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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무과시험 (1) (128/250)


128화 무과시험 (1)
2022.06.08.


모처럼 장안성의 궁성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과거제가 개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을 듣고 각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노점상이 줄을 이었고, 궁성을 관광하는 행인들까지. 곳곳에서 거센 활기가 느껴졌다.

가장 뜨거운 곳은 무과시험이 열리는 장소였다. 주작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접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탁상에 앉아 붓대를 움켜쥔 행정병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음 응시자 나오시오!”

백발이 무성하고 주름이 깊은 노인이 탁상 앞으로 다가왔다. 연로해 보이는 모습에 행정병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다소 거친 시험과목들이 있습니다.”

“내 이래 봬도 현역 사냥꾼일세. 소싯적엔 호랑이도 잡아봤지. 나라의 무관이 되어보는 것이 평생의 염원이었는데 어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행정병은 노인의 모습을 살펴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께서 참가를 원하는 모든 자에게 기회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일단 접수는 해드리겠습니다. 힘드시면 중도에 포기하셔도 됩니다.”

“허허허. 정말 고맙네. 내 평생 가장 기쁜 날을 꼽으라면 바로 오늘일세.”

노인은 각종 질의응답을 마친 후 밝게 웃으며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걸음걸이에서는 행복함이 느껴졌다.

행정병이 또다시 기계적으로 외쳤다.

“다음 응시자 나오시오!”

아무리 기다려도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단지 탁상 위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누군가가 있었을 뿐이었다. 병아리처럼 노란색 한복을 입은 아이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행정병은 화들짝 놀라며 말을 더듬거렸다.

“소, 소소야, 네가 여긴 왜 왔어?”

“놀러 왔어요. 무과시험을 응시하면 뭘 주나요?”

이 재밌는 구경거리를 그냥 지나칠 소소가 아니었다.

“시험을 잘 보면 관직을 받게 된단다. 정기적으로 급료도 나오고.”

급료라는 말에 소소의 큰 눈이 더욱 크게 부릅떠졌다.

“급료요? 그럼 소소 용돈도 주는 거예요?”

행정병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어갔다.

“설마…… 너도 응시하려는 건 아니겠지?”

“왜요? 나도 할 거예요.”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닐곱밖에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무과시험이라니. 역사상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소무 대장의 딸아이가 아니던가. 그의 허락도 없이 접수 신청을 받아주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무관이 되면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 한단다. 일도 해야 하는데, 힘들 거야. 굳이 뭐하러 고생하려고 해?”

소소가 방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 일 잘해요~ 히히.”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그래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소소는 너무 어려서 안 돼. 우선 아버지 허락을 받고 오너라.”

행정병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용돈을 받을 생각에 이미 기분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소소는 손가락을 뻗어 기둥에 붙은 공고문을 가리켰다. 그러더니 거기서 한 문장을 소리쳐 읽었다.

“참가자는 나이에 제한이 없다!”

행정병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설마 글씨를 읽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확실해……?”

“맞아요! 나 이제 글씨 읽을 줄 알아요~”

설화원에서 계속 배우고 있었으니, 간단한 문장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행정병은 한숨을 내쉬며 옆에 있는 동료를 바라보았다.

“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킥킥. 어쩔 수 없잖아. 장군께서 나이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하셨으니.”

“후……. 설마 소소가 참가할 줄은 몰랐겠지.”

규정을 위반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행정병은 소소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마지못해 접수를 진행해주었다.

“이거 들고 시험장으로 들어가거라.”

용지를 받아든 소소는 두 손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행정병은 살랑거리면서 들어가는 소소를 불러세웠다.

“어이, 꼬마 장수!”

“왜요, 아저씨?”

“힘내라! 다치지 말고!”

소소는 해맑게 웃으며 머리 위로 손을 흔들었다.

“헤헤. 알았어요. 아저씨도 힘내요!”

첫 번째 과목으로 선택한 곳은 궁술시험장이었다.

