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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무과시험 (3) (130/250)


130화 무과시험 (3)
2022.06.10.


소무는 심정이 착잡했다. 눈앞에서 딸아이가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눈빛을 보니 자신을 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맞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목검이 곡선을 그리며 그의 옆구리를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돌연 단상 위에서 눈부신 섬광이 번뜩였다.

번쩍-!

다시 빛이 사그라진 순간에는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소소는 점혈을 당한 채 아버지의 가슴팍에 안겨있었다.

“맹랑한 녀석이로구나. 감히 아버지를 때리려 하다니.”

소리를 낼 수 없도록 아혈까지 눌렀기에 답변을 들을 수가 없었다.

소소가 큰 눈을 연신 끔벅였다. 허무하게 제압당해서 분한 모양이었다.

막아놓은 혈도를 풀어주자 반사적으로 소소의 입이 뻐금거렸다.

“맞아도 안 아프잖아요!”

그냥 맞아줄 줄 알았던 것이었을까? 하지만 소무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부하들 앞에서 목검으로 맞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소소의 입이 참새처럼 삐죽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소무가 피식 웃었다.

반짝 빛나는 아이의 이마를 향해 손가락으로 딱밤을 날려보았다.

따악-!

“아얏!”

이마를 움켜쥐는 모습이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그 순간 자두 같은 손이 소무의 가슴팍을 팍 때렸다.

“히잉. 너무해!”

물론 이 정도로는 아무런 충격도 없다.

소무는 딸아이를 안은 채 단상에서 내려갔다.

어느새 경기장의 상황은 모두 마무리되어 있었다.

조장을 포함한 모든 참가자가 어깨의 휘장을 떼어냈다. 랑아대의 대원들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관원의 판정만 남은 상황이었다.

깃발을 움켜쥔 관원이 은연중 소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소무는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관원에게 전음을 보냈다.

- 공정하게 소신껏 판정해.

딸아이를 낙제시키고 싶었으나, 다른 조원들까지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관원은 경기장의 중심에서 고민 끝에 깃대 하나를 뽑아 올렸다.

찬란한 태양 빛을 머금은 금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최고의 점수를 뜻하는 깃발이었다.

구경하던 모든 관중이 동시에 함성을 내질렀다.

무과시험의 마지막을 장식한 십구조가 최고의 볼거리를 선사했다. 모두의 얼굴에 만족스럽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우와아아!!!”

“정말 최고였어!”

“저들 중에 반드시 수석이 나올 거야!”

날카로운 인상을 소유한 십구조의 조장. 그가 먼 곳을 바라보며 손을 올려 보였다. 소무의 어깨 위로 손을 흔드는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히히. 아저씨, 또 봐요!”

오늘 하루 붙어 다녔기에 부쩍 정이 든 모양이었다.

소무가 촐랑거리는 딸아이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물었다.

“저 아저씨는 어떻게 알아?”

“오늘 저랑 같이 놀았어요. 먼 곳에서 와서 친구가 없대요.”

“음. 같이 밥 먹어주는 친구는 한 명 있을걸?”

“정말요? 다행이다. 근데 우리 어디 가요?”

“할아버지 보러 갈까?”

“헤헤. 좋아요! 빨리 할아버지 보고 싶어.”

문과시험은 장양의 주관하에 진행되었으며, 하루 전에 이미 끝나있었다.

지금쯤이면 급제자도 모두 나왔을 터. 그를 만나봐야 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한 부녀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아버지~”

소소가 냉큼 달려가 앉아 있는 장양의 목을 끌어안았다.

“허허. 소소도 같이 왔구나. 밥은 먹었느냐?”

“아니요……. 배고파요.”

장양은 탁상 한쪽에 차려진 주전부리를 통째로 넘겨주었다.

“이것부터 좀 먹고 있거라.”

간식을 받아든 소소는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힘을 쓰고 와서 출출했던 참이었으니.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소소는 다소곳하게 인사하고는, 간식을 들고 집무실 구석에 앉았다.

아이를 뒤로한 채 소무가 장양과 마주 앉았다.

“무과시험도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허허허. 정말 고생 많았네. 이제 한시름 덜게 되었어.”

“장군께서 더 고생하셨지요. 여하간 잠시 후면 점수 집계가 끝날 것입니다. 같이 결과를 확인하러 가시겠습니까?”

