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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무과시험 (2) (129/250)


129화 무과시험 (2)
2022.06.09.


무과시험의 관리본부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소무마저 폭소할 정도로 재밌는 답안이었다.

관원 한 명이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대장님?”

“물론 최고의 전술인 것도 맞아. 기습공격을 단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문제는 사자후가 개나 소나 쓸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는 것에 있었다. 중후한 내공을 기반으로 고된 수련이 필요한 최강의 광역 무공이었다.

그만큼 까다롭기에 역사를 통틀어서 제대로 익힌 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역시 탈락시켜야겠죠?”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무과시험이 장난인가.”

그때 옆에 있던 관원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잠시만요! 일삼이칠번 응시자, 보통이 아닌데요?”

소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지. 기습부대를 향해 사자후를 날린다는데.”

관원이 재빨리 서류들을 짚어가며 답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 목록을 보십시오. 거의 모든 과목에서 일삼이칠번이 최상위 순위권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단병접전과 박투술, 그리고 투척 무예는 수석입니다!”

소무는 깍지를 끼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 역시나 이대로 떨어트리기엔 아까운 인재였다.

“내일 시험도 있으니 좀 더 지켜보지. 합격은 시키되 감점을 걸어놔.”

“예, 대장님.”

즐거웠던 사건도 잠시. 다시 관원들은 업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응시자가 너무나도 많았다. 전술평가의 임무까지 맡았으니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막사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밤을 지새워야 할 정도로 말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첫날 시험의 합격자 명단을 공고할 수 있었다.

다시 해가 뜨고 무과시험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쉬면서 해. 잠도 좀 자고.”

소무의 체력은 며칠 밤을 지새우더라도 끄떡없을 터였다. 그러나 관원들은 달랐다. 모두가 충혈된 눈으로 꾸벅꾸벅 졸기에 바빴다.

“예, 대장님도 조금 쉬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소무도 찻잔을 움켜쥐며 휴식을 즐겼다. 자신이 일을 멈추지 않으면 부하들도 눈치 보느라 쉬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반시진의 휴식이 지나고 다시 업무가 재개되었다.

그러기를 반나절.

관리본부의 문이 열리며 관원 한 명이 찾아왔다. 서류 뭉치가 가득 든 상자를 들고서 말이다.

소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자네는 쌍검기진 과목의 감독을 맡지 않았나. 왜 벌써 돌아왔지?”

쌍검기진(雙劍技進). 두 자루의 목검을 움켜쥐고, 준비된 허수아비들을 공격하며 돌진하는 시험이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돌파하는지에 따라 가산점이 부여된다.

“저 그게……. 쌍검기진 과목은 중단되었습니다.”

“중단되었다니? 무슨 이유로?”

잠시 망설이던 관원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일삼이칠번이 시험장의 표적을 모두 파손시켜 놔서…… 더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

“표적을 파손시켰다고?”

“말 그대로입니다. 허수아비들의 허리를 모조리 두 동강 내버렸습니다.”

허수아비는 통나무를 이용해 만들어놓은 표적이다. 목검으로 그것을 훼손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검기를 사용했나 보군.”

“검기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목검에 무지막지한 내력이 담긴 듯했습니다. 참가자가 그만 흥분해서 힘을 조절하지 못한 듯싶습니다.”

소무의 얼굴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검기를 사용하지 않고 힘으로만 통나무를 부수다니. 최소한 이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누군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개인 전술평가는 끝났으니 이름이 공개되어도 무관한 시점일 터.

“도대체 일삼이칠번이 누구야?”

관원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모르셨습니까?”

소무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름있는 무인이겠지?”

관원은 그걸 왜 자신한테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대장님의 따님인데요?”

입에서 삼키지 못한 차가 뿜어져 나왔다.

소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지 착각마저 들었다.

“소소가 왜 무과시험을 보고 있어?”

“그게……. 제 발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규정상 돌려보낼 수도 없으니…….”

황당하면서도 걱정부터 앞섰다. 또래와 어울려 놀 시간도 부족한 마당에 무관이라니.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데 아비로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탈락시켜줘. 상처받지 않게.”

“저 그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

“이제 조 단위로 이루어지는 야전 능력평가만 남았습니다. 이미 대다수 과목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소소와 같이 있는 조원도 보통이 아니라…….”

골치가 아팠다. 오전에는 연설화와 함께 퉁소 연주와 무공수련을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설화원에도 가야 하지 않는가.

그 와중에 관원으로서 임무까지 수행한다면, 아이가 바쁜 일정을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나도 참관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대장님.”