아이를 본 관원은 멍한 표정으로 용지를 건네받았다.

“설마…… 너도 응시하는 거야……?”

“네~ 어떻게 하는 거예요?”

관원은 잠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내 정신을 수습하고 나서 활과 화살 세 대를 넘겨주었다.

“한 발 이상을 과녁에 적중시키면 합격. 세 발을 모두 맞춘다면 가산점이 있단다.”

호기롭게 활을 받아든 소소는 자세를 잡았다.

군단에서 자라온 아이였기에 궁수들을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히잉…….”

소소는 시위를 당기려다 말고 울먹였다.

어리둥절한 관원이 그 모습을 보더니 헛웃음을 내뱉었다.

“킥!”

팔이 짧아서 시위를 당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신체조건 때문에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소소는 서러운지 소매로 눈물을 훔쳐냈다.

“아저씨……. 나 어떡해요?”

“어쩔 수 없겠구나. 화살을 날리지 못하면서 어찌 적을 쓰러트릴 수 있겠느냐.”

“그럼 던져서 맞추면 안 되나요?”

관원은 재밌다는 듯 연신 킥킥댔다.

“하하하! 어디, 할 수 있다면 해보아라. 전쟁터에서 궁수의 임무는 화살을 날려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다. 손으로 던져서 더 잘 맞춘다면 활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조금 전만 해도 울먹이던 아이가 해맑은 미소를 머금었다.

“헤헷. 고맙습니다~”

소소는 오른손으로 화살을 움켜쥔 채 왼손을 내뻗어 각을 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관원이 배꼽을 잡았다.

그러나 그가 어찌 알겠는가. 지금 소소의 자세는 연설화에게 배운 마교 최강의 암기술, 마화비전의 준비 동작이었다.

이 갑자를 넘어서는 소소의 무지막지한 내공. 그것을 담은 활대는 강철처럼 뻣뻣해지며 훌륭한 암기로 변모했다.

“흐잇!”

기합성과 함께 소소의 손아귀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쐐에에엑-!!!

바람을 찢어발기는 거센 파공음이 관원의 얼굴에까지 전해졌다.

그가 입을 떡하니 벌릴 찰나. 소소가 던진 화살촉이 과녁에 적중했다.

콰앙-!

거센 폭음과 함께 과녁의 정중앙에 구멍이 뚫려버렸다.

곧이어 두 대의 화살이 연이어 날아들며 같은 위치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콰쾅-!

결과를 확인한 소소는 손뼉을 부딪치며 방방 뛰었다.

“히히. 어때요? 저 합격인 거 맞죠?”

관원은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더니, 용지에 몇 글자를 새겨 넣었다.

“대, 대단하구나……. 이거 들고 저쪽으로 가거라. 검술 시험장이다.”

검술 시험장에도 많은 인파가 있었다. 집단 대련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가장 거친 과목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탈락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대련의 상대가 바로 랑아대의 대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목검을 움켜쥔 열 명의 대원들. 그리고 그 주위를 수백여 명의 응시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재밌겠다.”

삼촌들과의 대련이 소소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였다. 최근에는 상대를 잘 안 해줬기에 몸이 달아올랐다. 상기된 얼굴로 재빨리 접수처로 달려갔다.

날이 없는 훈련용 검과 갑옷이 따로 지급되었다.

관원이 소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아저씨가 응원하는 거 알지?”

“네, 아저씨!”

가장 작은 여성용 갑옷을 입혀주었는데도 무릎까지 가려버렸다. 너무 헐렁거려서 불편했지만,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막아낸다면 합격이다. 반대로 세 번 이상 적중당한다면 탈락이지.”

“그럼 제가 때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하하. 만약 성공하면 추가 가산점을 부여해주마.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지만.”

용지를 넘겨준 소소는 어느새 응시자들의 무리로 향했다.