“암, 그래야지. 헌데 자네 얼굴에 근심이 있어 보이는군.”

소무가 구석에 앉은 딸을 한 번 쓱 바라보았다. 대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무과시험에 소소가 참가했습니다.”

장양은 놀란 표정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허……. 그게 정말인가?”

“게다가…… 수석 후보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소무의 예상과는 달리 장양은 무척 좋아했다.

“허허헛! 그렇다면 기뻐해야 할 일이지 않은가? 자네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딸을 둔 아비가 된 것일세.”

“하지만 관직을 맡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능력이 입증되었는데, 본인이 원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무관이라고 험한 일만 하는 건 아닐세. 아이가 좋아할 만할 관직을 한번 줘보세. 힘들면 언제든 사직할 수도 있는 법이고.”

소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과에 급제한 자들은 성적에 따라 종육품에서 종구품까지의 관직을 받게 된다.

대다수는 섬서의 지방관아나 행정기관 등으로 가게 되며, 일부는 군단 내의 직책을 맡게 된다.

그중에는 구호물자의 배분을 담당하거나, 군마의 건강을 살피는 역할 등 특수한 관직도 여럿 있었다.

“무엇이 좋겠습니까?”

“허허헛. 소소의 성적이라면 뭐든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직접 한번 물어보시게.”

소무가 간식을 먹고 있는 딸아이를 불렀다.

“잠깐 이리 와볼래?”

곶감 하나를 움켜쥔 소소가 다리 위에 올라탔다.

“이거 먹어볼래요?”

“아버지는 괜찮아. 소소는 과거 시험을 왜 봤어?”

“나라를 위해서 일도 하고 용돈도 준대요.”

“음. 아버지가 용돈 줄게, 그냥 하지 말까?”

소소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나도 할 거예요!”

눈빛을 보니 의지가 확고해 보였다.

소무는 알고 있었다. 딸아이가 이런 눈을 하고 있을 때는 고집을 꺾을 수 없음을.

“무슨 일이 하고 싶어?”

소소는 쑥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소소가 하고 싶은 거요?”

“응. 한번 말해봐.”

잠시 머뭇거리던 소소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찰대원…….”

소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찰대원이라는 관직명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야?”

지켜보던 장양이 뭔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 아마도 순라군(巡邏軍)의 순관(巡官)을 말하는 듯싶네.”

순라군은 궁성을 돌아다니며 도둑이나 화재 등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소소가 원하는 것은 종구품으로 최하위 품계인 오장급 순관이었다.

그리고 순라대장은 양가장의 막내인 양소 부장으로, 소소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뇌옥에서 구출된 인물이었다.

“다른 건 어때? 마구간에서 말들한테 먹이 주는 거 해볼래?”

“싫어요. 나는 도둑을 잡을 거예요.”

웃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궁성을 돌아다니다가 순관들에 대한 환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장양이 흐뭇한 얼굴로 소무를 바라보았다.

“섬서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바로 장안의 궁성이지. 이곳의 순관이라면 그리 걱정할 일은 없을 걸세. 이참에 경험을 쌓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괜히 관직 하나를 낭비하는 것은 아닐는지…….”

“어찌 그리 생각하시는가? 무과시험의 수석 후보가 겨우 종구품의 관직을 원한다면 소박한 소원이 아닌가. 더군다나 무신의 기개를 타고났으니, 장차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이 마땅하네.”

장양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퉁소도 배워야 하고, 설화원에도 다녀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하자 소소는 불안해졌다. 무릎에서 냉큼 내려가 장양의 옷깃을 붙잡았다.

“할아버지, 나 순찰대원 하게 해줄 거죠?”

울먹이며 애원하는 아이의 모습에 장양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순라군은 시간별로 나뉘어 교대로 돌아가고 있네. 오후에 두 시진. 그리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까지 근무하게 하는 것은 어떤가. 궁성을 산책하면서 운동한다고 생각하면 그리 나쁜 것도 아니겠지.”

소무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장양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소 하루의 일정이 빡빡했지만, 무림의 기준에서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아미파의 어린 비구니들은 자는 시간도 부족할 정도였지.’

대부분의 명문 정파가 그러했다.