장소는 군영의 보병훈련소 중 하나였다. 소무는 관원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 * *

구경꾼들의 거센 응원 속에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열 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정규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과목이었다. 얼마나 버티느냐에 따라 전원이 합격하거나 탈락하게 된다.

“힘내라!”

“방패를 올려!”

열 명의 응시자는 일렬로 늘어서서 자세를 잡았다. 목검을 움켜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전면에서 훈련용 창을 비껴든 기마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백 부장의 휘하에서 무수히 많은 적군을 쓰러트린 정예기병들이었다.

쐐기 모양의 추형진을 형성한 그들이 응시자들의 대열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쾅-! 콰콰쾅-!

“큭!”

“크헉!”

신음과 함께 바닥으로 나자빠지는 응시자들. 기병이 지나가고 난 뒤에는 서 있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있던 관원이 재빨리 다가가 붉은 깃발을 올렸다.

“전원 탈락!”

어깨가 축 늘어진 응시자들이 훈련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느덧 마지막 조만 남은 상황이었다. 한 번의 경기가 더 끝나면 무과시험이 모두 종료된다.

단상 위에서 정규군을 지휘하는 감독관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십구조 입장 하시오!”

열 명의 응시자가 다시 안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제각각 마음에 드는 무기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아래를 보며 말했다.

“아가야, 아까 보니 제법 한가락 하더구나.”

“히히. 아저씨도 멋졌어요!”

오늘 하루 함께 이동하며 제법 친해진 두 명이었다. 나란히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서 종일 같이 있었다.

“근데 왜 방패는 챙기지 않은 것이냐.”

“앞이 안 보여서요…….”

훈련용 방패는 대형이라 소소의 체구보다도 컸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 중년인이 피식하고 웃었다.

“하긴, 그렇겠구나. 뛰쳐나가지 말고 몸을 사리거라.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네, 아저씨도 조심해요!”

대열을 갖추며 경기가 시작될 찰나였다. 돌연 단상 위의 감독관이 물러났다. 그리고 고위 무관의 관복을 입은 자가 지휘기를 넘겨받았다.

소무의 모습을 확인한 십구조의 중년인은 눈빛이 흔들렸다. 반면 소소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떠올랐다.

“엇?”

중년인의 얼굴에 호기심이 서렸다.

“아는 사람이니?”

“네, 우리 아버지예요!”

어쩐지 어린 나이에 무공 수준이 너무 높아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부자연스러웠다. 아무리 보아도 딸을 도와주려는 모습이 아니었다.

“근데 아버지가 조금 이상한데? 우리를 꼭 탈락시키려는 것 같잖아?”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소소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는 소소 엄청 예뻐해요.”

소무의 지휘기에 따라 정규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면으로 나서는 보병과 궁수들. 게다가 우회 공격을 노리고 후미에서 자리를 잡는 기병들까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전술 없이 돌격만 하던 정규군들이 지금은 진을 형성하고 있구나.”

이 최종 시험의 평가항목은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였다.

정규군의 총 전력은 백여 명에 이르렀다. 보통은 극소수만 나와서 단번에 휩쓸고 끝냈지만, 지금은 모두가 함께 움직이려는 모양새였다.

더는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우측에 자리한 젊은 장한이 외쳤다.

“저기, 타지에서 오신 형씨. 보아하니 경험이 있으신 것 같은데 우리 좀 이끌어주시오.”

무턱대고 맞선다면 조금의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조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인이 중앙으로 이동하며 말했다.

“믿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럼 제가 한번 지휘해보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무의 지휘기가 휘둘려졌다. 그 순간 끝이 뭉툭한 훈련용 화살들이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맞아도 다치진 않겠지만, 적중당하면 실격 처리였다.

조장이 방패를 올리며 다급히 외쳤다.

“모두 밀집하여 빈틈을 없애십시오!”

조원들이 한데 뭉쳐 방패를 모았다. 바닥에서부터 하늘까지 가리는 훌륭한 방어벽이 완성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재빨리 소리쳤다.

“아가야, 어서 안으로 들어와!”

“네 아저씨!”

소소는 방패 아래로 몸을 웅크렸다. 잠시 후 그들이 있는 공간으로 화살이 빗발쳤다.

쾅-! 콰콰쾅-!!!

궁수들은 일제사격에서 연사로 전환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화살들로 인해 방패를 내릴 수가 없었다.

“보병들이 돌진해오고 있소, 조장!”