엄청난 머릿수가 삼촌들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검에는 마치 생명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그 누구도 일합을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열에 아홉 이상은 탈락하는 분위기였다. 탈락자는 새로운 인원으로 빠르게 물갈이가 이루어졌다.

소소를 발견한 응시자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앞을 막아섰다.

“꼬마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 이 할아버지 뒤에 숨어!”

“조심하거라, 아가야!”

“고맙습니다!”

소소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응시자들의 뒤에 은신했다.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먹잇감을 노리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 머지않아 목표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흐얏!”

거센 기성과 함께 소소의 신형이 벼락처럼 쏘아져 나갔다. 목표물은 정신이 팔려있는 랑아대원의 등 뒤였다.

목검이 초승달을 그리며 그의 하체를 향해 다가갔다.

난데없는 기습에 화들짝 놀란 대원이 재빨리 회전했다.

콰앙-!

겨우 막아내긴 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묵직한 일격이었다. 그의 자세는 크게 휘청거리고야 말았다.

“미안해요, 송화 삼촌!”

짧은 한마디와 함께 소소가 맹공을 퍼부었다.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

시작부터 필살의 기술을 펼치고 있었다. 다른 삼촌이 다가오면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점점 빨라지는 소소의 검에 송화는 점차 무너져갔다.

쾅-! 콰콰콰쾅-!

주변에 있던 응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용기를 얻었다. 사방에서 송화를 향해 수십여 명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대원들이 그를 구출하려 했지만, 인파가 너무나 많았다.

기어코 송화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소소에게 일격을 적중당하고야 말았다.

퍼억-!

내력을 담지 않은 공격이었기에 부상은 없었다.

“큭!”

백팔식광풍쾌검은 한번 시작하면 쉽게 멈출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송화는 십여 대를 더 두들겨 맞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였다.

“요 비겁한 녀석!”

어느새 소소의 좌우에서 두 명의 대원이 나타났다. 화산파 출신의 현정과 청해 삼촌이었다.

이 둘을 상대로는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는가.

“항복할래요!”

양손을 올린 소소는 폴짝폴짝 뛰며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삼촌들이 분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소소 덕분에 몇몇 응시자들이 덩달아 합격하고 만세를 외쳤다.

“수고했어, 아가야!”

“정말 대단해!”

“헤헤. 다음은 어디예요?”

시험과목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마 전투와 창술 등은 물론이거니와 체력 시험까지. 중간중간에 전술 시험도 병행되고 있었다.

첫날의 시험을 무사히 마친 소소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막사로 돌아갔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 * *

무과시험을 주관하는 관리본부.

상석에 앉아 있는 자는 최종 심사위원인 소무였다.

기다란 탁상 위에는 종이 뭉치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종이에는 제각각 다른 문체의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전술 훈련의 시험지였다.

“결과는 좀 어때?”

“완벽한 답을 적어놓은 자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몇 명은 근접한 전술을 제시하여 합격 처리 하였습니다.”

“적에게 기습당했을 때의 대처능력은 지휘관의 필수 전술 중 하나이지.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법. 정답을 뛰어넘는 기발한 답안을 제시한 자가 있었으면 좋겠군.”

“응시자가 많으니 틀림없이 그러한 자가 나올 것입니다.”

그때였다. 관원 한 명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육성으로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핫!”

소무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실내의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관원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너무 재밌는 답안이 있어서.”

궁금해진 소무는 얼른 손을 내밀었다.

“어디 한번 줘봐.”

글자가 빼곡히 적힌 다른 종이들과는 다르게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글을 배운지 얼마 안 되는 듯한 삐뚤삐뚤한 글씨까지. 내용을 확인한 소무도 폭소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하하! 대체 누가 이런 답을 적어놓은 거야?”

“일삼이칠(一三二七)번 응시자입니다.”

누가 이 답을 제출했는지는 모른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이름 대신 응시번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옆에 있던 다른 관원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소무는 말없이 종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단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 사자후를 날린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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