그곳의 어린 제자들은 온종일 잡일을 하며, 무공수련을 겸행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훗날 소소가 후기지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보다 많은 경험이 필요할 터.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소소는 장양의 옆에 철썩 붙어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을 보니 거절한다면 통곡할 기세였다.

“그럼…… 한번 시켜볼까요?”

울먹이려던 아이의 얼굴이 금세 활짝 펴졌다.

신이 나는지 토끼처럼 집무실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히히. 히히히히.”

“하지만 제대로 안 하면 바로 잘릴 거야.”

“잘할 수 있어요! 소소가 도둑을 꼭 잡을 거예요! 히히힛.”

용담호혈인 이곳에 도둑이 들어올 리 없었다. 흥미가 사라진다면 금세 그만두겠다고 나올 공산도 높았다. 그렇기에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때 집무실에 다른 누군가가 찾아왔다.

“장군, 일광입니다.”

“어서 들어오시게.”

백부장이었던 일광은 무관의 관복을 입고 있었다. 천검마녀 탈주 사건에서의 공헌과 마교 지부를 소탕한 전과로 승진한 것이었다.

관직은 종육품인 절제도위(節制都尉)로 소무보다 세 단계 아래였다. 현재 장양이 임명할 수 있는 최고 품계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상의 고위관직을 섣불리 임명한다면 자칫 다른 절도사들이 들고 일어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시하신 일의 조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일단 앉으시게.”

소무도 익히 아는 내용이었다. 유광세 상장군에게 보냈던 전령에 대한 일이었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복귀하지 않았기에 조사를 지시했었다.

일광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할 때 나타나는 표정이었다.

소무가 품속에서 엽전 몇 개를 꺼내어 소소에게 건네었다.

“우리 딸, 가서 우유라도 사 먹고 와.”

궁성에서 가장 많은 노점이 찻집이었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먹는 많은 종류의 음료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헤헤. 고맙습니다, 아버지!”

소소가 나가자마자 장내의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일광이 화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살해당한 전령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장양이 얼굴이 굳어졌다.

“아군에게 보낸 전령이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다니?”

“개방에서 정보를 받았고,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확실합니다.”

전령이 향한 곳은 전투지역도 아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내용이었다.

“짐작되는 흉수가 있던가?”

일광이 이를 뿌드득 갈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장군에게…… 죽은 것 같습니다. 관통상을 입은 가슴 주위가 붉게 타들어 갔다고 합니다. 상장군 가문의 창술인 적혈화섬창(赤血火閃槍)이 확실한 것 같답니다.”

장양의 손바닥이 탁상 위를 내리쳤다.

타앙-!

“어찌 아군의 전령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출전하여 양양성을 지원해달라고 조언을 했을 뿐이다. 번번이 무시당한 것도 모자라 전령을 죽이다니.

일광의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유광세인지 뭔지, 그냥 가서 죽여버리면 안 됩니까?”

현실성이 없었으며, 성공한다 한들 부정적인 영향을 감당할 수 없을 터였다.

대체할 지휘관이 없었기에 그가 죽는다면 군단이 기능을 상실할 우려가 있었다.

장양은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소무가 나직이 제안했다.

“제가 직접 전령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장양은 눈을 감은 채로 힘겹게 말했다.

“그자가 지금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 어찌 섣불리 움직일 수 있겠는가.”

“조사해보니 유광세는 매우 욕심이 많은 자입니다. 평소 추밀원사 장준의 재산을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그의 성격을 이용한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권력 욕심 또한 많은 자일세. 묘책이 있다면 어디 한번 제안해보시게.”

소무는 이런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연합군에 파견되어 대패를 당해본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미리 생각해놓은 바가 있었다.

그는 한 식경에 걸쳐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내용을 확인한 장양은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만약 자네의 계책이 실패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네.”

“가만히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장양은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누구보다 자네를 믿고 있네. 그러니 운명을 한번 맡겨보지. 하지만 조건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자네를 홀로 보내는 것은 너무 위험하네. 일광 부대장을 함께 대동하고 가시게.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서로 의지하여 같이 탈주할 수 있도록.”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장군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틀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장양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리하시게. 우선 과거제부터 마무리해야겠지. 지금쯤 순위 집계가 끝났을 테니, 함께 결과를 확인하러 가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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