“당황하지 말고, 모두 이대로 대기하시오!”

한 명이라도 방패를 풀었다가는 진이 무너진다. 그렇게 된다면 궁수들의 공격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보병들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궁수들의 공격이 멈추었다. 그 순간 조장의 눈빛이 빛났다.

“나와 이 아이가 같이 맞서볼 테니, 나머지는 원진을 형성하여 본진을 지켜주시오!”

원진(圓陣). 굳이 훈련이 필요 없는 기본적이고 간단한 진법이다. 서로가 등을 맞대어 원형을 형성하는 것뿐이니.

“알겠소, 조장!”

“조심하시오!”

고개를 끄덕인 조장이 등 뒤의 소소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겠어?”

소소가 목검을 틀어쥐며 소리쳤다.

“네, 조장 아저씨! 돌격해요!”

그 순간 방어벽이 열리며 소소와 조장이 동시에 뛰쳐나갔다. 좌우로 나뉘어 전광석화같이 질주하는 움직임에 보병들이 움찔했다.

군단의 모든 병사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꼬마 장수라 불릴 정도로 가공할 무위를 가진 아이임을.

그리고 함께 내달리는 중년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자의 움직임도 놀라울 정도였다.

압도적인 인원의 차이에도 둘의 기세가 나머지를 압도했다.

보병들의 틈새로 파고든 소소가 그들의 사이를 벼락처럼 누볐다. 목검이 그들의 다리를 정신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퍽-!! 퍼퍼퍽-!!!

“큭!”

“으악!”

목검에 맞은 병사들은 비틀거린 후 오른팔의 휘장을 떼어냈다. 그들은 훈련장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조장도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 못했다. 기마대가 움직임을 개시했기 때문이다.

이십여 기의 기마대가 우회하여 본진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조원들이 등을 맞댄 채 버티고 있었으나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전에 둘이 나머지 병사들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정신없이 보병들을 두들기던 소소와 조장. 그들의 돌진이 어느 순간 막혀버렸다. 보병 중에 랑아대원들이 은밀하게 뒤섞여 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소도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에 바빴다.

“아저씨, 어떡해요?”

전면의 보병을 겨우 떨쳐낸 조장이 재빨리 소소에게 달려갔다. 등을 맞댄 그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포위하고 있는 보병의 숫자는 열 명이었다.

“저들 중에 넷은 랑아대인 듯싶구나. 조심하거라.”

그것을 모를 소소가 아니었다.

아이의 얼굴이 울상을 그렸다.

“삼촌들, 나 때릴 거예요?”

애처로운 조카의 모습에 대원중 한 명이 킥킥대며 말했다.

“어서 항복해. 엉덩이 두들겨 맞기 전에.”

“휴…….”

두 명을 상대로는 자신이 없었다. 그것은 조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등 뒤를 향해 속삭였다.

“안 되겠다. 최후의 수단을 써야겠구나.”

“무슨 수단이요?”

잠시 고민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가야, 아버지 이길 수 있어?”

“네. 제가 이겨요.”

“그래. 내가 잠시 시간을 끌어볼 테니, 너는 지휘관인 아버지를 잡아라.”

심사위원을 공격하겠다니. 과목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소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이 방패가 필요할 게다.”

방패를 건네받은 소소는 심호흡을 들이켰다. 이후 전력을 다해 섬전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막아서려 했지만, 조장이 필사적으로 방해하는 마당에 쉽지 않았다.

소소 앞에는 삼십여 명의 궁수들만이 조준을 마치고 있었다.

“발사!”

직사로 다가오는 수십여 개의 화살들. 그러나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었다. 거대한 방패가 소소의 전면을 완벽히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궁수들에게는 마치 방패가 홀로 허공을 날아오는 것처럼 보였다.

“맞출 공간이 없습니다!”

“근접전투다! 모두 목검을 들어라!”

활을 내던지며 허리춤의 목검을 뽑아 드는 궁수들. 하지만 소소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제 선물이에요!”

방패가 궁수들을 향해 날아오르며 시야를 가렸다. 그 순간 소소가 보법을 밟으며 빛살처럼 내달렸다.

목표는 단상 위에 서 있는 소무였다. 둘 사이의 거리는 빠른 속도로 좁혀져 갔다.

거리가 삼 장 이내로 가까워진 시점이었다. 소소가 지면을 박차고 떠오르며 기성을 뿜어냈다.

“이얍!”

필살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어깨 위로 목검을 잡아당겼다.

그 모습을 마주한 소무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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