지. 무림맹이 무너지면 관군만으로 양쪽 세력을 어찌 막아내겠는가. 이제 공식적인 공동 운명체가 되었구만.”
소무는 식탁 위에 깍지를 끼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무림맹이 버틸 수가 없단 거야. 놈들이 지금 벌이는 수작을 막지 못한다면.”
허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가 그리 쉽게 무너질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길래……?”
“놈들은 정파를 겨냥해 새로운 무공을 만들고 있었어. 어지간한 정파의 초식들은 펼치는 족족 파훼되더군.”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믿기 힘든 내용에 허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소무는 지부장과 싸우면서 알아냈던 내용을 모두 전해주었다.
반각이 지난 후.
허규는 입맛이 뚝 떨어졌는지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모양이었다.
지켜보던 소무가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거지가 식사를 멈추다니, 별일이군.”
“어찌 밥이 넘어가겠는가…….”
“걱정할 것 없어. 나한테 방법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